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중세적 엄숙주의를 전복하는 유목적 유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독한지 두 시간 만에 <열하일기>를 해치웠다. 책을 읽는 행위를 해치웠다는 무식한 표현을 쓰는 이유가 있다. 고전읽기를 즐기는 나의 취향으로 아쉽건대 고미숙이 지은 <열하일기>는 항상 ‘다음번에는!’이라는 다짐을 하다가 다른 책들로부터 번번이 밀려난 책이다. 그만큼 기다려온 염원의 시간이 길다. 이 책이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이 지난 해 6월이었으니 무려 8개월이나 서가에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주인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고전평론가라고 불러 달라는 고미숙의 <열하일기>는 예상한 것만큼 튄다. 저자의 문체가 기존에 읽었던 근엄한 해설풍의 열하일기와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하면 사방팔방에 열하일기의 웃음을 전할까 싶어 밤을 지세며 고심했을 흔적이 보인다. 놀기 좋아하고, 기발한 장난꾸러기인 연암에게 정신을 놓아버린 저자의 입을 빌리면 <열하일기>는 “천재의 유머! 유머의 천재!”로 펄펄 끓어오르는 웃음의 도가니란다. 웃음 덕분인지 책은 쉬웠다. 현대적으로 쉽게 해설을 해 준 저자의 노고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었던 경험이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힘을 실어주었다.


<열하일기> 본문의 내용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1780년 5월에서 1780년 10월까지 6개월간의 중국여행기다. 압록강을 건너는 출발부터 마테오 리치의 무덤에서 여행기는 끝난다. 육로 3천리의 거리다. 말이 육로 3천리지 교통수단과 도로 사정이 열악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여행기에서 나온 것처럼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는 여행길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스릴과 호기심이 부재하는 여행이란 자신의 안방에서 심드렁하게 낮잠이나 자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저자도 모험을 좋아하는지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다면, 대체 뭐 때문에 여행을 한단 말인가?”하고 강변한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마담 보바리의 작가 귀스타프 플로베르조차 “루앙을 떠나 이집트로 가서 낙타를 모는 사람이 되어, 하렘에서 코밑에 솜털 자국이 있는 올리브빛 피부의 여자에게 동정을 잃는 것”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근원지의 지긋지긋한 편안함의 익숙함에 권태를 느끼는 여행자들의 말이다. 연암은 구경꾼과 호기심 많은, 스릴과 궁금증을 잔뜩 품은 여행자의 자세에 충실하게 여행기를 썼다. 그런데 그가 쓴 여행기는 중후한 격식을 갖춘 이전의 외교사절단 선배들이 쓴 여행기와 다르다. 신분적 상하관계를 뛰어넘고, 국경을 뛰어 넘고, 시간을 뛰어 넘고 사상을 뛰어넘는 ‘뛰어넘기’의 정신, 즉 월경(越境)의 이야기로 열하일기는 출렁이다 못해 세로, 때로는 가로지르며 달린다. 근엄한 18세기 성리학의 조선에서 이것은 잡문적인 요소를 가득 품고 있다. 왜냐하면 성리학의 ‘중심’ 포인트가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왜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의 이야기에 열광했던가?


18세기. 조선의 내면은 뿌리로부터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그것이 천주교라는 종교와 서학(西學)이라는 새로운 학문(과학)의 기운이었다. 젊은이들은 젊고 패기 넘치는 군왕에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단박에 수용하기에는 18세기 조선의 내부는 여전히 어둠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층의 위기위식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 서투르다. 새로운 기운이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안락한 의자를 발길로 걷어차서 넘어뜨릴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혁명은 항상 새로운 이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던가. 연암이 여행기에서조차 중심원보다 주변에 시선을 던진 이유는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계산이 포석한 것으로 본다. 그가 단순히 해학적이고 서민적이고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라서 아니다. 중국을 먼저 다녀온 외교 사절단과 다른 뷰 파인더로 여행기를 썼던 이유를 18세기 조선의 내면과 동반해서 주지해야 함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고미숙의 통통 튀는 <열하일기>는 대박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박람강기(博覽强記)’다. 즉, 많은 책을 읽고 여러 가지의 사물에 대하여 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앞에서 천재의 유머라고 말했다. 열하일기는 재기발랄한 연암의 독특한 문체에 의하여 단순히 웃다가 마는 책이던가?


문학박사 군왕인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자료를 찾아보려고 마음먹는다면 문체반정은 따로 공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하튼 정조의 문체반정의 배후로 지목되는 <열하일기>. 물이 없어 그 좋아하는 술을 쏟아 붓고 먹을 갈아 글씨를 쓰고, “더위에 기침이 심해지니 일찍 자야겠군.”하며 능청을 떨다가 월장을 하는 여행기의 기록을 조선의 사대부들은 왜 당혹스러워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무수한 흐름이 중첩되는 유연성에 있을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물음을 구성할 수 있는 도저한 열정. ‘산천, 성곽, 배와 수레, 각종 생활도구, 저자와 점포, 서민들이 사는 동네, 농사, 도자기 굽는 가마, 언어, 의복 등등’에서 역사, 지리, 철학 등 고담준론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는 박람강기(博覽强記)”-(88쪽)


기득권층이 누리는 사회 안전망의 표본을 척도로 본다면 이 책은 잡문(雜文)이다. 잡스런 글. 그런데 잡문이라고 평가절하해서 놔두기에는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필요충분조건을 지니고 있다. 백성의 삶. 백성이 원하는 사회. 신분계급을 뛰어넘어 경계를 허물고 있는 내용들. 백성의 삶은 저 위에 열거한 것에서 어느 것 하나 빠질 수 없다. 이것은 백성의 이야기다. 백성이 원하는 사회는 경계가 없는 세상이다. 열하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경계 이야기를 단 한 줄도 써 붙이지 않았다. 연암은 훗날 수도 없이 윤색과 각색을 반복하면서 열하일기를 다듬어갔지만 그 어디에도 ‘경계를 허물자!’라는 식의 혁명적 구호는 안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불온하다. 불순하기 그지없다. 왜 그런 냄새가 날까. 바로 백성의 삶을 노래 한 사람이 사대부출신이기 때문이다.

 

"무릇 천하에 이치는 하나뿐이다! 범의 본성이 나쁘다면 사람의 성품도 역시 나쁠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착하다면 범의 성품도 역시 착할 것이다.........너희 인간들이 이치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때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거리지만 하늘의 소명으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 중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는 인(仁)의 관점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벌이나 개미나 사람이 모두 함께 같이 살기 마련이지 서로 해치고 지낼 터수가 아니다."-(362쪽);<호질 中>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연암은 평등세상을 노래하는 혁명가의 사상을 지닌 사람은 분명 아니다. 그는 오히려 중원을 향하는 흠모가 대단하다. 청을 지극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열망하는 마음이 강렬하다. 그러나 그의 지극한 시선이 머무는 청, 중원 땅은 그가 지닌 ‘접속’의 대상 중 한 무리다. 만약에 고비 사막을 건너 이슬람 문화권과 대면했다면 연암은 그것을 자기 식으로 ‘접속’하는데 또 신이 날 것이다. 그는 어떤 이질적인 것으로라도 접속할 수 있는 열려있는 사람이었음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수회 소속의 이탈리아 신부 마태오리치는 종교적 목적으로 <천주실의>를 썼지만 조선의 가난한 선비 연암은 경계를 뛰어넘는 시각으로 <열하일기>를 썼다. 연암이 이슬람을 넘어 유럽문화를 직접 만났다면? 아프리카는? 인디오는? <열하일기>는 미완성의 궤적이다. 


이런 사대부가 국경 넘어 다른 나라의 여행기를 쓰면서 월경(越境)의 사상을 말했으니 기득권층은 경계가 무너짐을 당연히 전전긍긍대고 삿대질을 하지 않겠나. 맹목적이고 공허한 명분. 조선의 18세기는 분명 새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그것을 막아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총명한 군왕 정조의 문체반정은 <열하일기>속에서 탈주자학을 만난 것이다. 주자주의로부터의 이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러니와 액션, 긴장과 돌출로 연속되는 <열하일기>. 한 권의 책은 ‘오랑캐’의 냄새가 난다고 하여 빨간 딱지가 붙여진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돌고 돈다. 삼국유사에서도 자유로운 사상가 원효를 일컬어 “원효,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아니하다.”라고 써 있다. 경계를 뛰어넘는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글은 일차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하고는 다르다. 그들의 사유는 겹과 겹 사이, 층과 층 사이를 꼼꼼하게 관통한다. 연암의 열혈 팬인 저자 고미숙도 이 점을 묵과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이든 입체적으로, 다층적으로 사유하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이면에 숨겨진 성격을 보려 하고, 그것을 인접한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라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331쪽)


‘가운데 눈금’이 아닌 ‘제3의 길’을 찾는 <열하일기>. 불교적 성찰이 문득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연암이 매번 이런 식의 경건함이라면 열하일기는 아궁이 불쏘시개로 생명력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을지 모른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여인네에게 반했다가 얼굴을 보고 실망하며, 달이 밝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러 나가는 한량 연암. 투전판에서 백 냥을 따서 또 술을 실컷 사 먹는 연암. 넘치는 강물 속에서 말꼬리를 잡아 살아나고 스스로 대견해 하는. 남의 집 담 너머로 구경을 하다가 일행을 놓치고도 허허 웃는 연암. 장난꾸러기, 얄개, 악동. 개구쟁이의 별칭을 지닌 연암.


혼란스럽고 무거운 18세기 조선사회에 유머로 경계를 무시하고 뛰어 다녔던 한 남자. 경계를 허물고 나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훨씬 더 수월해진다. 인간과 자연이 균등하듯이, 인간과 뭇짐승들이 같듯이. 그러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연암처럼 깬 천재들이나 할 수 있는 진리의 길인가. 3백년 후 후대에게 전혀 그 역설의 웃음이 가르쳐주는 의미가 빛을 바래지 않는 이유를 ‘<열하일기>그 후의 이야기’ 라는 다음번 글로 알려 줄 또 한 명의 연암 극성팬 작가를 어서 만나고 싶다. 그에게 <열하일기>로 인한 경계의 전복(顚覆)을 기꺼이 당하고자 한다.


유쾌한 연암만큼 그의 열성 팬인 저자도 서양철학자인 들뢰즈의 철학과 노마디즘(유목)을 가끔 끌고나와 대비시키는 지적재미를 보여준다.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깊은 바닥을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의 글은 책 한 권을 다 읽는 동안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있음을 발견한다. 좋아하면 닮게 되지 않겠나. 연암이 중원(사실은 넓고 다양한 세계)를 흠모했듯이 후대의 고전평론가 역시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던 열하일기에 들인 공이 놀랍다. 시종일관 연암을 상찬하는 것은 차라리 '숭상'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인 책이지만 독자는 내심 눈을 찔끔 감는다. 왜? 여하튼 연암만큼 활달하고 재기 있는 저자의 문체가 자칫하면 지루함으로 하품을 하다가 덮었을 고전을 끝까지 다 읽는 수고를 제공해 주지 않던가. 책 말미에 다산과 연암을 비교하는 ‘보론’편은 짧은게 못내 아쉽다. 주 메뉴를 폼 나게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달짝지근하게 먹는 후식이 때로는 한입 더 먹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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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별점 다섯개로는 부족한 책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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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의 홈페이지 방문자들로 인한 영화정보는 거의 홍수가 날 지경이다. 홈페이지 주인장이 어떤 영화 평을 한 편 올리고 나면 거기에 덧글로 달리는 각종 영화에 관한 여담이나, 정보는 또 하나의 평론으로 묶을만한 분량이다. 그만큼 영화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셈이다. 매체의 발전이 영화제작에만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유의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이제 영회정보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마우스 한 번 클릭 하는 일로 일원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필름으로 양산되는 영화는 언젠가 생명의 소멸을 가져온다. 보관의 용이함이 영화 열정을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쓰게 되었다는 철학과 교수님의 영화와 철학적 혼합의 관계, 그 연애관계를 담아낸 책이다.

“영화와 사귀기 위해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글쓰기다. 여기서 글쓰기란 비유컨대 사라지는 영화들이 남기는 안타까운 흔적들로 무늬를 짜는 것이다. 무늬로 뭔가를 만들어내어 추억의 증거로 삼아보라. 추억이 있는 동안은 어떤 것도 죽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영화 텍스트들과 함께 놀면서 만들어낸 무늬들이다. 나를 홀리고 꼬시며 에로틱하게 자극하는 저 멋진 여인 같은 영화들과 만나 사귄 흔적, 추억, 앙금들을 조금은 주저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여기에 남긴다.”-(7쪽);지은이의 말


로마에 올인 하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을 때, 옛날이 그리워질 때,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나는 영화를 본다.”고 한다. 종합적 의견으로 치면 삶이 그렁그렁해지면 영화를 보신다는 말 아니냐. 저자 이왕주의 말은 삶의 무늬를 만드는 과정에 추억이 있고 추억은 영화가 포함된다는. 그래서 영화와 연애를 한 판 하는가 보다 했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단어가 ‘특별’접두사로 붙어 있는 것을 보니 그 머리 아픈 철학과 연결을 한 영화평론집이라는 선입견이 든다. 맞다. 이 특별한 영화 평론집은 영화소개->철학적 분석, 해석이 후편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와호장룡/장자의 무위)해석은 철학과 영화의 만남 극점을 보여준다. 유위(억지스러움, 인위적인 것, 틀에 박힌 것)은 무위(자연스러움, 순리적인 것, 자유로운 것)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장자의 무위사상을 두 명의 인물(용과 리무바이)로 이분법적인 구도를 이룬다.


그것을 소 잡는 ‘소백장의 칼’로 앞부분에서 의미심장한 어필을 해 준다. 29편의 영화소개에서 하도 니체의 철학이 여러 번 응용되고 니체를 칭송하는 듯한 발언도 여러 군데 보였던지라 동양의 철학은 배제한 서양철학과의 접목만 시도했다고 오해한다면 독자의 무지다. 책에는 공자님의 말씀이 근엄하게 등장하기도 하고 가장 많은 출연을 한 철학자는 단연코 서양철학의 거두 니체씨이지만 장자(그의 스승인 노자)도 조연급으로 눈부신 활약을 한다. 소백장의 칼=청명검=리무바이의 무예=노자의 도덕경. 이 흐름의 공통점은 ‘이름과 명분에 매달리지 말자’다. 섭리까지 거스르며 이기려 들지 말자. 그러면 나중에 꼭 벌을 받는다?는 구도. <도덕경>은 이래서 도덕 교과서이시다. 재미없는 도덕 선생님의 기억을 간직한 독자는 하품이 나올 수도 있다. 예의 없이 반론을 불쑥하나 들이밀면, 도덕적인 삶이 뭐가 나쁘냐!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도덕적인 여인 ‘수련’보다는 철없는 여인 ‘용’이 더 매력적인 삶을 산다. 삶은 어차피 한 편의 드라마다. 발단과 전개, 절정, 결말로 이어지면서 숨가쁘게 변신하는 삶이 매혹적인 풍경으로 보이는 것은 철없는 나만의 시각일까. 열정이 매번 옳은 것도 아니고, 매번 섹시한 것도 아니지만 한번뿐인 삶. 깨우치는데 뭔가 자극은 있어야지 수고스러움의 쾌감이 배가되는 것 아니겠어? 책에서도 인생에서 과정을 향유하라고 하지 않더냐!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쾌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김에 이 책의 최다 출연자인 니체씨에 관하여 한 마디를 하기로 한다. 춤을 배우며 인생을 알아가는 스기야마씨의 춤 이야기(Shall we dance)에도 니체씨의 열광적인 예술론이 대두된다.


“니체는 예술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결합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아폴론은 밝음, 질서, 조화, 균형을 뜻하고 디오니소스는 어둠, 혼돈, 도취, 광란을 뜻한다. 물론 장르에 따라서 아폴론적인 것이 더 우세한 예술이 있고 반대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더 우세한 예술이 있다. 가령, 조각이나 그림은 전자에 속하고 음악과 춤은 후자에 속한다. 특히 춤은 디오니소스적인 정열과 광기 그리고 힘의 요소가 다른 아폴론적인 요소들을 완연히 압도하는 강렬한 예술이다.”-(229쪽)


“춤이 없다면 이 삶을 어떻게 견디랴?” 수도승이나 금욕주의자들을 향해 “춤출 줄 모르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니체. 다른 곳에서는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그들을 일컬어 “가축 떼거리의 인간들”이라고까지 호도하셨단다. 요즘 수녀원의 육중하게 무거운 문을 박차고 나와 종교학자로 거듭 난 영국여성의 이야기책을 한 권 읽고 있는데, 그 분도 세상과 즐겁게 연애하는 춤을 추고 싶어 수녀복을 벗으신 것일까 싶다. 영화와 철학의 만남인 이 책은 일단 영화를 텍스트로 만나는 것을 부담 없이 전해준다. 삶이 한 판 벌어지는 춤마당이라면 영화는 그 속에서 장단을 맞추는 가락이다. 거기에 철학자들의 육감적인 분석이 가미된다면 이거 너무 에로틱한 춤 아니겠어? 철학을 영화로 해석할지, 영화를 철학적으로 해석할지는 자유에 맡긴다. 순서가 바뀌면 어떠한들. 그래, 너 영화와 철학 둘 다 좋아하는 거 맞지?


부기)

탄탄하면서도 쉬운 철학적 연결 해석이 명문장을 여러 군데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보다 품격 면에서도(나나미 여사의 품격 치중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훨씬 높다고 본다. 그 증거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면서 동, 서양의 유명하신 철학자들을 두루 모신 점이다. 한 장르의 영화에 기울지 않았던 점도 이 책의 눈부신 보편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가장 큰 점수는 20년만의 제주도 여행지에서 인연을 맺은 책이라는 점이다. 새벽 다섯 시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책을 읽었다. 여행지의 아늑한 호텔방에서 새벽 미사 종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덮는 기분이란, 동녘하늘의 아침태양을 만나는 천지창조다.(과장법에 속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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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기독교

중세 교회는 봉건 지배체제의 일부였습니다. 교회는 엄청난 땅을 소유했고 평민들에게서 세금을 걷고 사법권의 상당 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느님이 준 권력인 국왕과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 “현실은 죄로 물든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이지만, 이 설교에 따르면 모든 현실적 욕망(부도덕한 탐욕뿐 아니라 인간 해방의 욕망 같은 정당한 것까지 포함한)은 사악하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봉건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였습니다.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전체 인구의 95%가 넘는 사람들이 그런 신앙의 사슬에 묶여 수입의 8할 이상을 귀족과 교회에 바치며 평생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욕망을 사악한 것이라 설교하는 교회는 현실적 욕망에 가장 충실했습니다. 토지와 돈에 대한 교회의 탐욕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고 평민들의 불만도 점점 높아갔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생기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사회는 성직자와 귀족이 제3신분인 평민들을 착취하는 사회였지만 평민들 가운데 일부가 새로운 중간계급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부르주아가 출현한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은 한편으로 저술가, 의사, 교사, 변호사, 판사들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들이었습니다. 부르주아는 무능한 귀족과 타락한 교회와 대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경제에서 자유방임, 사회적으론 ‘이성의 지배’를 표방하며 성장했고 자신들에게 마지막 남은 제약, ‘신분’을 해결합니다. 그게 바로 시민혁명입니다.

시민혁명은 프랑스 혁명, 영국혁명, 이렇게 일컬어지는 사건이지만 봉건사회가 부르주아에 의해 점령되는 수백 년에 걸친 과정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은 그런 과정의 제1막입니다. 흔히 종교개혁을 타락한 교회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독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보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부르주아가 봉건 지배체제로서 교회를 자신들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는 달라졌지만, 교회가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봉건시대의 교회는 부를 더러운 것이라 설교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은 부는 하느님의 축복이라 설교했습니다. 칼빈은 최초의 기업정신을 만듭니다. “사업으로 얻는 소득이 토지 소유로 얻는 소득보다 많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상인의 이윤이 그 자신의 근면과 성실에서 오는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막스 베버는 칼빈이 말한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돈을 축적하는 일은 죄가 아니라 하느님이 축복하는 선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축적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맑스주의는 생산력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조응하는 정신적인 가치들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어떻게 생겨났는가가 아니라 그 정신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인가, 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봉건사회에 대한 저항으로서 갖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의미보다는 그 정신을 담은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부의 축적은 칼빈이 말한 대로 여전히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물론 성공한 자본가들은 자신이 정당하게 부자가 되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선전들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김우중 씨의 안경다리가 20년 된 것이라느니 정주영 씨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듣습니다. 그들이 ‘안경다리’가 아닌 개인 용도에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쓰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근검절약은 그들의 호사 취미일 뿐입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의 부가 근검절약으로 축적된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모은 돈을 대학게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부를 축적하는 원리는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잉여 노동입니다. 즉 노동자의 100원어치 노동을 60원에 사 40원을 먹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적 불평등에 참여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이른바 자선입니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자선 사업에 기부함으로써 사회적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선은 두 가지 문제를 갖습니다. 하나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불쌍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둘째는 자선이 가난의 부당함과 가난을 만드는 사회적 모순을 은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노동이든 사람이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고 얼마간의 인간적인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불공정한 상태를 고쳐내야 합니다. 자선은 바로 그것을 값싼 눈물과 감동으로 차단합니다.

우리는 워낙 반공주의 경향이 강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흔히 자본주의는 다 같은 줄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은 우리보다는 나은데 유럽은 또 미국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유럽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에 가깝습니다. 근래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열심히 따른다고 비난을 받는 영국만 보더라도 의료와 교육이 전액 무료입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사회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북유럽 쪽의 사회복지는 서유럽보다 더 높은 수준입니다. 몇 해 전에 노키아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과속으로 걸려서 범칙금으로 1억 3천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작년 말엔 같은 핀란드의 27살짜리 부자가 자동차 과속으로 2억 5천만원을 냈습니다. 우리는 이건희가 과속을 하건 40대 무주택 가장인 김 아무개가 과속을 하건 똑같이 3만원을 내는 걸 공정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유럽에서 기독교는 뚜렷하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의 중심지라는 독일의 교회는 노인들만 몇몇 앉아서 예배를 봅니다. 반면에 미국이나 한국처럼 자본주의적 모순이 좀 더 노골적인 나라에선 교회가 차고 넘치지요. 이것은 현재 기독교의 정신이 자본주의적 모순이 좀 더 노골적인 사회에 부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이 인류의 미래에 전혀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럽 사회의 사회복지는 본디 자본주의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 사회들은 러시아보다 더 먼저 사회주의 나라가 될 뻔 했고 그걸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들과 타협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사회주의는 유물론을 기초로 하고 유물론자들은 대개 하느님의 존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떠받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래 정신은 프로테스탄트 정신도 종교개혁의 정신도 아닌 예수의 정신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건 기독교인에게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만 강조하여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삶의 방식을 외면하는 건 종교체제로서 기독교나 교회에 사로잡혀 예수를 다시 한번 팔아먹는 행위라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단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랍답게 사는 것이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교회는 그런 삶을 실천하고 전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기독교 정신의 가장 위대한 지점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심지어 기독교인이든 불교신자든 이슬람교도든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사실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유대인의 신으로 여겨지던 하느님이 온 인류의 신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건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 정신은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착취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사회주의가 분배의 공정함을 목표로 한다면 기독교 정신은 분배의 공정함을 이룬 다음에도 남는 ‘내 형제에 대한 염려’입니다.

기독교인에게 남보다 더 좋은 것을 입고 먹는 일은 바로 헐벗고 가난한 내 형제에 대한 배신입니다. 8억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그 가운데 3억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기독교인은 바로 지금 자기마치 3억 명의 제 새끼가 굶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은 어떤 맛있는 걸 먹을까 찾아다니고 돈을 들여가며 비만을 치료하고 지역마다 음식 쓰레기를 맡지 않겠다고 싸웁니다. 이역만리 어느 곳에 부당하게 고통 받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기독교인은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내 형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에서 기독교가 사회주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공정한 분배체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키워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교회는 그런 마음을 키우고 실현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는 지난 2천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원인은 예수의 정신이 너무나 현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정신엔 사회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아동인권을 비롯한 인류가 현대에 들어서야 깨달은 여러 소중한 정신들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의 일행엔 언제나 여성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어떤 현인이나 종교 창시자도 여자를 일행에 포함시킨 일이 없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2천년 전에 여자들과 동행했고 여자 가운데서도 가장 천한 성매매 여성과 인격적으로 교우했습니다. 예수의 그런 행동이 사람들을 얼마나 당혹스럽게 만들었을지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기독교인은 과연 어떤 행동으로 사회에 당혹감과 충격을 주고 있습니까?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기심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땀 흘려 같이 일하고도 남보다 수천 수만배의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찬미되는, 계급적 착취와 제국주의적 착취가 공공연한, 사랑이나 존경까지도 돈으로 매매되는 자본주의는 기독교인에게 말 그대로 악마의 사회체제입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80년대 말 자본주의의 강력한 경쟁자이던 동구 사회주의들이 몰락하면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금 인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급속하게 벌어지고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선 공공연한 침략전쟁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가장 강한 교회가 바로 한국의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배경은 흔히 미국식 근본주의 기독교, 말하자면 지금 부시 일당이 믿는 그런 기독교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맞는 얘기지만 보다 더 결정적인 배경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다는 이른바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주로 박정희 개발 파시즘 기간 동안의 일입니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개발 독재의 가장 충직한 선전선동 장치였습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설교는 “하면 된다” 라는 개발 독재의 구호와 일치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공주의는 민주주의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독재의 의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저항의식을 배설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교회는 사람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파시즘이라는 사회적 억압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해방의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믿으면 남편도 자식도 잘된다는데 당시 여성들에게 그보다 더한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줌마’들은 교회 부흥의 돌격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씌어졌고 오늘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파시즘이 물러나고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되었지만 파시즘이 있던 자리를 대신 자본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지배는 파시즘의 지배처럼 폭력이나 억압을 통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본의 달콤한 욕망을 심어주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서 사람들이 돈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지요.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부동산과 통장 잔고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지배자에게도 ‘준비된’ 선전선동 장치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를 욕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에는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는 세계 교회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만한 소중한 실천들도 존재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초에 모든 사회운동의 중심에 진보적인 교회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신을 갖는 교회는 이제 이곳 향린교회와 몇몇 곳을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이젠 거의 모든 교회가 하느님 대신에 돈을 섬깁니다. 오늘 대개의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들일 뿐입니다. 그 살벌하던 파시즘 시절에도 살아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거의 없습니다. 파시즘보다 ‘자본의 신’이 기독교인에게 더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예수가 살던 2천년 전 유대사회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별과 착취는 언뜻 알아보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고, 신문이나 방송 같은 주류 미디어와 여론을 가장한 온갖 이데올로기 공작, 특히 지배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네티즌의 활약은 그 복잡한 구조를 한 번 더 덮어 버립니다. 깊고 뜨거운 신앙심이나 영적 신령함이 그 구조를 자동으로 보여주진 않습니다. 자본주의를 들여다볼 수 없다면 예수의 삶을 실천할 방법도 없습니다. 오늘 기독교인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성경 공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놈의 자본주의가 대체 사람들의 피를 어떻게 빨아먹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가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 예수가 당대 지배체제와 대결했다는 사실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 대결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비폭력성만을 편의적으로 발췌하여 예수의 급진성을 모호하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교회가 다 돈을 섬기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돈 대신에 다른 걸 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바로 ‘내 마음’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은 다 온화하고 도사들 같습니다. 수염 이렇게 기르고 개량한복 입고 조용히 앉아서 “부시나 라덴이나 똑같다”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흉내를 내지만, 그 폭력의 현실과 내 형제의 고통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예수를 팔아먹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단 한 번도 현실을 떠나거나 초월한 어떤 가치를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가 이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늘 고민해야 합니다. (평신도 아카데미 강의)

Posted by gyuhang at 2005.06.07 03:3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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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한시미학산책
정민 지음 / 솔출판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 방학 전이다. 수능 마치고 좀 한가롭던 시간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책을 한 번 읽어보리라 굳게 마음먹고 도서관에서 정민 선생님의 한시미학산책을 골랐다.

책은 500페이지에 이르는 두껍고 하드커버로 싸인 학술적인 책으로 보이지만, 구성은 말랑말랑하고 내가 기대했던대로 정민 선생님의 말투는 '~~~ 한시 이야기'와 유사하게 편안했다. 물론 내용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일단은 이 두꺼운 책이 스물 네개의 챕터로 잘 나눠져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루 한 편을 읽을 셈이었지만, 스터디 준비도 아니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대여섯 편을 읽어대기도 했고, 어떤 글은 한 편으로 며칠을 끌기도 했다. 이것은 순전히 내 탓이지, 책의 탓은 아니다.

나는 책을 읽고 잘 깐다. 좋은 말로 하면 비판적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비판이 올바른 비판이 되지 못하고 감정에 얽매여 디립다 욕을 퍼붓기 일쑤다. 올바른 비판이 되지 못한다는 말은 텍스트를 충실히 읽지 않고 헐뜯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인문학 서적 중에서 읽다보면 짜증 나는 부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펴내는 책들이다. 정보의 바다에 떠다니는 몇 조각의 부유물들을 책으로 엮고,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그럴듯한 제목을 붙여 책이랍시고 팔아댄다. 정말 짜증난다. 내가 잘 까는 또 한 부류는 해체주의 소설이나 시집이다. 기존의 이야기 틀을 해체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말장난이 심하거나, 글재주만 믿고 까부는 축이 많다. 감동을 주지도 않고, 깨달음이나 깨우침을 주지도 않는데, 잘 팔린다니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욕이 나온다. 나는 까고 욕하면서도 내심 찝찝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네.'하고 말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민 선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암의 <답창애2>에 나오는 '눈 뜬 장님' 이야기를 빌려서, 새로운 세상이 되어 갈 곳을 모르는 우리에게 <나침반>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나침반의 하나다. 이미 읽었던 정민 선생의 책 중에서 중복된 것도 많다. <~~~ 한시 이야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지만, 이 책은 그야 말로 한시 입문이라 할 만하다. 나는 한시에 관심이 많아서 전에도 몇 권의 책을 보았지만, 학문적으로 고집있는 사람들의 책들이라 내 수준에 과한 것들이었다. 정민 선생님 덕분에 한 겨울 고전의 정수, 한시를 포식할 수 있었다. 읽고난 지금도 <다시 읽고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서 수업 시간에 활용하고 싶은> 욕심은 굴뚝같지만,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가지 않는 '한붓 그리기'와도 같은 내 독서 습관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학은 흉내가 아니다.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처럼, 자기만의 진리를 찾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현대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주역에 나오는 말로 <窮卽變, 變卽通, 通卽可久>라고 했다.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갈 것이라고... 새 시대가 왔지만 예전의 학문은 변함이 없어 궁해진다. 그러면 변해야 한다. 변해서 통할 길을 찾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러나 그저 막무가내로 변해서는 아니 된다. 오래갈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정표>가 이 책이 될 수도 있다.

가끔 내가 적어 둔 리뷰를 돌아볼 때가 있다. 좋은 구절을 적어뒀다가 찾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내 글이 <감각적 직설>에 치우침이 많은 것을 본다. '詩思의 온유 돈후를 중시하라. 감각적 직설 보다는 에돌려 말하는 데서 오는 온건한 말이 더 깊고, 모난 말보다는 각지지 않은 표현에서 중후한 체취가 풍겨난다.'는 말은 뼛속을 에인다. '情을 잘 말하는 자는 삼키고 토해 냄이 깊은 듯 얕아 드러날 듯 다시금 감추어져 문득 그 마음의 무한함을 깨닫게 하고, 景을 잘 말하는 자는 형용함을 끊어버리고 약간의 보탬만을 더하였는데도 참모습이 또렷하고 생기가 또한 흘러 넘친다'고 한 것은 남의 글을 읽을 때,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과 혜안 없이 그저 남의 눈을 놀래키는 수사적 기교에 탐닉하는 글은 글이 아니라고" 한 것은 나를 꾸짖는 말이 아닌가 해서 심장이 덜컹거릴 따름이다.

이 책은 시의 미학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부분과, 시의 표현, 시 창작을 둘러싼 이야기들, 시가 해체되는 과정의 참요, 잡시, 문자유희 등도 다루고, 선, 산수, 사랑, 역사 등 주제에 따른 시들도 다루고 있다. 스물 네 장으로 나눈 만큼, 분류의 기준은 뚜렷하지 않으나 다양하고 풍부한 작품을 골고루 영양섭취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한자를 어느 정도 알면 한시 읽는 맛을 더할 수 있겠고, 특히 국문학과 학생이나 문학 전공자라면 한자 공부삼아 정도할만한 책이다. 일반 교양인들도 한시를 대충 읽는다면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텔레비전이 안방을 차지한 지도 30년이 넘었다. 1969년에 국민 1인당 5편의 영화를 보았을 정도로 번창하던 영화 산업이 1970년에는 텔레비전에 그 자리를 넘겨 주었으니...  내가 어릴 때는 M, T, K의 세 채널이 있었고 프로그램도 거의 외우고 있었지만, 요즘은 채널 개수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그 영향력은 양적 팽창이 늘었다. 그렇지만, 질적으로 발전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요즘은 케이블 티비를 통해 재방송을 끝도 없이 하다 보니 같은 방송을 하루에도 몇 번 만날 수 있다. 요즘 아이들 앞에서 선생하려면 <웃찾사>, <개콘>, <폭소클럽>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된다. 아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가 있으나 없으나 개그 프로는 가능한 한 보는 편인데, '그런거야', '희한하네', '생뚱맞죠', '그때그때 달라요', '오, 베이베', '남녀본색', '사장님 나빠요', '안어벙에게 빠져 봅시다, 마데 전자', '봉숭아 학당의 다중이, 까잇거 경비원' 등의 말들이 요즘 유행이다. 어떤 프로그램에도 이런 말들은 서로 패러디 되고 있다. 한두개라야 쉽게 외울 수 있는데, 요즘은 너무 많아서 어렵기도 하다.

한 때, <~~ 시리즈>로 나가던 개그들이 그야말로 다원화 되어 종합 선물 세트가 된 셈인데, 간혹은 비판의 힘이 강한 코너도 있지만, 그야말로 말장난이거나 국어 사용을 해치는 우스개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물론 개그가 진지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난 적어도 매번 기본 컨셉은 같고 말장난만 바꿔대는 3,6,9나 봉숭아학당 같은 코너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코너라면 블랑카 같은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언어 유희>로서의 한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득이었다. 개그가 현상적인 언어유희를 뛰어넘어, 생각의 깊이나 감각의 폭, 경험의 넓이나 역사의 부피를 소화할 수 있도록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공시적, 통시적 차원을 아우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에서도 결국 <시는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정채로운 보석인가, 아무 짝에 쓸모없는 해독인가> 하는 문학의 선악설까지 다루게 되지만, 시를 짓고 감상하는  과정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즉물적인 대상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감응해서 설계하고 실현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왜 다시 한시인가. 정민 선생이 가진 콘텐츠가 한시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시라는 특수한 표현 매체를 통한 전달의 특이성 때문에 <특이한 전달의 과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가치를 상실해 가는 한문학의 한 부분의 연구를 통해 그가 만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표현의 매체가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라서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한시이지만, 한시가 추구한 정신의 깊이나 미학의 너비마저 가시 덤불 속에 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먼지 쌓인 역사의 뒤켠에 방치된 채 날로 그 빛을 바래가고 있는 한시에다 신선한 숨결을 불어넣어 막힌 길을 새로 뚫고 그 현재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절치부심한 정민 선생의 글을 만나게 된 것은, 한 겨우내 방구석에 틀어박혔지만, 선경을 바라보고, 호쾌한 장부의 기상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시대와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책을 읽고 저자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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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김명인(문학평론가, 황해문화 편집주간)

"'민주정부'가 밥 먹여준다는 '환상' 버려라"
[인터뷰]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 "세계화 싸움 절박하다"
등록일자 : 2006년 03 월 13 일 (월) 10 : 56   
 

  인천 새얼문화재단이 발행하는 〈황해문화〉가 1993년 창간호를 낸 지 13년 만에 제50호를 출간했다. 이 잡지는 최근 한국 사회의 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민중의 생존권과 공공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외면한 한국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잡지가 제50호 전체를 이 땅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50인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할애한 것도 이런 인식 탓이다.
  
  1999년 〈황해문화〉에 합류한 뒤 이런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편집주간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어교육과)를 만났다. 김 주간은 1987년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성'으로 이른바 '민족문학 주체논쟁'에 불을 지폈던 당사자다. 그는 1990년대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오랜 칩거에 들어갔다 1990년대 후반 활동을 재개했다.
  
  김명인 주간은 "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오면서 민주화와 정권교체가 곧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던가를 확인했다"며 "이젠 형식적 민주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어떻게 저항할지를 절박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는 11일 광화문 인근 음식점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수년간 구체적 현실 모색…이제 가닥 잡았다
  
  프레시안 : 〈황해문화〉가 13년 만에 제50호를 냈다. 개인적으로 감회가 각별할 것 같다.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 감회가 각별한 사람은 나보다는 〈황해문화〉를 발행하는 새얼문화재단의
지용택 이사장일 것 같다. 어렵게 13년을 꾸려 온 〈황해문화〉가 소박한 지역지에서 출발해 지명도가 있는 전국지가 됐으니 처음 창간을 제안했던 지 이사장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더구나 그간 〈황해문화〉가 진보적인 색채를 보일수록 인천의 보수 인사들의 불만이 상당히 높았다. 그런 불만을 지 이사장이 고스란히 다 막아냈으니 지금의 〈황해문화〉가 있게 한 1등 공신은 지 이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한 편집위원들이야 그렇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있으니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내용만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쌓아 올리다 보니 벌써 50호가 됐다. 나는 1999년부터 〈황해문화〉에 합류해 반 정도에 관여했다. 그 동안 석 달에 한 권씩 꼬박꼬박 〈황해문화〉를 내면서 점점 인지도, 영향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들이 높아져 개인적으로 보람찼다.
  
  프레시안 : 김명인 주간은 1990년대 오랫동안 공식 활동을 않다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공식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 시점이 〈황해문화〉에 합류한 것과 맞물린다. 문학을 하는 김 주간 입장에서는 〈창작과비평〉, 〈당대비평〉같은 잡지에 관여하거나 다른 활동을 생각해 봤을 법도 한데….
  
  김명인 : 〈황해문화〉의 창간 주간이던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어국문과)가 마침 1998년 박사 학위를 받은 나를 지용태 이사장에게 추천했다. 나는 당초부터 〈창작과비평〉이나 〈문학과사회〉 같은 문학적 에꼴(ecole)에 들어가서 뭔가를 할 생각이 없었고, 전공인 문학과 관련해서 발언을 하기에는 아직 정리가 안 끝난 시점이었다. 그래서 〈황해문화〉를 통해 세상을 읽어나가면서 현재 진행되는 움직임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황해문화〉를 통해 조금씩 시선을 펼쳤다 모아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생각이 정리돼 최근엔 전반적인 상황을 좀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훈련이 된 것 같다.
  
  세계화에 어떤 입장 가질 것인가…이젠 '환상'에서 깨어나야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프레시안  

  프레시안 :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황해문화〉를 훑어보면 재작년(2004년)까지는 중점을 두는 내용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다양했는데 작년(2005년)부터는 한국 사회의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명인 : 맞다. 수 년간은 개별 현장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문제적 상황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는 데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인천에 기반을 둔 〈황해문화〉의 성격에 걸맞게 중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주변 나라들에 대해서도 간략한 정리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금 한국 사회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편집위원들 내부에서도 조금씩 견해가 모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어떻게 하면 시장 중심의 세계화가 전면화 되는 이때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 연말에 〈경향신문〉에 기고한 '굶는 민주주의는 싫다'는 제목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다. 제목은 오해를 살 수도 있었지만, 내용은 최근 〈황해문화〉의 지향이나 고민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김명인 : 그렇다. 제목은 〈경향신문〉에서 단 것인데 내용을 보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1990년대 후반부터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진보적 지식인들의 실감은 그런 불안과 고통에 못 미쳤다. 연이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환상'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
  
  최근 상황은 민주화와 정권교체가 곧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던가를 결정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갈수록 서민들은 먹고 살기 어렵다고 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제야 진보적 지식인들도 사태의 진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황해문화〉가 본격적으로 사회경제적 의제를 제기하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솔직히 지금 노무현 정부가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한심한가?
  
  남북문제보다 양극화 문제 고민이 더 절박하다
  
  프레시안 : 최근 "분단 현실을 망각한 양극화 논의는 공허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김명인 : 무슨 얘기인지는 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국내외의 여러 문제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게 바로 남북문제가 아니었나? 남북문제는 미국과의 조율이 거의 유일한 변수였지만 다른 여러 문제, 예를 들면 양극화 문제 등을 해소하는 데는 어떤 돌파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 시절 남북문제는 국내외의 여러 가지 압력들 때문에 해결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김명인 :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다. 국내의 보수 세력도 남북문제에는 크게 신경을 안 쓴다. 남북문제가 지금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얻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남북문제가 결코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지금 전 역량을 집중해야 할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양극화 문제와 같은 세계화를 강요하는 압력에 맞서는 것이다.
  
  예전에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한반도가 중립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율성을 가진 동북아의 한 세력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분단 극복에 노력했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중국 틈새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정부가 공을 들이는 과정을 살펴보면 '남북문제를 우리에게 맡겨주면 나머지는 다 미국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현재 미국 입장에서 북한은 중국 문제 해결의 종속변수다. 현재 급속히 중국화되고 있는 북한을 미국은 기왕이면 남한처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 싶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둘 자신이 있다면 남북 교류 협력을 확대하고 더 나아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 한반도 정부가 미국화된다.
  
  프레시안 : 지금 남한 사회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모으지 않으면 설사 통일이 되더라도 남한 사회의 야만적인 체제가 한반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인가?
  
  김명인 : 그렇다. 남한 사회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화의 압력을 해결하지 않으면, 즉 양극화 문제와 같은 세계화로 야기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분단이 극복돼 통일이 되거나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뿐이다. 지금 전 역량을 집중해야 할 문제가 세계화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지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본격적으로 넘어 왔다. 남한 사회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바로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진보 진영의 무능력 보여준 일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프레시안

  프레시안 : 좀 더 구체적인 문제를 살펴보자. 아까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김 주간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취임 초기만 해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김명인 : 맞다. 취임 직후 고군분투하던 노무현 대통령을 여러 지면을 통해 보호하려 했던 게 사실이다. 그 때만 해도 노무현 정부가 이렇게 취약할지 몰랐다. 사실 노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그의 도덕성은 믿었지만 그의 능력을 크게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함께 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는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의 역량이 그만큼 낮았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김명인 : 일리가 있는 얘기다. 물론 노무현 정부를 진보 진영이 전 역량을 동원해 보좌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권 초반 내세웠던 진보적인 의제들이 여기저기서 힘을 받지 못 하고 턱턱 막히는 것을 보면서 그간 진보 진영이 자신들의 의제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음이 증명된 것도 사실이다.
  
  전략만 있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전술이 있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그렇지 못했다. 당장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나 최근 양극화 문제와 관련해 세제 문제가 나왔을 때 이 정부가 대응했던 모습을 보면 그런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 '선동'하고 '모험'하라고 뽑아줬더니…
  
  프레시안 : 그럼 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해야 했나? 김 주간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김명인 :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힘은 포퓰리즘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동 정치가 필요했고, 노 대통령은 일관되게 선동가가 돼야 했다. 예를 들어서 이라크 파병 때 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다. '내가 이라크에 파병을 하지 않으면 분명히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파병을 하면 정말 국민이 뽑아준 민주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원칙을 저버리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하게 된다. 파병을 하지 않을 때 닥쳐 올 여러 가지 문제점을 국민 여러분이 인내할 수 있겠느냐.'
  
  또 최근의 세재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국민들을 이렇게 설득해야 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는 게 필요하다. 조세 저항이 심할 테고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원칙대로 하려고 한다. 여러분이 날 믿고 따라줄 수 있는가.' 이런 걸 제대로 하는 게 바로 제대로 된 정치공학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 능력을 현실 정치의 주도권을 잡는 데만 이용했다는 얘긴가?
  
  김명인 : 노무현 정부는 정작 자신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중요한 문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나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포퓰리즘을 적절히 활용했다면 3년이 지난 지금 국내외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물론 베네수엘라, 브라질은 자원도 많고 남북문제도 없기 때문에 우리와 단순 비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 국민들의 보여준 역동성을 염두에 둔다면 또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그 분위기를 생각해 본다면 큰 가능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런 기회를 놓쳐버렸다.
  
  사실 노 대통령은 '선동'하고 '모험'하라고 뽑아 준 게 아닌가. 이렇게 자신의 가장 큰 힘을 저버린 뒤 하는 일마다 제대로 안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명문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니 학연에서도 내세울 게 없고, 운동권에서 잔뼈가 굵은 것도 아니니 같이 일할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혈혈단신이니 뭘 할 수가 있겠는가?
  
  20여 년 민주화운동으로 쌓인 역량, 8년 만에 소진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럼 다음 정권에서 한국 사회에 또 한번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보수 대반동'을 우려하기도 한다.
  
  김명인 : 과거처럼 무지막지한 보수 반동이야 올 수 있겠나. 지난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쌓인 민중의 역량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쌓인 역량이 무지막지한 보수 반동의 도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런 역량을 잘 이용했더라면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절차적 민주화를 이루는 것을 넘어 실질적 민주화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에 재벌체제를 혁파한 후 좀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만의 모델을 찾아 가야 했다. 그 때 작정하고 마음만 먹었더라면 '위기의 헤게모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것도 있었지 않았나? 돈 갚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대표되는 시장 세계화의 압력에서 벗어나자, 이렇게 뜻을 모아야 했다.
  
  프레시안 :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지금은 열정은커녕 냉소와 허무주의만 가득하다.
  
  김명인 : 사실 20여 년이 넘게 민주화를 위해서 싸워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평등에 대한 욕구, 민주적 윤리 의식, 연대를 추구하려는 경향 등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개인의 인간적 존엄을 인정받으며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사회를 꿈꾸지 않았나?
  
  안타깝게도 이런 역량의 결과물인 두 정부가 미국 중심의 시장 세계화에 백기 투항하면서 지금은 그나마 남아 있던 역량마저 다 소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를 극복한다면서 돈은 돈대로 갚고 종속은 더욱더 심화됐다. 개혁을 한다면서 시장 세계화의 기득권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줬다.
  
  그 결과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원하는 '시장형 인간'들만 득세하고 있다. 그나마 과거 군사독재 때의 야만은 민주화를 위한 열정을 기반으로 싸울 수 있었는데 이제 이 야만은 어떻게 싸워야 할지 갑갑하다.
  
  현 개혁 세력에서 '세련된 보수' 등장하면 더 위험하다
  
  프레시안 : 아까 무지막지한 보수의 도래는 없을 거라고 했지만, 그 틈을 헤집고 들어오기 딱 좋은 세력이 바로 보수, 특히 파시스트들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명인 : 사실 지금 현실 정치의 수구 보수 세력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라서 쉽게 대세를 장악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한때 민주화의 과정에 동참했고, 그 때문에 대중의 열망도 잘 알면서, 시장 세계화라는 대세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그런 인물이 나와서 나라를 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스럽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그 결과는 파시즘의 도래다.
  
  유력한 대권 후보들 중에서 그렇게 떠오르는 인물이 없어서 아직은 안심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최근 들어선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양극화 문제를 언급하는 걸 보면서 '아직 그 지경까지는 안 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또 한미 FTA 밀어붙이는 걸 보면 우려가 많이 된다. 무지막지한 보수의 도래는 없을지라도 더 위험한 세련된 보수의 도래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만약 그렇게 권력을 잡은 이가 미국의 패권을 일방적으로 추종한다면 한반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최악의 상황에서는 동아시아 위기의 근원지가 한국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을 업고 일본과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통일 한반도라면 그런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런 사회에서 신종 파시스트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최근 '
황우석 사태'에서 잘 알 수 있듯이 1980년 광주, 1987년 6월에 보였던 대중들의 건강한 열망은 조금만 방향을 틀면 언제든지 위험하게 변할 수 있다. 특히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대중들, 특히 중산층이 박탈감이 아주 크다. 가난한 서민들은 밥을 먹여준다는 보장만 된다면 언제든지 그까짓 민주주의 따위는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파시즘이 탄생한다. 누군가가 그걸 이용한다면 정말 끔찍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 많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어디서 뭘 하나
  
  프레시안 : 방금 지적했듯이 이번 황우석 사태는 시민사회 위기의 징후를 여실히 보여줬다. 여전히 계몽이 중요한 화두일 것 같은데 이른바 진보 진영의 능력은 취약하기만 하다. 진보적 담론을 생산하는 책이나 잡지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김명인 : 가장 큰 문제는 1970~80년대에 대학 다닐 때 제도적 커리큘럼을 무시하고 자체 커리큘럼을 만들어 진보적 담론을 생산해내고 그 결과 민주화에 기여했던 이들이 총체적인 무기력증에 빠진 일이다. 한때 노동사회, 시민사회에 강하게 밀착돼 있던 이들이 많이 대학으로 들어가면서 현장과 학계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더 큰 문제는 정작 그렇게 현장을 떠나 대학에 들어간 이들이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들은 대학에 대거 들어가 있지만 대학 제도의 강화되는 통제에 눌려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 한다. 대학 내에서도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 하는데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지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자기 담론의 진보성의 척도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늦게나마 그 문제에 눈을 뜬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잠시 지적했듯이 김대중, 노무현 두 민주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환상'에 빠져 그들에게 현실 프로그램을 내맡겼던 지식인들이 뒤늦게야 정신을 차렸다. 나라를 결딴낼 수도 있는 위험한 과정이 아무런 고민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와 함께 또 따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기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프레시안

  프레시안 : 어떻게 지금 추세에 제동을 걸어야 할까? 김 주간은 국가에 투항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 사이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명인 :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같은 경우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아주 격리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 소통하는 측면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도 서로 넘나들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넘어간 사람들이 마치 투항하듯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국가를 거부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식의 우편향이 있다면 국가를 억압적 측면만을 보는 좌편향도 있다. 노마디즘(유목주의)이 좌우를 막론하고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지금 가장 힘이 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주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력을 강화해 그것의 성격을 바꾸는 것과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이 양자가 같이 갈 때 세계화에 저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에 대한 이율배반적 태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보루가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 안전망이라면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세계화에 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프레시안 : 요약하자면 '국가와 함께 또 따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기', 이런 제안인가?
  
  김명인 :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체신 없이 얘기하듯이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 이런 얘기가 절대 나오지 못 하게 해야 한다. 국가가 사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일부에서 우려하는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과감한 비판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국가를 던져버리면 남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소비주체로서의 개인만 남을 뿐이다. 이것은 건강한 공동체를 꾸리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에 투항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 사이에서 대안을 찾는 일, 이것이 지금 나와 〈황해문화〉의 고민이다.
  
  프레시안 : 공교롭게도 〈황해문화〉 제50호의 맨 마지막에는 〈환경과생명〉
장성익 주간의 글이 배치돼 있다. 그는 그 동안 한국 사회의 대안을 찾을 때 '생태적 전환'의 절실함을 강조해 왔다.
  
  김명인 :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배치가 그렇게 됐다. 사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생태주의에 큰 공감을 갖고 있고, '생태적 상상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에 꼭 참조해야 할 사항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과정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생태주의자 역시 지금 당장은 국가와 함께 또 국가와 따로 가는 방법론적 모색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온 역량을 통해 국가를 바꾸고 또 그 국가를 이용해 새로운 토대를 만드는 것과 같은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내몰린 서민들, 파시즘과 민중연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프레시안 : 이제 정리를 했으면 한다. 여전히 주체의 문제가 남는다. 시민사회, 노동사회 내 진보적 역량은 굉장히 취약한 상태고 그들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역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역시 너무 취약하고, 최소한 세계화에 저항하는 데 있어서는 이른바 열린우리당과 같은 자칭 개혁 세력에서 기대할 게 없다는 게 최근의 분위기다.
  
  김명인 : 그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다. 누가 과연 이 체제에서 피해를 보는가, 누가 수난자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또 소수자(마이너리티)들…. 한때 소수자로 불렸지만 현실에서는 바로 그들이 다수가 돼 버렸다.
  
  최근 철도파업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른바 '공사'의 정규직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니까. 점점 더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게 내몰린 사람들이 결국 어떤 방향을 선택할까? 새로운 파시즘인가 아니면 민중연대인가, 지금 그 갈림길이다.
  
  지금이야말로 이제 더 늦기 전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 때다. 그간 우리가 실패도 많이 하고 또 그래서 실망도 많이 하고 그러지 않았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 대안을 모색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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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9년 편집주간으로 김명인 선생을 처음 만나던 무렵이 떠오른다.
상처가 많아 보였다.
그 못지 않게 나도 상처가 많았으므로, 나는 그의 상처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당대비평"과는 일정하게 선을 긋지만, "당대비평"도 "사회비평"도 없어진 자리가, 그 자리가 크게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창작과비평"이 창간 40주년을 맞으며 돌연 "이제라도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외치고 다니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한 것도 솔직한 소회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 살았는데, 이제 거기에다 열심히 살기까지 하겠다는 외침이... 

편집주간은 "지금이야말로 이제 더 늦기 전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때다"라고 말한다. 실패도, 실망도 많았다. 그 길을 함께 계속 가야할지 나는 계속 고민 중이다... 10년을 매일같이 눈물과 피로로 얼룩진 간세포로 버텨왔는데... 솔직히 이제는 힘들다. 나도 내 길을 가야할 순간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물론 그렇다고 "황해문화"와 나의 인연이 끝이라곤 생각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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