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끝났다 - 석유시대의 종말과 현대 문명의 미래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품절


중동 다음으로 세계 최대의 미개발된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곳은 카스피해 지역이다(하지만 이곳의 매장량은 과대평가되어 있는 듯하다).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가들은 이 자원을 궁극적으로 미국에 전달하는 것보다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이 이 자원의 공급과 가격을 통제할 위치에 점하게 되는 문제에 더 관심을 보인다.
... 이런 점에서 현재의 외교적 노력은 이 지역 세력을 하나로 뭉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동의 경우와 동일한 전략을 구사한다. 즉 안보에 대한 약속, 그리고 반항적인 민중을 억압하는데 사용 가능한 무기를 조달해 부패한 정권을 매수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카스피 해 지역에 19개의 새로운 군사 기지를 설립했다. 이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영구 시설물처럼 보인다. -332쪽

(마이클 클레어, ‘자원전쟁’에서 인용) 아시아의 점증하는 에너지 수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남중국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남중국 해와 경계를 이룬 국가들이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해저 자원의 이용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일본과 한국을 포함하여 몇몇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다른 지역의 에너지 공급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그 자원을 운반하는 대부분의 상선들이 남중국해를 통과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국가들은 지속적인 자원 공급에 위협이 된다면 무엇이든 막으려고 애쓸 것이다. 결국 이런 요소들이 결부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남중국해가 에너지 경쟁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다.-337쪽

발칸반도는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아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에너지 자원을 전달하는 데 있어 요충지다. 발칸반도는 베트남전 뒤 건설된 미군의 해외 군사기지 중 최대 규모의 캠프 본드스틸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9년에 미군이 점유한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지역에 위치한 캠프 본드스틸은 미국 지원하에 현재 건설 중인 발칸반도 경유 파이프라인에 인접해 있다. 휴스턴에 본사를 둔 브라운 앤 루트 서비스(핼리버튼 자회사)가 캠프 본드스틸에 각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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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끝났다 - 석유시대의 종말과 현대 문명의 미래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품절


사실 혈암류는 잘못된 명칭이다. 이 암석은 혈암이 아닌 유기성 이회암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석유가 아니라 케로겐 kerogen 이라 불리는 고체의 유기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권장자들은 항상 오일 셰일 oil shale 같은 용어들을 선호한다. 이런 용어들이 모험이 따르는 판매를 촉진하기 대문이다. 혈암유 산업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 - 비교적 최근의 셰브론, 유노컬, 엑손,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시도 - 가 실패로 끝났다. 혈암유 회수에는 광석 채광, 운동, 화씨 900도까지 가열, 수수 첨가, 폐기물 처리 - 최초 광석보다 그 양이 훨씬 많을뿐더러 지하수 오염 문제를 야기한다 - 등의 과정을 포함한다. 또한 가공 처리와 보조 지원시설에 막대한 양의 담수 - 근본적으로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 - 가 필요하다. -201쪽

롬보르(‘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저자)는 유사 oil sand를 언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 앨버타 북부의 아타바스카 유사는 8700억 배럴에서 1조3000억 배럴의 석유 - 지금까지 채취한 재래식 석유의 총량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양 -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신크루드(기업 컨소시엄)와 선코르(선오일의 자회사)가 앨버타에서 유사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지금 신크루드가 생산하는 석유는 하루 20만 배럴을 상회한다. 유사 채취에는, 뜨거운 물을 이용하여 모래로부터 얇은 기름 막을 제거한 후 인공 석유로 품질을 높이기 위해 나프타 - 석유·콜타르 따위를 증류하여 얻은 무색의 휘발성 액체 -를 첨가하여 타르 비슷한 물질을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1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려면 2톤의 유사를 채굴해야 한다. 유사에서 석유를 채취하는데 들어가는 총 에너지와 여타 비용은 회수되는 석유 3배럴 중 2배럴의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혈암유처럼 유사의 순 에너지 수치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유사를 처리하면 기름투성이의 페수를 양산한다. 1배럴의 석유 생산에 2.5배럴의 폐수가 생성되는데, 그 결과 거대한 호수가 생성된다. 신크루드 호수의 경우 22킬로미터 둘레에 6미터의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40미터 두께로 모래, 침니, 진흙과 회수되지 않은 석유 슬러지가 쌓여 있다. 앨버타 북부 주민들은 유사 공장 폐쇄를 위한 소송을 제기하며 환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원주민 추방, 북부 삼림 파괴, 가축 사망, 현저한 유산율 증가 등등 공장 가동과 관련해 심각한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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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끝났다 - 석유시대의 종말과 현대 문명의 미래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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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전 앞뒤로 국제유가가 대략 배럴당 22~28달러였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유가 밴드(적정가격대)를 25달러 정도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그러던 것이 이라크전 뒤에 배럴당 30달러대로 오르더니 40달러, 50달러, 60달러, 급기야 작년 재작년 70달러까지 갔다. 그동안 석유 위기를 경고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도 들은체 만체 하던 세계가 화들짝 놀라 너나없이 석유 얘기를 하고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하네, 재생가능 에너지로 가야 하네 소란을 떨게 됐다.

그사이 석유에 대한 책도 알음알음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지금껏 본 책들 중엔 ‘석유의 종말’이 석유 문제를 제법 알차게, 그러면서도 저널리스틱하게(가볍고 재미있게) 다뤄서 읽기 좋았다. 이 책은 ‘석유의 종말’ 등등보다 좀 앞에 나온 것이라 하는데 그래봤자 9·11 이후에 나온 거니깐 시기적으로 그다지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내용이 너무나,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거의 20세기 이후 모든 국제뉴스들을 다 끌어다 놓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좋게 말하면 ‘한권으로 정리한 석유의 역사와 에너지의 미래’가 되겠다. 나는 이 책이 너무 문어발 같아서 아주 좋지는 않았는데 함께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한권으로 그간의 논란을 모두 묶어놓아서 이해하기 좋았다고 하니, ‘에너지 교양서적’으로는 꽤 괜찮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에너지 위기에 대한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대안 에너지로 거론되는 것들의 타당성을 조목조목 잘 따져놓았다는 것, 그리고 ‘에너지 없는 미래’의 암울한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았다는 것. 사실 우리가 석유 없는 생활을 생각하기가 참 힘든데, 그런 면에서 ‘우울한 미래’를 전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사실은 꼭 필요한 일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런 우울한 미래가 도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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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김경수 그림 / 물병자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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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를 예전에 친구에게서 빌려와 놓고 몇 년을 못 읽다가 그냥 다시 돌려주었고, ‘벌거벗은 여자’를 2004년에 읽은 뒤 다소 실망했던 적이 있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편인 것 같은데 기대 밖으로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털없는 원숭이’가 나온 것이 1967년이고 이 책은 1969년 작이라니 꽤 오래됐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다른 분야도 그렇기야 하겠지만) 책의 출간시점이 아무래도 중요한데, 이런 종류의 책을 38년이 지나 읽다 보면 시기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이 책에는 ‘세계인구 30억명의 절반은 코카소이드(백인)이고 몽골로이드(황인)가 11억명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리스가 인용한 통계가 대략 1960년대 중반의 것이라 한다면, 반세기 좀 못되는 기간에 지구의 인구는 두 배로 늘었고 특히나 중국 인도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서 오늘날 몽골로이드의 시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또 모리스는 동성애자를 박해하지 말자고 하는데 정작 동성애를 하나의 질병 혹은 이상증세 취급을 하니 이것 또한 지금의 논리와는 좀 다르다. 아마도 모리스가 지금 비슷한 책을 쓴다면 표현이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쨌든 오래 지난 책을 보는 것도 재미는 있었다.


동물학자로서 동물을 꾸준히 관찰해온 저자는 ‘인간이라는 동물’과 다른 동물들을 꼼꼼이 비교하고 인간의 동물적 특성과 그것을 넘어선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살핀다.

모리스의 시각에서 동물적 특성으로 인간을 해석할 수 있는 한계는 ‘부족사회의 인간’까지다.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 종류들의 사회생활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단계인 부족사회 시절에서 인간의 몸은 그다지 많이 진화해오지 못했다. 갑자기 진화가 느려져서가 아니라, 부족사회에서 도시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의 진화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진화가 사회의 진화를 미처 따라오지 못한 탓에, 부족사회 시절의 본능에 여전히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이 거대한 도시사회에서 어렵사리 적응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사회의 배경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너른 들판이다. 거기가 우리의 ‘생물학적 거처’이다. 그런데 인간은 생물학적 배경을 벗어나 문명이란 걸 만들었다. 부족을 거대한 집단으로 불리고 키우고 그러면서 싸우고 몸부림치고, 급기야는 이렇게 빌딩들로 둘러싸인 거대도시들을 만들었으니,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는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대한 도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상승을 꿈꾸면서도 또한 해방을 동경한다.

저자는 농경 시작 이후의 인류를 ‘초(超)부족화’ 단계로 규정하면서 문명과 도시의 발달 과정을 살핀다. 부족-초부족 개념을 사회문화적인 다양한 측면으로 확장해 지위-초지위(인류의 공격성과 지배·권력관계의 발전), 섹스-초섹스 같은 대립쌍들을 만들어 보여주고, 인종문제와 동성애 문제, 과학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가져온 창의성의 기원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교육 문제 등등을 초부족화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런 주장 뒤에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인간의 행동에 대한 비교분석이 깔려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현대 도시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정글’에 빗대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차라리 ‘동물원’이 맞는 비유라고 주장한다. 동물행동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를 분석한 것이 좀 너무 많이 나갔다 싶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예를 들면 교육체제 논란 같은 것) 재미는 있었다. 역시나 인간도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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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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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회사에서 부장과 트러블이 있어 신경질이 많이 났다고 하길래 사회불안장애를 줄여주기 위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 나온 항우울증·불안장애 치료제 ‘팍실’을 갖다줬다. 하필이면 나도 생리 전이라 기분이 좋지 않고 나돌아 다니기도 싫다. 그나마 2주 전에 미리 미국 엘리릴리에서 나온 월경 전 불쾌장애 치료제인 ‘사라펨’을 먹었더니 이번 달엔 예전보다 우울증이 좀 덜한 것 같기도 하다. 딸아이는 또 숙제를 안 해 간 모양이다. TV 시사프로그램을 보니 요즘 주의력 결핍장애가 많다던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고 약도 받아와야겠다. 내일은 여동생이 친정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서 골밀도 검사를 하고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제)도 받아온다고 하니, 같이 가볼까.”

물론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는다. 나는 약이나 병원이라면 좀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진짜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았었다. 작년 재작년 장염 때문에 병원에 몇 번 갔는데, 해열제 진통제 많이 맞았더니 금세 몸에 내성이 생겨 안 듣게 돼버렸다. 마지막에 병원에 갔을 땐 너무 몸살이 심해서 응급실로 갔는데 해열제 주사를 맞아도 열이 내리지를 않았다. 문득 경각심을 느끼고 ‘다음엔 아프면 그냥 집에서 앓아야지’ 하는 고운 마음을 먹었다.

저기 우스꽝스러운 스토리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장난해본 것인데, 사실 요새 약 광고, 약 의존증, 약 중독 장난 아니게 퍼져있는 것 같다. 얼굴에 뾰루지만 나도 소염제 항생제 사다 먹고, 열이 1도만 올라가면 병원행, 배탈 나면 화장실 가서 고생 좀 하면 되는데 배탈약 먹고, 심지어 배탈이 나지 않았는데도 좀 많이 먹었다 싶으면 소화제를 미리 먹어두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배탈 몇 번 나거나 속 좀 더부룩하면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네 만성 소화불량이네 하면서 약으로 위장을 도배를 하고.

이런 경우가 워낙 많은데 “약은 되도록 안 먹는게 좋아요” 하면 “넌 안 아파봐서 몰라, 니가 아파봐라” “왜 약을 안 먹이고 애를 잡으려 그래” 이런 식으로 되어버린다. 실은 이렇게 말하는 나야 말로 회사 다니면서 몸 아플때 ‘푹 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지 실제로는 안 되니깐 한번 아프면 약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어찌 다른 방법을 찾을 도리가 없다.


알라딘 서평단 모집에 당첨되어서 책을 받았는데 그동안 다른 책들에 밀려서 읽지 못하다가 주말에 몰아쳐 읽어버렸다. 표지의 느낌에 비해선 제법 빨리 읽힌다. 문장은 좀 범벅이지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저자들은 우리 귀에 익숙한, 혹은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많이 들려오는 10가지 ‘병 아닌 병’들이 사회적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통해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마케팅에 어떻게 세상이 놀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콜레스테롤. 내 친정엄마는 혈압이 좀 낮으시고, 평생 식성이 까다로우셔서 돼지고기 닭고기 종류는 입에도 안 대셨다. 쇠고기도 기름기 없는 살코기만 어쩌다 한번 드실 뿐 즐기지 않으셨는데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판정을 받으셨다. “원래가 채식을 하니 식이요법 같은 것도 안 통하고, 대체 내가 왜 콜레스테롤치가 높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저자들의 말에 따르면 콜레스테롤이 높은 것은 병이 아니다. 다만 콜레스테롤이 높고 운동도 안 하고 술담배 피우고 하면 심장마비나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남보다 더 높다는 것, 그 정도다. 그런데 의사들은 나이든 이들이 병원에 오면 으레 콜레스테롤 검사를 하고 “좀 높네요” 하면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을 내준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약장수들 맘대로 될 리만은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제약회사들 돈으로 신약 기능을 테스트하고, 유명하다는 의사들은 제약회사들 돈으로 학회를 열고 여행을 다닌다. 제약회사들은 의사들을 내세운 ‘전문가 의견’과 그걸 베껴 쓰는 언론 보도, 스타 마케팅과 ‘환자 옹호단체’들을 앞세운 캠페인들, FDA에 대한 집요한 ‘공작’ 수준의 설득을 거쳐 콜레스테롤이라는 단일 징후를 ‘질병의 전단계’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정상 수치’의 기준을 자꾸자꾸 좁혀서 특정 연령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환자’로 만들어 겁주고 약을 파는 것이다. 저자들은 병이 아닌 것을 병으로 만드는 이런 과정을 ‘질병의 의학화(Medicalising)’라 부른다.

 

저자 중 레이 모이니헌은 호주방송 의학전문기자, 앨런 커셀스는 캐나다 빅토리아대에서 의학정책을 전공했고 의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사람이라 한다. 이 책을 국내에 번역한 이는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였던 홍혜걸씨다. 역자는 옮긴이 머리말에서 자기도 신문사에 있는 동안 다국적 제약회사들 돈으로 외국에 다녔고 후원사의 제품이 돋보이게 기사를 썼었다고 고백하는데, 고백치고는 너무 당당하달까, 뻔뻔하달까. 물론 뒤에 “그들의 지원을 이유로 팩트를 벗어난 기사를 쓴 것은 아니었다”는 꼬리를 달긴 했지만 말이다. 역자는 의학계 사람으로서 책의 내용에 공감을 표하는 동시에 ‘불편함’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우스우면서도 어찌나 ‘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

나는 제약회사한테서 사탕 한 개 얻어먹은 적 없지만, 그리고 과학이나 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어쩌다보니 가끔씩 외국 의학연구 결과나 약 문제 같은 것들을 쓰게 된다. 물론 내가 쓰는 글들의 초점은 업무 특성상 방향이 다르긴 하지만 나의 ‘무식함’ 때문에 약이나 수술 같은 것을 칭송한 적이 없지 않았다.

요사이 TV에서 어린이 주의력결핍장애, 과잉행동장애 같은 것을 자꾸만 방송해주는데 이것 또한 ‘신종 질병’ 같은 느낌이 들어 어딘지 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뇌과학 분야에 대해선 이 책의 주장과는 좀 다른 것들을 미리 읽어서 그런지 전적으로 동감이오, 할 수는 없는 내용도 있었지만 약 의존증에 본의 아니게 걸려버린 사람들에겐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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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3-31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 의존증에 본의 아니게 걸려버린;; 저는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딸기 2007-03-3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기보다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