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은지는 오래됐다.  '서평'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나를 위한' 독후감이다. 이 책을 읽고서 내가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반드시 독후감을 정리를 해야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가 참 힘들었다. 이 책, 몇마디 말로 정리해버릴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었다.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리뷰 3편, 별이 열다섯개. 거기에 지금 내가 별 다섯개를 더 붙이고 있다. 몇편 안 되는 리뷰이지만 이렇게 일관되게 '별 다섯개'를 받을 수 있는 책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우기 재미난 소설책도 아니고, 뭔가 대중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킬 요소 따위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책. 
제목부터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이라니, 이 얼마나 무거운가. 게다가 저자 후지따 쇼오조오는 일본에서는 '마지막 철학자'(모든 철학자가 사라진 뒤에까지도 그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이다)라 불린다지만, 자기네 나라에서도 '대중성'과는 아마 거리가 먼 인물일 것이다. 이 사람, 군국주의의 망령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에서, '철학' 따위는 멀찌감치 내던져버린 경박한 세상에서, 상품문화에 모두가 일로매진하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단코 '주류' 같은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책은 에세이집 비슷하게 되어 있다. 후지따는 길지 않은 에세이들에서 군국주의 문제라든가 자본주의, 환경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을 들려준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말이 결코 아무한테나 아무렇게나 붙일 수 있는 상투적인 찬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의 글은 한 사람이 '전체주의'로 가득찬 이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기 위해 얼마나 모질고 힘든 철학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프랑스 철학자들의 이름을 줄줄이 불러대는 식의, 요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종류의 '철학공부'하고는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해보고, 숨겨진 것들을 한번 더 생각하고, 숨겨진 것을 들춰내고, 그리하여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그의 '철학'이다. '전체주의'라는 시대를 경험하는 지식인으로서, 아니 굳이 '지식인'이라 할 것없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은 세상/지구에 대한 '의무'라고 후지따는 말한다.

요컨대 지금 필요한 것은 생활을 주의깊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중략) 그것을 '패러다임'과 같은 새로운 용어로 얼버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생활을 주의깊게 해나가는 가운데서 자기비판의 구체적인 재료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대체적이고 총론적으로 자기비판을 하는 것보다는 개별적인 자기비판을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것을 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계는 어떤가? 아니면 이 책상은? 나왕이로구나. 이것은 새것인 걸로 봐서 필리핀에서 벌채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보르네오 것이리라. 필리핀은 이미 오래전에 벌거숭이가 되어버렸으니까 등등. 이와 같이 주의깊게 살펴보노라면 자기자신의 생활환경이 무엇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환경보호를 말하면서 환경파괴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활을 말이다. 또 세계의 모든 현상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후지따의 글은 거창하지 않지만 머리와 가슴을 찌르고,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카랑카랑하다. 후지따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땅으로 내려온 느낌이 들었다. 사회과학 책들을 백번 읽은들, 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리. 나는 이 세상의 어디에 위치하는가. 모든 것에 '글로벌'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이 파괴적인 전체주의의 시대에.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순응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 그렇게 우리가 세포 하나하나를 죽이고 있는 동안에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인간과 나무들이 죽어가는지, 죽어간 나무와 인간들이 어떻게 지폐로 쌓여가고 있는지, 도대체 왜 우리가 '저항'이라는 말을 입에담아야 하는지, 그런데 그 저항이란 것의 형체는 너무도 무정형적이어서 내 눈에는 도저히 안 보인다는 것을, 결국 살아숨쉬는 정신으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것 밖에, 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것은 생각없이 살아가는데 익숙해진 자에게는 물속에서 숨쉬는 것처럼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숨을 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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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1-2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도무지 추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글이네요.
안다는 것과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다른가....

딸기 2005-01-2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안다는 것과 그렇게 산다는 것.

숨은아이 2005-02-0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바로 아래 있는 제 리뷰가 부끄러워져 버립니당...

딸기 2005-02-0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 ^^

2005-02-0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5-02-0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내일부터 이너넷 끊겨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