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 프로축구단이 경기 전 행사에 애국가 연주를 없앴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매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마당에 프로축구 식전행사에 애국가를 없앤 것이 뭐 대단한 사건이 될 수 있겠냐 만은, 이번 시도가 국내 프로스포츠 경기 사상 최초로 이뤄졌다고 하니 그 의의가 작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 경기는 일률적으로 모든 경기 전에 애국가 연주를 했다고 한다. 프로야구 관람을 좋아하는 내 개인적 경험을 생각해 봐도 이미 경기 전에 얼큰하게 취해서 고래고래 고함치시는 아저씨들과 이제 막 입장해서 자리 잡으려는 사람들 등 각종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 만세’는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애국가 연주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학창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중학교 3학년때 쯤으로 기억한다. 고교입시를 우수운(?) 성적으로 힘겹게 합격하고 겨울방학을 맞은 절친한 3-4명의 청춘들에게, 지방 소도시는 너무나 한가롭고 심심했다.
그때 불쌍한 청춘들에게 무리 중 한 녀석이 외친 구원의 한마디는 “영화 보러 가자!” 였다.
물론 그냥 단순한 영화는 아니고 ‘성숙한’ 우리들의 수준에 맞는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자는 얘기였다. 선생님의 단속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졸업만 남겨둔 상태에서 설마 걸려도 무슨 일이 생기겠냐는 배짱을 부리며, 두 달 남짓 되는 겨울방학동안 우리는 참 열심히 보러 다녔다. 물론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엄격했다. 영화 출연자들의 의상비가 적게 들어갔을 것 같은 영화, 실외보다는 침대가 있는 방 등의 실내촬영에 집중한 영화, 과일제목의 영화(딸기, 앵두 등), 우리 전통 사극도 빠지지 않고 봤었던 것 같다. 거의 다 2편 동시상영이었는데 한번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작영화인 심형래씨 주연의 아동영화 ‘우뢰매’와 성인영화 ‘어우동’을 같이 동시상영 했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 너무 자주 가니까 극장 앞에 앉아서 관리하던 기도 아저씨가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할인까지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영화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익숙한 목소리의 성우 목소리와 함께 ‘행복의 전당’ ‘미의 향연'등의 ‘세련된’ 카피와 함께 예식장, 미용실 등의 지루한 지역 광고가 지나가고 드디어 장엄한 ‘애국가’가 흘러 나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내 고향 어른들은 어찌나 애국심이 투철하셨던지 영화내용에 상관없이 애국가 전주 시작과 함께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 엄숙한 표정으로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서 계셨다. 물론 우리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엉거주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도대체 ‘뽕’ ‘변강쇠’ ‘애마부인’등의 영화가 애국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기야 그때만 해도 가수들이 내는 모든 음반의 끝 곡은 ‘건전가요’(대표곡 ‘어허야 둥기둥기’)란 것을 꼭 삽입하도록 의무화 하는 시절이었긴 했지만,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웅장한 애국가가 나올 때 마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이미 세뇌수준으로 다짐한 나로서도 애국가와 성인영화의 양립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국제경기라면 모르겠지만 국내 프로축구는 팀당 매주 두 경기씩 8개월간 계속 경기를 하고, 프로야구도 연간 500여 경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매번 애국가를 연주하는데 대해 이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각종 프로스포츠에는 외국인 용병들도 2-3명씩 뛰고 있는데 그 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애국가를 듣고 있는 것일까?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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