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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옮김 / 지훈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색이란 두 글자를 더한 계기가 되었던 책
취미란을 대할때면 필자는 항상 독서와 작문이라고 쓰곤 했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 책은 거기에다가 '사색'이란 두 글자를 살포시 더하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여전히 책도 제대로 못 읽고, 글도 제대로 못 쓰며, 사색은 커녕 공상만 하는 수준이지만 취미란에 거침없이 음주가무라고 쓰던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꽤 건전한 인간이 된것같은 기분이다.
구입시기는 항상 주말 아침에 코엑스에서 조조영화를 보고 반디앤루니스에서 책을 보고 점심을 사먹고 들어왔던 시절이니 아마 상경해서 일년후쯤인 2006년 정도로 기억되며 당시 서점에서 무슨 특가행사를 했을때 샀던 책이라 정가보다 많이 싸게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독자가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번역되는건 환영하고 내용또한 괜찮지만 원서에 비해 분량이 적고 가격은 높게 책정된것이 아쉽다는 지적을 하시기에..)
문고판식의 제본과 참으로도 멋없게 생겨먹은 표지, 수업시간에나 들고 들어갈법한 제목..
그런 이유로 일년넘게 책장의 한켠만 차지하고 있다가 2007년 11월 25일 단순히 '글을 조금 더 잘 쓰고싶은 개인적인 욕심'에 펼쳐보게 되었었고, 올해 휴가기간중 책장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눈에 띄게 되어 아주 뒤늦은 독후감을 쓰게 된 바이다.
이 책은 앞서 잠깐 언급했던 바와같이 원서를 그대로 번역한 완역본은 아니고 역자가 쇼펜하우어의 만년 인생론집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중에서 사색,독서,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을 옮긴 발췌역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와 같이 당장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이름도 어려운 아르트루 쇼펜하우어가 누구인가, 철학자 아니던가. 철학자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애매모호하고 어렵던가.
그런 연유로 이 책 또한 주제는 독서,사색,작문이지만 표현은 군데군데 다분히 철학적이다.
게다가 독일과 한국이라는 문화의 차이, 150여년에 이르는 시대의 차이까지 더해져서 더욱 더..
글쓰기에 관한 부분도 뭐랄까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뭐 그러한 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필자또한 참 심심하게 책장을 넘기다 뜻하지 않게 뭔가를 번쩍 느꼈더랬다. 바로 사색이 바탕이 된 독서란 의미를..
개개인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독서'란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금쪽같은 시간을 요하는 일인것 같다. 기계적으로 멍하니 활자만 읽어 내려가면 뭐하나.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하여 책을 한권 보았으면 뭐라도 남는것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배우든 느끼든 즐거움과 기쁨충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든.. 차이는 바로 사색 즉 '생각하며 책 읽기'였다. 그때까지 다독을 지향하던 필자에겐 꽤 충격을 전해주었던 순간으로 기억이 된다.
감히 말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로 책보는거라면 독서보다 아이온을 권한다. 아이온은 어포와 키나라도 남을테니..(필자는 온라인 게임도 좋아한다.)
어렵고 애매모호한 철학적인 이야기는 다 제쳐두고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 보자면 이 책의 맨 뒷장에 적혀있는 이 글이 제일 적합할것 같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3가지 요소'
사색 : 깊이 생각하기
- 사색과 습득을 통해 얻운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다.
-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나침반과 같다.
글쓰기 : 자신의 사색을 녹여서 쓰기
-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글쓰기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 간결한 문체와 적확한 표현은 좋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 엉터리 글쓰기에도 문법, 논리, 수사라는 3가지 기본 형태를 필요로 한다.
독서 : 생각하며 읽기
- 올바르게 읽은 책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 독서의 진정한 가치는 읽고 생각하는 데 있다.
- 독서를 위한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잃게 한다.
(P.234 마지막장)
역자도 언급했듯이 필자 또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글쓰기중 '문법과 언어감각'(P.125) 챕터에서 '모국어의 죽음'(P.166), '언어와 문법의 창조와 파괴'(P.180)에 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아주 열변을 토하는 쇼펜하우어의 '우리말 사랑'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의 시대는 한마디로 이 같은 악취미적 글쓰기가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철학자는 물론이고 평론가와 소설가, 하다못해 매일 발행되는 신문조차 엉터리 문법과 생경한 언어로 독일어를 겁탈하는 데 앞장섰다. 몇몇 소수 집단의 구성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어법이 시대의 유행으로 자리잡는 것을 바라봐야 했던 쇼펜하우어의 심정은, 인터넷의 생활화로 야기된 언어 파괴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P.224)
얼마전 퇴근길 버스안에서 필자는 옆자리 여고생들의 대화를 듣고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대화의 전문은 이러하다.
학생A : '야 그 교생 개멋지지 않냐?'
필자 : (교생도 엄연히 선생님 될 사람들일테고 지들보다는 한참 오빠뻘일텐데 '걔'라니 애들 참 버릇없네..)
학생B : (누구누구는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아 개웃겨!!'
난 그제서야 알았다. '걔'가 아닌 '개'였음을.. 그리고 그것이 '매우' 또는 '굉장히'의 의미를 지닌 10대들의 최고인기 접두사임을..
이모티콘 이라든지 여러가지 신선한 발상의 신조어들 따위가 무미건조한 글에 상당한 활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도 했었었다. 글자 자체에 감정이란 것이 있다면 그 얼마나 기발한 발생이겠는가. 웃고있는 글자, 땀흘리는 글자들이 말이다. 본인 또한 여러가지 글을 쓸때마다 그런것들을 즐겨 사용하곤 했었는데 어느날 '서평쓰기'를 주제로 한 강연회에 다녀와서 잘못된 습관이란것을 느꼈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그런 원칙들을 의식하며 서평쓰기를 해보았었는데 글쓰기로 밥을 먹고 사는 입장이 아니라 그런지 은어와 비속어의 습관적인 재등장은 얼마 못가 발견되었고 난 그날 이후로 '서평'이란 거창한 표현은 다시금 쓰질 않게 되었던것 같다. 재미와 개성이란 두리뭉실한 말로 위장한 '사적인 독후감'으로의 씁쓸한 회귀..
글자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으니 그런 양념이 어느 정도 필요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말'은 다르지 않겠는가. 발랄하게 하고프면 발랄하게 하면 될텐데 왜 굳이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그런 '개'같은 과격한 접두사를 붙여 주변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것인지.
개란 말이 접두사로 사용될 경우는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개
1.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3. (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출처 : 네이버)
이것이 바로 '개살구'와 '개멋지다'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가 150년 전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그랬던 것처럼 모국어를 아끼고 사랑하며 우리말의 파괴에 울분을 토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학교 국어시간에 배우는 수준의 원칙은 지키고 살아야 하지않겠나 싶다. 혹시 10대들이 이 글을 보고 광분하여 달 악성댓글이 두렵지 않냐고, 그런 국어 선생님같은 소리만 구구절절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런 기본적인 언어예절이 안되어있는 소양미달의 학생들은 이런 책 조차 검색할일은 없을것이라고.
그리고 회사에서 '사장님 안냐세염.반가반가','노차장님 저 오늘 늦잠자서열. 아홉시까지 가겠삼.지성여','김대리 주말에 머리했나봐연, 캐간지 나네욤 ㅋㅋ' 이런말하는 직장인들은 없을테니..
끝으로 필자 또한 말뿐만이 아닌 글속에서의 지나친 비속어와 은어의 사용도 자제하리라는 반성과 결심을 몇년만에 새삼 해보게 된다.
독서,사색,작문이란 주제랑 상관은 없지만 필자가 이 책을 보며 많이 웃었던 부분이 있어서 그걸로 마무리 짓고자한다.
염세 사상의 대표자로 불리우는 쇼펜하우어가 활동하던 시대에 바로 이성 철학의 대표자인 헤겔이 있었다. 칸트의 철학을 정통적으로 계승하고 서로의 철학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경쟁을 한것으로 전해지는데, 철학에 조예가 깊지못해 그것이 작금의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간의 대립과 상생을 반복하는 관계인지 JYP를 기점으로 한 2AM의 조권과 2PM의 재범과의 경쟁관계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쪽이 더 가까울듯함) 아무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하면 그 인기가 항상 쇼펜하우어의 패배로 돌아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말년에 인정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책을 보다가 '독서'의 끝무렵에 칸트와 자신의 중간과정이었던 헤겔을 대놓고 사이비 철학자라 폄하한 부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혼자 웃었더랬다.
그 때 그 버스안의 여학생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야 문장론 봤냐? 그 위대한 쇼펜하우어도 결국 인간이더라고.. 헤겔 열라 까던걸 아 개웃겨!!'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