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7~8월)
요짐보 - Yojimbo the Bodyguar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用心棒)>를 보면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요짐보>는 그 정점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모든 설렘이 다 들어있습니다. 매력적인 주인공, 경계에서 위태롭게 움직이는 이야기, 악의 한복판에서 빛나는 휴머니즘, 그리고 장쾌한 액션! 이것만으로도 현대의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텐데, 구로사와 감독은 이 이야기에 자신만의 인장을 추가합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어느 이름 없는 무사(미후네 도시로, 영화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쿠와바타케 산주로[桑畑三十郎]라 밝히지만, 이는 '뽕나무밭'과 '서른 살'이라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가 한 마을에 들어갑니다. 이 마을은 비단과 유곽을 장악한 세이베이 패거리와, 술과 노름을 장악한 우시토라 패거리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마을은 이들 패거리의 싸움으로 매일 관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지 않고 한탕을 위해 이들 패거리에 몸을 의탁하는 실정입니다. 이름 없는 무사는 양쪽 패거리의 욕심을 이용해 요짐보(보디가드)를 자청한 후, 각자의 세력을 약화시킵니다. 하지만, 우시토라 패거리에 똑똑하고 총을 쓰는 우노스케(나카다이 타츠야)가 돌아오면서, 그리고 방관만 하던 이름 없는 무사가 다른 사람의 아내이자 어머니를 갈취한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팽팽하던 마을의 세력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요짐보>의 세계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계입니다. 마을엔 항상 비가 내리거나 마치 황무지인양 강한 돌풍이 붑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기 보다는 한탕을 위해 삽니다. 어른들은 이런 젊은이들을 향해 한숨짓거나 혹은 세이베이가 아들에게 하는 말처럼, 더 독하게 만들 뿐입니다. "도둑질이나 살인을 하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려!" 이름 없는 무사는 이런 혼란스런 세상에 들어와서, 이들 악의 세력을 없애버릴 생각을 합니다. 그는 (이미 충만한,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부추겨 세력싸움으로 서로 살인을 저지르게 합니다. 아니, 살인이라기보다는 '제거'라고 하는 표현이 낫겠죠. 그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친놈들을 서로 자멸하게 만듭니다. 큰 싸움을 벌려놓고 망루에 올라가 낄낄거리며 세이베이와 우시토라 두 패거리의 싸움을 지켜보는 모습은 영락없는 '죽음의 신(死神)'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조롱하며 방관하던 이름 없는 무사가 이들의 세력싸움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계기는 인간에 관한 일입니다. 우시토라 패거리는 자신의 오야붕(親分)이 원하는 여자를 바치는데, 그녀는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입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그저 눈물만 흘리는 이들 부자를 보고 이름 없는 무사는 칼을 빼들고 여인을 구하고, 이 가족을 다른 곳으로 보냅니다. 이런 결정은 그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것을 알지만,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쳤다 하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인륜은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짐보>에서 액션의 쾌감은 대단합니다. 실제 칼과 칼이 부딪히는 장면도 대단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투에 다다르기까지의 '무드'입니다. 악(惡)만 남은 세상, 미친 듯이 불어대는 황량한 바람, 서로 칼을 들고 긴장하는 모습. 정말이지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한없이 늘이고만 싶은 영화의 시간! 구로사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시네마틱 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리즈시절, 이 영화를 완전히 베껴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요짐보>가 구로사와 감독이 그토록 존경했던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의 설정을 가져온 것이긴 했지만, 그는 분명 창조적으로 변형했습니다. 하지만, <요짐보> 이후의 서부극(!)은 그저 이 영화를 답습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만큼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을 만큼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방증이겠지요.  

영화의 마지막, 모든 악을 깡그리 처단하는 이름 없는 무사는 영화 오프닝에서 본, 우시토라에게 붙겠다던 마을 청년을 봅니다. 이름 없는 무사는 그 청년의 부모에게서 물을 한 모금 얻어 마셨지요. 이름 없는 무사는 그 청년을 죽이는 대신 호통을 칩니다. "제대로 살아갈 생각을 해!" 그 호통은 그가 부모에게 전하는 물 값이자, 구로사와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너무 진부한 메시지라고요?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살아라!"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감독은 진심으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화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덧붙임:  

믹 잭슨 감독의 <보디가드>에서 보디가드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가 극장에서 <요짐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난, 이 영화를 서른 번도 넘게 봤어요." 산주로(三十郎)에 대한 멋진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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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보고 싶다하면 막 찾아서 대령하는 그런 남친이 가지고 싶어졌어요ㅋ

Seong 2010-07-29 07:23   좋아요 0 | URL
꼭 찾으실 거예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