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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ㅣ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평점 :
재일교포 서경식 선생이 쓴 이탈리아 문화 기행.
서경식 선생이 맘잡고 정색하고 쓴 글 읽으셨다 어려워서 이 책도 피하시려는 분들 그런 염려 놓으셔도 된다.
이 책은 힘 빼고 이야기하듯이 쓰신 글이라 퍽 쉽게 잘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어느 만큼 깊이도 있고 몰랐던 사실을 깨우쳐준다.
게다가 책이 두꺼워 보이지만 글은 홀수쪽에만 있고 짝수쪽은 그림이나 자료사진이 있거나 아예 비었거나 해서* 실재로는 절반 두께로 보면 된다.
다만 밀도 있고 빡빡한 서경식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조금 실망스럴 수도 있겠다.
99쪽에 칠레반혁명 얘기가 나오는데 1945년이라고 적은 연도가 잘못됐다. 칠레반혁명이란 피노셰의 쿠데타를 말하는데 피노셰의 쿠데타가 1973년이었으니 말이다. 피노셰도 피노체트라고 적혀 있고 흔히 그렇게 더 알려졌지만 어디선가 피노셰가 맞다고 한 걸 읽었다. 그 어디선가는 현암사에서 나온 안정효의 영어 길들이기 세 권 가운데 하난데 어느 것인지까진 기억 못 한다.
117쪽에서 119쪽에 걸쳐 나오는 중세 페라라의 지배자 에스테 집안 사람들 얘기는 망언할매 책에서 읽었던 것이라 익숙했다. 니콜로3세의 둘째 아내 말라테스타 집안 파리시나가 니콜로3세의 사생아 우고랑 사랑에 빠진 게 남편/아버지 귀에 들어가자 이 남편/아버지가 아내와 아들을 죽여버린 얘기는 아마 <사랑의 풍경>에서 읽은 거 같고 이 무서운 할아버지의 손자 알폰소1세는 친동생 페란테랑 이복동생 줄리오가 제 지위를 노리자 둘을 감옥에 가둬 친동생 페란테는 34년 뒤 옥사했고 줄리오는 53년을 갖혀 보내고 알폰소1세가 죽은 뒤 81세가 돼서야 석방된 얘기는 <르네상스의 여인들>에도 나오고 뭔지 기억 안 나는 다른 책에도 한두번 더 나왔던 거 같다. 그나저나 일본군성노예 헛소리만 없었어도 나한테 망언할매 소리는 안 들을 텐데.
27쪽과 29쪽에 나오는 여행자들에게 사기치려는 이탈리아 사람들 얘기와 31쪽에선 식당에서 잘 먹고 방에 돌아와 영수증 확인하니 마시지 않은 샴페인값을 매겼더란 얘기와 199쪽에서 이탈리아 대중교통의 어이없음을 얘기하는 건 다른 이탈리아 기행문, 예를 들면 김영하의 시칠리아 기행문이라든지 망언할매의 여러 수필이라든지,에서도 많이 나온 얘기다. 이탈리아에 바가지 상술이 활개치고 대중교통이 엉망이긴 하나보다. 문득 우리는 얼마나 나을까 생각해 봤다.
카라바조,미켈란젤로,모딜리아니,수틴,시로니,프리모 레비,그람시,긴츠부르크,마리니,오기와라,사에키 같은 예술가들을 첨 만나거나 더 알게 돼서 즐거웠다.
*엄밀히 말하면 아예 빈 건 아니고 건물 7개가 그려져 있는데 일종의 독자에게 던지는 책만든 이의 퀴즈다. 책은 모두 7장인데 장마다 건물 그림 7개를 보여준다. 1장은 16쪽에 2장은 72쪽과 88쪽에 3장은 136쪽,138쪽,140쪽에. 그리고 장의 가장 마지막 그림 보여준 다음 쪽에 같은 그림이 나오는데 이번엔 무슨 건물인지 답이 적혀 있다. 1장 답은 18쪽에 2장 답은 90쪽에 3장 답은 142쪽에 이렇다. 이게 일본판에도 있는건지 한국판으로 옮기며 덧붙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미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