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에 150억원을 들여 중·고교생 전문 기숙학원을 지었어요.” 윤강로(尹康老·50) KR선물 회장의 일성(一聲)은 의외였다. 그는 ‘압구정 미꾸라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주가지수 선물(先物)시장에서 종자돈 8000만원으로 1300억원을 벌었던 전설 같은 고수(高手)다. 그런데 난데없이 해외 기숙학원 얘기를 한다.

“한국 학생도 받겠지만, 홍콩이나 터키 등지에서 부유한 집 학생들을 데려올 겁니다.

우리가 경쟁력 있는 게 사교육이라면 그게 왜 수출이 안되겠어요. 한국의 ‘관리형 사교육’을 미국에 유학온 아시아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겁니다. ”

그는 “작년 여름부터 완전히 선물투자에서 손을 뗐어요.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지금의 장세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왜 증권가에서 은퇴하고 ‘학원수출가’로 변신했을까.

원래 서울은행 펀드매니저였던 그의 인생은 1994년 3개월간의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CBOT) 연수가 바꿔놓았다. 모의투자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그는 1996년 국내 선물시장이 개장되자 1998년 은행을 퇴직, 개인 자격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론으로 무장한 그의 투자 성적은 놀라웠다. 그는 당시 ‘목포 세발낙지’ 장기철씨와 선물시장 자체를 좌지우지했다. 위험을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간다고 해서 ‘압구정 미꾸라지’란 별명이 붙었다. 한때 그날 시장의 종가(終價)까지 정확히 알아맞히기도 했다. 2004년 그는 당시 한국선물을 인수, KR선물로 이름을 바꾸고 ‘제도권’ 진입을 달성했는데, 이것이 분수령이 됐다.

“1300억원을 벌고 나서 내 운(運)이 어디까지일까 시험해본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투자했는데, 하느님이 그런 저를 놓아두진 않더군요. 2004년 500억, 2005년 100억, 2006년에 45억원씩 손해를 봤어요.”

그는 “흑삼병(3일 연속 주가가 빠지는 것)이면 과감히 손절매(손해를 보고서라도 파는 것)해야 한다”며 웃었다. 더 손해 보기 전에 자신의 선물투자 인생 자체를 손절매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1분1초를 다투는 선물과 정반대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교육사업으로 인생을 전환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리스크에 대한 내성(耐性)이 떨어졌어요. 나이가 들고 안정이 되면 ‘잃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는데, 이러면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실패를 비판하는 데도 사정이 없었다. “레버리지(적은 자금으로 큰돈을 거래하는 기법)를 많이 써선 안 된다고 하던 제가, 회사를 인수하고 나선 회사를 살리려는 욕심에 레버리지를 써서 필요 없는 거래를 많이 하며 거래량을 늘렸어요. 회사에 수수료 수입을 준 거죠.”

그는 시장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기초로 투자하던 자신의 원칙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흔들린다는 것을 자각하고 투자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도 명랑하게 웃는다. “레버리지를 많이 쓴 투자가의 말로가 가장 나은 게 빈털터리, 그다음이 감옥행, 최악은 권총자살이라고 해요. 막판에 많이 잃긴 했어도 빈털터리가 안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그는 애초부터 자산의 일부분만을 투자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덕분에 연 3년 실패했지만, KR선물을 제외하고도 부동산을 포함, 700억~800억 정도의 자산은 남았다. 학원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한때 KR선물 매각도 생각했지만, 해외 제휴선을 찾는 정도에서 그대로 보유하기로 했다.

“재야의 투자자이던 제가 제도권에 진입해서 결국 선물회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제가 직접 투자를 하던 때보다 회사는 오히려 나아졌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자”고 부탁했다. 그는 ‘얼굴 알려지는 것이 싫다’며 사진을 안 찍기로 유명했던 인물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맡기는 학원사업인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면 신용이 없겠죠? 대신 제 사진은 조그맣게 하고 학원 사진을 크게 실어주세요.”

자신의 사진을 걸고 ‘세일즈 베팅’을 한 셈이었다. 압구정 미꾸라지는 여전히 ‘승부사’였다.




◆선물(先物) 거래 주식이나 상품, 주가지수 등을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거래. 예컨대 갑이 을로부터 A기업 주식 100주를 10일 후 주당 10만원에 사기로 약속하는 식이다. 적은 증거금으로 큰 금액을 거래할 수 있어(레버리지 효과), 크게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반대로 크게 손해 볼 우려도 있는 등 투기성이 강하다.
http://news.media.daum.net/economic/others/200711/05/chosun/v187255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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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말 천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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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05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종의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위의 최종 진화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술 2007-11-0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바위꾼 소리 들어도 좋으니 돈 걱정 안 하고 좀 살아봤음 좋겠습니다.^^

asnever 2007-11-1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을 투자의 수단으로? 음.....
전 좀 걱정스럽습니다.
요샌 미국이든 호주든 대도시에서는 현지인 학생들까지 한국학원으로 공부하러 온다는군요(: 한국의 공부지옥을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게해주겠다고 아이들을 엑소더스시키더니 역시 그 오랜 버릇이 어디가겠습니까.
한국 학부모가 등장하면 잘 살고있던 근처 현지 학생들까지 힘들게 되고 마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심술 2007-11-1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뭐가 옳은 건지 통 모르겠습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놀아라'라는 책을 쓴 어니 젤린스키처럼 사는 게 옳은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