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나라 여행
제홈 뤼이이에 글 그림 / 크레용하우스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는 이미 네 살이어서 색깔을 구분하는 단계는 진작에 거쳤지만, 색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색깔 그림책만 해도 '야옹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아기물고기 하양이 색깔여행' 등등 몇권을 봤었다. 이 책은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사 준 색깔책.  

유아용으로 읽힌다면, 앞서 언급한 다른 색깔 책들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이 책을 보여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일본에서 산 팝업북 중에 색깔이 아주 곱게 나온 것이 있어서 그걸로 우선 색깔공부?를 했고, '야옹이가~'와 '하양이'를 봤었다. 우리 아이가 보았던 색깔책들을 굳이 순서대로 구분한다면 팝업북->하양이->야옹이->그리고 이 책 순서로 보여주는 편이 좋았을 걸 그랬다. 

하양이 종류보다는 약간 수준이 높다. 무지개색 기준이 아니라, 초록 숲나라와 빨강 바쁜나라, 회색 시끄러운 나라, 검정 무서운 나라, 노랑 눈부신나라, 파랑 시원한나라, 그리고 재미있는 여러빛깔 나라 순서로 되어 있다. 유아용이어서 줄거리가 간단하고 글자가 거의 없긴 하지만 아주 단순한 색깔공부책은 아니다. 그림은 멋지다. 그리고 뒤에 색칠공부 페이지가 있다!!! 우리 애는 그것 때문에 이 책을 엄청 좋아했다. 이 책 읽은 뒤에는 나들이 가기 전에 "초록색 풀나라에 가서 놀 거야" 이렇게 내가 얘기를 해준다. 그러면 아이는 "그런데 검정 괴물나라는 안 갈거야. 무서우니깐."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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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8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5-04-1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깜찍하지요?
**님, :)
 

"아들아, 이 거대한 나무를 보아라. 만약 누군가 이 나무의 뿌리를 친다면, 나무는 상처를 입을 게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나무의 줄기를 친다면, 나무는 상처를 입을게다. 하지만 또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나무의 우듬지를 친다면...아트만으로 충만한 이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l"
그리고 나서 우달라카는 아들에게 무화과 열매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그는 아들에게 그것의 씨를 쪼개라고 지시한 뒤 다음과 같이 물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들아, 참으로 너는 최고의 정수(精髓)를 알지 못하는구나. 최고의 정수로부터 이 신성하고 거대한 무화과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그것이 실재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그것이 너이다."
현자는 아들에게 이번에는 사발에 물을 넣고 소금을 녹여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사발 한쪽으로 한 모금 맛을 보라고 일렀다. 그런 다음엔 반대쪽으로 또 맛을 보게 하고, 사발 가운데로 다시 한 모금 맛보게 했다.
"맛이 어떠냐?"
"짭니다."
"아들아, 네가 보다시피 여기엔 소금이 보이질 않아. 하지만 소금은 여기에 있단다. 그것이 최고의 정수이고, 온 세상이 영혼으로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거란다. 그것이 실재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그것이 너이니라."

- 우파니샤드 철학자 우달라카와 아들 슈베타케투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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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2005-05-07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주 좋네요. 아트만..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라 반가워서 한 자 적어요..ㅋ
 

오랜만에 바닷가에 다녀왔다. 

따지고보면, 뭐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구나. 서울에 살면서 일년에 바다 한번 보기 쉽지 않으니까. 도쿄에 있을 적에 바닷가에 수시로 갔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서울에 살면서 바닷가에 다녀온 것은 오랜만이다'가 되겠다. 
어제, 토요일, 아는 언니네 식구들과 천리포 수목원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수목원 바로 옆에 있는 만리포 바닷가에 잠시 들렀다. 바닷바람이 꽤 쌀쌀해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한 20분 정도 머물렀을 뿐. 십수년 전에도 어딘가에 다녀오는 길에 그렇게 잠시 만리포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기억에는 갯지렁이들만 남아 있다. 갯지렁이들이 꽁무니인지 머리인지(어디가 머리인지 구분을 못하겠음) 모래에 콕콕 박고서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모습. 걔네들, 꽤 오래 사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그대로였다. 물 빠진 모래밭에는 구불구불 물결 자국이랑 갯지렁이들, 쥐며느리처럼 생긴 물벌레와 새끼손톱 반조각만한 껍데기동물(갑각류는 아니고 뭐라 해야 하나 달팽이처럼생긴 것들)이 꼬물꼬물 기어간 자국들.

모래밭 윗부분이 말라서 굳어있었다. 손으로 두드리면 껍질처럼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아이랑 남편이랑 앉아서 잠깐동안 '모래 과자 있어요' 하는 놀이를 했다. 아이는 더 놀고싶어했지만 일행이 있었던데다 바람이 차서 그냥 올라왔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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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4-1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 좋네요. 오후에 찍으신 건가요?

딸기 2005-04-18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사진은 제가 찍은 건 아니고요. ^^ 동생이 찍은 거랍니다.

비로그인 2005-04-1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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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다'
이런 허망한 제목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책의 리뷰는 어쩔 수 없이 상투적인 말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겠다. 네 살 아이가 읽기엔 조금 수준이 높은 책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아이랑 같이 읽다보니 엄마의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그림도 줄거리도 '한국적'이다. 그림에서 어딘가모르게 해학 같은 것이 묻어난다. 
세상에, 만두속을 그렇게 많이 만들면 어떡해요, 할머니! 만두를 너무너무너무너무 크게 만들면 어떻게 먹나요? 할머니랑 동물들의 만두 준비하기, 빚기, 끓이기, 먹기. 앞으로 두고두고 설날 전에 아이랑 같이 이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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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4-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고맙습니다. 책 정말 잘 읽었어요 *^^*

2005-04-18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24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도러가 무지 좋아하는 책이랍니다.^^

딸기 2005-04-25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맘에 들었어요. ^^
(로드무비님 도러랑 저랑 수준이 비슷하군요. 반갑다고 전해주세요)

비로그인 2008-07-23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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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본질적'인 얘기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리는 작가.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작가라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그들이 툭툭 던진(사실은 고도의 계산 속에서 나왔을 터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몸뚱아리가 저만치 내팽개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다.

소설을 손에 쥐기 전,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이에게 물어봤었다. "재미있어?" "응." 대답하는 사람의 말투에 잠시 뭔가 착잡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일단 나는 이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라고는 한 알갱이도 없었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어쩐지 끌린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소설은 금새 읽혔다. 순식간에, 정확히 말하면 낮잠 자기 전 반나절 만에 읽어버렸다(그래서 낮잠을 많이 못 잤다). 읽고 나서 머리 속이 정리가 잘 되지를 않았다. 꽤 오랜 시간, 적어도 책 읽는데에 걸린 시간의 스무배쯤을, 그냥 생각만 했다. 모래...라니. 모래. 모래? 모래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있어야 말이지. 모래의 여자. 모래 속에 사는 여자. 모래 속에 사는 남자. 모래에 묻힌 마을. 모래가 흐르고 모래가 날리고 모래가 모든 것인 그런 곳. 모래에 파묻힌 인생. 


한 남자가 '실종'된다. 그냥 사라진다. 물이 모래에 스며들듯이, 그리고는 뙤약볕 밑에서 흔적없이 증발해버리듯이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남자는 모래에 묻힌 마을, 모래에 묻힌 집, 모래에 묻힌 여자에게 걸려들어 모래 세상의 일원이 된다. 모래에서 벗어나려 애쓰다가 실패를 거듭. 남자는 결국 스스로 '모래의 남자'가 된다. 참 희한한 소설이다. 

책을 읽고 나서 모래 세상 이야기가 부채의식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읽을 때엔 그저 적당히 재미있는, 조금 희한한 소설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내 머리속에서 윙윙거리던 모래 세상의 모습은 다만 흘러가는 모래 더미, '더미'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모래, 그런 거였다. 책을 읽고 시간이 흐르니 이 소설, 그야말로 '완벽한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집을 갉아먹는 모래바람처럼)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소설은 픽션이다. '모래의 여자'는 픽션이다. 사람이 무슨 날벌레도 아닌데, 거미줄에 걸리듯 모래구멍에 걸려들어 나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있을수 있는 일인가. 모래에 묻혀 있는 세상, 거기서 자의반 타의반 묻혀 사는 사람들이라니. 이건 픽션이다. 그런데, 허구는 허구이되, 실상은 허구가 아닌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또한 '소설'이 아니겠는가. 픽션인 줄 알지만 너무나도 그럴듯하다. 이런 일이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는 '개연성'의 차원이 아니라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정성'의 측면에서 정말 '그럴듯하다'. 가족이 되었건 연인이 되었건 지금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건너기 힘든 심연을 시시때때로 발견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심연을 '늪'이라 해도 상관 없고 '바다'라 불러도 상관없다. 그러니 '모래'라 부른들 그 또한 어떠하리. 

작가가 그린 모래세상은 그 '심연'에 대한 비유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작품에서 '모래'는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고리들이 사실은 얼마나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그저 모래구덩이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실종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모래는 희한한 매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녹아웃시켜서 진을 빼버리고, 오를 수 없는 벽으로 군림하고, 물처럼 흘러서 생명을 위협하고,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며 모든 것에 스며든다. 그런가하면 원초적 본능을 부활시켜 인간을 인간되게 만들기도 한다. 남자는 모래의 여자와 한 몸이 되고, 모래가 깊은 곳에 아주 은밀히 물을 머금고 있다는 대발견을 한다. '모래의 에로티시즘'이라니, 별나기도 하다.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는 허구이되 허구로 끝나지 않고, 작가가 잘라보이는 단면 또한 '단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픽션이지만 세상의 본질을 푹푹 찌르고, 길지 않은 소설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완벽한 소설'이다. 이리저리 참 잘도 꿰어맞췄다. 소설의 구성이 워낙 잘 짜여져 있다. 아무래도 이 작가는 성질 괴퍅하고 편집증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순순히 "재미있어"라고 말하기 앞서 조금은 착잡한 심정이 되게 만드는 이야기,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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