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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원으로 세계여행 - 영어 울렁증 상근이의 자급자족 세계 여행
정상근 지음 / 두리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뉘집 자식인지 몰라도 똑소리 나네
옛날에 어떤 학생이 길을 걸어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그만 똑 부러져버렸다. 때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어느 어른이 이렇게 얘길 했다고 한다. 뉘집 자식인지 몰라도 '똑'소리 나네 그려.. 추억의 쌍팔년도 개그였다.
이 책을 통하여 만나본 정상근 학생을 보고 필자가 느꼈던 감상이 이와 같았다. 뉘집 자식인지 몰라도 참 똑소리 나네라고.. 이름만 보고 방위 비스무리한 상근 예비역이나 왠만한 연예인들 보다 요즘 인기가 더 좋다는 개 따위를 떠올렸다면 그건 오산이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어떤 대학생이 80만원 들고 세계 4개 대륙을 일년간 여행하고 돌아온 이야기이다.
행여나 제목만 보고 딸랑 80만원 들고 호주 찍고 인도 돌아 유럽 거쳐 아프리카까지 가려고 생각했다가는 큰일 난다. 정상근 학생이 처음 들고 간 돈은 80만원이 맞으나 첫 여행지에서 다섯달 동안 천만원 가까이 여행 경비를 모으고 그 후부터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른 것이니 오해가 없도록 하자. 이른바 워킹 홀리데이이다. 대학시절 과동기 중 두녀석이 퀼링턴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두 녀석다 영어 실력에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는데 스노보드 실력 만큼은 16년간 보드만 타오신 '화이트' 김병만 선생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어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상근군의 호주 생활은 만만찮게 보였다. 현지 아르바이트로만 한달에 200만원 정도 벌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그 나이 또래가 흔히 쉽게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와 비교하면 그 수준을 넘어선다. 그도 그럴것이 하루에 세가지 일을 했다고 한다. 새벽에는 엔터테인먼트 센터라는 공연장에서 아침부터 점심때까진 일식집에서 저녁에는 한식집에서.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말이다. 그러면서 하루 세끼를 일하는 식당에서 해결하며 밥값을 세이브 하고 같이 살던 집주인 외국 친구가 고향에 두달간 가게 되면서 임시 집주인이 되어 방값을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여행경비를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는 도서관과 인터넷을 이용하여 앞으로 방문할 나라들을 놓고 어느 시기에 어느 나라를 거쳐 어떠어떠한 경로로 가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현지 기후상황은 어떠할지 등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참 똑부러지는 엄마 친구 아들같은 존재로 필자의 뇌리속에 각인되었다.
본격적인 여행궤도에 올라서는 인도, 안나푸르나의 네팔, 유럽, 이집트, 중동의 순서였는데 가장 최근에 보았던 여행서인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씨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랜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이 주가 된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의 진중한 맛에 감동받았던 기억에 비해 이 책은 세계 여행을 처음 해보는 젊은이 특유의 패기로 똘똘뭉친 책이자 워킹 홀리데이를 잘하는 법에서 부터 여행시 도움이 될 만한 인터넷 사이트의 소개, 학생이란 신분을 이용한 각종 비용 아끼기라든지 디테일한 대중교통 이용법 및 숙소 고르는법, 어떤 나라에서는 어디를 주목해서 보면 좋겠다는 권유, 어디에서는 무엇을 주의하라는 충고등등 실제로 배낭여행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여행길에 오르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편이다.
일전에 필자의 대학동기중 한명이 창업을 한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참여하기로 했던 친구가 장기간 해외여행을 간다며 같이 일을 하게 될지 미지수라고 했던것 같은데 개업식에 참여했더니 그 친구가 버젓이 그 곳에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들어보니 부푼꿈을 안고 스페인에 딱 도착했는데 바로 강도한테 전 재산을 털렸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귀국한 거라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관해 거부감을 가지기에 딱 좋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저자인 정상근 학생은 스스로가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참 운이 좋았던것 같다. 항상 고비때 마다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던 이국의 수호천사들. 떠나는 저자를 위해 어머니가 해주셨다던 격려의 말씀. '아들아,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믿어라' 이 한마디가 그래서 더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온 상근군은 1년간의 여행으로 인해 또래 친구들 보다 복학도 늦어지고 토익공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똑부러지게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조금 늦게 가도 좋다. 뒤처져도 좋다. 그 느림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방향을 찾는 시간이라면 조금 늦더라도 정확히 내 목적지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P.280)
맞는 말이다. 내가 사장이라도 시험 점수 좋은놈 보다는 일년동안 자기힘으로 세계여행 하고 온 친구를 뽑겠다. 용감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던 필자의 학창시절. 그때 난 왜 그 열정과 에너지를 이런 방향으로 발산할 생각을 못했을까란 아쉬움의 한숨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아무쪼록 이 똑부러지는 젊은이의 이야기가 필자와 같이 어딘가에 얽메여 있는 이들에게는 용기와 위안을, 지금 당장 어디든지 떠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알찬 정보를 주는 실질적인 좋은 지침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