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삼인'에서는 새 책이 나오면 나에게 보내준다.  고마운 일이다.  내 소장함에 있는 책 중 20% 이상은 삼인의 책이다.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가 눈에 띈다.   천천히 시나브로 읽어 나가야겠다.  삼인의 경영이 지난해는 그나마 전년에 비해 나아졌단다.  삼인의 건투를 빈다.  

근데 한 권이 빠져있다.  이걸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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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지마할 2006-03-3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 / 에궁 들켜버렸네여. 이걸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아무튼 건투 바랍니다.
 
 전출처 : 딸기 > 진실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숙명의 트라이앵글 1 -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지음, 유달승 옮김 / 이후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숙명의 트라이앵글'. 노암 촘스키의 책인데, 원제는 'Fateful Triangle'이고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숙명'이라는 말, 별로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나 자신이) 쉽게 쓰는 단어는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때로는 팔레스타인의 한 여인이 된 것처럼 두려움과 분노에 몸을 떨기도 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숱하게 교육받았던 '식민지의 참상'. 그것은 주입에 가까운 교육을 통해 내 머릿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뇌의 한 부분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그것을 일종의 '전(前)기억' 혹은 '전승(傳承)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의, 그리고 우리나라 젊은이들 모두의 그것은 아마도 식민지의 억압과 차별, 고통이 될 것이다.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나에게 그런 '전기억'을 상기시켰다. '두발 달린 짐승'(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비로운 점령자들'(이스라엘인들)이 어떻게 짓밟고 때리고 고문하고 죽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땅을 빼앗고 노동을 착취하고 나라를 빼앗았는지를 보면서 나는 내내 고통을 작게나마 공감했고, 무서움에 떨었다.

이 책의 1권과 2권의 절반 정도는 지난 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양민학살을 다루고 있고, 2권의 뒷부분은 이른바 '평화과정(Peace Process)'을 비롯한 그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레바논 학살 부분은 촘스키가 사건 직후인 83년에 직접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방문하고 여러 자료를 모아 쓴 것이라서 아주 구체적이고 볼만하다.

올초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가 됐을 때 어째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는지, 왜 샤론을 '살인마 전두환 보듯' 했는지가 소상히 나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어버린 이스라엘 내부의 계급구조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있다.

언어학자답게 촘스키가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악행과 사건의 전후관계 못지 않게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은 '진실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기자들의 근원적 죄악은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모든 PLO 전사들, 나중에는 모든 PLO 구성원들-외교관, 관리, 교사, 의사, 팔레스타인 적십자 결국 팔레스타인인들 전체에 대해 사용한 것이다. 이 개념에 따라 그들은 PLO 전사들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의미하는 '테러리스트 캠프'를 폭격한다'

중동을 장악하고 있으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지배와 억압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되고,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내 '유대인 언론'들과 지식인들이 반(反)아랍 논리를 만들어 퍼뜨리고, 그것이 각국에서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쳐 '아랍(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이라는 명제로 굳어지고, 그 피해는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총탄에 나가떨어지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시신을 덮치는 것이다.

이 의도적인 '논리의 악순환'이 지금 미국의 시민들을 죽이고 또 아프가니스탄의 숱한 인명을 죽이는 것을 보면,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극악무도한 저주와 분노와 고통의 트라이앵글'인데 여전히 미국식 평화와 안보라는 이름 아래 그 논리가 재생산되고 있으니.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고 그들의 친구들이 고통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시 살인극에 나서고 있음을 안타까와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이 하도 안 좋아서 읽기가 '개같은' 수준이라는 점. 내용으로 봐서는 별점 5개를 매겨야 하지만, 번역이 하도 자갈밭같아서 별점 3개로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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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보편성이 갖는 의학에세이의 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의사와 환자의 불신, 나아가 의학계와 일반 사회계의 불협화음이 빚어낸 기이한 구도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의사들은 ‘그들만의’ 담장을 구성하는 부류다. 이것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차별화된 학문을 학습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의사들이 특별의식이나 권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인류에서 유일하게 인체를 탐험하고 대상으로 삼으며 그것으로 직업을 갖는다는 ‘특별성’ 에서 기인한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나, 레오나르도다빈치의 해부학이 이제껏 여타의 일반 학문 연구자들에게조차 호응을 가져오고 탐구된다는 점을 봐라. 의학은 분명 산의 나무를 베어서 책을 만드는 일이나, 탄소와 수소를 만들어 폭탄을 만드는 일과 구리와 철을 녹여서 합금을 만드는 연금술과는 다르다. 생명을 다루는 인류사의 유일무이한 학문이며, 가치이며 흉내 낼 수 없고 꾸밀 수 없는 독보적인 테마다.


그런 점에서 의학은 인류사(人類史)와 그 맥락을 함께 해 왔다. 과거에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인체탐구의 비윤리성과 몰인정성, 무책임한 자세는 끊임없이 일반인들에게 불신의 벽을 만들고 있다. 정말 어떤 의사가 예수나 마호메드처럼 성인(聖人)의 대열에 오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을 갖고 의술은 인술이라는 숭고한 선서를 하지만 갈수록 다단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이제 이 말은 정말 ‘그들만의 리그’라는 특권을 형성했다. 이 책의 저자도 감기와 변비와 대머리와 기생충을 말하지만 의사와 환자와의 운명적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의사와 환자의 불협화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환자나 일반인도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우리들 ‘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며, 상호간의 불신은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의사의 잘잘못을 가려 줄, 그래서 거기에 걸맞은 보상 범위를 결정해줄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구가 만들어져야 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의사들로 구성된 그 기구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판사들 중 일부가 의료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싶다. 어찌되었건 지금 이대로는 곤란하다. 의사들도 돈만 밝힌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고 싶단 말이다!”-(68쪽)


의사의 윤리적 양심에 전폭적으로 인체를 맡기기에는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정의로운 모범생 정사각형이 아니다. 의사에게 성인(聖人)의 자질을 무작정 요구하거나, 생활인으로서의 현실성을 초월할 것을 바라는 일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므로 그들 ‘특별한 인간’들이 환자에게 저지르는 실수(인체에 실수를 가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를 중간지점에서 가부를 결정해 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법에 의지해야 하는 인간의 삶. 생각만으로도 살벌하지 않는가. 의사들의 도덕성이 누누이 거론되고 그들의 양심을 의심하는 사례가 수 없이 반복되어지는 세상에서 그렇다면 이러한 장치 말고 어디에 망가진 인체를 회복하기 위한 호소를 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에 이르면 저자의 저 한마디 말은 결코 가볍게 흘릴 말이 아니다.


이것은 안락사 문제 같은 생명윤리 차원을 넘어 인간성의 양심을 열어젖히는 일이다. 시대에 맞는 의학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과 더불어 개인의 영달을 목적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맹종을 경계할 일이다.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의사들의 숫자가 급격한 감소를 불러오고 성형이나 안과 같은 ‘부의 직접적 신호’와 연결하는 주파수에 의사들은 자신의 ‘기술’을 맡기고 있다. 비타민이 몸에 좋다고 하면서 제약회사의 비타민 홍보비를 받아 챙기고, 대머리 약에 좋다는 한 마디 말이 다시 제약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내는 ‘기술’. 이제 의학의 기술은 날카로운 해부용 메스를 던지고 자신의 개인적 권위와 명예와 부의 축적을 향하는 안테나가 세워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성형의사와 그 많은 의약품의 반짝하는 유행을 어떻게 설명할 텐가.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인체를 대상으로 삼는 직업적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쁘다. 우리사회에서 기득권, ‘특별한 학문을 학습한 사람들’이 갖는 권위와 독선과 위악의 껍데기를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안도한다. 물론, 이러한 안도를 갖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체를 대하는 저자의 따뜻한 인성과 겸허한 자세다. 육체를 비하하고 죄스럽게 여긴 기독교의 도덕관에 침을 뱉지만 이런 자상한 시력으로 인체를 대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은 내가, 또는 당신이 겪었을(겪을지도 모를) 의료계의 비참함에 완전히 실망을 드리우는 것으로부터 자세를 고치게 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주장하는 ‘소극적 안락사의 인정’은 따로 공부를 하고 싶을 정도로 내 주된 관심사와 일치했음에 반갑다.


지금까지 전작주의에 의하여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왔다. 초창기의 엉성하지만 때 묻지 않은 단어들과 십년이 더 지난 후 이어지는 이 책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단어변화와 의학에 관한 대중적 해설은 사뭇 달라짐을 발견했다. 초창기에는 대중성에 집착하는 강도가 높았는지 실용성에서 마이너스의 점수를 부여해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글쓰기를 배우고 나오며 의사면허를 손에 들고 나오는가.


양심을 잃지 않는 가치가 이 책의 ‘힘’이다. 제목은 '변명'이라고 했지만 쉽고 편하게 읽히는 의학 책이다. 변명이 저자의 말처럼 실시간 대화체로 나아간다면 이것은 변명이 아니라 친절한 설명이며, 강의다. (솔직히 의학이 왜 그렇게 어려운 투로 일관하고 있는지 병원 문을 열고 나올 때 한마디씩 안하는 '비의학인'은 없다) 실용서의 특징이 갖는 단점이 깊이 없음인데, 생각해 보라. 인체에 깊은 통증이 느껴진다면 병원으로 달려가야지 책을 붙들고 몇 번째 페이지인가를 찾고 있을 것인가. 다만, 이 책에서 의료계의 내부 고발 같은 르포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책을 원한다면 ‘긴박하고 심각한’ 고발소설을 찾아보시길 권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자의 의학적 자세는 나르시시즘을 거부하며 동시에 현실성을 강조한다. 

 

이 책의 두 번째 ‘힘’은 대중성과 적절히 타협하고 조화를 이룬 ‘보편적 설명’에 있다. 감기와 변비와 비타민과 포경수술과 제왕절개, 채식주의와 안락사라는 난이도가 높아가는 문제부터 의료수가까지 골고루 짚어본 점에서 의학 에세이의 역할을 발휘했다고 본다. (다만, 삽입된 레이아웃은 이 책에서 '목에 걸린 가시'다)

 

다음번 책이 언제, 어떤 진솔함의 힘으로 등장할지 속물처럼 저자의 팬이 되어 기다린다. 끝으로 책 표지 뒷장에 나의 허술한 한 줄짜리 서평을 싣는 기회가 와서 무엇보다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친절한 주치의로부터 오히려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간 짬뽕 한 그릇을 얻어먹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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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 그대는 진정 혁명가인가, 혁명을 가장한 문필가인가.

나는 그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자네만의 독특함을 맛보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엿볼 수 없는 것이었다네.

각박하게 돌아가는 전쟁의 현장,
포위당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 현장.
그곳에서 자네가 써 내려간 글들을
마지막이기에 더해질 수 있었던 유머라 논하면 너무도 경박한가.

얼굴없는 자네의 등에는 늘 펜 하나가 꽂혀있었다네.
결국 모든것은 소통의 문제라던 누군가의 말마냥
자네는 그 모든것을 당신의 명확한 목소리로 그려나갔네.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착취와 고달픔의 역사를
자네는 늘 반감아닌 친근함으로 내게 가져다 주었네.

멕시코 정부가 그대들에게 열어놓은 단 한가지의 길이 무장투쟁이기에 그대들은 전쟁을 택했노라고 했네.
지니고 있는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수많은 왜곡과 단절의 가능성이
그대의 펜으로 인해 바로잡히고 있음을 나는 보았네.

우리에겐 인종의 분쟁이 없다네.
그렇다고 내 그대들의 투쟁을 이해치 못한다 비하하진 않길 바라네.
결국 역사는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네.
우리에게도 가진자가 존재하고 그렇지 못한 자가 존재하네.
우리에게도 자네들에게 드리워진 분노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소리없이 외치는 아우성이 존재한다네.

물은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흘러내려 하나의 시냇물을 흐른다고,
하지만 결코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갈 순 없다고,
한벌 흘러내린 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할 따름이라고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자네에게 말했다지.
어쩌면 우린 아래로 흘러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걸지도 모르네.
바위를 뚫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물, 보다 빠른 흐름이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일테니 말일세.

멕시코가 자신의 가면을 벗길 바라네.
우리 사회가 뒤집어쓰고 있는 그들만의 가면을 벗을 날이 오길 바라네.
그 땐 자네도 스키 마스크를 벗게.
그 땐 더 이상 얼굴없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될걸세.
그 땐 더 이상,...
'포기하다'의 실체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네...

살기 위해 죽고자 하는 그대여,
더 이상 군인이 없길 바라며 스스로 군인의 길을 택한 그대여,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기 위해 죽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죽음을 향해 걷네.
그것이 투쟁이네.
그것이 자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투쟁이고,
우리 사회에 우리에게 가르쳐준 투쟁이네.

마르코스여,
그대의 펜으로 노래하라.
영원히 지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
그 타당함으로 인해 승리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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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ooninara > 늦었지만 번개후기

수능이 있던 11월 23일 대학로에서 우리는 만났어요.
전 너무 일찍가면 뻘쭘할까봐 15분정도 애교로 늦었는데..
(그중 5분이상은 한국철도가 도와 주었어요.. 가리봉역에서 내가 탄 전철이 문열고 장시간 정차를 했음)

오늘의 주인공인 심윤경님과 번개주최자인 마태우스님, 지승호님,깍두기님,쥴님이 삼겹살을 굽고 계셨어요.
제가 시간은 잘 맞춰 간거죠.
심작가님의 증언에 의하면 7시부터 마태님하고 기다리는데 주문도 안하고  멀뚱멀뚱 있다가 깍두기님이 오자 삼겹살을 시켰다는 겁니다.
깍두기님이 안오셨으면 언제 주문을 했을까요?

여자팀은 4명이서 떡삼겹에 산사춘~~~~~~~~을 마셨구요.
남자팀은 두분이서 이슬을 드셨어요.

마태님은 심작가님이 여자팀만 신경을 쓰자 괜한 투정과 딴지를 거셨습니다.
대표적인 투정 "12쇄의 책을 내신 심작가님. 전 2쇄가 최고고 지금까지 낸 책을 다 합쳐도 7쇄밖에 안되는데 12쇄가 말이됩니까?" 이러면서 12쇄에 대한 강한 질투를 보이셨어요.

그리고 미녀 오즈마님과 미녀 스노우드롭님과 낯선 미녀 두분이 오셨는데..
뒤에 오신 미녀 두분은 심작가님의 팬으로서 오신거라 알라딘 활동을 별로 안하셨다고 하네요.
일찍 오신 쥴님도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셨지만 그날 모인 분들은 어찌 그리 선남선녀만 있던지..
미모의 심윤경작가님과 알라딘의 대표미시들인 깍두기님과 수니나라(우웩??)까지..

마태님이야 말할것도 없고 지승호님 또한 한패션너블한 분위기로 작가라기 보다는 영화배우같더군요.
참 제옆에 지승호님이 앉으셨는데..
제가 지승호님의 성함만 알지 책을 읽어본것이 없어서..(무식한 나..ㅠ.ㅠ) 엄매!! 기죽어 있었답니다.

제가 이후기를 쓰게 된 동기가 조금전에 본 마태님의 페이퍼때문이랍니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65670

제가 요즘 알라딘에 자주 안들어 오다 보니 놓쳤던 페이퍼네요.
마태님이 심작가님을 강사로 초대하신 이야기인데..
여기에 심작가님이 너무나 말씀을 잘하신다고 묘사되어 있어서요.

제가 심작가님 바로앞에서 산사춘을 마셨는데요^^
심작가님 정말 말씀을 잘하시더군요.
전 속사포처럼 막 빠르게 말하는 타입인데..
심작가님은 또박또박 느린듯하면서도 할말 다하시고..마태님이 칭찬하실만하단 생각이..

참 자랑 한가지..
저 심작가님의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쿄쿄
제가 너무 기분이 업되서 '나의 린드그렌선생님' 이란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떼를 썼습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비읍이가 린드그렌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했던 것처럼
심작가님의 팬들은 심작가님과 만나서 술마시는 제가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음하하하~~~~~~
옆의 지승호님에겐 죄송..ㅠ.ㅠ

제가 산사춘 (지승호님의 유머에 의하면 산이춘..산삼춘으로 변함..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들사춘이라고.썰렁했나요?)에 알딸딸해져서 뵈는게 없었나봅니다.



제가 여기까진 밝혀도 되겠죠? 심작가님은 종로구 창신동에 사신답니다.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마주치지 않을지 눈 크게 뜨고 다녀 보세요.
물론 전 약속한 책을 선물로 보내드렸답니다.

 

 

 

 

 

다섯살이라는 심작가님의 아이에게도 한권.
저도 실론티님에게 선물 받은 책인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그날 우리끼리 한말. "떡삼겹 오빠들은 (서빙해주는) 이 테이블의 손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줄 모르겠죠?"
정말 작가4분과 일반 알라디너 6명이 모이기는 쉽지않죠?

뒷이야기 하나. 스노우드롭님이 들어오시면서 저를 아는척 하시는 겁니다.
알라딘에 사진으로 알려진 저이기에 미소로 답했는데..
그분이 부르신 이름은 제가 아닌 다른 알라디너..ㅠ.ㅠ
하지만 저보다 더 어리고 이쁜분이라서 참았습니다. 그분에겐 미안하구만요^^

떡삼겹집이 같은 건물 일층에도 있고 저희는 5층에 있는 분점에서 먹었는데.. 
얇은 밀전병같은 떡이 나와서 한장씩 떼어 (완존히 찰떡으로 붙어있더라구요)
두툼한 삼겹살과 김치를 싸서 먹는건데..정말 맛있더라구요.
마태님이 번개장소 정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번엔 10점 만점에 9.5
(오빠들이 서빙이 늦어서 0.5 감점)

 

이차는 친구분과 만나고 뒤늦게 오신 실론티님까지 합석하셔서..
그유명한 얼음잔 술집으로 갔습니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골목을 돌아돌아 가서 전 못 찾아가요..ㅠ.ㅠ

얼음잔안에 비닐팩으로 된 잔이 들어 있더군요. 그안에 생맥주가 들어 있어요.
얼음잔은 플라스틱 손잡이안에 들어 있구요.
맥주를 마신후에 얼음잔으로 표적 맞추기를 하는건데..
표적의 센서인식이 될만큼 강하게 맞아야한다네요.
전 당연히 빵점..ㅠ.ㅠ
한번은 표적으로 맞긴했지만 힘이없어서인지 안됐어요.
지승호님이 표적 맞추기에 성공하셨다는데 그 대단한 장면을 놓쳐버렸네요^^
그다음번에 지승호님에게 얼음잔을 모아 드렸지만 이번엔 다 실패..ㅋㅋ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경기도민이라 보니 지하철을 타야해서 신데렐라가 된 기분으로
나와야햇습니다.
실론티님과 4호선을 타고 수다 떨다가 실론티님이 내려야할 곳도 지나쳐서 다른곳에서 내리시고..
전 1호선을 갈아타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4호선으로 평촌까지 와서
미리 콜 불러둔 자가용운전사인 남편과 접선에 성공...무사히 집으로 왔답니다.

어째 먹거리 이야기가 주가 된듯..ㅋㅋ

그래도 마태님 말고는 안쓴 번개 후기라서..
늦었지만 궁금하실 분을 위해 대충..썼습니다.

이날 번개에 오신 작가님들의 책을 소개해 볼까요?

 

 

 

 

 

( 나 혼날지도 몰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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