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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의 이름 - 보태니컬 아트와 함께하는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산탄 에이지 그림, 명다인 옮김 / 니들북 / 2025년 8월
평점 :

식탁에 자주 오르는 33가지 채소들을 보태니컬 아트로 만나니 반가웠다.
깔끔하게 잘 다듬어져 진열되어 있는 채소들의 모습은 그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풀꽃과 다르게 처음부터 먹기 위해 키워졌고 사람들 손에 개량되어 상품이 되었지만,
야채도 꽃을 피우고,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씨를 남긴다.
야채도 식물이었음을 보태니컬 아트로 살펴보며 너무나 무심해서 몰라봤던
야채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게 되어 너무 신기하고 유익했다.

가지가 왜 eggplant 인지 궁금했었는데 사진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지는 보라색의 길쭉한 형태였는데 원산지인 인도에서는 흰색이 주류이고
둥그런 모양이 진짜 달걀같이 생겨서 이해가 바로 되었다.
어릴 때 자주 양배추로 지시약을 만들어서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가지 껍질로도 리트머스 실험 액체를 만들 수 있다니,
가지 요리를 하면서 산성에서 분홍색으로 변하고
알칼리성에서 푸른색이나 녹색으로 변하는 재미난 실험을 확인해 봐야겠다.
양배추 잎에 왜 둥글까라고 궁금해 본 적이 없는데 왜 안으로 단단히 말려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으니 궁금했다. 양배추를 반으로 썰면 잎 속에 굵은 심이 있는데, 양배추 줄기다.
여기서 잎이 한 장씩 자라나는데 처음 태어난 잎의 성장 속도에 비해 줄기는 짧고
많이 커지지도 않아서 잎이 점점 안으로 말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겉잎은 햇빛을 받아 더욱 커지고 옆으로 자랄 수 없는 둥근 잎은 서서히 안으로 눕다가
이내 둥글어진다고 한다. 이런 형태가 운반과 보관에 용이하고 잎도 부드럽고 맛있다 보니,
완전히 둥글어진 양배추가 선택을 받아서 남게 된 것이라니 신기했다.
양배추 심도 당근처럼 꼭지 부분을 따서 물에 담가두면 잎이 나고,
십자형 노란색 꽃이 피는 것도 관찰할 수 있다니 다음에 한번 키워보고 싶어졌다.
양배추는 얇게 썰어서 먹지만 상추는 얇게 썰지 않는데, 칼에 닿는 단면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상추에 있는 페놀 물질이 칼의 철 성분과 산소와 만나면서 갈변이 되므로 상추로 샐러드를 만들 때
손으로 잎을 떼는 것이 좋다. 민들레나 방가지똥 줄기를 꺾으면 우유 같은 하얀 액체가 나오듯이
상추에서도 나오는데 맛이 상당히 쓰다. 이 쓴맛 나는 물질이 벌레가 갉아 먹지 못하도록 몸을 보호하고,
수면 효과도 약간 있다. 피터 래빗 동화에서 아기 토끼들이 상추를 먹고 잠들어 버리는 에피소드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양파를 칼로 썰면 세포가 파괴되면서 알리신이라는 물질이 효소로 인해 화학 반응을 일으켜
휘발성 최루 물질로 변한다. 동물이나 곤충이 먹지 못하도록 막는 방어 수단이라,
강렬한 공격에 호되게 당하면 두 번 다시 양파를 먹지 않게 되는데 인간과 바퀴벌레는 예외다.
바퀴벌레가 양파의 자극적인 냄새를 좋아하는 특성을 이용해 붕산을 활용한 바퀴벌레 퇴치용품도 있단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까고 또 까도 사라지지 않는 양파를 영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미라 제조에도 사용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항생 물질이 약하게 들어 있어
전쟁에서 상처 소독할 때 이용했다고 하니, 약간의 효과가 있었나 보다.
땅콩은 견과류인 줄 알았는데 야채란다. peanut은 껍데기가 나무 열매처럼 단단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땅콩은 콩이다. 다른 콩과 식물처럼 땅 위로 열매가 나지 않는 별난 녀석이다.
꽃이 지면 끝부분이 밑으로 뻗어 나가서 땅에 박히고 땅속에서 꼬투리를 만든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씨 그 자체라서 삶거나 볶지만 않으면 땅에 뿌려도 싹이 난다고 한다.
땅콩의 원산지는 안데스산맥 산기슭의 건조 지대라 불타오르는 태양으로부터 씨를 보호해야 해서
단단한 껍데기를 땅속에 묻는 게 생존에 유리했던 것 같다. 껍데기는 단단하지만 속은 비어 있고
코르크 갑은 소재라서 가벼워 물에 잘 뜨고 잘 휩쓸려가기 때문에 야생 땅콩은
분포 영역을 넓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떡잎이 나면 새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도록
지면에 거의 닿을까 말까 하는 곳에서 발아한다니, 혹독한 환경 속에서 땅콩은 살아남기 위해
굉장히 특이하게 진화한 별난 콩이다.
무심코 먹었던 33가지 채소들의 특징과 생태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상당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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