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니 패션 제국 - 라이프스타일 창조자
레나타 몰로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슬픈 왕자

 

 

 

난 정장을 좋아한다. 원체 어릴때 부터 양복 입는걸 좋아했다. 의외로 유별나고 엽기적인 성격과는 달리 외모는 참 점잖고 노말한 공무원을 연상 시키는지라 내가 봐도 블루클럽에서 정성껏 다듬은 3대7 가르마에 양복입은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우리학교는 당시에 교복자율화의 사회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금 교복을 부활하는데 앞장 선 학교였다. 친구들은 모두다 개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니 어쩌니 불만들이 많았지만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켓 단추에 들어가 있던 학교 마크는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외형상으로는 양복과 가장 흡사한 옷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난 교복을참 열심히 입고 다녔다. 한번씩 아부지 넥타이를 매고 가서 교무실로 불려간적이 몇번있긴 하였지만 그래도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넥타이 하나 만큼은 빠르고 예쁘게 또한 길이 적절하게 기똥차게 잘 매는 개인기가 생겼다.

 

 

대학 시절에도 그런 양복 사랑은 계속 되었다. 입학식도 아니고 합격자 발표나고 첫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 우리과 신입생 60명중에서 양복 입고 학교갔던 유일한 한 사람이 나였다. 훗날 친구들이 말하길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저 자식 촌에서 올라 왔나봐'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내가 번 돈으로 내 옷을 사는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그간 남들이 함부로 사주지 않던 양복들을 스스로 사모으는 버릇이 한 때 있었던 적도 있었다. 매일 한 벌씩 갈아입어도 한 달 넘게 한번도 중복이 안 될 정도로 사모았으니 그 중독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년간은 옷 한벌 사지 않았다. 대신 그 돈으로 책을 샀다. 독서란 취미는 나에게 이런 쓸데없는 과소비를 줄여주는 순기능을 가져다 주었다. 최근에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았더니 퇴근하고 집에 있으면 거의 매일 저녁에 집보러 사람들이 찾아온다. 내 방의 구조를 보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물어보곤 한다.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라고.. 한 쪽 벽은 책들이 빼곡하고 반대편 쪽은 양복들이 빼곡하니 그럴만도 하다. 서론이 구구절절 길어지지만 암튼 이 정도로 남성정장에 미쳐있던 필자이기에 그 남성정장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생애를 책을 통하여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뭇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런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 필자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한가지 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덕분에 소위 말하는 '명품'이란 것들을 매일 보며 생활했었다. 당시 우리 백화점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브랜드가 처음 입점했을때 대체 저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해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제냐도 좋고 보스도 좋고 폴 스미스도 좋지만 당시 아르바이트의 눈을 사로잡았던 브랜드는 단연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내 눈엔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게 왜 내 취향에 맞았던건지는 이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차후의 단락에서 논하기로하자.) 그래서 몰래 가격표도 보고 살짝 만져도 보았다. 한 3백80만원 정도였던걸로 기억된다. 엠포리오도 아니고 꼴레지오니도 아닌 블렉라벨인데 생각보다 싼(?)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윗도리만 그 가격이었다. 바지까지 한 벌하면 당시 아르바이트 반년치 월급은 훌쩍 넘었으리라. 물론 지금은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고가의 옷에 쓰지 않을만큼 뒤늦게 철이든것 같긴 하지만 매일 백화점에서 일할때 마다 아르마니 매장을 지나칠때 마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로보듯 촉촉한 눈빛으로 그 정장을 입어보는 꿈을 그리던 순간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생을 그린 책들은 항상 흥미로웠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가 찾아야 할 몫이지만 최소한 한가지 이상은 배울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르마니의 전기는 그런 어린시절의 막연한 동경이나 무한한 기대에 비해 예상외로 참 '재미없는' 편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원체 사생활이 노출되는걸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책 속에 나오는 몇몇의 에피소드로 미루어 보아도 공과 사의 구분이 참으로 엄격한 사람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의 친여동생과 회사의 경비아저씨를 다같은 회사의 직원으로만 대했다고 하니 그의 일처리 방식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리라. 우연한 기회에 패션계로 흘러들어왔지만 지금의 성공신화를 이루기까지 다른 이들에 비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의 큰 위기는 없었던것 처럼 보인다. 주변에 수많은 조력자들이 적절히 포진해 있었고 무엇보다 '일' 자체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했던 워커홀릭 이었던지라 순탄하게 정상의 위치를 유지한듯 하다.

 

 

'5만분지 1지도를 들고가서 내가 배를 만들어 줄테니 사라.' 와 같은 정주영식 드라마가 없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아쉬운 부분이었다. 원체 자신의 이야기를 그간 밝히길 꺼려했다는 성격때문에 얼마나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레나타 몰로가 끄집어낸 이 정도는 좀 약하다. 드라마적인 면에서는 말이다. 흥미로운 요소는 그가 의과대학을 3년까지 다니다가 해부학에서 좌절하고 의료인을 꿈을 접었다는 그간 몰랐던 사실과 그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세르지오 갈레오티와의 관계 정도였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필자가 아르마니의 정장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던건 나름대로 큰 수확이었다. 그 이유는 패션에 관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철학과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어보인다. 그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어떠한 색들'에서부터 그의 패션이 출발하였다는 심오한 말을 던진다. 그래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같은 이들에 비해 옷들이 전반적으로 튀지 않는 느낌이 든다. 가장 기본에 충실하면서 정도를 지켜나가는 느낌과 그만의 멋을 창출해 내는 느낌의 공존이라고나 할까. 그런 노말함속에 묻어있는 범접할 수 없는 숨겨진 우아함. 그것이 나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였던것 같다.

 


아르마니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직장상사로서는 참 피곤한 스타일인것을 누구나 느낄것이다. 칭찬하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출근해서 커피메이트 앞에 직원이 열명만 모여있으면 화부터 낸다고 한다. 아침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하고 점심식사 후 딱 15분간만 깊은 낮잠을 즐기고 또 밤까지 주구장창 일만 한단다. 그런 철저한 자기관리와 완벽주의자로서의 생활태도가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최고의 위치로 그를 이끈 요소였나 보다. 하지만 따라가는 직원들은 아주 똥줄이 타겠다. 아르마니의 지인이 한 말에 따르면 경쟁에서 이기는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더욱 더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르마니에게 그런면만 있었던것 아니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형, 여동생등 가족들에겐 누구보다 각별했고 흔히 아르마니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이라면 헐리우드 배우들과의 난잡한 생활등을 예상하겠지만 그런면에서는 참 깔끔한 사람인것 같다. 생일파티를 하더라도 아주 가까운 지인들 서른명 정도만 초대해 단촐하게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등. 보여지는 모습에는 치중하지 않고 자기가 정해놓은 원칙에 따라 삶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특히 돋보였다. 여행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나 집을 발견하면 그것을 매입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꾸미는게 유일한 취미이고 그래서 그런건지 결혼은 안한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친구라는 우정과 인간으로서의 애정을 훌쩍 뛰어넘는 그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조력자였던 아들같은 존재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연관이 있는것 같았다. (차후에 따로 검색을 해봐야겠다. 그들이 '사랑'을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그에게서 가장 크게 배울 점은 자신의 일에 관한 열정과 근면함 그리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이 끊임없는 아이템의 창출 등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서 충분히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자가 아직도 그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영화의상일을 하며 그 분야를 개척했던 일에서부터 자신의 집을 사서 인테리어를 맡기다 보니 자신이 직접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아르마니 카사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 등등..

 


이 책에는 그의 사진들도 많이 실려있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유행하는 '꽃노털'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아르마니가의 상징이라는 살짝 들려진 매력적인 콧날. 깊은 눈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은발. 나이를 전혀 가늠 못하게 만드는 탄탄한 몸매. 그리고 최고의 디자이너다운 패션센스까지. 파란 티쪼가리와 청바지만 입어도 남달리 태가 나는 센스. 하지만 어느 지인이 그를 표현한 말대로 '슬픈 왕자'라는 생각이 필자는 떠올랐다. 달력에나 나올듯한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별장에서. 또한 우리가 익히 알만한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찍은 수많은 사진속에서도 그의 모습 한구석에는 언제나 약간은 슬픈 무엇이 내비쳤다.

 


'아르마니 형.. 장가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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