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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평점 :
'석유'는 이미 우리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듯이 석유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석유는 우리의 삶 전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니까. 석유에 의존한 20세기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석유가 없으면 곧 (신기루처럼) 사라질 운명인 셈이다. 그러니까 석유가 고갈된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문명의 끝', 종말인 것이다.
이 책, 『석유 종말시계($20 Per Gallon)』는 석유 없는 미국의 변화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포브스 매거진>의 수석 보도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Christopher Steiner)는 자신이 다년간 취재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어느날 갑자기 석유가 없어진다면" 이라는 극단적인 상상이 아니라, 글을 쓰기 시작한 2008년의 유가(갤런당 4달러)로부터 시작해, 유가가 갤런당 2달러씩 계속 오르게 되면, 미국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조곤조곤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그는 지금 미국인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싼 유가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어느 정도 무절제하고 풍족하고 낭비하는 미국인들의 삶은 '갤런당 2달러'라는 저유가에서 비롯되어 왔다. 배기량이 큰 자동차와 값이 싼 비행기, 교외의 넓은 집에서 한적하게 사는 삶. 황무지 복판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와 월마트. 이런 것들은 정책적으로 싼 유가 덕분에 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이자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려져 왔다. 저자는 이렇게 싼 유가 덕분에 그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 오일 피크를 겪게 되면서 유가는 점점 더 오르게 될 것이고, 미국인들의 삶은, 올라가는 유가에 따라 삶의 방식이나 가치가 바뀌게 될 것이라 예견한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은 어느정도는 고통스럽고 어느정도는 절망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이지 '아름답다.' 유가가 갤런당 6달러가 되면 기름을 버려대는 SUV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연 배출량이 줄어 대기가 맑아지고, 사람들이 그만큼 움직이게 되어 비만인구가 감소하게 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유가가 10달러가 되면,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고, 그와 관련한 사업이 뜰 것이라 예견한다. 유가가 16달러가 되면 선박에 대는 기름을 감당못해 의미없는 수입과 수출이 줄어들 것이고, (일반적인 의미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붕괴될 것이며, 결국 자급 자족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날 것이라 예견한다. 유통 또한 전국적인 유통보다는 지역대 지역의 규모가 작은 유통이 이뤄질 것이고, 그것은 지금처럼 획일화된 시골이 아닌, 개성있는 소도시로의 면모를 갖출 것이라 얘기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하지만 그의 이 '낙관적인 비전'을 무턱대고 믿어야 할지는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유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하이브리드 차종의 개발이나 항공 산업의 수상찮은 움직임을 판단한 글들은 공감할만 하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고유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특히 글을 읽으면 어느정도 저자의 편향된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하는데, 인도와 중국의 엄청난 인구와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갤런당 12달러"를 대비하는 새로운 도시의 모델을 "송도신도시" 예로 든 점은 좀 뜨악했다. 아직도 개발중인 이 논란이 많은 도시를 새로운 모델이라 치켜세우는 것은, 글쎄... 혹시 도시 개발에 참여한 미국 기업 '게일 인터내셔널(Gale International)'때문에 예로 든 것은 아니라 믿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미국 기자가 미국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구석이 많이 있다. 일단은 저자가 제시한 갤런당 12달러 도시의 모델 중 하나인 서울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더 이상 어떻게 조밀하게 할 수 있을까. 월마트가 사라지고 도시에 상권이 살아난다고 했지만, 한국의 월마트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대도시 상권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그것도 모자라 "동네 슈퍼"까지 잡아먹으려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가가 오를 수록 우리의 삶은 고달퍼질 것이다. 중하층은 더 고통스러워 질 것이고, 상류층은 더 살만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처럼 더이상 석유를 못쓰게 되어서 우리의 삶의 속도가 전보다 느려지고, 앞뒤를 돌아보며, 삶의 가치를 느끼고, 맑은 하늘에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같은 동네에 살게 된다면, 가난해지고 불편해지더라도 차라리 석유 없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대책없는 낙천가인가 보다.
*덧붙임:
145쪽 밑에서 13째줄 "1987년 필라델피아의 Electric Carriage & Wagon 사는" 부분에서 1987년이 아니라 1907년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