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이메일로 연락이 닿은 김춘미 교수님과 만나기로 약속했었기에 어제 고려대에 갔다.
고대는 '돌벽'이 컨셉인 모양. 새로 지은 건물들, 외장을 모두 돌로 했는데 그럴싸해 보였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서 대학에 다시 가게 되면 고대를 갈까. -_-
하지만 고대 가려고 다시 태어날 순 없자나.
의외로 연세 많이 드신 분이라 놀랬다.
마루야마 겐지 책 중에 김선생님 번역본으로 읽은 것은 없고,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읽어봤다.
(이거 올초에 사서 읽었는데... 선생님이 번역자 싸인해서 직접 주셨다)
선생님 손님이 계셔서 40~50분 기다렸다. 그 대신 일본 과자 잔뜩 먹고 녹차 석잔 얻어마심.
초면에 과자랑 녹차랑 너무 많이 먹어버려서 좀 챙피하기도 했다.
원래 이대 영문과 나오셨는데, 서른 다섯(지금 내 나이)에 남편 권유로 다시 공부 시작해서
외대 일어과에서 일어 공부했다고. 워낙 일본에서 나서 중학시절까지 보냈다고 하니.
그리고 나서 여기저기 일문과 생겼는데 "내가 브랜드 지향이거든요"(이 말 재밌었다)
외대 아니면 교수 안한다고 버티다가 외대 거쳐 고대로 왔다고.
고대 일본학연구센터 소장 하시는데, 이런저런 행사에 번역에 몹시 바쁘신 듯.
(요는, 서른다섯에도 새 출발 할 수 있어요, 뭐든 열심히 하셔요! 하는 것이었다 ^^
당신 따님이 스물아홉에 과부가 됐는데 그때부터 공부시켰다는 아픈 얘기까지.)
마루야마 겐지랑 만나봤는데 재밌었다고.
과연... 마루야마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니,
믿기진 않지만 재밌네요. 정말 치열한 사람,, 이라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어릴적 계몽사 동화집에서 기타하라 하쿠슈 동시를 읽었다고 했더니 그건 뜻밖이라고 하셨다.
기타하라는 그냥 시인이고 동시는 별로 안 썼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그 시인을 기억하는 것도, 시가 특별히 좋아서는 아니고
어릴적 내게 '일본'을 맛보게 해주었던 미우라 아야코 '빙점'에서
제법 괜찮게 나오는 남자 등장인물 이름이 기타하라 구니오였기 때문이다.
김교수님한테 미야자와 겐지 책 좀 번역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역시 계몽사 동화집 일본편에서 '주문이 많은 요리점' 읽은 이래, 본 적 없음.
작년에 이너넷으로 단편 하나 읽었는데 역시나 특이한 사람 같다.
김교수님이 책꽂이에서 일어로 된 오래돼보이는 전집 중 하나를 골라서
미야자와 겐지 시를 하나 읽어주셨다.
겐지는 30대에 죽었는데, 여동생은 더 일찍 죽었다.
폐병으로 죽어가던 동생이 눈오는 밤 열에 들떠서 오빠한테 "밖에서 눈 좀 가져다 줘" 한다.
오빠는 눈을 담아다 동생에게 먹이며 시를 쓴다.
이상 저리가라로 종횡무진하는 시들이어서, 일어는 모르지만 구경은 잘 했다.
'인간실격'이랑, 마루야마 겐지 '좁은 방의 영혼'이랑, '구니오와 미나에의 문학편지-필담'이랑,
자원봉사 삼아 공짜로 번역했다는 '생명의 환희' 얻어왔다.
'좁은방의 영혼'은 미처 받지 못한채 연구실 나왔는데, 조교를 따라붙여 일부러 전해주셨다.
또 하나, '중음의 꽃'은 선생님 방에서 기다리면서 3분의1 읽고
집으로 돌아가서 내처 다 읽어버렸다. 읽는 동안 수월수월 잘 넘어갔는데
윤회 영혼 이런거 관심 없어 그런지(나는야 단세포) 읽고나서 별 감흥은 없다.
아무튼... 그리하여...
'인간실격'이 두 편이 되었음. 김춘미 선생님 번역이고 민음사 판.
혹시 필요하신 분-- 그냥 '갖고 싶으신 분' 말고 반드시 읽으실 분 계신가요. 한권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