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출근하다 내가 탄 택시가 운전사의 부주의로 신호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꽤 빠른 속도로 가던 터라 운전사는 크게 다쳐서 의식을 잃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도 조수석의 시트가 찢어질 정도로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온 몸에 타박상을 입어 병원에 한 열흘 정도 입원했었다.

퇴원 후에도 몇 번의 물리치료 끝에 거의 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 즈음, 사고 후 처음 택시를 탔는데... 나는 그야말로 식겁을 하고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택시기사의 격한 운전과 한 박자 늦게 밟는 브레이크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나의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했고 가슴은 몇 번이나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한 증세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가급적 택시를 타려고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면 혼잣말로 “내 돈 내고 이게 무슨 고생이람......”을 몇 번이나 되뇌게 된다.


 

 

93년, 대전을 그야말로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대전엑스포’가 열리던 기간에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대전을 찾았었는데 그 틈에 나의 친인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삼촌께서 그 당시 일흔 즈음이셨던 외할머니와 때마침 방학을 맞은 외사촌동생과 조카를 비롯한 예닐곱 명의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대전의 이모님 댁으로 오셨던 것이다.

한 번 가봤다는 이유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낮에는 엑스포 구경을 갔었고 저녁밥을 먹고 나서는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그 당시 엑스포 개최를 축하하며 매일 밤 벌어졌던 불꽃놀이 구경을 하러 둔산 방면의 신시가지 쪽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지자 아이들은 제각기 탄성을 질러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외할머니는 승합차 안에서 꿈쩍을 하지 않고 나오시질 않는 것이다. 진짜 대포가 아니라고, 괜찮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나중에는 아예 고개까지 숙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불꽃놀이도 재미있지만 할머니의 이런 반응도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고.....나 역시 아무리 시골할머니지만 아기같이 너무 순박하신 것 같아 실없는 웃음만 흘리고 말았다.

지난해 어느 때 쯤, 그때 할머니를 모시고 왔던 외삼촌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하게 예전 엑스포 때의 얘기가 나와서 다들 웃는 중에 삼촌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너그 할머니가 그리 대포소리를 무서버 하능 거는 6.25때 폭격하는 비행기 피한다고 엉겁결에 논 옆 고랑에 빠져서 겨우 살아나신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걸 거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사전적 정의로는 충격 후 스트레스장애·외상성 스트레스장애라고도 한다. 전쟁,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 자동차·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에 의해 발생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라고 하며 치료방법으로는 정신과적 치료, 최면치료, 그룹요법, 약물치료, 신경차단 치료요법 등이 있다고 한다.

택시만 타면 간이 콩알만 해지고 놀라는 나의 증상이 ‘트라우마 증세’라는 걸 안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삼촌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불꽃놀이 당시의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웃음이 정말 죄송스러웠다.

나는 겨우 타박상정도에도 후유증이 남았는데 생사를 오고갔던 전쟁터에서 할머니의 충격과 후유증은 얼마나 심각했을 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40년이나 지났는데도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의 끈질김에 놀라기도 했었다.



 

 

문득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을 포함한 우리의 현대사가 민중들 개개인에게 얼마나 많고도 깊은 트라우마를 입혔을까 생각해 본다.

해방이후 커다란 재난을 비롯한 사고도 많았지만 특히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국가권력에 의한 폭압과 고문, 심지어 살인까지, 민중들에 대한 국가의 가해와 위협은 ‘군사’와 ‘독재’라는 말이 ‘정부’라는 단어와 결별하기까지는 계속해서 우리의 현대사의 곳곳에 상존하고 있었다.

떡볶기를 먹다 포장마차를 나온 시민들과, 유모차를 앞세운 엄마들을 시위 주동 혐의로 입건하고, 평화시위를 외치며 아스팔트위에 누운 시민을 군화발로 자근자근 짓밟고,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초등학생에서 국회의원까지 무자비로 연행하는 일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권력이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무원칙한 인사를 휘두르고 그에 항의하는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있으며, 정권에 비판적인 대표적인 시민단체 몇 곳은 5,6공씩 표현을 빌리면 검경에 의해 ‘털리고 말았다’.

커다란 충격후의 트라우마 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나와 할머니의 경우처럼 비슷한 경험을 다시 겪을 경우에, 히스테리성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 정부가 펼치고 있는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에 대해 ‘트라우마’까지 언급하는 것이 소심한 소시민의 ‘오버’라고 할지 모르나, 아침마다 신문을 펼치는 나의 심정은 그 옛날과 똑같은 어떤 장면을 활동사진처럼 자꾸 떠올리게 한다.

트라우마는 고도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한다.

그간의 국가권력이 민중 개개인에 끼친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다시 그 때의 일을 기억하게 하는 일련의 행태는 제발 멈추었으면 한다.

현재의 심각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97년판 'IMF 트라우마’를 걱정할 형편이다.

제발 간곡하게 부탁하는데 정부는 다른데 삽질하지 말고 잘한다고 약속한 경제나 우선 신경 썼으면 한다.

하긴 신경 쓴다고 그 실력에 잘될 것 같지는 않지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03839

얼마전 읽은 오마이뉴스 기사인데 사무실에서 읽다가 눈물나서 혼났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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