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자기설명서
쟈메쟈메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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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만 보세요

 

 

 

일단 이 책의 역자가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를 번역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저자인 쟈메 쟈메씨는 특이한 필명 만큼이나 책 쓰는 사람치곤 이력도 특이하다. 조형학과를 나와서 건축설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책이라기 보다는 잡지사면 끼워주는 별책부록 같다는 느낌이 상당히 많이 들었지만..) 발매되자 마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6개월만에 50만부의 판매고를 올려 기노쿠니야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 했다고 한다. 그 외 일본 2대 출판 유통 도한,닛판 1위, 아마존 재팬 인문부문 1위,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 1위, 프랜차이즈 서점 분쿄토 1위 등 화려한 판매기록이 책 띠지를 장식하고 있다. 대단하다. 5관왕이라니. 야구에서도 타율, 홈런, 타점 3관왕만 해도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최고로쳐주는데 무려 5관왕이라니 놀랍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납득이 안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전 세계에서 '혈액형'을 믿는 나라가 우리나라랑 일본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거론한 저 화려한 기록에 비추어 보면 혈액형에 관한한 일본인들의 그 열광의 정도는 우리 보다 아주 아주 한참 높은 수준인가 보다. 책의 구성은 참 독특하다. 마치 심리테스트를 하듯 수백개에 달하는 각각의 문항에 체크를 해나가는 식이다. 그에 해당하는 사항이 많을수록 'B형 혈액형을 가진 인간형'에 가깝다는 뜻이다. A형인 아버지와 O형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AO인 A형 혈액형을 가진 필자는 당연히 가족중에 B형은 없다. 누나는 A형 여동생은 O형이다. 하지만 친구들을 비롯하여 직장동료 및 지인들중에는 B형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편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혈액형은 A형으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필자의 주변에는B형의 피를 가진이가 A형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어쨌든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원체 주변에 B형들이 많다보니 나름 진지하게 하나하나의 항목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랬다. 절반이상이 다 해당된다. 본인의 혈액형에 관한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난 35년간 사기 당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마지막 계산방식을 보고서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도저도 다 B형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기타 시뮬레이션 '이럴 때 B형이라면'은 참 재밌다. 익히 알려진 옛날 이야기들의 상황에서 B형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한 고찰이다. 예를들면 '햇님과 바람' 이야기 같은것.

 


여행객의 코트를 벗길 수 있는 건 어느 쪽일까? 햇님과 바람이 B형이었다면?

 

-> 시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흥미 없으니 혼자서 하든지 말든지.

 

(P.109)

 


그 외 전반적으로 저자의 재치는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명심할것은 단지 재미로만 봐야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B형들은 다 이럴꺼야란 색안경은 쓰지 말기를.. 어느 순간부터 B형. 특히 B형 남자들 참 살기 피곤해졌다. 흔히 하는말로 '테레비가 애들 다 베맀다.(버려놓았다.)' B형이 그래서 싫다라는 말대신 '자기중심적인' 등등의 성격적 특질로 표현하면 좋을것 같다. 편견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세인들의 입에 B형이란 어쩌고 저쩌고란 말이 오르기도 전에 필자는 지금껏 유일하게 딱 한명사귀어봤던 B형 여자친구에게 된 통 당한적이 있었다. 자기 말로는 B형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진국이니 어쩌니 항상 입버릇 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런 상황에 이르러 그 진국이 어떤지 알기도 전에 그 '제멋대로'에 벌써 두손 두발 다들고 나가떨어졌었다. 그래서 이 세상이 B형에게 다구리를 시작했을 때 누구보다 환영했던 인간이 바로 본인이다.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러지 않았던가. 따지고 보면 A형인 나도 뭐 그리 좋은 성격이었나 싶다. 섬세하고 다정다감하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A형이 장점이라 일컬어지는 미덕들은 그 어느 하나 갖추지도 못하고 고집 세고 자존심 세고 하기 싫은건 죽어도 안하고 욱하는 성격 등등.. 돌이켜 보면 나의 20대는 그러지 않았었나. 오십보 백보다.

 

 

전세계의 수십억 인구를 네가지 유형으로만 딱 나누어 설명한다는 이론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흥미있으며 서먹서먹하고 뻘쭘한 상황에서 대화를 풀어나가기 쉬운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굳이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편견을 버리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만 조심하며 재미로만 보자. 그리고 한번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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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가서 빼먹지 말아야할 52가지
손봉기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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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만 봐도 이렇게 멋진데..

 

 

 

필자와 같은 여행 초보자에게 유럽이란 곳은 언제나 로망이다. 일찌기 배낭여행 꽤 해봤다고 자부하는 친구들은 이제 인도니 터키니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한 오지등을 찾아 다니지만. 영화를 통해 보았던 유럽의 명소들이 주는 매력에 쉽게 반해버리고엽서를 통해 보았던 설원의 알프스를 동경하며 달력을 통해 보았던 북유럽의 호수를 꿈꾸는 나같은 초짜들에겐 세계에서 가장 가고싶은 곳이 바로 이 '유럽'이란 땅이었다.

 


문득 대학시절 잠깐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일찌감치 헤어져서 졸업후에는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미니홈피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던 무렵 잘 살고 있나 싶어 그녀의 미니홈피를 살짝 들여다 본 일이 있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장면들이 무수히 있었다. 아주 그 영화에 제대로 꽂힌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몇달 후 혼자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활짝 웃고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난 깜짝 놀랐다. 혼자서 형광등 조차도 못 갈아 끼워 낑낑거리던 연약함의 결정체였던 그녀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단지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알고보니 이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혈혈단신 홀몸으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이.. 그만큼 유럽에는 매력적인 그 무엇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책을 쓴 손봉기씨는 모 여행사 대표이자 12년째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1년중 넉달 정도를 유럽에서 지내는 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유럽전문가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본 몇몇의 여행서들과 비교했을때 '유럽'을 논한 면에서는 가장 뛰어난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전에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씨의 여행기와 해외여행을 처음 갔다 온 정상근군의 책을 비교해서 썼던적이 있는데 이 책은 성격면에선 그 중간쯤 되는것 같고 구성 및 서술면에서는 후자쪽에 조금 가까운것 같다. 감성과 실사를 적절히 왔다리 갔다리 한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보았을때 이 책이 지닌 장점은 다른 여행서와 달리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등을 소개하면서 그 각각의 예술적 유래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점 같았다. 책 표지를 보면 유럽5대 박물관, 미술관 해설 음성파일을 제작하여 자신의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무료 배포 중이라고 소개된걸 보니 아무래도 저자의 주관심사가 그쪽인가보다.

 


필자가 그 중 가장 인상깊게 본 대목은 바로 이탈리아 편에 나오는 로마 바티칸 박물관 중 시스틴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 이야기였다. 얼굴에는 온갖 물감이 흘러내려 피부병이 생기고 몸은 휘어지고, 한쪽 눈은 실명 상태가 되고.. 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는데 호기심을 못 참은 교황이 들어왔다가 미켈란젤로가 격노하여 나가라고 소리쳤더니 교황이 화가나서 두들겨 팼다고 한다. (헉!)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마음 상해서 그리던 그림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후배인 라파엘로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그 그림을 마저 완성시킬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작품이라 결국 교황은 많은 돈으로 미켈란젤로를 수차례 설득하고도 그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해 급기야는 피렌체 교구에 미켈란젤로를 보내주지 않으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하여 겨우 그 그림을 마무리 했다고 한다. 비록 사진으로 밖에 못 보았지만 과연 입이 벌어질만하다. 전쟁을 불사할만큼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 참 재미나지 않는가?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이렇게 총 10개국을 여행하면서 빼먹지 말고 꼭 보아야할 명소 52곳을 설명하고 있다. 익히 이름난 유명 관광지도 있고 흔히들 지나쳐 버리고 마는 명소들도 꽤소개되어 있다. 그 명소에 직접가서 해야될 것들이 상당히 디테일하게 소개되어있다. 찾아가는 교통편은 기본이고 어디서 내려서 몇번째 골목길로 어찌어찌해서 가라는 식으로 상당히 친절한 여행책이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박물관 하나를구경하더라도 구체적인 동선을 제시해 주어 시간을 절약하며 효율적으로 볼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것들이었다. 어디로 들어가서 뭐부터 보고 어디로 내려와서 어디로 이동해서 또 뭘보고 이러저러하면 시간이 절약된다 등등.. 아주 자기 동네 목욕탕 위치 설명해 주듯이.. 과연 12년 내공이라 뭔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결론적으로 비록 책을 통해서 나마 '유럽'구경 덕분에 잘 했다는 느낌이 든다. 직접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장소들이 수도없이 많겠지만 이 책을 보았을때가 꽤 무더웠을 때라 개인적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분수쇼의 현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것 같다. 필자는 지금 당장 유럽을 갈 계획도 없고 과연 언제쯤이나 그 대륙을 한번 밟아볼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하지만 책으로만 봐도 이렇게 멋진데.. 직접 가서 그 정취에 흠뻑 빠지고 저자가 표현하듯 '여행의 축복을 받는 순간'을 언젠가는 느껴보리란 희망을 간직해야 인생은 좀 더 즐거울것 같다. 그리고 그때에는 이 책이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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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반양장) - 대학 2.0 시대, 내 젊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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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시 대학신입생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간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글을 본 적이 있었던것 같지만 이렇게 그의 책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보던중에 TV를 틀었다가 한 종교방송에서 이어령씨를 인터뷰한 것을 잠깐 보게 되었다. 말씀을 참 잘하시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면이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과연 각각의 그 분야에 관해 얼마나 정통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간략하게나마 수많은 이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누구는 어떤책에서 어떠한 말을 하였다는 식의 표현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보이는 것이 특색이다. (원래 이어령씨 스타일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대학이란 곳을 나왔다는 필자가 들어도 생소한것이 많으니 난 학교 다닐때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어차피 전공공부 안하고 놀러다닐꺼 다양하게 책이라도 많이 봐둘껄 하는 후회가 새삼 몰려왔다. 그러한 학문적 사실들을 보다 디테일하게 하나 하나 공부해 나가는 계획을 세워보는것도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한가지라 생각된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부분은 단연 프롤로그이다. 월드컵을 통해 나타난 우리네의 응원문화를 보고 잠시 잊고 살았지만 우리네 민족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었던 추임새 문화를 상기시켰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앞으로 이끌고 나아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보았노라고 그 감흥을 전한 글이었다. 이 서문은 근자에 본 글들 중에서 몇 손가락안에 꼽고 싶을 정도로 '좋은글'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찍이 돈도 권력도 이념 싸움도 아닌 일에 저렇게 열광하는 한국인들을 본 적이 있는가. 변변히 해준 것도 없는 제 나라의 이름을 저토록 자랑스럽게 외치고 있는 내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중략)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시기하고 헐뜯어왔다. 그랬었다. 좁은 땅, 그나마 남에게 빼앗긴 땅 쪼가리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다. (또 중략) 그러다가 어느새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것'은 못 참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 (자꾸 중략) 훼방의문화에서 응원의 문화로 물꼬를 돌리면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투사가 아니라 소리꾼의 감동이 이끄는 사회가 오고, 역사는 과거의 부정에서 미래의 창조로 날개를 달 것이다.'

 

(프롤로그 中)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면 상당히 독특한 구성에 흠칫 놀라게 된다. 젊음을 진화시키는 아홉가지의 매직 카드가 등장하고 각각의 카드들이 상징하는 바를 풀어나가면서 그 속에 담겨진 행동강령들을 이 땅의 대학생 또는 젊은이들에게 제시하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하나 다 풀어서 설명하기엔 지면이 모자랄것 같고 각각의 카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카니자 삼각형에서는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고 생각되어지는 '창의성'을 가지고 창조적 사고를 하는 지성인으로 거듭나자고 촉구하고 있고, 물음느낌표에서는 항상 매사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임할것을, 개미의 동선에서는 뚜렷한 생의 목표의식을, 오리-토끼 편에서는 지식과 진리의 양명성에 대한 열린 사고를 강조하는 듯하다. 그 외 매시 업에서는 경계를 해체하고 통합하여 상보적으로 수직 상승하는 발전을, 연필의 단면도에서는 균형잡힌 사고를 지닐것을 강조한다. 여러가지 중복되는 느낌은 있지만 빈칸 메우기, 지의 피라미드, 둥근 별 뿔난 별등의 카드로 목표, 창조, 세계화, 학문 즐기기등의 가치에 대해 논하고 있다.

 


각각의 챕터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수많은 이론과 사례들을 차용하여 얘기를 풀어 나가고 있어 주제가 가진 무거움에 비해 꽤나 술술 재미있게 잘 읽히는 편이다. 특히 세번째 카드인 개미의 동선편에 나오는 실수나 우연을 통한 창조성 '세렌디피티'에 관련된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사던 플레밍 박사와 윈스턴 처칠과의 운명(?)적인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워 읽는 재미를 더 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88만원 세대로 표현되는 갑갑한 현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그 열정과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환경조차 만들어 주지않고 듣기좋고 이상적인 원론적 이야기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책을 혹평했던 누리꾼들이 상당히 많았다.물론 그러한 의견과 비판에 대해 필자도 공감하는 면이 없지않아 있긴 하지만. 글쎄다. 이렇게라도 내가 관통해온 그 시절에 내게 그런말을 건네준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런 이들이 무수히 많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그런 이야기들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가며 그렇게 그 시절을 아무생각 없이 지나쳐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아쉬움으로 인해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꽤 괜찮게 받아들인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원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사회'란 곳의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러움을 알아차리기 전에 그 학문을 향한 순수함이 남아있을때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수많은 이론들이나 책들을 가장 학생다운 지적 호기심으로 스스로 공부해보는 계기로 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지싶다. 술마시고 나이트가서 노는것 보다는 좋지 않겠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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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 패션 제국 - 라이프스타일 창조자
레나타 몰로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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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슬픈 왕자

 

 

 

난 정장을 좋아한다. 원체 어릴때 부터 양복 입는걸 좋아했다. 의외로 유별나고 엽기적인 성격과는 달리 외모는 참 점잖고 노말한 공무원을 연상 시키는지라 내가 봐도 블루클럽에서 정성껏 다듬은 3대7 가르마에 양복입은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우리학교는 당시에 교복자율화의 사회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금 교복을 부활하는데 앞장 선 학교였다. 친구들은 모두다 개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니 어쩌니 불만들이 많았지만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켓 단추에 들어가 있던 학교 마크는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외형상으로는 양복과 가장 흡사한 옷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난 교복을참 열심히 입고 다녔다. 한번씩 아부지 넥타이를 매고 가서 교무실로 불려간적이 몇번있긴 하였지만 그래도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넥타이 하나 만큼은 빠르고 예쁘게 또한 길이 적절하게 기똥차게 잘 매는 개인기가 생겼다.

 

 

대학 시절에도 그런 양복 사랑은 계속 되었다. 입학식도 아니고 합격자 발표나고 첫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 우리과 신입생 60명중에서 양복 입고 학교갔던 유일한 한 사람이 나였다. 훗날 친구들이 말하길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저 자식 촌에서 올라 왔나봐'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내가 번 돈으로 내 옷을 사는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그간 남들이 함부로 사주지 않던 양복들을 스스로 사모으는 버릇이 한 때 있었던 적도 있었다. 매일 한 벌씩 갈아입어도 한 달 넘게 한번도 중복이 안 될 정도로 사모았으니 그 중독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년간은 옷 한벌 사지 않았다. 대신 그 돈으로 책을 샀다. 독서란 취미는 나에게 이런 쓸데없는 과소비를 줄여주는 순기능을 가져다 주었다. 최근에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았더니 퇴근하고 집에 있으면 거의 매일 저녁에 집보러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 방의 구조를 보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물어보곤 한다.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라고.. 한 쪽 벽은 책들이 빼곡하고 반대편 쪽은 양복들이 빼곡하니 그럴만도 하다. 서론이 구구절절 길어지지만 암튼 이 정도로 남성정장에 미쳐있던 필자이기에 그 남성정장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생애를 책을 통하여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뭇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런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 필자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한가지 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덕분에 소위 말하는 '명품'이란 것들을 매일 보며 생활했었다. 당시 우리 백화점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브랜드가 처음 입점했을때 대체 저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해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제냐도 좋고 보스도 좋고 폴 스미스도 좋지만 당시 아르바이트의 눈을 사로잡았던 브랜드는 단연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내 눈엔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게 왜 내 취향에 맞았던건지는 이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차후의 단락에서 논하기로하자.) 그래서 몰래 가격표도 보고 살짝 만져도 보았다. 한 3백80만원 정도였던걸로 기억된다. 엠포리오도 아니고 꼴레지오니도 아닌 블렉라벨인데 생각보다 싼(?)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윗도리만 그 가격이었다. 바지까지 한 벌하면 당시 아르바이트 반년치 월급은 훌쩍 넘었으리라. 물론 지금은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고가의 옷에 쓰지 않을만큼 뒤늦게 철이든것 같긴 하지만 매일 백화점에서 일할때 마다 아르마니 매장을 지나칠때 마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로보듯 촉촉한 눈빛으로 그 정장을 입어보는 꿈을 그리던 순간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생을 그린 책들은 항상 흥미로웠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가 찾아야 할 몫이지만 최소한 한가지 이상은 배울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르마니의 전기는 그런 어린시절의 막연한 동경이나 무한한 기대에 비해 예상외로 참 '재미없는' 편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원체 사생활이 노출되는걸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책 속에 나오는 몇몇의 에피소드로 미루어 보아도 공과 사의 구분이 참으로 엄격한 사람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의 친여동생과 회사의 경비아저씨를 다같은 회사의 직원으로만 대했다고 하니 그의 일처리 방식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리라. 우연한 기회에 패션계로 흘러들어왔지만 지금의 성공신화를 이루기까지 다른 이들에 비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의 큰 위기는 없었던것 처럼 보인다. 주변에 수많은 조력자들이 적절히 포진해 있었고 무엇보다 '일' 자체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했던 워커홀릭 이었던지라 순탄하게 정상의 위치를 유지한듯 하다.

 

 

'5만분지 1지도를 들고가서 내가 배를 만들어 줄테니 사라.' 와 같은 정주영식 드라마가 없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아쉬운 부분이었다. 원체 자신의 이야기를 그간 밝히길 꺼려했다는 성격때문에 얼마나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레나타 몰로가 끄집어낸 이 정도는 좀 약하다. 드라마적인 면에서는 말이다. 흥미로운 요소는 그가 의과대학을 3년까지 다니다가 해부학에서 좌절하고 의료인을 꿈을 접었다는 그간 몰랐던 사실과 그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세르지오 갈레오티와의 관계 정도였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필자가 아르마니의 정장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던건 나름대로 큰 수확이었다. 그 이유는 패션에 관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철학과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어보인다. 그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어떠한 색들'에서부터 그의 패션이 출발하였다는 심오한 말을 던진다. 그래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같은 이들에 비해 옷들이 전반적으로 튀지 않는 느낌이 든다. 가장 기본에 충실하면서 정도를 지켜나가는 느낌과 그만의 멋을 창출해 내는 느낌의 공존이라고나 할까. 그런 노말함속에 묻어있는 범접할 수 없는 숨겨진 우아함. 그것이 나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였던것 같다.

 


아르마니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직장상사로서는 참 피곤한 스타일인것을 누구나 느낄것이다. 칭찬하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출근해서 커피메이트 앞에 직원이 열명만 모여있으면 화부터 낸다고 한다. 아침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하고 점심식사 후 딱 15분간만 깊은 낮잠을 즐기고 또 밤까지 주구장창 일만 한단다. 그런 철저한 자기관리와 완벽주의자로서의 생활태도가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최고의 위치로 그를 이끈 요소였나 보다. 하지만 따라가는 직원들은 아주 똥줄이 타겠다. 아르마니의 지인이 한 말에 따르면 경쟁에서 이기는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더욱 더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르마니에게 그런면만 있었던것 아니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형, 여동생등 가족들에겐 누구보다 각별했고 흔히 아르마니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이라면 헐리우드 배우들과의 난잡한 생활등을 예상하겠지만 그런면에서는 참 깔끔한 사람인것 같다. 생일파티를 하더라도 아주 가까운 지인들 서른명 정도만 초대해 단촐하게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등. 보여지는 모습에는 치중하지 않고 자기가 정해놓은 원칙에 따라 삶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특히 돋보였다. 여행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나 집을 발견하면 그것을 매입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꾸미는게 유일한 취미이고 그래서 그런건지 결혼은 안한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친구라는 우정과 인간으로서의 애정을 훌쩍 뛰어넘는 그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조력자였던 아들같은 존재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연관이 있는것 같았다. (차후에 따로 검색을 해봐야겠다. 그들이 '사랑'을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그에게서 가장 크게 배울 점은 자신의 일에 관한 열정과 근면함 그리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이 끊임없는 아이템의 창출 등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서 충분히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자가 아직도 그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영화의상일을 하며 그 분야를 개척했던 일에서부터 자신의 집을 사서 인테리어를 맡기다 보니 자신이 직접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아르마니 카사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 등등..

 


이 책에는 그의 사진들도 많이 실려있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유행하는 '꽃노털'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아르마니가의 상징이라는 살짝 들려진 매력적인 콧날. 깊은 눈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은발. 나이를 전혀 가늠 못하게 만드는 탄탄한 몸매. 그리고 최고의 디자이너다운 패션센스까지. 파란 티쪼가리와 청바지만 입어도 남달리 태가 나는 센스. 하지만 어느 지인이 그를 표현한 말대로 '슬픈 왕자'라는 생각이 필자는 떠올랐다. 달력에나 나올듯한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별장에서. 또한 우리가 익히 알만한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찍은 수많은 사진속에서도 그의 모습 한구석에는 언제나 약간은 슬픈 무엇이 내비쳤다.

 


'아르마니 형.. 장가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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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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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

 

 

 

내가 젊은 베르테르를 처음 만났던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내 안에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사랑에 관한 충고에서 부터였던 것 같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신건지 당시의 정확한 정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더랬다.

 


'모름지기 사랑을 하려면 베르테르가 로테를 그리듯 그렇게 해야지..'

 


그래서 난 아버지의 서가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을 처음 접했었고 그 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필자가 태어나기 딱 200년 전이던 1774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스물 다섯에 썼던 이 책은 익히 모두가 다 알다시피 남편이 있는 여자를 짝사랑한 한 사나이의 슬픈 이야기이다. 실제로 샤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사모하였던 괴테 자신의 연애 체험이 주된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여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 그 비밀스럽고도 답답한 마음이 절친한 벗에게 보낸 편지들에 잘 나타나 있다. 때로는 지고지순하게 그리고 때로는 그녀의 어린  동생들부터 자기편으로 만들어 놓는 치밀함을 발휘하면서.

 


7월 19일

 

"그녀를 만나자!"

아침에 일어나서 화사하고 아름다운 태양을 우러러보며 나는 소리친다.

"그녀를 만나자!"

그러고 나면 나는 온종일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소망 속에 삼켜져버리고 만다.

 


이렇듯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살아가는 이유였지만 내 것이 될 수 없기에 지켜보는 이는 한없이 여웁다. 지금으로 치면 여자친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없는 관심일촌을 대하는 느낌일게다. 끊임없는 베르테르의 노력과 정성으로 둘 사이는 무척 가까워 지고 좋은 친구 내지는 지인의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면 뭐하나. 결국 결혼은 알베르트와 같이 자기보단 훨씬 멋진이와 할 예정이라는데. 전지현과 로테의 공통점은 둘 다 만질 수 없는 것이다란 상황아닌가. 그저 이렇게 바라볼 수만 있어도,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실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 네가 정말 예뻐란 말을 하려해도 스스로가 그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자격있는가 반문해보는 순간의 안타까움. 좋은 사람으로 끝까지 남아야할까 아니면 내 마음을 한번이라도 표현해봐야 할까에서의 끝없는 갈등.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외사랑은 지켜보는 나조차도 가슴 아프게 했다.

 


결국 베르테르는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 그 외사랑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것은 건네진 권총에 남아있는 로테의 온기였고,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안녕 로테, 영원히 안녕이었다.

 


이 소설이 발표되고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를 따라했다고 한다. 그의 옷차림에서 부터 사랑에 상처입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까지.. 당시 개인의 감정과 자유분방한 행동을 존중하였던 슈트룸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의 시대 사조에 따라 이 작품은 더욱 각광받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마지막을 선택했던 한 사나이. 왜 꼭 그 길을 택해야만 했었나란 아쉬움이 크지만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고 쉽게 잊어버리는 지금 우리네의 그것이 가진 가벼움에 비해 진정 한사람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를 돌이켜 보게 한다.

 


세월은 많이도 흘렀지만 그 이야기가 못내 가슴아파 아마 가까이 있었다면 난 그 친구에게 이런 조언을 했으리라.

 


'베르테르야.. 와인 미팅이라도 가지 그랬어.. 그 곳은 만남의 막장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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