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
촛불의 온기가 고마웠던 때에 촛불을 처음 들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촛불의 열기가 부담스러운 열대야의 계절이 왔는데도 ‘촛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부는 촛불의 자제 호소를 넘어 폭력적인 진압정국으로 국면을 바꾸었으나 일본의 독도 교과서 명기, YTN사장의 주주총회 날치기 통과 등과 같이 오히려 촛불에 기름을 붓는 사건들만 연이어 나오고 있어 여전히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다.
87년 6월 항쟁 기념일인 6월 10일과 종교계가 대거 합세한 7월5일에는 전국 100만 인파를 헤아리는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드는 ‘민중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정작 2MB정권은 왜 했는지 모를 사과 한번 이후에는 요지부동으로 촛불들의 요구에 ‘쇠귀에 경 읽기(이 말도 미국소라 못 알아듣나?)’로 화답하고 있는 형편이다.
‘촛불’이 길어지면서 촛불의 진로에 대해, 그리고 그간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성과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며 요구한 사항들이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에 촛불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현상적으로 촛불이 아직까지는 정부에 대해 얻어 낸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이번 촛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민사회를 비롯한 각 부문과 계층에 많은 성과와 교훈을 남겨줬고 또 그렇게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집회의 형식에서 통행금지가 있던 박정희 정권 때를 연상시키는 일몰 후 집회금지라는 뚱딴지같은 집시법 때문에 생긴 ‘촛불문화제’는 그야말로 문화제의 성격을 가미하면서 매일매일 작은 축제의 모습을 연출해 오고 있다.
그동안 이른바 ‘권’들의 집회에서 보여주었던 줄 맞춰 앉아, 같은 색의 조끼를 맞춰 입고, 일사분란하게 외치던 구호에서 탈피해 다양한 구호형식은 물론이고 참가하는 사람들도 유치원 아이들, 초, 중, 고등학생,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 노인 분들에게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계층과 부문을 탈피한 평화롭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집회, 시위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자기생각을 마이크로 옮기는 ‘자유발언’ 시간에, 줄을 잇는 참가자들의 신청과 그들의 입을 통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다양한 ‘반정부’ 적인 내용들 역시 예전, 그 어느 집회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함이다.
이러한 다양한 내용과 자유스러움으로 무장한 시민들의 다수가 이른바 ‘깃발’아래 조직적으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자발적 의사와 문제의식 아래 참가한 ‘시민’이란 점도 무척이나 놀라운 장면이다. 오히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외로이 깃발만 들고 있는 몇몇 단체나 정당의 모습은 오히려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려운 정치구호만이 가로지르던, 그래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은행문턱 만큼이나 높아 보였던 광장의 문턱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광우병위험 미국쇠고기 반대’라는 온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였다는 것과 남다른 활동력과 감수성을 지닌 누리꾼들의 나라이기에 가능했다는, 남들 다하는 수준의 이해 정도 외에는 이번 ‘촛불’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다만 서구의 68혁명이 피상적으로는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외에는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요구를 획득하는데 실패했지만, 68혁명이 혁명 이전과 이후의 서구 젊은이들이 기존의 권위를 대하는 태도, 인생관, 연애관 등에 있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처럼, 미완의 혁명이라는 우리나라의 87년 항쟁도 그 이후 사회 각 분야의 전반적인 민주화 수위는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진전했던 것처럼, 이번 ‘촛불의 바다’를 경험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소비자권리, 시민권리 의식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며 더구나 촛불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계속 자가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용량이 2MB밖에 되지 않은 정부가 이를 눈치체기는 커녕 5공, 6공식의 대응만을 일삼고 있기에 이 촛불의 유효시한이 길어질 것 같은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간 촛불집회에 참가할 때 마다 딱히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아서 대부분 7살 난 딸아이와 함께 참가했었는데 점점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구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친 소 너나먹어’ ‘이명박 물러가라’...
君師父一體라는 정체성 속에 ‘대통령’이란 직위를 가두고 대학 입학 때까지 깨지 못했던 내 경험에 비해서, 딸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대통령을 비판하고, 야유하게 해준 촛불집회가 고마울 지경이다.
이전까지는 대통령이라는 공무원도 단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비판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민주시민의 기본 임무와 권한이라는 것을 딸아이에게 설명할 계기도 없었거니와, 이렇게 어이없는 짓거리를 연속적으로 쏟아내는 대통령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