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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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황조롱이 한 마리 공중에 떴다, 16층 창밖에 정지 상태다

내 눈썹 높이와 한 치 어김없는 일직선이다

생각하니, 허공에 걸린 또하나의 팽팽한 눈썹이다

이 높이까지 상승기류를 타고 그는 순식간에 떠올랐겠으나

엘리베이터에 휘청휘청 실려온 나, 미안하고, 또 괜히

무안하다

그는 왼쪽에서 미는 구름과 오른쪽에서 미는 구름을

양 날개 속에 숨겼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바람과 아래에서 떠받치는 바람을

발톱끝에 말아 쥐었다

그는 침묵하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부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나는 낡아가는데,

그는 오만한 독학생 같다

세상의 책에다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있다, 밑줄 같은 건

먼 산맥의 능선과 굽이치는 강물에다 일찌감치 다 그어두었

다는 듯

그는 날쌘 황조롱이, 나는 조롱 한번 해보지 못하고

쭈글쭈글해졌다

별을 따기 위해 홀로 빛나기 위해 하늘의 열매를 탐해

공중에 뜬 게 아니다 그는

벽을 치고 창을 달고 앉아 있는 나하고는 상관없이

내리꽂힌다, 시속 이백 킬로미터나 되는 속도로, 땅 위의 한

마리 들쥐 때문이 아니라

내리꽂혀야 하므로, 그는 나를 조롱하듯 내리꽂힌다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어둑어욱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국물이 끓어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백석(白石) 생각

 

통영바다는 두런두런 섬들을 모아 하숙을 치고 있었다

밥 주러 하루에 두 번도 가고 세 번도 가는 통통배

볼이 오목한 별, 눈 푹 꺼진 별들이 글썽이다 샛눈 뜨는 저녁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여자 생각하던 평안도 출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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