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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 2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소설보다 421쪽에서460쪽까지 40쪽에 걸쳐 나오는 '작가의 말'이 더 재미났다.
그렇다고 소설이 아주 형편없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 세대 얘기가 아녀서 공감하기 좀 어려웠다 뿐이지.
1970년대 대한민국 서울로 옮긴 <더버빌의 테쓰>쯤 되겠다.
읽으며 내 눈길 끈 몇 군데를 조금 깊게 보자.
120쪽 "올해 스물네 살, 1947년 3월 8일 생이에요. 오전 7시에 났어요. 이름은 오경아예요."
점쟁이 찾아가서 생년월일 밝히는 대목인데 살아 있었으면 경아는 70살 할머니구나.
151쪽에 '백밀러'가 나오는데 물론 리어뷰 미러rear view mirror 콩글리시인 백미러를 가리킨다. 그런데 옛날 분들이 L을 ㄹ 소리 두 번 내는 대신 한 번만 내는 건 흔해도 ㄹ 소리 한 번만 내야 하는 R을 두 번 내는 건 드문데 여기선 그 드문 일이 나온다. 아마 일본 식민지였던 잔재 때문이겠지만 내 고교 때 수학선생 한 분은 N을 늘 에누라고 읽으셨고 close를 cross처럼 소리낸 중학교 영어선생님도 생각난다. 두 분 다 나이가 꽤 든 분들이셨다. 지금쯤은 퍽 나이드셔서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166쪽 "그렇죠, 소가 넘어갔죠. 맞았어요. 소가 넘어갔단 말이에요. 속아 속아 넘어갔단 말이에요."
경아가 남주인 김문호한테 장난치는 말.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80년대에 들었던 농담. 이 녿암 나이가 최소 소설이 연재되던 1973년 늦봄 내지 초여름 무렵으로까지 올라가는구나. 1972년9월5일(423쪽)부터 연재해서 314회(454쪽)로 끝났으니 2권166쪽이면 1973년 늦봄이나 초여름으로 보인다. 혹시 이 농담 첨 지어낸 사람이 알려져 있는지 아무도 저작권자를 모르는 농담인지 궁금해진다.
220쪽 아직 어디론가 떠난 것은 아니군. 시집을 가거나 미국이나 그런 곳으로 요새 한창 유행하듯 떠난 것은 아니군.
남주 김문호가 경아 만나기 앞서 사귀던 혜정을 오랫만에 찾아가 만나서 인사 나누고 머릿 속 혼잣말하는 대목이다. 작가 최인호의 동기들이 미국으로 이민간 때가 이 무렵으로 알고 있다. 박완서의 단편 <이별의 김포공항>도 대략 이 무렵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안다. 신경숙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였던가 하여튼 어느 신경숙 소설에서 뉴질랜드 얘기 나오는 걸 보고 재밌어했는데-그 대목 읽을 때 나도 뉴질랜드 교민이었으니만큼-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신경숙 동생이 뉴질랜드 산다는 얘길 듣고 아 그래서 그 많은 나라 가운데 뉴질랜드 얘길 쓴 거구나 했던 게 기억난다. 역시 작가는 체험을 벗어나기 어렵다.
223쪽 "뭐 그런 노래두 있잖아,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노래 말야."
혜정이 오랜만에 만난 문호가 옛날보다 신수 훤해졌다며 하는 말. 흠, 난 이 노래가 뭔지 궁금하다. 이 노랫말 첨 만난 게 안정효의 소설인지 수필인지 영어학습서였는지는 기억이 흐릿한데 하여튼 안정효가 쓴 것만이란 건 확실히 기억나는 어느 글에서 인용된 걸 보고서였다. 어느 가수가 부른 무슨 노랠까? 아울러 내가 잊은 안정효의 그 책은 뭣이었을까?
233쪽 관리인이 관리이인으로 잘못 적혀 있다.
241쪽 와이셔츠 칼라에 묻는 때[?]라는 문장이 나오고 ? 자리에 흙 토土 자가 왼쪽, 임금 후后자가 오른쪽에 있는 한자가 나오는데 때 ?자겠지. 근데 이 글자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지?
245쪽 방문을 eke았다. 하하하.
246쪽 그 새나가 오고야 말았다. 새나는 사내를 잘못 쓴 것. 두 쪽에 잇따라 실수가 보인다. 조금 앞 233쪽 관리이인까지 더하면 14쪽 동안 실수 셋. 출판사 직원이 233쪽에서 246쪽까지 지쳐 반쯤 졸며 일했던 거 같다.
262쪽 경아가 미국 민요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를 부른다. 이 노래는 최인호의 다른 글에도 종종 나오는데 작가가 유달리 이 노래를 좋아했던 모양.
275쪽 "내 고향은 멀어요, 별처럼 멀어요."
소설 제목이 경아 입에서 나온다. 450쪽엔 <별들의 무덤>이란 제목을 최인호가 붙였더니 소설 연재 지면인 조선일보 신동호 편집국장이 아침부터 무덤이라니 재수 없다며 당시 편집국 간부진인 이종식, 조영서를 불러 넷이 즉석 회의를 거쳐 <별들의 고향>이 됏다는 얘기가 실렸다. 한때 나도 출판계에 몸담아볼까 생각하고 출판공부할 때 책이 성공하려면 3T가 맞아떨어져야한다는 걸 봤는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3T는 Title, Timing, Target이다.
307쪽 "누구의 시던가.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고 그 화살이 어디에 떨어졌었는가, 알지 못했는데 먼 훗날 친구의 마음속에 그 화살을 발견하였다는 시 말이야."
문호가 혜정에게 한 말. 나도 이런 시 어디선가 봤는데 누구 시지? 또 하나 궁금한 게 최인호가 이 대목 쓸 때 누가 시인인지 알고도 모른 척 썼는지 쓰면서 기억이 안 나 이렇게 처리한 것인지도 궁금하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소설 다 읽으시고 난 뒤 '작가의 말'을 살펴보시기를.
그 당시 작가의 처지와 문단 분위기, 문단 뒷얘기 등등이 아주 재미나다. 소설보다 더.
이로써 내가 읽은 최인호 장편은 세 편이 됐다. 내가 읽은 순서로는 81년작 <적도의 꽃>, 78년작 <지구인>, 72년작이자 작가의 첫 장편인 <별들의 고향>인데 <적도의 꽃>은 아마 10년도 전에 어머니가 사 두셨던 걸 읽었고 <지구인>은 지난해 <별들의 고향>은 방금 읽었다. 앞으로 76년작 <도시의 사냥꾼>, 79년작 <불새>, 84년작 <겨울 나그네>를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