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시공 /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

서민 독서 /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


syo는 책책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책 있어 책', '책 읽은 책' 그리고 '책 읽어 책'. 대체로 '책 있어 책'은 인문서로 분류되는 분위기고, '책 읽은 책'은 에세이 쪽에 밀집해 있다. 그러나 '책 읽어 책'은 자기계발서, 잘 봐줘도 '인문학으로자기계발한번해보자서' 혹은 '넌내가에세인줄알았을거닼ㅋ실은자기계발서지롱' 정도로 대접 받아 종종 서럽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 책을 읽는 모든 이의 마음에 감동을, 가슴에 의욕을, 머릿속에 읽을 책 리스트를 집어넣어 마침내 손에 다른 책을 쥐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책 읽어 책'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독서의욕 고취는 '책 있어 책'이나 '책 읽은 책' 입장에선 그저 부차적 목표이거나 부수적 효과일 뿐이지만, '책 읽어 책'에게는 존재 의미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셈이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무릎을 탁 치고, 누구는 빡치면 저자 입장에서는 그게 또 골치 아픈 일이겠다. 그러나, 그것은 '책 읽어 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책이, 더 넓게 보면 모든 예술이 안고 가야하는 숙명 아닐까. 그래서 혹시나 이 책들이 당신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피지 못하고 미지근한 커피처럼 후루룩 빨려 사라지고 말았대도, 결코 책의 실패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이런 절절한 위안의 말로 시작한 것은, 이 두 책이 최적 작용하는 독자층이 심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syo가 봤을 때,『책인시공』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살갗 레벨의 의욕을 때려넣지 못하는 뜬구름처럼 느껴질 수 있고,『서민 독서』는 책을 좀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마나한, 혹은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자잘한 데가 있다. 두 책을 읽고 양쪽 모두에서 독서욕을 길어 올리셨다면, 당신의 감수성은 폭포, 포용력은 바다급입니다. syo는 어땠을까.『책인시공』을 읽고는 음, 이 책은 나보다 좀 더 많이 읽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먼, 했고, 『서민 독서』를 읽고는 음, 이 책은 나보다 좀 더 적게 읽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먼, 했다. 어휴, 또 시작이다, 신이시여, 과연 저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임마, 여기로


아니면 여기로 가면 되잖아



좀 다른 이야기지만,『책인시공』을 읽고 정수복 선생님이 고고함은 넘어섰고 고루함에는 아직 닿지 않은 어디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곧고 꼬장꼬장한 선생님 느낌. 그리고 어쩐지 가슴 속에 불이 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지 못하는 미흡한 것들에 대한 분노. 물론 그런 표현을 쓰시진 않았고 그냥 syo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오해일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syo에게는 별로 좋은 느낌의 책은 아니었다. 어려운 책도 아니었는데, 그저 아름다우나 높은 산이라 길이 잘 나 있지만 오를 맘이 들지 않았다고 해 두자. 그런데, 며칠 전 읽은 다른 책에서 정수복 선생님의 가슴 속에 들끓는 불길의 연료 배관이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넌지시 짐작할 수 있었다. 몇 군데 보자면, 


여기서


임지현 : 직업적인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그런건지, 아니면 일반 지성인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인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수복 :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떠드는데, 미국에서는 바우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독일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바우만의 글들이 한국적인 적합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실은 한국에서 그의 책이 굉장히 오해되서 읽히고 있거든요.


정일준 : 오해라기보다는 수용하는 맥락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하생략)


그러니까,『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만들려고 대담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우리가 바우만을 왜 읽어야 되냐, 외국에서도 별론데, 우리랑 맞지도 않은데, 심지어 똑바로 읽는 놈들도 별로 없는데, 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호연지기가 드높으시다. 아, 그럴 수 있지. 바우만은 무조건 빨아야 되나? 그런데, 그 뒤에,


정일준 : 지금은 지구화로 인해 외국 것들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한국 것이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려대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많습니다만, 최근에는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더 많습니다. 학부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교환학생을 제외하고 한국으로 완전히 유학오는 학생이 5천 명이 넘습니다. 유럽 여러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에서도 오고요. .... (중략)


임지현 : 아무래도 한류 영향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수복 : 한국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K-POP이나 한국영화 등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유학 오는 학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K-POP이나 한국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오는 것은 한국에 '진지한' 관심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건데, 아이고, 선생님..... 관심이 진지한지 아닌지가 장르나 학제에 따라 선험적으로 결정이 되어 있는 문제입니까..... 세상에 삘 받은 김에 타국에 가서 4년 대학생활 하고 와야지, 하고 룰루랄라 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있다고 치더라도, 그게 장르 탓인가요. 한국 정치/역사/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김치 안주로 참이슬 후레시 한 잔 걸치며 유투브로 판소리 다섯 마당 듣다가 삘 받은 김에 원서 내고 한국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면, 걘 진지한 놈인가요, 안 진지한 놈인가요.


임지현 : ....(중략).... 폴란드인들의 공범성 혹은 방관자적 지위를 논한 미워시의 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사람 글을 참 독특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바우만이었던 것입니다. 1987년에 쓴 글이니까 그때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물론 요즘 한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정수복 : 그 인기에 깊은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폴란드와 한국 사이에 어떤 정서가 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임지현 : 바우만 글의 행간 속에 어떤 코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수복 : 그런 정도까지 한국의 번역자들이 번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쯤 오면, 정수복 선생님은 세상 모든 것이 미덥지 않은 분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물론 전부 다 지적할 수 있는 문제고, 정말 syo 같은 미미한 것 눈에 포착되지 않는 구멍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모두 다 정론이지만, 그래도 이러면 너무 답이 없는 것 같잖아. 독자도 문제, 학생도 문제, 바우만도 문제, 번역자도 문제, 인용하지는 않겠지만 뒷쪽에서는 우리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하신다. 가뜩이나 갈 길이 구만 리 같은데, 구십만 리를 만들어 놓으시니 맞는 말씀이건 뭐건 고개 돌리고 싶은 삐뚤어진 남자 syo. 그러니까,『책인시공』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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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1-1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수복 선생님의 의견을 그렇게 볼수도 있겠네요

syo 2017-11-20 01:24   좋아요 0 | URL
답답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11-20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자든 서평가든 책과 작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으면 지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책과 작가의 좋은 점만 보는 시선에 익숙하면,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요. 물론, 문제점을 밝힌 의견도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하고, 잘못되면 의견을 수정하거나 철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