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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도서]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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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도서]마주치다 눈뜨다
지승호 지음 / 그린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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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도서]7인 7색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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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뽀뽀
[도서]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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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까 말까 고민이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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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2006-02-1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현재까지 주문한 책은 지승호의 책이 고작이다.

타지마할 2006-03-2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에사 보니 전부 다 주문하였군..
 

 

 

 

 

1. 본문 중에 무수히 나오는 명사인 결과(結果)에 -하다를 붙여 만든 자동사는 너무 신경에 거슬린다.  다시 말하면 이 경우의 결과(結果)는 -하다를 붙여 동사를 만들 수 없다. 결과(缺課-수업이나 강의에 빠지다)의 경우는 '결과하다'라는 자동사로 쓰일 수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에는 '초래하다'나 다른 낱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결코 이건 글쓴이의 문체와 상관없으며, 아울러 내가 김민웅의 책을 좋아하고 그의 생각에 많이 공감하는 것과도 절대 상관없는 일이다.

예) 1)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결과하고 있는 카지노 자본주의가...(63쪽) --> 초래한, 만들어 낸(?)            

      2) 아시아의 위기는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단일화되어 사는 현실이 결과한 위험성을 보여준다. --> 초래한, 야기한

2. 한국이 겪고 있는 금융 위기는 세계화라는 방식의 후기 제국주의가 관철하려는 후기 식민지 정책과 대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65쪽)

    ===>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은 세계화라는 방식의 후기 제국주의가 관철하려는 후기 식민지 정책과 대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65쪽)

3. 지난 1998년 5월 초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부는 유가(油價), 전기, 교통 등과 관련된 물가를 전격적으로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90쪽)

  ===> 지난 1998년 5월 초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부는 원유(原油), 전기, 교통 등과 관련된 물가를 전격적으로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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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 子夏之門人, 問交於子張.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與之①, 其不可者拒之. 子張曰: 異乎吾所聞, 君子尊賢而容衆②, 嘉善而矜不能③, 我之大賢與④, 於人何所不容⑤.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번역 - 자하의 제자가 자장에게 交(친구를 사귐)에 대해 물었다. 자장이 말하기를, 자하는 무엇이라고 하던가? 하자 대답하여 말하길, "더불어 지낼 만하면 그와 더불어 사귀고, 그렇지 못하면 거절하라"고 했습니다. 자장이 말하길,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어진 이를 존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용납하며, 善한 이를 좋게 여기고 그렇지 못한 자들을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사람들에 대해 어찌 용납하지 않을 바이겠는가?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 남들이 곧 나를 거절할 터인데 어떻게 남을 거절하겠는가?"

① 可者與之에서 조동사 可의 본동사는 뒤에 나오는 與로 보아 可與者與之로 해석함이 좋을 듯하다. 뒤에도 마찬가지다.

② 君子尊賢而容衆에서 '賢'과 '衆'은 문장에서 대조가 되는 개념이다. 즉, 衆은 賢하지 못한 자, 일반 백성들을 가리킨다.

③ 嘉善而矜不能에서도 '善'과 '不能'은 서로 대조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善은 무슨 말인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④ 我之大賢與에서 '之'는 위치상 주격조사로 보는 게 좋겠고, '與'는 그냥 허사로 봐도 좋겠다. 김원중의 허사사전에 보면 이 경우의 與를 별도로 "구 가운데 쓰여 일시적인 정지를 나타낸다. '~면'으로 해석한다.(513쪽)"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하여 '~면'의 뜻이 있다고 보기엔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⑤ 於人何所不容에서 문제는 何所不容이다. 이 역시 김원중의 허사사전의 설명을 빌면 所不容者何의 의미라고 한다. 번역하면 <용납하지 못할게 무엇이겠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참고할 만하다. 또는 何所를 의문대사 '何'와 명사 '所'가 결합된 관용조사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 '何所'는 '어디에, 어디를'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억지로 번역하면 <어찌 용서하지 못하겠는가>정도이다.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번역일까요?

集註 - 子夏之言迫⑥狹, 子張譏之⑦是也. 但其所言亦有過高之弊. 蓋大賢雖無所不容, 然大故亦所當絶, 不賢固⑧不可以拒人, 然損友⑨亦所當遠, 學者不可不察.

번역 - 자하의 말이 지나치게 편협하므로 자장이 자하를 나무라는 것은 옳다. 하지만, 그(자장)이 말한 것도 지나치게 높은 폐단이 있다. 대개 큰 현인은 비록 용납하지 못할 것이 없더라도 大故가 있으면 역시 마땅히 끊어야 한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남을 거절할 수 없다 할지라도 損友는 마땅히 멀리 해야한다. 배우는 사람들은 살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⑥ '迫'은 강조부사 정도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⑦ '之'는 子夏를 받는 인칭대사이다.

⑧ '固'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뒤의 '然'과 연계하여 보아 양보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보고 싶다. 물론 '固'를 강조 부사로, 즉 '진실로' 따위로 번역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⑨ '損友'는 논어 제 16편 <계씨> 4장에 나오는 '損者三友'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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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 子張曰: 執德不弘1), 信道不篤2), 焉能爲有, 焉能爲亡3).


번역 : 자장이 말하기를, 덕을 잡는 것이 넓지 못하고, 도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다면, 어찌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어찌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1) 문제는 弘자인데 양백준은 强(굳세다)으로, 논어주소에서는 大로 이해하고 있다. 또하나는 執德不弘에서 執德과 不弘이 주술관계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 번역하면, <덕을 집행하는데 있어 (그 쓰임이)넓지 못하고>정도일 것이다.

2) 信道不篤은 주술관계로 봐도 무난하다. 그런데, <(비록)도를><(비록)도를 믿는다고는 하나, 독실하지 못하면>으로 번역하면 어떨까?

3) 焉能爲有, 焉能爲亡(무)에서도 爲앞에 以가 생략되어 있다고 보면 어떨까 한다. 그러면 번역은 자연히 <어찌 있다고 여길것인가? 어찌 없다고 여길 것인가?> 정도가 되겠다.

集註 - 有所得而守之太狹, 則德孤, 有所聞而信之不篤, 則道廢. 焉能爲有亡, 猶言不足爲輕重.

번역 - 얻은 것이 있으나 지킴이 너무 협소하면 덕이 외롭고, 들은 것이 있으나 (그것을)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도가 폐한다. 焉能爲有亡는 경중을 따질 수가 없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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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나눔과 분배 - 홍세화

 

나눔과 분배

사회양극화가 시대의 화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사회 양극화 극복을 위해 조세 부담을 늘여야 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로섬 게임이 관철된다고 하면, 양극화의 극복에는 두 개의 방안 이외에는 별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하나는 ‘나눔’이고, 다른 하나는 ‘분배’입니다.

   ‘나눔’은 우리말이고 ‘분배’는 한자말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말은 분명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됩니다. ‘나눔’이 ‘독차지’의 반대말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면, 분배는 ‘성장’과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가진 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들도 ‘나눔’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나눔’에는 무척 관대합니다. 그러나 ‘분배’에는 관대하기는커녕 반대로 일관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눔은 사적 영역이고, 시혜, 온정, 베품의 의미를 갖고 있다면, 분배는 성장의 반대로서 공적 영역이고 제도에 의한 강제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나눔’으로 ‘분배’의 요구를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분배의 제도화를 바탕으로 나눔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려고 할 때 분배의 제도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이라는 벽과 부닥칩니다. 우리 사회에서 현실은 바꿔나가야 할 현실의 뜻보다 피할 수 환경의 뜻이 훨씬 강합니다. 분배의 제도화를 비롯하여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너무 몰라”, “너무 순진해”, “이상주의자”, “근본주의자” 등의 말이나 딱지를 선사받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에서 멈추면 다행입니다.

   현실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의 의미만 가질 때, 그래서 각자의 세계관에 반해 현실을 수용해야 할 때, 그것은 세력관계상 거의 강자의 뜻을 수용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점차 강자에게 관대해집니다. 사람들은 북한보다 미국에 관대하고, 대기업노조보다 재벌에 관대하고, 한겨레보다 조중동 헤게모니에 관대하고, 진보세력보다 현실 정치권력에게 관대합니다. 그렇게 현실의 벽 앞에서 순응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그 내면에서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런 현실을 주로 같은 약자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현실은 더욱 바꾸어야 할 것보다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남습니다. 사회양극화의 극복 방안이 분배에 있을지 나눔에 있을지 질문을 던지면서 되돌아볼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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