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고등학생 시절이란 것이 있었다.

혹자는 그리운 학창시절 운운하며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을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어떻게 그러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몸서리가 쳐진다.

입학하는 날부터 밤 10시 30분까지 계속된 야간자율학습은 명절과 개교기념일(이 날은 이른바 성공한 선배님들께서 밴드를 불러서 운동장에서 개교開校를 너무나 열성적으로 기념하셨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공부가 도저히 안 된다.)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다.

시간을 아껴 공부하라는 학교 측의 ‘친절한’ 배려로 청소는 아침에 주번이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책상사이를 물걸레로 대강 한번 바르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을 묵혀온 먼지로 인해 항상 기관지 염증과 감기 증세에 시달리는 다수의 학생들은, 흔들어서 소리가 나지 않아야 진품이라는 진해거담제 ‘용**’이란 약을 늘 가지고 다녔다.

대학입시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의 수업은 3년을 통틀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시간만 수업을 했고, 당연히 음악과 미술, 체육 수업시간은 2학년 이후로는 공식 국, 영, 수 자율학습시간이 되어 버렸다.

짧은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에 저항하는 투사형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건 언제나 선생님들의  몽둥이 질이었고 지난밤 ‘자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유’를 찾아 내달음질 쳤던 야간자율학습 탈주학생들에 대한 몽둥이질 역시 매일아침 거의 모든 반마다 계속되었다.

그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수많은 이름 모를 나의 후배들은 학교정문을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온갖 사설학원에서 마중 나온 승합차에 실려 가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책걸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08년 4월 15일, 정부가 우열반 편성, 0교시, 심야보충수업에 대한 규제를 푼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는데, 정부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학교 자율화’를 통해 그동안의 부작용을 막겠다는 나름의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이 누구를 위한 자율인지에 대해서는 애써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정책 안에 학교의 당당한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학생에게 진정한 자율이 존재했었던가?  교장으로 대표되는 학교 내 권력의 자율이 모자라서 이 땅의 교육현실이 오늘날처럼 팍팍해 졌을까?

며칠 전 서울에서 있은 ‘학교자율화반대 청소년 촛불문화제’에 청소년들이 들고 나온 피켓에는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구호는 ‘공부’를 ‘일’로 바꿔 놓으면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했을 시기, 노동자들의 주장이었다. 1970년대의 대한한국, 밀폐된 다락방 같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자기 몸을 내던졌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었다.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모르쇠에 가깝게 일관하며, 갑자기 튀어나온 정부당국의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이 청소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과는 별 연관이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학생들의 참 행복을 위해 그들에게 진정한 자율을 줘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118년 전의 노동절에서나 들었을 법한 노동자들의 구호를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서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들을 수 있음을 정부당국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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