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4주
<Bobby>를 봤다. 1968년 6월 4일.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 중인 로버트 F. 케네디가 머물렀던 앰버서더 호텔.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벌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지루했다. 물론 안소니 홉킨스, 샤론 스톤, 데미 무어, 마틴 쉰, 샤이아 라보프, 린제이 로한, 일라이저 우드, 애쉬튼 커쳐, 헬렌 헌트, 크리스찬 슬레이터, 로렌스 피시번, 그리고 배우이자 감독까지 맡은 에밀리오 에스터베즈의 출연은 놀라울 따름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스타성을 그저 소비하고만 있다. 에밀리오 에스터베즈와 데미 무어가 부부역을 한다는 사실이나, 데미 무어와 샤론 스톤이 한 씬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영화 외적으로 흥미롭지만, 그 이상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정말 많은 스타들이 나오는데, 영화는 그들을 그냥 한 번 비치고 말 뿐이지 그 안을 들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비(로버트 F. 케네디의 애칭)다. 바비는 약 두 컷 정도만 대역으로 나오고(그나마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는 생전의 인터뷰/기록 필름의 모습으로만 나온다. 그런데 그 기록필름의 위력이 대단하다. 1968년의 미국은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과도 같다. '시위를 금지한다'는 맥카시 의원의 발언에 한 의원이 질문한다. "시위를 금지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매카시 의원의 대답. "그들은 불법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차단한다는 말은 근 2년간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 말인가. 67년에 쓴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SF가 아니었나 보다.
영화는 종종 바비의 기록필름을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이상적인 정치가였으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정치가였는지. '제국'이 되어가는 미국을 다시 '공화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정치가로 국민들은 바비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는 1968년 6월 4일 암살당했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대한민국의 정치상황과는 별 관계없는 미국의 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울림이 큰 이유는, 그때 미국이 처한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것이다. 이상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아있는, 말그대로 천민 자본주의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상황. 2006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2010년에야 개봉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바비의 형이자, 역시 암살당한, 대통령 JFK에 관한 영화인 <JFK> 역시 수많은 기록필름과 재현이 섞인 영화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나서, 감독인 올리버 스톤은 JFK의 암살 사건을 수사/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다. 이 영화는 오류투성이고, 신빙성없는 음모론을 모아놓은 엉망인 영화라고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정말 미국인들은 JFK를 리 하비 오스왈드 혼자 죽였다고 생각할까? 단 몇 초만에 15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8발 중 6발을 명중시킨것을, 그것도 움직이는 표적을! 그 사건을 겪지 못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조차 『워렌 보고서』를 믿지 못하는데, 하물며 당사자들은 어떠할까. 그리고 케네디가 죽고나서, 마틴 루터 킹, 바비가 연속적으로 암살당했다.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TV로 지켜봤던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영화에도 나온다. 주인공 짐 개리슨의 부인이 TV로 바비가 암살당한 장면을 보는 게)
이 영화는 바로 그들의 불안, 초조, 울분이 반영된 영화다. 영화는 정신없는 편집과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JFK의 암살사건을 다룬다. 영화를 보고 나면 'JFK의 죽음엔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를 죽여서 이익을 얻게 된 자들은 누구일지. 무엇이 60년대를 그토록 야만적으로 만들었는지.
JFK와 바비 사이, 그리고 바비 이후에 닉슨이 있다. <JFK>를 찍은 올리버 스톤은 이번에도 예의 장기를 발휘해 편집증적인 화면을 장식하지만,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적인 비극에 가깝다. 세상에, 닉슨을 동정하다니.
미국 시민이 아니어서, 저 시대를 겪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껏 영화에서 닉슨은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되기 일수였다. <닉슨>은 닉슨을 우상화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그저 이미 운명이 결정된, 그래서 그 결말이 비극임을 알지만, 멈출 수 없는 한 인간의 고뇌를 보여준다. 결국, 그도 저 시대가 만들어낸 인간이었구나... 앞선 두 사람은 총에 맞아 죽었지만, 저 사람은 신의에 죽었구나. 이 영화를 보면, 정치적/도의적으로는 닉슨을 지지하지 않겠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연민하게 만든다.
후에, 몇 년이 걸릴지,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두 명의 대통령을 다룬 짝패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한 편은 모르겠지만, 다른 한 편은 (블랙) 코미디가 될 것이 분명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