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정희진 / 교양인 / 2005년

 

 

 

  마태우스님을 비롯한 무수한 알라디너들의 극찬에 유혹되어 결국은 이 책을 사고 말았다.  나는 오리지날 경상도 마초다.  이 책을 보면 무언가 변화가 있으려나?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뭘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테니까.  하여간 밀린 리뷰가 7권이나 되는데 용감하게 다시 책읽기를 시작한다. 

- 20060224 : 쓸데없는 일을 좀 하느라고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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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자발적 복종(홍세화)

홍세화의 수요편지 2006. 2. 22

자발적 복종


   젊은 벗에게,

   〈자발적 복종〉은 16세기 프랑스인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가 18세 때 쓴 저작의 이름입니다. 그는 몽테뉴의 벗이기도 했는데, 그의 〈자발적 복종〉은 적어도 프랑스에서 만큼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버금갈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저작이 한국에는 재작년에 처음 번역, 소개되었다는 점(박설호 역, 울력출판사 2004)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땅에서 누린 것과 비교해볼 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이 책은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위그노 교도들의 이념적 지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 자크 루소 등 그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그의 이념이 갖는 근대적 성격으로 지금도 아나키즘과 비폭력 저항 운동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령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연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는 〈한겨레 마주보기〉에서 만났을 때 〈자발적 복종〉을 화두로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자발적 복종〉이 프랑스의 교육, 지식인 사회와 시민사회운동에서 놓 칠 수 없는 개념으로 자리 집힌 것은 최근에 〈비자발적 복종〉이라는 저작이 나온 것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라 보에티는 이렇게 그의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나는 다만 하나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과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그렇게 많은 마을과 도시, 그렇게 많은 국가와 민족이 독재자의 전제 정치를 참고 견디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수백의 지역들, 수천의 도시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한 사람의 지배 체제 속에서 노예와 굴종의 상태를 전혀 죄악시하지 않고, 독재자에게 조금도 저항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무엇이라고 명명해야 할 것인가? 이 경우 비겁함이라는 단어는 결코 적당하지 않다.”

   젊은 벗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바라는 것은 ‘자발적 복종’이라는 개념만이라도 품고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발적 복종”이 과거보다 오늘날 더 강력히 관철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은 지배세력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통해 지배체제, 지배질서에 대한 자발적 ? 뮐씬퓰컥?내면화하게 됩니다. 일제의 황국신민화가 곧 ‘자발적 복종 의식화’였으며, 분단 이후 반공, 안보 이데올로기가 ‘자발적 복종 의식화’의 일환이었으며, 오늘날의 국익, 국가경쟁력 강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기업가가 아님에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하기 좋은 나라’를 주장하지 못하고 따르는 것도 자발적 복종의식과 관련됩니다.

   젊은 벗, 그대의 어머니는 그대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식단을 준비합니다. 그것은 그대 몸의 각 부분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되어 건강한 몸을 이루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의식세계는 어떨까요? 그대의 세계관을 이루는 요소들을 그대는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스스로 공급하고 있나요?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장악한 세력이 그대가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갖도록 노력할까요? 아니면 그들, 즉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식을 갖도록 노력할까요?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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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일단은 재미있고, 이단은 느낌표 하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날 적잖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비장한 각오로 출근 전선으로 투입된 전사들 사이에서 나 홀로 히죽히죽 웃기란, 괄약근의 힘으로 조이고 조여 설사를 틀어막고 오리걸음을 간신히 떼는 것만큼의 심한 내외합일을 요구했다. 이외수씨의 이미테이션 같은 범상하지 않은 외모는 ‘이 괴수’의 글에 담긴 비범함을 분명히 초반부터 경고하고 있다.

글에도 돌연변이가 있으니, 이 터무니 없이 진지하고도 자학적인 개그는 분명히 다이옥신과 페놀이 다량 함유된 어느 공장의 폐수를 먹고 자라났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달짝지근하지만 살짝 유통기한이 지난 콜라 같은 쌉쌀한 맛이 우리의 기억과 감각을 점유해 버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책의 흡입력의 정체가 혹시 돼지 발정제를 책에 발라놓아서? 꿀떡 삼키자니 찝찔하고, 어쨌든 먹다 보니 재미, 비애, 감동, 오르가즘, 잡스러움, 자유분방함, 질퍽하고도 쿨하게 내지르는 문장들의 반란에 온 몸의 털이란 털은 기개를 드높인다.

인천, 만년 하위권 야구단, 바글대는 신도림역. 소설 속의 풍경은 수 많은 이들의 삶을 투영한다. 인천에 살고 있고, 후속 모델 태평양 돌핀스를 좋아했고, 신도림역을 8년째 왔다 갔다 하는 본인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르다. 소설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이유는 아마 내 삶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적 공감의 절규라서 그럴 것이다. 으아악.

프로. 어쩌다 보니 난 프로의 삶을 갈구하고 있었다. 평범하다고 믿었던 그 삶은 썰렁하게 선인장만 덩그러니 있는 황무지였다. 현실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찍어대는 채찍질에 청춘은 시들어가고, 그렇게 지나온 세월에 삶의 진의는 벽장 깊숙한 곳에서 박제가 되어 간다. 이것을 흔히들 평범한 삶이라고 부른다지만, 사실 평범해지기 위한 노력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쟁취한 ‘위대한’ 투쟁의 노획물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놓고 본다면, 위대함은 ‘위가 크다’는 것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보다 더 먹어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함은 사회 곳곳에서 누런 이를 드러낸다. 학벌의 위대함, 자본의 위대함, 소속의 위대함,
위가 커서 슬픈 짐승이여, 그들은 너무나 굶주려서 외롭다.

더 먹어야 한다. 보다 많이, 보다 빠르게… 올림픽 구호가 아니다. 삶은 전쟁이다. 자본을 신앙으로 삼아, 국가 경쟁력의 첨병이 되어 금메달을 향해 총력전을 펼치는 영웅적인 삶이 인생의 목표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러한 세상을 가르는(홍해를 가르듯) 구세주의 느낌이 들게 든다. 공부하느라, 암기하느라 삶을 소비한 주인공에게 주체적 삶을 가르쳐 준다. 실패하면 뭐 어때? 도발적인 질문은 충만한 은혜로운 빛이며, 행복으로 가는 비단길을 펼쳐놓는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뉴스를 보라.
‘자본을 섬기지 않는 게으른 일가족이 생활고를 못 이겨 집단 자살했습니다. 당신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경제난으로 실업자가 늘고, 개인파산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안전합니까?.’, ‘학벌과 소속, 능력으로 당신의 몸값을 높이세요. 당신의 삶은 그것에 좌우됩니다’.

어디를 가던 우리는 사회적 협박과 공포에 주눅이 든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안정적인 삶은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 칸을 자리잡았다. 안정적인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당연히 실패 없는 삶이다. 무결, 무패, 무적의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9회 말까지 퍼팩트 게임을 만들어야 우리는 안도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이란 언제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소설처럼 그냥 방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가끔 앞 뒤로 뒤집어가면서 사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전문 용어인 ‘폐인’이란 수식어가 붙겠지만, 인간이란 뭐든지 금방 익숙해질 수 있는 사회적 짐승 아니던가. 열심히 살려는 의지만 없다면 누구나 ‘실패’를 맞보기 힘든 성공적인 삶의 한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이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고 가벼운 소설일까. 재미를 살짝 걷어내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스물거리는 우리 사회의 억압 기제가 내 몸을 서서히 타고 올라와 소름을 돋게 한다. 자조적인 성찰이 숙연하고도 진지한 자극이 되어 12만 볼트에 이른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배가 고프다.

왜냐하면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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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쪽에 삼미 선수로 소개되는 김바위는 한번도 삼미슈퍼스타즈의 선수인 적이 없다.  삼미의 후신인 청보의 선수였다.  작가가 약간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김바위

포지션 : 내야수 (좌투좌타)
생년월일 : 1955년 04월 08일
체격 : cm / kg
경력 : 배명고
계약금/연봉 : /

연도별 기록실
연도 소속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4구 사구 삼진 병살
1982 MBC 0.294 58 109 21 32 4 48 26 3 19 2 15 3
1983 MBC 0.157 59 108 7 17 1 23 11 0 20 4 15 2
1984 MBC 0.247 56 89 12 22 1 31 14 0 14 1 23 1
1985 청보 0.245 90 261 31 64 13 115 34 7 37 6 32 6
1986 청보 0.228 105 298 30 68 6 102 31 3 51 2 61 4
1987 청보 0.248 102 351 46 87 9 131 53 6 41 0 45 10
1988 태평양 0.259 92 259 25 67 7 110 41 2 28 4 35 5
1989 태평양 0.268 82 168 23 45 7 76 28 1 26 1 26 7
1990 태평양 0.167 31 42 1 7 0 8 3 0 4 0 17 0
1991 태평양 0.000 2 3 0 0 0 0 0 0 0 0 0 0
통산 0.242 677 1688 196 409 48 644 241 22 240 20 269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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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알라딘에서 또 책이 배달되어 왔다.  나는 사실 책을 주문할 때 소량 주문으로 인한 알라딘의 손실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예전에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냥 내맘대로 조금씩 주문하기로 했다.  토요일날 책이 배달되자 안해 왈, "무슨 책을 이렇게 자주 사?".  그렇다 요즈음에 나는 '믾이'는 아니지만 '자주'는 산 것 같다.  그 중에 두번은 회사에서 책을 수령했음에도 안해가 그런 말 하는 걸 보면...

  이오덕님의 글을 잠시 미루고, '번역은 반역인가'를 읽고 있다.  초반에 인용되는 (사실 한 20쪽 읽었다) 책들이 다 내가 예전에 봤던 책들이라 내심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  이런 유치한...

   <번역과 일본의 근대>는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무식한 인간이다.

  <감염된 언어>를 읽고 난 뒤에 난 고종석의 팬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박상익은 그 중의 한 부분을 아주 많이 인용하였다.

 

  나는 항상 가방에 두 권의 책이 들어 있다.  언젠가 한 권을 다 읽어 버려 멍하니 시간을 보낸 후로 생긴 버릇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책장을 휘익 둘러 보다거 최근에 배달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눈에 들어와 가방에 집어넣었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한겨레 문학상은 1회 인샬라 부터 3회 홍합까지는 사서 보았는데 그 뒤론 무슨 이유인지 보지 않았다.  책을 사고 보니 두 권 모두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의식없이 한 행동인데.    

  박민규란 작가는 지승호의 <7인7색> 중 이우일 편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재미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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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2006-02-2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하루만에 다 읽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