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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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김연수 작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과 요즘들어 도서관련 사이트들에 접할때 마다 종종 보이던 유시민씨의 '청춘의 독서'란 제목이 전해주던 낯익음.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 및 전산프로그래밍 서적과 업무관련 서적들 그 외 스펜서 존스의 책들처럼 스테디셀러가 된 유명한 자기개발서들이 주를 이루어 문학책이라곤 몇 권 보이지 않던 우리회사 사내문고 한귀퉁이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김연수라는 이름이 전해주던 반가움.

 

바로 그것들이 이유였다.

 

 

어떤이의 책을 처음 대할때면 딱 보는 순간 '앗! 이사람이야'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 반면 또 어떤이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는데, 내게있어 전자의 경우가 김영하였다면 김연수는 바로 그 후자의 대표적인 작가였었다.

 

아마도 내기억에 처음으로 보았던 김연수의 글들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란 한 4년전의 소설집을 통해서 남들보다는 좀 뒤늦게 접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몇몇 작품들은 무슨 역사책 보는것 마냥 꽤 지루하게 봤던것 같다.

 

언제던가 '기다림'이란 책을 산적이 있었다.

하진이라는 중국 작가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쓴 책이라 특이하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그 책을 번역한 이가 김연수였던걸 발견하고 '어 이사람 번역도 하네?'란 생각을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후 그의 책들을 몇권 더보았고 묘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는 맛이 있는 작가였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아가고 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그의 5년전의 이 수필집은 그의 소설들 보다도 더 그만의 매력에 빠지게끔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극히도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말이다.

 

 

학교를 같이 다닌 말잘하는 어떤 친한 형이 어느 여름 여행길에서..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소주한잔 앞에 따라놓고 조곤조곤 자기의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는것 같은 그런 느낌.

 

뭔가 열렬하게 되고싶은것도 없었고 글을 '좀' 잘쓰는 편일뿐 특별할것도 없었던 지방의 어느 빵집 막내 아들..


스스로가 이과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또한 별이 좋아서 천문학과에 지원했다가 낙방을 한 뒤 좋아하던 시인의 권유 및 과이름이 천문학과와 비슷했다는 이유로 영문학과에 입학했던 김연수.

 

그런 그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우리들이 관통해온 시대들의 지난 이야기에 우리 옛시나 글들, 일본의 하이쿠등을 곁들여서 자유롭게 써내려간게 이 책의 주된 내용들이다.

 

재미나고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생을.. 그리고 지나쳐온 '청춘'을 곱씹으며 생각해 볼 만한 글들이 많다.

 

 

바로 위에서 거론했듯이 별다른 열정도 없던 그에게 지금과 같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끔 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살아오는 동안, 그 누구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 성적과 생김새를 지적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직접 가리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것도 그가 내게 던진 말 때문이었다.
한번은 내가 무슨 일로 약간 비꼬는 투를 섞어 "저도 시나 써야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확하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격려 덕분에 내 안에 가시덩굴처럼 쌓여 있던 수많은 두려움들,

예컨대 "이제까지 백일장은커녕"같은 것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P.193)

 


'유득공은 [부용산중에서 옛 생각에 잠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직문 아래서 글 읽던 우리가 늙어가듯 가을 들어 연잎도 한 철이 지나누나!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리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갈 테다.
연잎이 주름지고 또 시든다고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이 있었다.
예컨대 "글을 잘 읽었다" 라든가,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되는 듯하다.
(P.196)

 


책장을 넘기며 필자는 그와 같이 튀니지 출신의 F.R. 데이비즈의 근황을 궁금해 하기도하고, 홀로 먼길을 떠난 가객 故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지금의 나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사무치게 그를 그리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이내 '서쳐 필링 커밍 오버 미'나 '에빌바디 쿵푸 파이팅'을 흥얼거리며 입가에 지긋이 미소를 따라짓게 만들기도하는 그 글맛들이란..

 

 


책머리의 말처럼 그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그에게는 엿보이는듯 하다.
(아니.. 원래 있었는데 이제서야 필자가 느꼈다는게 올바른 표현일듯..)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책머리에)

 


할말은 많지만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하랴.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우보 민태원의 '청춘 예찬'에서 말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라고..

 


김연수 작가도 이제 다시는 이런 책을 쓰는 일은 없을 테니까라고 말하였다.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라고..

 

 


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청춘'인지는 모르겠다.


예전 평균수명의 절반 정도를 살았으니 이제 청춘은 끝이 난 것이라고 생각이 들때가 솔직히 많은편이었는데..


이젠 마음을 좀 고쳐 먹어야겠다.

 

청춘이란..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삶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또는 가장 치열할..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일화 한토막을 옮기며 마무리 짓는다.


김연수 작가가 자신의 딸이 두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달렸던 그 해 여름의 이야기이다.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무에게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할 뻔했다.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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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지훈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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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색이란 두 글자를 더한 계기가 되었던 책

 

 

 

 

취미란을 대할때면 필자는 항상 독서와 작문이라고 쓰곤 했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 책은 거기에다가 '사색'이란 두 글자를 살포시 더하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여전히 책도 제대로 못 읽고, 글도 제대로 못 쓰며, 사색은 커녕 공상만 하는 수준이지만 취미란에 거침없이 음주가무라고 쓰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꽤 건전한 인간이 된것같은 기분이다.

 


구입시기는 항상 주말 아침에 코엑스에서 조조영화를 보고 반디앤루니스에서 책을 보고 점심을 사먹고 들어왔던 시절이니 아마 상경해서 일년후쯤인 2006년 정도로 기억되며 당시 서점에서 무슨 특가행사를 했을때 샀던 책이라 정가보다 많이 싸게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독자가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번역되는건 환영하고 내용또한 괜찮지만 원서에 비해 분량이 적고 가격은 높게 책정된것이 아쉽다는 지적을 하시기에..)

 


문고판식의 제본과 참으로도 멋없게 생겨먹은 표지, 수업시간에나 들고 들어갈법한 제목..
그런 이유로 일년넘게 책장의 한켠만 차지하고 있다가 2007년 11월 25일 단순히 '글을 조금 더 잘 쓰고싶은 개인적인 욕심'에 펼쳐보게 되었었고, 올해 휴가기간중 책장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눈에 띄게 되어 아주 뒤늦은 독후감을 쓰게 된 바이다.

 


이 책은 앞서 잠깐 언급했던 바와같이 원서를 그대로 번역한 완역본은 아니고 역자가 쇼펜하우어의 만년 인생론집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중에서 사색,독서,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을 옮긴 발췌역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와 같이 당장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이름도 어려운 아르트루 쇼펜하우어가 누구인가, 철학자 아니던가. 철학자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어렵던가.
그런 연유로 이 책 또한 주제는 독서,사색,작문이지만 표현은 군데군데 다분히 철학적이다.
게다가 독일과 한국이라는 문화의 차이, 150여년에 이르는 시대의 차이까지 더해져서 더욱 더..
글쓰기에 관한 부분도 뭐랄까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뭐 그러한 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필자또한 참 심심하게 책장을 넘기다 뜻하지 않게 뭔가를 번쩍 느꼈더랬다. 바로 사색이 바탕이 된 독서란 의미를..
개개인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독서'란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금쪽같은 시간을 요하는 일인것 같다. 기계적으로 멍하니 활자만 읽어 내려가면 뭐하나.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하여 책을 한권 보았으면 뭐라도 남는것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배우든 느끼든 즐거움과 기쁨충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든.. 차이는 바로 사색 즉 '생각하며 책 읽기'였다. 그때까지 다독을 지향하던 필자에겐 꽤 충격을 전해주었던 순간으로 기억이 된다.
감히 말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로 책보는거라면 독서보다 아이온을 권한다. 아이온은 어포와 키나라도 남을테니..(필자는 온라인 게임도 좋아한다.)

 


어렵고 애매모호한 철학적인 이야기는 다 제쳐두고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 보자면 이 책의 맨 뒷장에 적혀있는 이 글이 제일 적합할것 같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3가지 요소'

 

사색 : 깊이 생각하기

- 사색과 습득을 통해 얻운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다.
-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나침반과 같다.

 

글쓰기 : 자신의 사색을 녹여서 쓰기

-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글쓰기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 간결한 문체와 적확한 표현은 좋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 엉터리 글쓰기에도 문법, 논리, 수사라는 3가지 기본 형태를 필요로 한다.

 

독서 : 생각하며 읽기

- 올바르게 읽은 책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읽고 생각하는 데 있다.
- 독서를 위한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잃게 한다.

 

(P.234 마지막장)

 


역자도 언급했듯이 필자 또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글쓰기중 '문법과 언어감각'(P.125) 챕터에서 '모국어의 죽음'(P.166), '언어와 문법의 창조와 파괴'(P.180)에 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아주 열변을 토하는 쇼펜하우어의 '우리말 사랑'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의 시대는 한마디로 이 같은 악취미적 글쓰기가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철학자는 물론이고 평론가와 소설가, 하다못해 매일 발행되는 신문조차 엉터리 문법과 생경한 언어로 독일어를 겁탈하는 데 앞장섰다. 몇몇 소수 집단의 구성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어법이 시대의 유행으로 자리잡는 것을 바라봐야 했던 쇼펜하우어의 심정은, 인터넷의 생활화로 야기된 언어 파괴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P.224)

 


얼마전 퇴근길 버스안에서 필자는 옆자리 여고생들의 대화를 듣고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대화의 전문은 이러하다.

 

 

학생A : '야 그 교생 개멋지지 않냐?'

 

필자 : (교생도 엄연히 선생님 될 사람들일테고 지들보다는 한참 오빠뻘일텐데 '걔'라니 애들 참 버릇없네..)

 

학생B : (누구누구는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아 개웃겨!!'

 


난 그제서야 알았다. '걔'가 아닌 '개'였음을.. 그리고 그것이 '매우' 또는 '굉장히'의 의미를 지닌 10대들의 최고인기 접두사임을..

 

 

이모티콘 이라든지 여러가지 신선한 발상의 신조어들 따위가 무미건조한 글에 상당한 활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도 했었었다. 글자 자체에 감정이란 것이 있다면 그 얼마나 기발한 발생이겠는가. 웃고있는 글자, 땀흘리는 글자들이 말이다. 본인 또한 여러가지 글을 쓸때마다 그런것들을 즐겨 사용하곤 했었는데 어느날 '서평쓰기'를 주제로 한 강연회에 다녀와서 잘못된 습관이란것을 느꼈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그런 원칙들을 의식하며 서평쓰기를 해보았었는데 글쓰기로 밥을 먹고 사는 입장이 아니라 그런지 은어와 비속어의 습관적인 재등장은 얼마 못가 발견되었고 난 그날 이후로 '서평'이란 거창한 표현은 다시금 쓰질 않게 되었던것 같다. 재미와 개성이란 두리뭉실한 말로 위장한 '사적인 독후감'으로의 씁쓸한 회귀..

 


글자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으니 그런 양념이 어느 정도 필요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말'은 다르지 않겠는가. 발랄하게 하고프면 발랄하게 하면 될텐데 왜 굳이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그런 '개'같은 과격한 접두사를 붙여 주변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것인지.
개란 말이 접두사로 사용될 경우는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1.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3. (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출처 : 네이버)

 

 

이것이 바로 '개살구'와 '개멋지다'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가 150년 전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그랬던 것처럼 모국어를 아끼고 사랑하며 우리말의 파괴에 울분을 토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학교 국어시간에 배우는 수준의 원칙은 지키고 살아야 하지않겠나 싶다. 혹시 10대들이 이 글을 보고 광분하여 달 악성댓글이 두렵지 않냐고, 그런 국어 선생님같은 소리만 구구절절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런 기본적인 언어예절이 안되어있는 소양미달의 학생들은 이런 책 조차 검색할일은 없을것이라고.
그리고 회사에서 '사장님 안냐세염.반가반가','노차장님 저 오늘 늦잠자서열. 아홉시까지 가겠삼.지성여','김대리 주말에 머리했나봐연, 캐간지 나네욤 ㅋㅋ' 이런말하는 직장인들은 없을테니..
끝으로 필자 또한 말뿐만이 아닌 글속에서의 지나친 비속어와 은어의 사용도 자제하리라는 반성과 결심을 몇년만에 새삼 해보게 된다.

 


독서,사색,작문이란 주제랑 상관은 없지만 필자가 이 책을 보며 많이 웃었던 부분이 있어서 그걸로 마무리 짓고자한다.

 


염세 사상의 대표자로 불리우는 쇼펜하우어가 활동하던 시대에 바로 이성 철학의 대표자인 헤겔이 있었다. 칸트의 철학을 정통적으로 계승하고 서로의 철학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경쟁을 한것으로 전해지는데, 철학에 조예가 깊지못해 그것이 작금의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간의 대립과 상생을 반복하는 관계인지 JYP를 기점으로 한 2AM의 조권과 2PM의 재범과의 경쟁관계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쪽이 더 가까울듯함) 아무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하면 그 인기가 항상 쇼펜하우어의 패배로 돌아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말년에 인정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책을 보다가 '독서'의 끝무렵에 칸트와 자신의 중간과정이었던 헤겔을 대놓고 사이비 철학자라 폄하한 부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혼자 웃었더랬다.

 


그 때 그 버스안의 여학생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야 문장론 봤냐? 그 위대한 쇼펜하우어도 결국 인간이더라고.. 헤겔 열라 까던걸 아 개웃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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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dgd923 2009-09-23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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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책은 구입한지가 꽤 되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란 제목 탓인지.. 꼭 '집으로 갈 때' 보아야지하고 아껴둔 책이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대충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선뜻 펼치기가 힘들었던거였겠지만..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머나 먼 타국의 소년병들이지만..
뭐랄까..

나또한 제대로 되지 못한 '어른'이기에 그들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같은것..

 


어쨌든 난 계획대로 고향집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이 책을 보았었다..
매번 KTX를 타고 내려가곤 했었는데..

대구로 가는 두시간 남짓안에 다 못볼것 같아서 다시 새마을호로 바꾸었다..
단위시간당 기차가 나아가는 거리와 운임과의 상관관계를 놓고 계산을 해보면 새마을호가 상당히 비경제적이긴 하나 고향앞으로 3시간 40분은 이 책을 끊김없이 보기에 더없이 적절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좌석은 새마을호가 오히려 더 편하다는것..

 


누구에게나 집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편하다. 내게도 그렇다. 약간은 촌스럽지만 정겨운 풍경이 있고, 혼자사는 자취방보단 훨씬 더 넓고 쾌적하며 안락한 고향의 내 방이 있고, 무엇보다 집에가면.. '제대로 된' 밥이 있고..

 


그러다 생각해 본다. 그리곤 흠칫한다. 이 책의 저자인 이스마엘에겐 그 '집으로 가는 길'이 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책 표지에는 바주카포 비스무리한걸 어깨에 둘러메고 대검이 장착된 장총 한자루 또 짊어지고 다 떨어진 쓰레빠를 질질 끌고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깡마른 소년병의 모습이 있다. 다시보니 저 표정은 무표정이라기 보단 뭔가를 체념한듯한 표정에 가까워 보인다.
둘 다 '소년'에게서는 볼 수 없는 표정인것만은 확실하다.

 


'전쟁이 시작된 그때..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다.'

 


나의 열두살을 돌이켜 본다.


그 땐 1985년 이었고 다가오던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으로 대한민국이 들떠 있었으며.. 남북 상호간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던 해였던걸로 기억이되며..
우리에겐 프로야구가 여전히 최고의 인기였었고 구창모의 희나리를 흥얼거리던 시절.. 이보희 누나의 어우동을 볼 수 없어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팠던 그 시절..


당시엔 흔치 않았던 8비트 애플 컴퓨터를 아버지께서 사주셨을 만큼 우리집도 잘살았고.. 우리나라도 희망찼으며 나 자신 조차도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그 시절..

 

그리고 실제로 그 시절이 내 생에 가장 '뚱뚱'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무려 2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인데.. 믿기지 않게도 지금 21세기 아프리카나 동남아등지의 내전지역에서는 그 한창 토실토실하고 희망찰 시기여야 할 열두살 소년들이 소년병이란 이름으로 책 대신 총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니..
이 아이러니와 '뭔가 잘못됨'에 어찌해야하나..

 


이스마엘은 랩 음악을 따라부르기를 좋아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고 그걸로 이웃마을 장기자랑에 참여하러 가던길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 이름도 생소한 '시에라리온'이란 나라.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로 이스마엘은 기약없는 먼 길을 떠나게 된다. 그에게 있어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그것처럼 쉽고 편한것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뉴욕에서 제 2의 삶을 살고있다는 이스마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삼 감동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이 겪은 '전쟁'에 대하여, 또 그로인해 고통받는 자기와 같은 전 세계 30만 소년병의 참상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아픈 기억을 더듬어 써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열두살을 보냈던 필자에겐 그야말로 '깜짝놀랄 만한 것'들이었다. 또한 나보다 더 풍족한 시절을 보내었을 미국인들에게도 그 충격은 그대로 전해졌었나 보다. 그 해 뉴욕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32주간 1위에 오를 정도로..

 


이스마엘 일행들은 처음엔 도망치기에 바빴다. 영문도 모른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걸 목도했으니. 그러던중 이스마엘은 혼자 남겨지게 되고 이제부턴 생존의 시간이 시작된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것이라면 뭐든지 먹으면서 버티고, 멧돼지와 같은 짐승의 습격을 피해 평소에는 오르지도 못하던 나무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오르내리는 타잔의 경지에도 이르게 된다. 그러다 자기 또래의 또 다른 소년들의 무리를 만나고 어느날 이스마엘을 포함한 그들은 '소년병'이 되었다. 책 대신 AK-47, G3와 같은 총기를 손에 쥐고 정체모를 하얀 캡슐을 먹으며 그렇게 반군들과의 교전에 투입된 나날들이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던 날.. 군인들은 공포에 떨고 있는 이스마엘에게 수십알의 그 하얀 캡슐을 주고 삼키게 했는데.. 알고보니 그 정체불명의 하얀캡슐은 '브라운-브라운'이라고 불리우는 마약이었다고 한다. (순간 새마을호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던 필자)


그리고 그렇게 그 소년들은 살인병기로 점점 변모하게 된다. 매일밤 발전기를 돌려 람보와 코만도 같은 전쟁영화를 보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총기를 손질하고 마약을 먹으며 아무 스스럼 없이 반군의 목을 대검으로 똑 따버리는..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겪은 이스마엘에겐 그 때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이 오로지 반군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런 살인에 몰두하게 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는 경지에 이르렀을때 그는 '꼬마 중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로 유니세프의 차량이 들어오고 이스마엘은 몇명의 소년병들과 함께 차출되어 무장을 해제하고 그들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는 재활 치료에 참가하게 된다. 이미 살인병기로 변모해버린 소년병들에게 재활은 전쟁만큼이나 힘든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더이상 마약을 구할 수 없어 금단증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 습관이 된 폭력은 재활기간중 수많은 사고를 치게 만들지만 그럴때마다 센터의 직원들은 한결같은 말로서 소년병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오랜 재활끝에 이스마엘은 자기가 랩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워크맨까지 선물해준 담당 간호사인 에스더 누나에게 마음을 열게된다. 그리고 기적처럼 자신의 남겨진 유일한 혈육인 삼촌의 가족과도 같이 살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그 일상의 기쁨도 잠시, 다시 내전이 발발하게 되는데....

 

 


지금 이스마엘은 그 시절 유엔에서 내전지역 어린이들의 발표를 위한 회의에 참석했던 인연으로 뉴욕에서 고교과정과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 인권감시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어린이 인권 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표지의 소년처럼.. 그 표정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난의 시간을 건너오고 또 지금도 그런 악몽속에 빠져있는 소년들이지만, 그들도 알하지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 유니폼에 광분하고 이스마엘이 그랬던 것처럼 최신 댄스가요에 흥겨워하는 평범한 소년들 아니겠는가. 무엇이 그 어린 소년들의 몸에 상흔을 입히고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살인의 추억을 남기고 가족도, 친구도, 또한 마땅히 아름다워야할 유년의 기억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가게 만들었는가. 따지고 보면 다 어른들 잘못 아닌가. 무슨 이념이 어쩌네 종교가 어쩌네 이권이 어쩌네 등등..

 


앞 표지와 달리 뒷표지의 소년은 환하게 웃고 있다. 늦었지만 희망이란걸 알게 된 표정같다.
거기 우리나라 유니세프 친선대사였던 안성기씨의 감상도 적혀있다. 그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비단 이스마엘 한 개인의 이야기는 아니다. 무려 30만이라고 하지않나.

 


띠지 맨 밑줄에서 '이 책의 판매 수익 중 일부는 유니세프를 통해 전 세계의 소년병들을 구제하는 데 쓰입니다'란 문구를 우연히 보았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 때 이 책을 안 빌려보고 돈주고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담배값을 좀 줄이고 소년병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봐야겠다.

 

그것이 상대적으로 풍족한 열두살을 보내었던 '못난 어른'의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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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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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하나를 건너다..

 

 

 

오래전에 상대적으로 키는 작았지만 남달리 용감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축제날 그 소년은 모여고 퀸카로 통하던 자기보다 한뼘이 더 큰 한 소녀에게 고백을 했더랬다..

 

키 큰 소녀는 대답했다..

 

'미안.. 내가 크기 때문에 내 남자친구도 키컸으면 좋겠어..'

 

세월이 지나 그 소년은 또다른 소녀에게 고백했던 날이있었다..
이번에는 나보다 작으니 잘될거야라고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전하면서..

 

하지만 키 작은 소녀는 대답했다..

 

'어머 어쩌죠 선배.. 제가 작아서 제 남자친구는 꼭 키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요..'

 

그 때 그 소년은 앞으로 키작은 남자는 대체 뭘 어찌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로 몇달간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 거렸었다..

그리고 그건 곧 나의 외적인 컴플렉스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릴땐 어깨에 꽤나 힘주고 다녔었다. 지금의 키가 중3때 키니 말이다. '남자키 170만 넘으면 되죠 뭐 호호..'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다. WWF 프로레슬링에나 볼 수 있었던 190이 넘는 장신들이 신입생으로 들어오곤 하더니. 10년 사이에 대한민국 여성들이 인정하는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키는 175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키를 물어볼때면 매번 고민을 하곤한다. 한 3센치 더 올려도 되지않을까..? 들킬라나..? 뭐 이러면서 말이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보릿고개란게 있어서 말이야.. 내가 어릴때 보약을 잘못 먹어서 말이야.. 등등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도 언제나 변하지 않던 175의 벽.. 키에 대해선 유난히 겸손하셨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원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상처였던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거부받을 정도로 못생긴 아가씨와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두 명의 청년은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다.'라는 이 문구만 보고 바로 주문을 했더랬다.

 

물론 '지구영웅전설'에서 보았던 참신함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짜릿함.(필자는 유년시절 지독한 야구광이었다.) 그리고 바쁜 업무에 밀려 채 다 보지못하고 반납했던 '핑퐁'의 아쉬움 등등이 어우려져 내겐 꽤 특별한 작가로 기억되었던 박민규씨의 책이라 우선 기대가 되었던 탓도 있었다.

 
알고보니 모 도서 사이트에 6개월간 연작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 사이트에 블로그를 꾸며놓았는데도 몰랐던걸 보면 지난 몇달간 내가 참 책을 안보긴 안봤구나하는 뒤늦은 반성. 현실의 세상 뿐만 아닌 가장 접근성이 용이한 인터넷의 세상에서도 관심을 놓고 혼자만의 벽에서 살았구나하는 그러한 씁쓸함이 순간 떠올랐다.

아마 인터넷을 통해 봤더라도 난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봤을것이다. 다음 회를 언제기다리나.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워낙에 바빠 매일 야근을 하고 밤 아홉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인데도 밤을 새다시피하며 다 봤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좋았으며 느꼈던' 책이었으니 말이다.

 

 

작가의 말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 책의 집필의도는 이러하다.

 

힘이 쎈 놈이 항상 집단에서 우위에 서듯 여자들에게 있어서 '미모'란 것 즉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인류가 설정한 진화의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 권력과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는 끝없이 그것을 욕망하고 부러워해왔다.
왜?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이기에. 그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시한 세계를 말그대로 시시하게 볼 수 있는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를 만들고 싶었다. 가능성의 열쇠는 우리가 쥐고있다. 바로 우리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중략)


이 진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며 저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인간의 얼굴에 대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 P.416~417 요약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 책의 큰 줄거리는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지닌 세 남녀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에게는 아버지의 배신이, 그녀에게는 못생긴 얼굴이,그리고 친구이자 형인 요한에게는 어머니의 자살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인 백화점에서 만나게 된 이 세남녀간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헤어짐과 해후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전개와 특히 종국에 가서의 멀티 엔딩 때문에 책을 아직 못 본 독자들을 위해서 내용은 여기까지만 간략하게 기술해야겠다.
본인이 그러했듯 끊임없이 순서를 맞추어 나가고 전개에 대한 상상을 하는 즐거움을 뺏을 수는 없기에..

 


그것이 지식이든 어떠한 정보이든 우리가 습득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른 매체에 비해 독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그것이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한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눈으로만 인쇄된 활자를 쫓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린 끊임없이 책을 통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영화를 찍 듯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래서 각각의 책들마다 자기자신만의 캐스팅이 이루어지고 로케이션이 정해진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순간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던 것이 왜 이 책의 '그녀'만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였었다. 예를들어 요한의 모습은 '존 레논과 은행원의 중간쯤' 이란 이 한마디로 금방 떠오르고 주인공인 '나'까지도 쉽게 그 모습이 그려지는데.. 왜 유독 '사회생활이 불가할만큼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었는지.. 그렇게 끝까지 희미한 형체로만 내머릿속을 거닐다 끝이 났는지..


그것이 어려서부터 돈 쥬앙을 통해 배웠던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저마다의 매력이 한가지씩은 꼭 있다'란 조기교육의 영향덕인지 아니면 난 그 속된 '절대다수'와 다른 심미안을 가졌다는 자기위안을 통한 공범의식으로부터의 회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난..


어찌되었든 꽤 잘생긴 남자와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의 로맨스는 그런 편견과는 상관없이 참으로 아름답고 잔잔하게 전개된다. 얼마만이었던가 요란스럽지 않고 고즈넉한 이 느낌은.. 마치 쥬얼리S의 통통튀는 '데이트'를 하루종일 듣다가 우연히 이소라의 '데이트'를 듣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속에서 스치듯 만나 본.. 왜 평범한 회사원이 쓰는 글과 소설가가 쓰는 글이 다른지를 스스로 느꼈던 '우산을 벗어난 어깨가 젖은 것은 알았지만, 겨드랑이에 낀 책이 젖은 사실은 느끼지 못하던 밤이었다.'와 같은 문장들.. 이런걸 발견할땐 기분이 참 좋아지곤 한다 난.. 주인공들 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요한이란 인물이 명쾌하게 전해주는 삶의 진실들을 소설책의 '나'처럼 듣고 있노라면 맥주가 없어도 취할것만 같았던 그 상쾌함.. 그런것들이 꽤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만원 지하철에 흑인이 탔었다. 사람들이 모두들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그 흑인을 피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흑인이 그들에게 또렷한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 묻어..'

 

그런 우스개가 있었다.

 


편견이다.

 


우리는 과연 무슨 권리로 '그렇게 태어난' 사실밖에 없는 이들을 폄하하는 폭력을 자행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못생긴 여자의 사랑은 그것도 외모만큼 예쁘지 못할것이라고 섣부른 예상부터 하는 것인가. 결혼적령기의 대한민국 여성들이 임의로 정해놓은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키에 약 3센치 모자라는 외모 컴플렉스를 지닌 필자는 그래서 그 여자의 두툼한 마지막 편지가 그렇게 슬프고도 아프게 그리고 또 아름답게 다가왔었나 보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환하게 빛나는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극소수는 그 빛이 그러지 못한 '절대다수'의 빛이 모여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그 환하고도 아름다운 빛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뿜어내는 것이라고 교만에 빠지면 결국에는 필라멘트가 끊어져 빛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절대다수'도 서로 사랑을 하게되면 빛을 발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빛을 발하게 되는것이라고..

 


자.. 이제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도록 하자. 필자는 샤워를 하다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느님은 공평하시어 내게 조금 작은키와 함께 우윳빛깔 속살을주셨음을.. 속살을 어따 쓰라고 주신건지는 알 수 없으나. 괜히 빙긋이 웃었던 기억은 난다.

 

 


강 하나를 건너 온 느낌이다.

 

그 강의 이름은 편견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혜안'이란 산도 넘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책을 덮으며 난 생각해보았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 P. 419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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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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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약국집 첫째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솔약국집 첫째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가 아마 셋째 선풍이가 오은지양과의 일로 고민을 상담했던 날이었을거다..
자기는 은지씨랑 친하고 또 그녀가 멋대가리 없는 자기를 좋아해주고 마음을 표현해준게 고맙긴한데..
나도 과연 은지씨를 사랑하는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자 선풍이가 간단하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사랑하는게 맞구나.. 그럼 지금 당장 가서 사랑한다고 말해..' 라고..

 

정확히 103일만에 필자의 독서기록장을 업데이트시킨 책이었다..
살면서 100일넘게 책한자 안 본 날이 없었던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유난히 안좋았던 일들이 많이 일어난 지난 석달인지라..
아주 '살짝' 한번 쓰러지고 나서 처음으로 손에 들었던 책이었다..


당시에 왜 하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 몰랐었다..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앞부분을 조금 조금씩 보다가..
칼퇴근을 해서 아름다웠던 어느 저녁..
쉬지않고 끝까지 다 보았더랬다..


그 후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보니 왜 그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항상 어렵고 힘이들때 가장 먼저 생각난다는 그 존재..
신께서 세상 모든이를 다 보살펴주지 못하기에 창조했다던 그 존재..


'2009년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 출처 : (주)흥안운수 146번 간선버스 뒷문 광고판


인터넷에 이 책의 독후감만 대략 2천편이 넘는다..
그래서 구구절절하고 디테일한 줄거리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냥 '엄마'란 존재만을 두고 새삼드는 생각들만 적어본다..


또 하나..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의 실종원인이 치매인지라..
유년시절을 항상 함께보내 더욱 더 각별했던 필자의 외할머니를 저 하늘 구름너머로 데리고간 그 병인지라..
가슴부터 먹먹해져 쓰기가 싫은 이유일게다..


난 아직도 그날 엄마의 놀란 두눈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로 한번도 엄마의 그런 눈을 다시보진 못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내가 새삼스레 느꼈던 사실은..
참 바보같게도 '아..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구나..'란 사실이었다..


엄마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이란 것을 항상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온 우리네가 아닌가..
그래서 난 그때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던것 같다..
이 하늘아래 힘들고 지치면 불러보던 그 '엄마'란 존재가 우리 엄마에겐 이젠 없다는 사실..


그땐 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난..

왜 그 처절한 아픔과 상실감을 난 감싸주지 못했을까..


작품해설에서 보았던가..
적절한 표현이 있었다..
이 책은 엄마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겠냐고..


너무나 당연하게 항상 그 자리에 있을것만 같은 사람..
항상 그렇게 내가 원하는대로 해줄것 같은 사람..
그래서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


책 어딘가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던가..
기르던 개가 강아지를 여덟마리 낳아 그 중 한마리를 고모네에 주었더니..
그날로 어미개는 곡기를 끊어버리더라는 이야기..


난 이따금 생각한다..
유난히도 고우신 우리 엄마가 시대만 잘 만났더라면 '국민여동생'이 되었을 것이라고..


실제로 외가는 대대로 집안이 참 좋았다고 한다..
내겐 세분의 외삼촌이 계셨어야 하는데..
당시 최고의 '에리뜨'들만 다닌다는 동경대인가 어딘가를 졸업한 첫째,둘째 외삼촌은 6.25가 발발하여 북으로 끌려간 뒤로 생사가 불분명하다고 전해들었다..


그 난리통에 상대적으로 배움의 기회도 박탈당하며 살아오신 우리 엄마고..
그 연유에서인지 남들 다있는 학창시절의 오래된 친구들도 거의 없다시피 살아오신 우리 엄마..

 

그땐 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난..

우리 엄마 살아 오시면서 때때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을..

 

내게 꼬박꼬박 문자를 보내는 이가 이 세상에 두명있다..
바로 우리 엄마와 술집 웨이터 독도이다..


어느 순간 엄마가 문자 보내는법을 배우셨더라..
여전히 오자가 하나씩은 꼭 들어있는 문자지만..
몇년이 지나도 빠지지 않는것은 마지막에 붙이는 하트 이모티콘이다.. ♡


이제 나에게 하트 보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엄마밖에 없다..
독도 새끼가 나한테 하트보내면 그 또한 우습지 않겠는가..


핸드폰을 새로 바꾸어 이젠 액정에 하트 표시가 자동으로 선명한 핑크색으로 나타난다..
연애를 할때에는 엄마가 아닌 나랑 배변방식이 다른 어느 누군가가 하트를 보내오기도 하지만..
엄마의 그것처럼 크고 선명한 하트는 한번도 못 봤던것 같다..
이런걸 보고 안영미 박사님은 '기분 탓이겠지요..' 라고 했던가..


낮에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이번 하계휴가때는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서울에 와서 다섯번째로 맞이하는 하계휴가지만..
여동생이 생에 첫 조카를 출산했던 그 해 말고는 한번도 고향에서 휴가를 보낸적이 없었더랬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닌것도 아니다..
여행다운 여행을 마지막으로 해본적이 15년 전이니까..
워낙 돌아다니는걸 싫어하기도 하고..


매년 서울 집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책만 봤던것 같다..
그러다가 밖에 나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그게 내게있어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이런걸 보면 나란 위인은 참으로 고집스러운 구석이 있다..
10대,20대때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캐발랄했던 나의 모습말고..
작금의 내모습을 일컫는 신조어도 생겼더라..
'초식남'이라나 뭐라나..
초식남 치고는 그나마 성욕이 좀 남아있는것 같기도 하다만..


남들에겐 당연한 일이고 사소한 일이지만..
내 여름 피서법에 있어서의 이런 변화는 꽤 크다..


디팩 초프라는 '책은 우리에게 멈춰 서서 돌아볼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이 책을 보고나서 멈춰 서서 돌아보니..
그곳엔 '잊어'버리고 사는 나의 엄마가 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피를 뽑고 각종 검사를 하고 주사20mg 맞고 독한 알약 일곱개중 네개를 아침에 먹고 출근을 하는 나..
사무실에 앉아서도 이 길이 과연 내가 가야할 길인가 하루에도 수백번씩 고민을 하는 나..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고 희망과 꿈은 또 무엇이며 기타 등등..
남들 열댓살에 졸업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서른여섯에 재탕 삼탕하고 있는 나..
항상 적절하게 유지만 되고 획기적으로 불어나지는 않는 통장잔고를 바라보며 여기서 결혼과 자녀양육이라는 변수가 합쳐졌을때의 상황을 미리 우려부터하고 있는 나..

그 외 건강문제, 재정문제, 대인관계, 환경문제, 이성문제, 세계평화문제 등등등..
매일 오만가지 생각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곤 하는 나..


그런 내가 문득 멈춰 서서 돌아보니 나의 엄마가 보였다..


삽십몇년을 한결같이 늘 그래왔듯이..


엄마는 우리 아들 믿는다..
항상 잘해왔잖아..
넌 잘할거야..
마음을 편하게 가지렴..


그렇게 소리없는 응원을 보내는..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끝까지 날 응원해줄 단 한사람..

바로..

'엄마'가 그곳에 계셨더랬다..
 

그래서 난 이번 여름휴가때 고향에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 책은 매년 휴가때마다 집구석에서 책만 보는 나를 변화 시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내게 있어 '좋은 책'으로 기억 될 듯하다..

 

 


그 날..


'Try to remember' 선율이 흘러나오고..
20년 넘게 짝사랑한 혜림이를 구름 저 편으로 떠나보내고..
사랑의 아픔을 가슴깊이 묻어 본 자만이 나타낼 수 있는 처연한 눈빛으로..


솔약국집 첫째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걸 잊고 살아..
왜?
재느냐고..
머리 굴리느냐고..
내가 손해 볼까봐..
내가 차일까봐..
그런데 그런게 나중에 무슨 소용이 있디?
그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한테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사랑 한다는 말..
제때 못해준게 가장 가슴 아플 뿐이지..

 

그러니까 지금 니 마음이 그렇다면 빨리 그 아가씨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말해..
고맙다고 말해..

그리고..

좋아한다고 말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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