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2주
천안함이 침몰한지도 보름이 지났지만, 정부와 군은 실종자는 고사하고 침몰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큰 일이 발생했음에도 신속한 대응보다는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은 모습을 '일관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죠. 정말로 "진실이 저 너머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정부와 군에 '믿음'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만 했건만, 그들의 태도는 의심만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기막힌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편입니다. 권력을 지닌 자들의 횡포와 그에 맞선 소수의 선인들의 이야기는 태고의 영웅담과 맞물려 현대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었던 반면, 지금에서는 그저 웃기만 할 수는 없는 현실이지만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 음모론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는 단연 브렉 에이즈너 감독의 <크레이지(The Crazies)>입니다. 미국의 소읍인 오그덴 마시에 미군이 비밀리에 진행한 생화학 무기 '트릭시'가 유출되어 마을 사람들이 감염되기 시작합니다. 이 물질에 감염이 되면 인간으로의 자각이 조금씩 사라지고, 무조건적인 살인을 자행하게 되지요.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마을을 잠식하고, 이유없는 살인이 계속 벌어지면서, 마을은 점점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 때 군부대가 들어와 마을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 넣은 후 격리를 시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영화의 주인공인 보안관 데이빗 더튼(티모시 올리펀트), 의사 쥬디 더튼(라다 미첼) 부부가 헤어지게 됩니다. 쥬디는 트릭시에 감염된 환자들 사이에 격리되고, 데이빗은 정상인들 사이에 격리되어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할 준비를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있게 됩니다. 아내 혹은 남편 혹은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야기합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그러자 그들 중 한명이 대답을 합니다. "정부를 믿어야지 우리가 무슨 수가 있겠어?" 데이빗은 사람들의 그런 낙관을 믿지 않고, 아내를 구하러 갑니다.
영화에서 군인들은 계속 무엇인가를 숨기려고만 합니다. 설명이 배제된체 정부를 믿고 군의 통제를 따르라는 '명령'은 웃고 넘기기에 우리는 너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인 제공자들은 사건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여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시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크레이지>에서 군부대에 명령을 지시한 '몸통'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오그덴 마시에 남아있는 원주민들과 타자들은 서로 '죽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상황은 정말 기막히게 말 그대로 '돌고 돌게' 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또한 음모론에 일조합니다. 연방수사관 테드 그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정신병 판정을 받은 일급 살인자들만 모인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합니다.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천혜의 섬에서 한 여죄수가 도망쳤기 때문이지요. 밀실과도 같은 곳에서 한 여죄수가 (글자 그대로) 증발을 했는데, 그곳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은 새로 온 수사관에게 적대적이고, 한결같이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습니다. 테드 그린은 이 섬에서 살인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셔터 아일랜드가 묘사하고 있는 시대는 1950년대입니다. 1950년대의 미국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를 목격하고 원자폭탄의 공포를 체험한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와, 한국전쟁과 수소폭탄의 공포 그리고 이웃을 의심하는 빨갱이 사냥(매카시즘)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신경증적인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음모론이 발생하는 것은 특별한 사항이 아닙니다. 어쩌면 음모론은 이런 거대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개인이 국가로 '떠넘길 수 있는' 도피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닐 마샬 감독의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Doomsday)> 역시 음모론을 보여줍니다. 위에 언급한 두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모론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지요. 시기는 현재. 스코틀랜드에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발병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간은 피를 쏟고 죽어버립니다. 잉글랜드는 거대한 벽으로 스코틀랜드 주위를 둘러 쌓고, 그 벽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사람이던, 동물이던 닥치는 대로 죽입니다. 25년 후, 없어진 줄 알았던 리퍼 바이러스가 런던에서 발생하기 시작하고, 정부는 이 사실을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합니다. 리퍼 바이러스로 몰살당했을 스코틀랜드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들이 백신을 개발했음을 깨닫습니다. 특공대는 48시간 안에 스코틀랜드에 가서 백신을 구해와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쓰러지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와 군인이 한 일은 도시를 겪리시키는 일입니다. 그 안에서는 자신들이 왜 격리당하는지, 왜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보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음모는 은밀히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닐 마샬 감독은 다른 자의식 있는 감독들과는 달리 화끈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국민을 바이러스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그 대가를 받아야지요. 문명이 있고 없고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 영화는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안함 실종자 장병들의 귀환과 사건의 전말이 말끔히 드러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