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더 많은 진보를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잊는다. 무지의 바다 속에서 우리의 비싼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Ehrenfeld Daivid, 1993, Beginning Again, Oxford University Press.

고전은 낡은 옛 사람들의 작품이 아니다. 시간의 경과만으로 고전이 될 수는 없다. 고전을 통해서 과거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은 볼 수 있는 사람 에게만 보인다. 고전은 어떤 방법으로 실천하는가에 달려있다. 

건륭제 시절의 청나라는 전성기였지만 그것이 제국의 내리막길을 재촉한다. 청나라는 오랜안정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18세기말 세계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이 일어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소중화사상의 틀에 갇혀있었다. 박제가는 소중화사상에 빠져서 세계정세에 어두운 조선의 미래는 어둡다고 경고한다. 소중화사상은 노예근성이다. 북벌론자였던 연암은 당대의 실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북학자로 탈바꿈한다. 북학파는 조선의 낙후성과 청문명의 역동성에 대한 자각을 한다. 연암은 조선은 청나라의 실용성을 배워야 백성들이 생활이 윤택해진다고 말한다. 연암이 체감한 것은 위기의식 이었고 위기의 자각이었다. 문화는 다양한 접속을 통해서 만나야 한다. 연암은 소중화사상에 빠져 현실적응력을 상실한 조선사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이질적인 문화와 접속했고 그것을 소화시켜서 신선한 자양분을 공급했다. 정조가 죽은 후 쇠퇴하기 시작한 조선은 1910년에 국권을 상실한다. 조선이 멸망한 큰 원인은 소중화 사상 때문이다. 노예는 꿈꾸는 동안만큼은 행복하다. 노예가 꿈에서 깨어났을때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그 고통스러운 공포의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의 근대는 이렇게 다가왔다. 노예라는 자각을 하는 것 못지않게 근대의 환상을 부수는것도 고통스럽다. 이제 근대의 주술에서 벗어나자. 

2006년 평택 대추리에 미군 기지를 이전한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대추리 미군기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선택된것이다. 미국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소중화사상에 안주하는 한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번 당했으면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진지한 자기반성과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진보할수 없다. 루쉰은 "물에빠진개를 때리라고 말했다. 도의를 모르는 개는 살려주어도 또 사람을 물기 때문이다." 아직도 땅에서는 개들이 짖고있다.

우리에게 근대는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시간은 돈'이라는 말은 우리를 시간에 속박시켰고 화폐경제에 편입시켰다.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의 공간이었다. 시간이 단수가 된것은 근대이다. 근대에 도입된 기차는 공간적인 벽을 허물었다. 철도는 땅을 가로지르며 궁벽한 곳까지 문명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했다. 철도는 신문과 버불어 국민을 통합시킨 근대의 도구였다. 고미숙은 속도의 파시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속도는 빠름이 아니듯이 느림도 아니다. 우리가 근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기다림은 막연한 관조, 행동이 결여가 아니라 희망이다.

서구에서는 내재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지만 동양의 근대는 서구의 출현으로 시작되었고 침략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서구를 모방해서 근대를 이룩했고 조선을 강제적으로 근대의 길로 이끌었다. 우리에게는 근대=서구화=문명화=기독교 였다. 기독교는 일본이라는 제국을 제압할 수 있는 또 다른 희망이고, 제국이었다. 그래서 기독교는 민족주의자들과 접속할 수 있었다. 기독교는 서구에서는 중세를 지배한 사유체계지만 동양의 눈에는 근대의 표상이었다. 기독교는 문명의 동력이었고 우승열패의 신화를 넘어설 수 있는 도구였다.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를 체험하고 뛰어넘어야 한다. 탈근대는 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근대를 해체하고 재구축하고자 한다면 근대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모방이 창조의 디딤돌이듯이, 서구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타이에 의한 근대는 중세와의 연결성을 단절시켰다. 자식이 아버지를 부정하는것처럼 우리의 근대는 중세를 부정했다. 아버지를 부정한 자식이 신화를 만드는 것처럼 중세를 부정한 근대는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근대적 맹아를 만들었다. 근대와 지식이 결합된것이 실학이다. 다산과 연암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을 실학이라는 한묶음으로 분류하기에는 사상의 스펙트럼의 폭이 넓다. 결국 실학은 근대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계몽의 시대, 이성의 시대인 근대는 민족과 결합해서 연애의 시대를 탄생시켰다.     

근대이전 지식의 세계에는 국경이 없었다. 동아시아 3국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서구의 근대담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근대는 지식의 세계를 국경의 틀안에 재배치했다. 인문학은 통합학문이었지만 근대에 분과학문이라는 명목으로 벽이 쌓인다. 요즘은 학제적연구를 하자고 하지만 근대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평생학습이라고 한다. 배운다는 말에는 지식에 격차가 있어서 그것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다는 뉘앙스가 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일방통행이 되면 '지의권력구조'가 생긴다. 스승과 학생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평생학습은 선생이 학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호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학문은 실용성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할 때 최고의 지식이 되면서 삶의 통찰력의 바탕이 된다. 배우는것에는 벽이 있을 수 없다. 공부는 교양이나 취미도 아니듯이 전문가의 독점물도 아니다. 전문가의 벽, 분과학문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루쉰은 <고향>에서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길이 없음에 슬퍼할 필요는 없다. 길이란 가시밭을 헤치면서 나아갈때 내가 지나간 곳이 길이 되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5-1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쓴것도 아닌데 퍼오셨군요..저도 양약으로 못고친거 한약, 침으로 고쳤어요. 좋은 한의원을 고르는게 힘들었죠.

타지마할 2006-05-1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그럼 아래 페이퍼는 뭐지요?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875098

제가 효과를 보면 알려 드리지요.  용한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