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빌리어네어를 억만장자라고 부르는 걸까? 밀리어네어가 백만장자면 빌리어네어는 십억장자라고 해야 옳을 거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런 거 갖고 궁금해 하면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비웃으며 돈 되는 일에나 신경쓰라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 쏴 붙이거나 넌 2000년 1월 1일을 맞을 때에도 오늘이 아니라 2001년 1월 1일이 진짜 21세기가 시작되는 날이라며 시큰둥했지하고 지레짐작해서 핀잔 주는 거 안다. 그래도 궁금하다.

나같은 사람은 2001년이야말로 진짜 21세기가 열리는 해라며 2000년 1월 1일에 즐거워하는 다른 이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봤을 거라는 누명이 있을 거 같아 해명을 해 본다. 내가 좀 괴짜이고 삐딱한 데다 2000년 1월 1일에 시큰둥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즐거워하는 걸 못마땅해 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누명이다. 2000년 1월 1일에 시큰둥했던 건 시간은 쏜살같이 가는데 이뤄놓은 건 없고 뭘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는 겁많고 소심한 어느 책 제목처럼 청년위기를 겪는 젊은이들이 곧잘 겪는 우울증 때문이고 연도를 알리는 첫 숫자가 1000년 만에 1에서 2로 바뀌는 순간을 남들이 기념하는 걸 비과학적이라 생각해서였던 건 아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비과학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10대 시절의 나라면 그런 비과학적인 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기도 했을 테지만 한창 우울증을 겪던 그 때 난 김승옥 단편소설 무진기행 속의 나처럼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10대 중후반 시절의 나는 지금 이 사람들을 보고 비웃었겠구나 하면서. 정작 속좁은 바보는 사람들의 그런 작은 실수를 꼬투리잡아 불평해 대는 10대 시절 나같은 사람이라는 걸 몰랐음을 뉘우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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