전지구적 변환
데이비드 헬드 외 지음, 조효제 옮김 / 창비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책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달 걸렸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익숙하지 않은 경제 용어들이 나오긴 하지만 책 내용이 난해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읽는 데에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책이 두껍기 때문이다. 무려 170쪽에 이르는 기나긴 부록과 주석, 찾아보기를 제외하더라도 710여 쪽 분량. 각종 표에 그래프에, 눈 아프게 만드는 장치들도 많다.

온갖 사료를 동원한 알찬 글 내용과 훌륭한 번역 덕에 머리 아프진 않았다. 지구화(글로벌라이제이션을 ‘지구화’로 번역했는데 통상 쓰이는 ‘세계화’와 개념상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라는 것을 다룬 수많은 책들 중에서 손꼽을만한 ‘역작’에 해당되는, 충실한 연구서다. 저자들은 영국 학자들인데 근대 이후 폭넓은 기간을 놓고 ‘지구화’라는 현상을 영토국가/폭력과 분쟁/지구적 시장과 무역/지구적 금융과 기업/인간의 이동/환경 문제 등 분야 별로 여러 측면에서 조목조목 분석한다.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20세기이지만 분석 대상이 되는 기간은 그 전부터 대략 200년에 걸쳐 있기 때문에 꽤 폭이 넓다. 이 책은 1990년대에 쓰여진 것이어서 수치 자료 같은 것들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몇 년 새에 쉽사리 변하는 수치들에 영향 받지 않을 만큼 포괄적으로 지구화를 다루기 때문에 그다지 시기적으로 뒤쳐진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저자들은 토머스 프린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물론 이 책은 한참 뒤에 나온 것이지만)처럼 낙관론만 쏟아부어대는 ‘과도한 지구화론자’들과, ‘세계화 따위는 없어!’라고 외치는 회의론자들의 중간에서 지구화를 바라본다. 지구화는 실재하는 현상이지만 지구상 모든 지점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평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과도한 지구화론자들과, ‘평평하지 않다’는 것에 지나치게 목숨거는 회의론자들은 의외로 많다. 나 자신도 그 두 갈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반대편을 놓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

워낙 꼼꼼하게 방대한 자료를 담은 책인지라,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로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다 읽고나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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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7년 2월
절판


베트남과 이라크를 비교하는 것도 잘못이다. 베트남에서 워싱턴은 바이러스를 박멸하고 주변 지역을 예방접종하면서 전쟁의 주된 목적을 성취했다. 그리고 황폐한 땅으로 변한 베트남이 주권을 마음껏 누리도록 철수했다. 이라크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이라크는 완전히 파괴시킬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당이다. 너무나 가치가 큰 땅이다. 따라서 진정한 주권이나 제한적 민주주의도 너무 위험해서 쉽게 허락할 수 없다. 가능하면 이라크는 완전한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258쪽

"2005년1월의 선거가 실행되었던 이유가 미국 주도의 점령 당국이 제시한 세 안을 거부한 아야톨라 알리 시스타니의 강경한 입장 덕분이었다"고 보도한 파이낸셜타임스의 결론에 반박할 평론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중동 전문가 앨런 리처즈도 "미국은 애초에 조기 선거를 반대했지만 아야톨라 시스타니가 추종자들에게 길거리로 뛰쳐나가 조기 선거를 요구하라고 지시하자 워싱턴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확인해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야톨라 시스타니는 돌격 명령을 내렸다. 새 정부는 미국의 지도자나 미국이 지명한 지도자가 아니라 직접 선거로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야톨라 시스타니의 뜻이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고 보도했다. 종군기자 패트릭 코크번은 "미국이 시아파 폭동을 진압할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면서 조기 선거는 미국의 일관된 입장인 것처럼 즉시 돌변했다"고 덧붙였다.
... 이라크에서 점령군은 어쩔 수 없이 선거를 허락했지만 그 선거를 뒤엎어 버릴 방법을 궁리했다. 미국 측 후보자 이야드 알라위에게 온갖 이점이 주어졌다. 그러나 알라위는 12퍼센트의 득표로 3위 밖에 하지 못했다.
...선거는 ‘민족별 인구조사’를 방불케 했다. 시아파는 대부분 시스타니의 시아파 후보에게 투표했고, 쿠르드족은 쿠르드족 후보에게 투표했다. 수니파는 선거 참여를 거부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미 점령군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의 승리였다. 투표가 있던 날,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뜨거운 열정과 용기를 가슴에 품고 "이 땅에서 자신들의 정당한 힘을 요구하기 위해서" 투표장으로 달려갔다.
... 미국의 목표를 지지하는 엘리트 계급이 권력층을 차지하는 상의하달식 구조를 띄는 ‘민주주의’가 미국의 바람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요쉬 드레젠은 "이라크의 차기 정부를 끌어갈 듯한 사람들은 일요일의 선거가 끝나고 권력을 공식적으로 쟁취하자마자 철군을 요구하기로 약속했다"는 보도로 워싱턴의 고민을 요약해 주었다.-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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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7년 2월
절판


미국 정보기관은 미국이 전통적 이유에서 중동의 석유를 계속 통제하겠지만 자체의 석유 수요는 주로 서아프리카, 서반구 등 더 안정적인 대서양 쪽의 석유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제 미국이 중동의 석유를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또한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고립을 현저하게 심화시킨 부시 행정부의 정책 때문에 가속화된 서반구 국가들의 결속으로 정보기관의 전망마저 위태로운 시정이다.
... 게다가 서반구 최대의 석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에서 중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노골적으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중국에 석유 수출을 증대할 것을 계획하면서 워싱턴의 에너지 정책에 타격을 가했다.
...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합병할 가능성까지 점치는 분석가가 없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에서 한층 독립된 블록으로 라틴 아메리카가 통합되는 첫걸음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남미 국가들의 관세 동맹인 메르코수르에도 가입했다. 독립적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메르코수르에 가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메르코수르를 지역 전체로 확대한다는 지정학적 전망을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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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7년 2월
절판


시아파의 주도로 이란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 지역을 포괄하는 느슨한 연대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에서 독립하고, 세계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연대이다. 그렇게 된다면 워싱턴에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더 최악일 수도 있다. 이런 독립된 연대가 이란의 주도로 중국이나 인도와 손잡고 에너지 개발을 계획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시아 에너지 안보망 Asian Energy Security Grid’ 이나 ‘상하이 협력기구’와 손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세력권은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석유를 중심으로 통화 바스켓을 바꾸어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중대한 타격일 수 있다.
...에드워드 웡은 뉴욕타임스에서 "남쪽으로 이란과 인접한 바스라 항은 과거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시아파 주도하에서 작은 신정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이란과의 결속이 뚜렷이 드러난다. 호메이니의 포스터가 길거리 곳곳에 나붙고 심지어 지방 정부 청사에도 붙어 있다. 이런 정부는 지난 6월 자국 선거기간 중에 이곳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을 위한 부재자 투표소까지 설치했다. 바스라 시장은 이란에서 전기를 사온다고 떳떳하게 말했다"고 덧붙였다.-256쪽

이란의 분석가 아이자드 아흐마드는 "서구 세계가 쥐고 있는 세계 에너지의 공급권을 극복하고, 아시아의 절대적인 산업 혁명을 이루고자 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시아 에너지 안보망’에서 이란은 향후 10년 내에 실질적 중심축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한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여기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며, 일본이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도가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가 중요한 변수이다. 인도는 이란과의 석유 파이프라인 협상에서 철수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거부했다. 하지만 IAEA의 반(反)이란 결의안에서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편에 서면서 그들의 위선에 동참했다. 지금까지 이란이 그런대로 준수해 온 듯한 NPT 체제를 인도는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인도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미국의 위성국이 되어 미국의 보살핌을 받을 수도 있고, 이제 형태를 갖추어 가지만 한결 독립적인 아시아 블록에 참여해서 중동의 산유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 2005년 아시아의 에너지 생산국과 소비국이 모인 뉴델리 회담에서 인도는 시베리아 유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 산유국과 에너지 소비국까지 범아시아 천연가스망과 석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200억달러 규모의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 이미 모색 단계에 들어간 첫 단계는 아시아의 석유 시장 거래에서 유로화로 결제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 금융시스템과 힘의 역학 관계에 미치는 파장이 대단하리라 여겨진다. ‘힌두’의 부편집장은 "미국은 갓 태동한 아시아 연결망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인도라 생각한다. 따라서 인도와 연합해서 인도의 세계적 위상을 약속하고 핵 당근을 건네면서 새로운 지역 구도를 건설하는 과제에서 인도를 빼돌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시아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인도가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그는 경고했다.-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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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7년 2월
절판


이스라엘 군 역사학자 마틴 반 크레펠드는 "미국이 이라크를 어떻게 공격했는지 세계는 똑바로 보았다. 이미 밝혀졌듯이,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이런 지경에서 이란 지도층이 핵무기를 건조하길 포기한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 헛발을 짚으면서 이란에게 강력한 핵무기의 필요성을 깨우쳐 준 셈이다.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무력 시위가 이란과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증거는 아닌 듯하다. 몇 년이나 앞서 공격 신호를 보내는 것도 현명한 짓은 아닐 테니까. 목적은 더 억압적인 정책을 채택하도록 이란 지도부를 자극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 정책으로 내분이 조장되면 미국이 군사행동을 감행할 정도로 이란이 약해질 수 있다. 또한 강압 정책은 이란을 고립시키는데 참여하라고 워싱턴이 우방국에 압력을 가하는 데도 유리하다.-132쪽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맥과이어는 그 이유를 워싱턴의 악의적 행동과 위협에 비추어 검토했다. 초강대국 미국과 그의 강력한 동반국, 게다가 다른 핵 보유국까지 이란을 에워싸고 있다. ...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위협은 워싱턴이나 런던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심각하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와도 같은 상황이다.
...미국의 다른 행위들도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핵 억제력을 개발하려는 인도의 결정은 1991년 걸프전과 1999년 세르비아 폭력으로 굳어졌다. "두 곳 중 한 곳이라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미국도 섣불리 전쟁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는 이런 교훈을 잊지 않았다.-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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