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공포 만화로 분류되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와 이토 준지는 장르로 규정짓기가 딱히 애매한 작가들이다. 굳이 장르를 규정짓자면 ‘환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는 순정 만화의 틀을 빌려, 규정할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은 시침 뚝 떼고 진행한다. 귀신과 요괴는 물론이고 (H. P. 러브크래프트에게서 빌려온 게 분명한) 이계의 존재들을 끌고 와 소소한 일상(?)을 풀어내는 솜씨는 작가의 투박한 그림체를 잊을 만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항상 시미코네 집에서 하고 있는 헌책방이라는 점이다. 헌책방이라기보다는 고서점이 더 어울리는 우론당에는 신기한 책들이 넘쳐난다. 귀신과 악마를 불러들이는 주술을 다루는 책은 평범한 편이며, 직립어류에 관한 책, 잘린 목을 키우는 방법에 관한 책 등은 물론이고, 생물처럼 살아있는 책들도 있다. 이들 살아있는 책은 글자를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독서하는 사람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책이 사람을 잡아먹다니! 

   

 

하지만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 책에 대한 가장 압권은 『밤의 물고기』에 실린 「헌책 지옥 저택」이다. 이 헌책 저택엔 거의 쓰레기로 분류되는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중 독서가들이 정말로 읽고 싶었던(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갖고 싶었던) 절판된 책들이 숨어 있다. 운이 좋아 원하는 책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함부로 책을 빼서는 안 된다. 책을 함부로 빼면 헌책(으로 이루어진) 저택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하는 책을 얻기 위해선 이 안의 룰을 따라야 하는데 그 방법이 참으로 기막히다.   



 

하지만 책 욕심이 앞선 시미코는 룰을 지키지 않고 무리하게 책을 빼내고 결국 저택은 무너지고 만다. 알고 보니 이곳은 헌책을 모으다 죽은 원귀들이 있는 헌책 지옥이었다. 이들의 사연은 참으로 박장대소하게 만들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나 자신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나는 책을 읽는가, 아니면 책을 모으는가. 읽는 것과 모으는 것, 사는 것과 빌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항상 내 독서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직까지 쉽게 나지 않고 있다.

 

시오리는 시미코가 가지고 싶었던 책을 뺏아 지옥에 던짐으로서 현실 세계로 나올 수 있었다. 저승에서 원하는 책을 갖는 게 나을까, 아니면 현실에서 책 없이 지내는 게 나을까?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제괴지이: 호중천』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제시했었다. 이상적이지만 너무도 쓸쓸한, 그래서 염세적으로 느껴지는 대답.   

 

이토 준지도 책에 대한 공포를 다룬 적이 있다. 『신 어둠의 목소리: 궤담』의 「장서환영」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토 준지는 콜렉터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화자인 부인은 장서가인 남편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이 장서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15만 권이 넘는 책을 세 번 씩이나 완독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져있다. 그는 그 많은 책의 위치를 다 꿰차고 있으며, 한 권이라도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질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아버지가 아꼈던 『유극지옥』이라는 책이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 남편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출하자 아버지는 어린 남편에게 밤마다 공포소설을 읽어주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었던 것이다. 책이 사라진 날, 남편은 꿈에서, 사라진 책이 아버지로 나타나 책을 읽어주는 고문을 당한다. 지옥과도 같은 고문을 견디어내자, 『유극지옥』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가 아꼈던 『겨울바람의 르네』가 사라진다. 『겨울바람의 르네』는 남편의 어머니가 가출하기 전, 밤마다 어머니가 읽어주었던 책이다. 남편은 『겨울바람의 르네』를 꿈꾼다. 그리고 그 책이 낭독을 끝마치자, 『유극지옥』처럼 사라지고 만다. 남편은 더 이상 어머니를 추억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기억을 모조리 간직하려는 듯, 집에 있는 모든 책을 암기하기 시작한다.   







 

책은 정보의 기능도 있지만, 지워버리고도 싶은 악몽 같은 기억이자,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기도 하다. 악몽과 추억이 서로 공존하는 서가라는 공간. 그리고 그 기억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매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라는 물리적 매체를 소유하는 것일까, 아니면 책에 담긴 정수를 느끼는 것일까. 독서를 하면서 우리는 이런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Reader와 Collector의 차이. 그 차이마저 수집하고 싶어 하는 이토 준지의 무시무시한 공포.  

 

 

*덧붙임:  

예전에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고 합니다. (⇒ 클릭)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정말이지 끔찍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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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7-1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토 준지 책은 정말 대단해용^^ 재밌긴한데 무서워서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더군요^^

Tomek 2010-07-16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두 번 정도 빌려보다가 기어이 샀습니다. 이상하게 빨려들더라고요..
:)

라로 2010-07-1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스해야겠어요,,,워낙 겁이 많은지라,,^^;;;

Tomek 2010-07-16 08:24   좋아요 0 | URL
그래도 한 번 읽어보시면...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