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여자 - 여자 몸에 대한 연구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경식 외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정확히 말하면 '벗은' 것이 아니라 '벗긴' 것이 되겠다. 저자는 여자를 발가벗기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부분부분 잘라놓고 얘기를 한다. 이마, 눈, 코, 입, 어깨, 가슴, 엉덩이, 다리... 이렇게 토막친 여자를 사진을 찍어놓고 "이 부분으로 말씀드리면~~~" 하고서 썰을 푼다.

총평을 말하자면-- 과학책을 빙자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책. 아무리 요즘의 분위기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지만 말이지. 난 이 책이 과학책인 줄 알고 샀단 말이다. 그냥 잡다한 문화적/동물학적 지식을 나열해놓고서 근사하게 이름을 붙인 정도로 밖에 봐줄수 없겠스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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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1-0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데즈먼드 모리스의 새 책이라기에 조금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안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


딸기 2004-11-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저책이 영 꽝이었는데, 다른 분들한테는 안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

마냐 2004-11-09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살펴본뒤, 이건 아냐..라고 내려놓은 책. 반갑군. ^^

딸기 2004-11-0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이 읽었다면 필히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으로 생각됨. ^^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조너선 스펜서의 책이라면 무조건 별 다섯개를 주고 보는 것이 나의 버릇 아닌 버릇이건만, 이 책은 국내에 출간된 스펜서 책들 중에서 확실히 태작이다. 분량이 짧다. 마오쩌둥을 좋아하건 안 좋아하건, 영웅으로 칭송하건 독재자라 욕하건 간에, 명색이 당대의 중국 전문가인 스펜스같은 학자라면 이정도 분량으로 다룰 인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스펜스가 개인적으로 마오쩌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것은 나하고 별로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자에게도 취향이 있을 것이고, 글 쓰는 스타일이 있을 터이니깐.

스펜스는 1차 사료를 독특하고 재미난 방식으로 '요리'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저술가다. 이 책 또한, 분량은 적지만 방대한 사료를 참조해서 썼다고 봐야겠다. 간략히 말하자면 스펜스는 마오쩌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마오에 대해 내린 평가는 '담대한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변해버렸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혁명 초창기(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 마오에 대한 묘사에서도 애정어린 시선은 별로 나타나지 않지만, 후기(집권 이후~문혁)의 마오를 보는 스펜스의 눈은 몹시 냉랭하다. 물론 문혁이니 홍위병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찬양 섞인 평가를 하는 학자들이 (중국 밖에서) 누가 있을까마는.

스펜스는 책 제목에서 마오의 이름 앞에 '무질서의 지배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친절히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옛날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무렵 잠시 '야자타임'처럼 신분의 지위를 역전시키고 노는 풍습이 있었고, 이때 사회를 맡아 '높은 사람'역할을 하는 낮은 사람을 '무질서의 지배자'라 불렀었다고. 저자가 마오를 어떻게 보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굳이 좋게 해석하자면 글자 그대로 마오는 무질서한 중국을 통일해 지배자가 된 인물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스펜스의 의중은 분명 그것은 아닌 듯하다. 마오가 짊어져야 했던 시대는 제국주의에 짓밟히고 혼돈이 극에 달했던 무질서한 세계였다. 동시에 마오가 만들어낸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무질서의 또다른 모습이었다고 스펜스는 보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짧은 책이긴 하지만, 마오의 여러가지 면모를 엿볼 수있다는 장점은 분명 있었다. 예를 들면 도표와 통계수치에 강했다는 점은 마오가 '아래로부터의 혁명' '농민혁명'을 이뤄낸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기반이었고, 좀더 연장시키면 '하방운동'(평가는 차치하고) 같은 방식을 고안해낸 것까지 이런 관점에서 설명이 될 수도 있겠다. 짤막한 책의 최대 장점이라면, 요점만 간단히 나와 있다는 것이다. 마오를 보는 스펜스의 시각이 명료하게 나타나 있고, 구구절절한 줄거리는 간단히 소개한채(고유명사는 최대한 생략) 핵심적인 역사적 사실들만 언급하고 있어 초심자에겐 오히려 좋은 책일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의 생각의 변천과정이 자세하게 나와있지가 않았다는 점. 중국의 전제군주들에 찬사를 바쳤던 스펜스가 '현대판 황제'에게 냉랭한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저 '집권 뒤 궁전에 처박혀 옹고집이 됐다'는 결론 밖에는 안 나오는데, 마오의 평전 치고는 역시나 부실하다. 덩샤오핑과의 관계가 치밀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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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오퍼스 7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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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최근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주문했다. 결과는... 참담하다. 대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테마가 뭔지, 그걸 잘 모르겠단 말이다. 손택은 유명한 문화비평가이고, 이 책은 손택이 1960년대 초중반에 썼던 평론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아마도 당시는 손택이 이름 그대로의 '평론가' 활동에 가장 열심이었을 시기였던 것 같다. 따라서 이 책에 나타난 손택의 모습은 '타인의 고통'에 나온 것과 같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와는 사뭇 다르다. '타인의 고통'이나, 그 밖에 손택이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에 기고했던 많은 현실참여적인 글들과 달리 '장르로서의 평론'에 몰두해 쓴 글들이라는 점이고,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이 재미 없다는 얘기다.

재미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손택의 잘못이 아니라 내게 있을 것이다. 손택이 이 책에서 비평한 여러 장르의 예술작품들을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까뮈의 '이방인' 정도밖에 못 읽어본 내가, 감히 뉴욕의 연극에 대해 무엇을 알리오. 그러니 팍팍 깎아 말하자면 손택의 최근 명성에 기대어 국내 독자들에겐 그닥 상관없는 평론집까지 출간해버린 출판사의 상술을 욕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해석에 반대한다'고 도발해놓고서 해석을 남발하고 있는 손택을 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머리에 나오는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이 제시한 원칙들이 그녀 자신의 개별 '평론'들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지 영 알수가 없다.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이 말하는 가장 확실한 논지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스타일'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기도 하는데, 기존의 '도덕주의적인'(혹은 잘난척하는) 평자들은 작품의 내용을 중시하되 스타일을 무시함으로써 정작 이 두가지가 효과적으로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진정한 '감상'을 방해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예술 작품을 형식과 내용으로 나누어서 감히 내용이 있어야만 좋은 작품이라 말하지 마라' '예술 작품에 윤리(특정 집단의 도덕)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히틀러 치하의 예술에도 미학은 있다'라고 말하는 이 시기의 손택과, 이후 실천적 지식인 내지는 평화운동가로서 손택의 면모가 연결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책은 별로 재미 없었고,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양과 전혀 다른 것들에 대한 비평이었기 때문에 영양가도 별로 없었다. 다만 공상과학 영화들을 비평한 글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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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09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드팀전 2004-11-0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말씀에 공감이 가는부분들이 있습니다.이오네스코를 읽고난 다음이라 이오네스코 평가가 기억이 납니다.이 책이 가장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은 "캠프" 라는 개념때문이 아닐까 합니다.'키치'와는 또 다른....... 문화적으로 하위문화의 주체성에 대한 평가...등등..... 전체적으론 지루했지만 부문부문 읽을 만한 꺼리는 많았던 것같아요.

딸기 2004-11-0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반갑습니다.

맞아요, 전체적으론 지루했지만 부분적으론 재밌는 구절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 '캠프'라는 것도 솔직히 뭔소린지 잘모르겠던걸요. 어떤 점에서 독창적인 개념인지...
 
이슬람 미술 Art & Ideas 11
조너선 블룸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길아트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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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나와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헌데 솔직히 책 자체로만 보자면 별다섯개 짜리는 아니다. 명실상부한 '개론서'로서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자체에 대한 책들도 변변히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미술에 대해 제법 알차게 소개한 이런 책이 나와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한길아트에서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 하나인데, 이런 미술 시리즈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그런것까지 별점 매기는데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개론서로서 장점을 말해보자면, 도판이 많은데다가 화질이 그런대로 좋다는 점이다(책값이 비싼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책은 '이슬람 미술'이라는, 시대적 지리적으로 굉장히 애매할 수 있는 소재를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이슬람 미술에서 회화의 중요성이 다른 문화에 비해 낮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서구에 경도된 학문 보편의 문제점 때문에 흔히 대학의 미술사 수업에서도 이쪽 동네는 제껴지기 십상이다. 부부 미술사학자인 저자들은 책에서 이슬람 세계의 건축과 책, 공예를 주로 다루는데 이슬람 미술의 특징을 아주 잘 잡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가 없다 해서, 그리스 조각같은 조각상이 없다 해서 미술이 없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저자들이 핵심적으로 포착한 것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한 이슬람의 제책술이라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인물 도상이 적은 대신 '손재주'로 발전한 다종다양한 공예품과 직물들, 그리고 이슬람 문화의 핵심 중의 핵심인 '책'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다면.
개론서라는 특성상 여러가지를 두루두루 짤막하게 소개하다 보니 정작 이슬람 미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슬람 미술에 대해 모종의 로망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운 좋게도 이슬람 세계의 미술작품 몇몇을 직접 내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모래바람에 덮인 사막의 모스크, 아름다운 금박으로 새겨진 쿠란, 아야 소피아의 거대한 현판, 오스만의 화려한 보석들, 술탄의 하렘을 장식한 푸른 모자이크 타일들, 사마라의 거대한 나선형 탑. 이 책은 그것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설명이 너무 건조하다. 미술을 다루는 책은 글조차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라고 하면 지나친 바램일까.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주로 제책술과 서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페르시아 문화권(페르시아/무굴)의 작품들에 설명이 집중돼 있다. 반면에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의 미술에 대해선 최소한도로만 언급하고 있고, 오스만의 건축들에 대한 설명도 적다. 개론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수 없는 한계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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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05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이 묻어나는군.....요즘 '다독'하시는구만..ㅋㅋ

딸기 2004-11-05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밤중에 접속이라니!

그리움이라기보다는... 뭐. ^^ 히히히 그런거지 뭐. (말이... 안 되는군...)



나 요새 다독 연습중이자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영... ㅠ.ㅠ

마냐 2004-11-05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적 노동강도 때문에 숨넘어가는 즈음이닷. 다다음주가 1주년. 글구보니...다음이 마지막 원고인가? 아쉬워서 어쩌나. ^^;;;

딸기 2004-11-05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필자교체 확정된 거야? 야호~~~

마냐 2004-11-0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내가 확답을 안했었군....1년맞이 뭔가 대대적 개편을 하고파들 하는데....별거 있는감. 뭔가 코너 좀 바꿔보구...뭐 그런거. 안 봐두 비디오잖아. 사실 나두 까먹고 있었는데...어제 부장이 후속 칼럼 어찌됐냐구 쪼잖아...이번엔 그 자리에 정치 뒷얘기를 넣자시네.....내 생각엔 어차피 인사(언제나 그렇듯 말만 무성타가 그냥 연말설) 나구 난뒤에 새 부장이 쫘악 짜보는 편이 좋을텐데 말야.....암튼...........필자님.....염가에 부려멌었는데요, 고맙슴다. ^^
 
삐딱하게 보기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소연 외 옮김 / 시각과언어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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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라캉도 모르면서 지젝을 읽는다? 나는 라캉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라캉이라는 이름은 여기저기서 봤지만 도대체가 머리가 아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젝의 책을 읽고난 느낌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가 되겠스무니다... 라캉을 모르면서 지젝을 읽는 만용을 저지른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라캉을 모르기 때문에 지젝을 읽었고, 지젝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따라서 '라캉식으로 대중문화 삐딱하게 보기'를 하는 작업은 재미있었다. 이 책은 라캉의 이론을 대중문화 작품들을 통해 해석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대중문화 작품들을 라캉의 눈을 빌어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책은 현실과 실재, 욕망과 충동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 출발해 헐리우드 영화와 추리소설 같은 대중문화 장르들을 넘나들며 이미지의 이면에 숨겨진 공포와 환상을 파헤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나의 무지함은-- 예상과 달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무지함이 아니라 히치코크 내지는 영화에 대한 무지함이었다)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의 패러독스처럼(양자역학 전문가들이라면 이 패러독스 자체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꼈겠지만) 쾌락은 '내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데에서 지젝은(혹은 라캉은) 출발한다. 지젝은 현대의 욕망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들을 예로 들면서 "욕망은 환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욕망의 실현은 '충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족되기까지 '끝없이 쫓아가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젝에게 있어 외디푸스의 아버지, 즉 '살해된 아버지'라는 모티브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던 아들의 쾌락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신화적 모티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그에게 아버지의 역할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쾌락에 터부(금기)를 덧씌우는 기제로 작용함으로써 사실상 우리를 교착상태에서 구해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통해 우리는 쾌락의 충족을 지연시킬 핑계거리를 찾게 된다.
그러나 지젝(라캉)이 보여주는 현실과 실재의 메커니즘은 좀더 복잡하다. 상징적 메커니즘은 실재의 어떤 한 조각에 고정돼야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핼리혜성(기호)이 공포감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뒤 재앙(실재의 응답)이 일어나는 것처럼, 어떤 사물/사건이 '기호'로 읽히는 것은 실재의 응답이 있을 경우에 한한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직면해 있는 '실재의 응답'으로 지젝은 생태학적 위기를 거론한다. 생태학적 위기는 '우리 삶에서 자명한 확실성의 영역을 잠식하는 것'이기에 궁극적인 형태의 위기가 된다. (하지만 '자연의 균형이라는 관념을 폐기하라'는 '라캉식 요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충족시킬지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대중문화 분석으로서 지젝의 작업은 이 책에서 히치코크의 영화들에 집중돼 있다. 지젝에 따르면 '내가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나를 응시한다'. 이 지점에서 관점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한편, '응시'는 대상과 나의 관계를 분열로 이끄는, 즉 나의 현존을 교란시키는 '오점이자 얼룩'이 된다. 나는 거리를 두고 (안전한 곳에) 떨어져서 대상을 보지만 응시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 머릿속의 프레임이 부서져버리는 것이다. 대상은 내 머리 속에 개입해들어오면서 (히치코크 영화의 사물들처럼) 기괴한 것으로 변해버린다. 지젝이 제안한 '라캉식으로 대상을 보기'는 이렇게 일상의 기괴함을 극대화함으로써 공포와 환상을 직시하게 한다. 이같은 작업이 현학성을 넘어 대중과 만나는 것은, 공포와 환상의 '기호'들이 '실재의 한 조각'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지젝은 이런 '낯설게 하기'를 이데올로기적 징환과 연결시킨다. 국가기구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택되어 끊임없이 우리의 뇌리를 떠도는 기호들에 대해, 이런 것들의 인위적인 성격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이런 징환(신호)들을 오히려 컨텍스트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종류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우리는 징후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를 정치의 영역으로 연결시킨 분석이 흥미롭다. 군중심리 혹은 집단광기처럼 하나의 징후(예를 들면 스스로 유대인을 때려잡는 몽둥이가 된다든가)에 매달리기도 하고, 트라우마를 안겨준 무언가에 집착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환경운동가들이 구호화한 '체르노빌'이라는 은유에 이르면 '징후와의 동일화'는 전복의 수단이 된다.

지젝의 글에서 눈에 띄는 또 한가지는 '환상의 윤리학'이다. 지젝은 타인의 환상공간에 침입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의 꿈을 망치는 것이 곧 죄라고 말하면서 죄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정의를 내린다. 라캉에게서 이어받은 이같은 '환상의 윤리학'을 통해 우리는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 윤리학(인간의 자연권/보편적 이성)의 와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로서는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타인의 꿈 또는 환상에까지 '인권'이라는 잣대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할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철학자들 사이에 '계몽주의의 시대는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할지언정 인간의 자연권/보편적 이성을 모두 부인할 수 있을 정도의 시대가 과연 된 것일까? 이 문제는, 구미의 철학자들이 너무 쉽게 포스트모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보다는 송두율 식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나의 근본적은 의문과 관련이 있겠지만.)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지젝의 문제의식이 히치코크 분석을 넘어서 정치적 실천의 문제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고도의 추상화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주체가 상실된 추상화는 결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연관들을 해소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대중문화의 컨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주체는 공허 속에서 병적인 오점으로 더럽혀져 있다는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 안에서 주체는 오직 민족주의의 이름을 걸고서만 나타나게 돼있으며, 민족주의는 신화를 통해 집단적 쾌락을 조직하는 방식일 뿐이다. 이런 언급은 물론 지젝이 민족주의의 폭력적 분출을 겪고 있는 동구권의 지식인이라는 조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할 터이다.
지젝은 "서구의 형식적 민주주의 내에서 환경보호론자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며, "일단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형성된 '생활의 패러다임' 내에서의 근본적 변화라는 기획은 반드시 형식적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를 파들어가게 돼있다"고 말한다. 이런 지적은 굉장히 설득력 있지만, '라캉만이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말하는 지젝에게는 과연 어떤 해법이 있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현란한 해석, 그리고 공허감, 그런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지 못했다.

책을 읽고난 뒤에도 라캉은 여전히 불가해한 존재로 남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지젝을 따라 대중문화를 보는 동안 '틈새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 점에서는 대단히 재미있었다. 라캉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젝처럼 보기', 즉 '삐딱하게 보기'에는 모종의 훈련이 필요하며 그것이 묘한 쾌감을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남은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천천히 찾아봐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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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05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은 환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욕망의 실현은 '충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족되기까지 '끝없이 쫓아가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요즘 마냐 생각! .......나머지는 역쉬 넘 어렵군...

딸기 2004-11-05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너무 어려워서 머리에 쥐날 뻔 했는데, 다행히도 이 책 번역은 훌륭했어.

넘쳐나는 번역체 때문에 두려워서 책을 못 읽을 지경...

갈대 2004-11-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2년쯤 전에 10쪽 정도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덮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긴 하네요. 제가 무지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번역에 심대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다시 도전을 해야 할 텐데..

딸기 2004-11-0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의 번역 꽤 마음에 들었는걸요. 이런 종류의 책들, 말을 하도 이리저리 꼬아놔서 읽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책은 제법 괜찮았어요.

로쟈 2004-11-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책들은 곳곳이 '지뢰밭'인데, 그나마 목숨은 건질 수 있는 번역 중의 하나인 듯합니다. 저도 귀국하면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딸기 2004-11-1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지금 모스크바에 계시다고 하셨죠? 언제 귀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