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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문명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2년 8월
평점 :
오래오래 끌고 있으면서 마음의 빚 같은 것까지 얹혀져있던 책인데, 마침내 ‘해치웠다’. 공들여 쓴 책, 고졸한 문체에 이슬람에 대한 애정이 팍팍 느껴지는 글, 곁들인 사진과 연표, 표지도 멋지고 종이 질도 좋고... 그런데 솔직히 ‘재미’는 없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맛뵈기로 알기 위해서라면 도움이 되고, 정치사정에 대해서라면 큰 도움은 안 된다. 또 이슬람에 애정이 많다보니(저자는 무슬림인 듯) 너무 좋게만 설명해놓은 듯한 감이 없잖아 많다.
다른 이슬람 관련서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문명의 문제를 넓고 길게 보는 것, 산전수전 다 겪은 노학자에게서 나오는 통찰력과 세상사에 대한 애정어린 잔잔한 시선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좋다. 아랍어 전공 교수가 '개괄서'로 쓴 책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시선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다.
뒷부분에 한국과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 챕터를 할애했는데, 그 분야야말로 저자의 전공이다. 신라 설화 속 처용이 서역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정수일선생이 주도적으로 해왔던 논지이고, 그것에 대한 책도 낸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우리와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 사료들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여러가지를 짚어가면서 설명을 하고, 또 그것을 문명 간의 만남의 한 예로 설명해준다. 정수일 선생이 아니고서는 짚기 힘든 부분들인 듯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