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시대,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필렬 지음 / 녹색평론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받은 충격으로만 치자면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솔직히 글솜씨는 좀 아니올씨다...싶은 것이, 이필렬이라는 분은 작가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과학자다. 틀렸다. 이 분은 국내에선 꽤 유명한 환경운동가다. 약력을 보니 '베를린 공대 졸업(디플롬 화학자)'라고 써있다. 디플롬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대학의 무슨 학위제도 비슷한 것인 것 같고, 요는, 이 분은 화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곳이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하는 환경단체인데 작년인가 올초인가 환경운동연합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거기 대표로 계신 분이 바로 이필렬선생이시다. 센터의 어느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피크' 얘기가 나왔다. 석유 생산은 보통 종형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일단 피크(정점)에 오르고 나면 생산량은 반드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쉬운 말로 하면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얘기다. 


쉬운 얘기를 왜 어렵게 하느냐.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다 라는, 그 당연한 것을 인정치 않는 사람들이 하도 많길래 하는 얘기다. 이것저것 근거를 들이밀려다보니 피크니 종형곡선이니 하는 어려운 말이 나오게 된다. 제레미 리프킨의 '수소혁명'이라는 책이 바로 그 '피크'에서부터 시작된다. 석유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항상 피크를 얘기한다. "석유가 언제까지 펑펑 쏟아져나올 거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석유생산의 피크는 이미 지났다! 혹은 곧 지난다!" 여기서부터 석유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너지대안센터 간사는 내게 피크 얘기를 하면서 "이필렬 대표님이 피크론자(?)"라고 했다. 표정을 보니 어쩐지 반가워하는 분위기. 석유 문제를 생각지 않는 사람들은 피크를 모르거나, 인정치 않는다. 내가 피크에 관심을 보이자 상당히 반가워하던 이 간사 양반, 이필렬 선생님이 오시니깐 다짜고짜로 나를 가리키며 "이 분이 피크에 관심이 많으시대요" 라고 하는 것이다. 허허... 이런... 어떤 곳에서는 사람을 소개하고 설명하는데에 '피크'라는 말이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이 책을 하나 얻어쥐는 행운이 따라왔다. 책 참 거시기하다. 값 8000원. 262쪽짜리 책에, 요즘 이 정도면 싼 거다. 책 겉모양부터 환경스럽다. 촌스런 느낌이 나는 책표지, 녹색평론사라는 겉표지의 인쇄 하며 흑백사진 표지, 주황색 타이틀배경에... 종이도 누렇다. 재생용지를 사용한 듯한 꺼끌꺼끌한 감촉. 맘에 든다. 환경문제를 다룬 책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렇게 책을 얻어서, 공짜 생긴 마음에, 90% 의무감으로 책을 펼쳤다. 석유문제를 논한 책은 이전에도 몇권을 봤었고 늘상 외신에서 접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가 깨졌다. 

"핵분열은 과학자들이 이런저런 과학활동을 하는 가운데 우연히 얻어낸 발견이 아니다. 거기에는 현대과학의 근본 속성이 다른 어떤 발견보다 더욱 충실하게 응집되어 있다.
현대과학의 중심 행위는 실험이다. 실험이란 자연을 인간의 의도대로 조작하고 변형하는 행위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험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 행사하는 폭력이다. 실험이란 그 근본 뿌리가 인간의 파괴욕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도구 사용이 초래한 자연의 변형이 자연의 순환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과학이 성립하고 기술이 과학과 결합하여 보편성을 얻은 후부터이다. 파괴는 서서히 그러나 단호하게 진행되었고, 주로 물질적 자연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파괴의 주역은 과학과 기술이었는데, 과학은 실험실에서 소규모로 자연을 조작하고 변형했고, 기술은 과학의 발견과 과학의 방법이라는 첨단장비로 무장하고 대규모 자연조작에 뛰어들었다.
... 나는 원자력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위적인 핵분열은 인간이 물질적인 자연에 가하는 최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핵분열을 일으키는 행위란 자연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내밀한 부분인 원자핵에 인간의 칼날을 들이대어 마음대로 난도질함으로써 자연을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구절 때문이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환경론자가 아니다. 환경문제에 솔직히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코~~하게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저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의 환경觀에 절망했고, 혼자 괜히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명은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 생명(환경)을 받아들이는데에 '근본적인 시각'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구나, 하는 충격.  

책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더 거창하게 말하면 전 지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외국의 재생가능 에너지 도입 현황과 제도 등을 살펴보고, 국내 실태를 점검한다. 우리나라 사정과 관련된 부분은 업데이트가 좀 덜 되어있다. 책이 나온 것은 2002년이고, 책 중에 몇몇 에세이들은 그 이전에 쓰인 티가 팍팍 난다. 당장 민간부문 소규모 전력판매만 보더라도 이 책이 나온 뒤에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법이 만들어졌으며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뒷부분은 에세이들을 묶은 것이 되어서 일관된 흐름이 있긴 하지만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고, 앞서 말했듯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다. 굳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사람도 내 생각에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핵분열 자체를 '가장 근원적이고 내밀한 부분인 원자핵에 인간의 칼날을 들이대어 마음대로 난도질함으로써 자연을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저 정도 개념을 갖고 있어야 진정한 '환경론자' 혹은 '생태주의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난 아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식물 종자의 변형에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개입해왔다. 그 많은 애완견들, 품종개량된 그 모든 발바리들은? 심지어 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도 '예스'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인데, 핵무기에는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핵분열은 그 자체가 자연파괴적인 것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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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4-1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렇게 말할 자신은 없어요. 지금 쓰고 있는 석유가 다 고갈되면(언젠가는 다 고갈될 거 아닙니까?) 그때 쓸 수 있는 대체에너지로 원자력을 빼놓을 수 있을까요? 빼놓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태양열 에너지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다 충당할 수 있다든지.
저는 가끔 인간이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써도 좋은지, 이 시스템 그대로 영원히,가 가능할지 그게 의문이랍니다. 영원히, 는 고사하고 백년도 가능해 보이지 않아서요.

숨은아이 2005-04-11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자연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문제는 자연 재생이 가능한 정도까지만 파괴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겠지요...

딸기 2005-04-12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핵에너지는 대체에너지에서 당연히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핵발전을 '대체에너지' 운운하는 사람은 전세계에서 울나라 원자력 관련자들 외엔 없어요 ^^;; 그래서 요샌 환경단체들도 애매모호한 '대체에너지'라는 말 대신에 '재생가능 에너지'라는 용어를 쓰더군요. 깍두기님, 자세한 설명은 못 드리겠고 '석유의 종말'이나 저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숨은아이님, 맞아요.

2005-04-12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5-04-1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 공짜로 얻었어요. 인터넷으로 회원 가입을 했더니 저 책을 보내주더라구요.
이필렬이라는 분, 책을 몇달에 한권씩 써내는 것 같아요.
모임에는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한 유령회원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움직여주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 차원에서 이름이라도 남겨놓고 있답니다.

딸기 2005-04-1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도 회원가입하셨군요.
저도 회원가입했습니다. 그것도, 한달에 2만원 내는 엄청난 고급 -_-;; 회원입니다.
바람구두님, 책 한권을 24만원에 샀다구요. 이제 덜 억울하지요? 흐흐.

바람구두 2005-04-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에 이름 밝혀서 더 억울해졌소, 흐흐.

딸기 2005-04-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오 그랬군요... 죄송 ^^;;
구두님 얼굴(어린 소년)이 참으로 억울해보입니다그려.
그나저나 저 그림,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사실 구두님한테 잘 어울려요.

쿠자누스 2008-11-2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 실험은 자연에 가하는 폭력'이라는 저자의 말, 황당하군요. 인류의 역사는 과학의 발전 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부인하고 반 과학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일까요? 석유가 정말 고갈될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인류 역사는 에너지를 창조하는 역사라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는가 봅니다.

이창우 2013-10-24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원자핵 발전소는 자연의 내밀한 부분에 폭력을 가한 것이라는 말씀이 제 심금에 와 닿는군요. 좋은 글 감사하구요. 제 블로그에 퍼가고 싶네요. 일단 퍼가겠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연락주세요.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제 블로그 주소를 남깁니다. 시간나시면 한 번 오세요. 저는 루마니아 목사님이 받았다는 예언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미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서 원자핵 저장고가 폭발하여 도시들이 불타버리는 광경을 환상 중에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핸리 그루버라는 미국 목사님도 환상을 보았는데요. 러시아의 잠수함이 미국 본토에 가까이 와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도시에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을 보았답니다.

물론 언제 러시아가 미국을 공격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푸틴 대통령 뒤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저도 최근에 이런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유튜브에서 핸리 그루버와 두미트루라는 분들을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는 [설교 동영상]메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리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창우 2013-10-24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입니다. 너무 좋아서 제 블로그에 퍼 갑니다.
원치 않으시면 연락주세요.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