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분홍달 > '메타노이아(metanoia)', 성장하는 믿음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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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석같은 저녁바람에 향긋한 아까시 꽃향기가 묻어난다.. 해마다 찾아오는 이 계절은 어찌 된 일인지, 한번도 실증이 나지 않고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사랑에 빠져 달뜬 처녀의 얼굴처럼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저 초록의 산들을 보며 자연스레 '신', '절대자'에 대해 생각한다. 변함없는 감동을 선사하는 이 자연의 조화는 아무래도 대단한, 어떤 무엇의 힘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의 신앙은 이러하다. 세상의 하찮은 무엇도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절대적인 진리, 한없이 크고 넓은 사랑이 존재하리라 믿는 것이다.
'메타노이아(metanoia)', 이것은 예수가 대중을 상대로 첫 전도사업을 시작하면서 외친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에서 ‘회개’로 번역된 희랍어 원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메타노이아'는 한국어의 ‘회개(悔改)’나 영어의 ‘리펜턴스(repentance)’같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뜻보다 훨씬 더 깊은 뜻, 곧 가장 깊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변화’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예수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 세례까지 받았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성경'을 읽어 본 적 없고, 늘 주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날라리 신자'의 의혹, 더 이상 나의 믿음이 자라날 수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카톨릭 신자인 고모를 통해 초등학교 6학년 즈음, '하느님'과 '예수'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호기심으로 '성당'에도 두어번 나가 보았다. 하지만 고모를 제외하고는 불교적 색채가 더 강한 집안 분위기 탓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사춘기, 둘 곳 없는 마음이 너무나 버거워 자발적으로 성당을 찾았고 세례를 받았다. 이후, 기도도 열심히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도 해보았지만, 결국 진리의 말씀이 가득하다는 성경 때문에 난 '날라리'가 되고 말았다. 마음잡고 앉아 성경을 펼쳐들면, 창세기부터 까막눈이 되어 하나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더구나 소심했던 나는 적극적으로 나의 의구심을 해결하지 못하고, 두쪽 눈을 다 감은 채로 나의 복만을 구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 한 교수님의 소개로 개신교에도 나가 보았지만, 근본적인 나의 질문들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저 모두 믿음만을 강요하는(믿고 나면 다 알게 된다는 것이다) 분위기와 적어도 신도보다는 큰 사랑을 실천해야 할 성직자가 결정적인 순간엔 자신의 자식만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학문적인 호기심으로라도 성경을 공부하는 일은 끝이 났다. 결국 세례를 받기 위해 공부했던 성경지식이 내가 갖고 있는 전부다. 불행히도 지금은 그것마저도 대부분 잊었지만... 만일 그 당시에 오강남교수와 같은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나의 종교생활은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더 많은 성경지식과 예수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나의 성경에 대한 몰이해는 나의 아둔함과 게으름의 산물이었지만, 어쨌든 오교수의 말대로 우리 사회에서의 기독교적인 모습들은(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구교와 신교 사이엔 분명 차이가 있다 ) 문자를 넘어 그 참된 의미를 찾기 보다는 문자주의적으로, 율법적으로, 하늘나라 보다는 교회가 더 중요한, 혹은 자신과 가족만의 하늘나라 입성을 위한 이기적인 구복적 신앙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예수를 안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문제인 것이 그릇 믿는 것이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인류사에서도 그릇된 믿음에 의해 비롯된 불행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믿는 이들도 믿지 않는 이들도 다같이 공평한 시선을 위해 공부하며, 더욱 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종교적 제국주의에 물들어 있거나, 타인의 신앙을 배척하고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며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이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모습을 돌아 보았다. 혈기 왕성한 20대에 '나이듦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 얼굴에 주름살은 늘어가지만 삶의 지혜와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 더 많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참 근사한 일일진대, 생각보다 근사하게 성장한 어른도, 멋진 노년을 보내는 사람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깊이 패인 주름만큼 옹고집스럽게 자신과 다른 것들, 새로운 것들은 배척하고,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큼은 죽자사자 뺏기지 않으려는 어른들, 난 그들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나도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모습을 조금씩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못난 고집쟁이의 모습으로 빈티나는 짓을 수없이 저질러 왔던 것이다. 신앙이 있든, 없든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지, 내가 존재하는 이곳에서 천국에 이르는 길은 의식의 변화를 통한 반성 '메타노이아', 참 깨달음 뿐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신앙인이라면 유치한, 이기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타인의 종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세상의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으로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길 바란다. 결국 우리가 믿는 모든 절대자의 삶도 그러하지 않았을까...기독교를 뒤집어 읽다가 나를 뒤집어 본 의미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