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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 생명의 온기 가득한 우리 숲 풀과 나무 이야기
이유미 지음 / 지오북 / 2004년 3월
평점 :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지오북)는 국립수목원 연구관 이유미 박사님이 일간지에 연재하였던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들과 풀 이야기입니다.
2년간에 걸친 계절의 변화 속에서, 계절별로, 다시 날짜별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마침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날짜별로 묶은 것은 돋보입니다. 나무와 풀들의 고단수적 생존 전략은 우리가 알았으면 좋을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 백목련이나 개나리, 질경이 등의 숨겨진 이야기들부터 천남성이나 천선과 같은 다소 낯선 이름들의 식물들까지, 알고 지나가면 좋을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들여다보고 알아지는 만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 나무의 이름을 부를 때는 주의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목련과 백목련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나무는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입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같은 까마귀과에 속해있지만 다른 종(種)이듯이 말입니다.
더 흔하고 유백색의 꽃을 피우는 것은 중국이 고향인 백목련입니다. 그냥 목련(왜, 우리 목련 앞에 '그냥'이란 글자를 붙여가며 설명해야하는지 조금은 답답합니다)은 제주도가 고향이며, 육지에도 더러 심기는 하지만 흔치않은 나무입니다. 백목련보다 더 일찍 꽃이 피고, 꽃 색깔이 더 희지요. 목련이란 우리 이름을 두고 '고부시'란 일본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억울한 나무입니다.
(‘백목련은 왜 북쪽을 향하여 필까?’ 중에서 12~13쪽)
'봄이면 무리지어 환하게 피어나는 개나리꽃에 암수가 있다고? 열매도 당연히 있다고?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흔히 보아왔던 개나리꽃 대부분이 수꽃이라니? 복제품이나 다름없는 수꽃에 불과하다니?'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해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눈이 아리도록 개나리 줄기 헤집어 본적도 있습니다. 저자 역시 해마다 되풀이하는 짝사랑이라고 하는데 저도 그만 이제나마 짝사랑이 움텄습니다.
이렇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읽어 나가는 동안 아차 싶고 감탄할만한 내용들로 가득 찼습니다.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짝사랑을 시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이면 즐겨 먹던 옥수수 암꽃과 수꽃의 놀라운 비밀 시간차 작전, 대추나무를 왜 시집보내야 하는지, 밤송이가 무수한 가시 속에서 영글어 가는 이치, 도토리의 맛이 왜 떫어야 하는지, 고운 가을 열매들이 대부분 시거나 맛이 없는 이유를 통하여 식물들의 고단수적 생존 전략을 아찔하도록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나뭇잎 다 떨구고 혹한 속에서 다음 봄에 찬란히 피워 낼 꽃 싹을 미리 준비하고 겨울을 의연히 버텨내는 나무들에게서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생명력을 배웁니다. 계절별로 들려주는 편지글을 통하여 인간과 함께 해 온 나무를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봄이 오는 산에 쌓인 눈 녹이며 가장 먼저 피는 앉은 부채. 씨앗만으로 부족해 가을날 시들어가며 잎끝에 새끼를 낳는 처녀치마. 꽃가루받이 곤충위해 나선 모양으로 꽃피우는 타래난초. 암벌이 수꽃을 찾아가면 살지만, 암꽃을 찾아가면 암벌은 죽고 천선과 나무는 열매를 맺는 엇갈린 운명. 살 길 찾아 길로 나온 질경이의 비밀…"
관심 두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으로 느껴진다지요. 이 책과의 만남은 제게는 치명적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들고 펼쳐보는 그런 글들이 되었고, 이미 연필로 줄까지 그어 가며 볼만큼 새겨 보았음에도 다시 펼쳐 줄을 그어 새겨두고 싶은 식물의 비밀스럽고 신비한 이야기들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함께 공원에 나가서 들려주기 위하여 열심히 다시 펼쳐보게 되는 그런 글들입니다. 볼 때마다 새롭게 열리는 나무와 풀들입니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하여 나무나 풀들을 일년 내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나 풀들이 지천으로 가득한 시골에서 자라났음에도 모르고 살아 온 이야기들이 더 많다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진즉에 이런 책이 있었다면 저자와 같은 일을 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나무나 풀들에게 마음이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일년내내 관심이 돋고 눈길이 항상 머무는 그런 나무와 풀들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바라보는 나무와 풀이었으면 싶습니다. 하여 조금씩이라도 더 알아지고 그 알아진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파수꾼이 많아졌음 하는 그런 작은 바람도 감히 가져봅니다.
어쩌면 자연은 한쪽에서 무모한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남발로 마구 훼손해도, 이 책의 저자 같은 분들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그나마 베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봄에 다시 꽃피우고 싹틔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