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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러시아어로 된 통계자료들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6개월쯤 지나자 러시아 문학 비평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게 그가 구사하는 몇 번째 외국어더라. 리영희 선생님은 영어 일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우리 나라를 에둘러 비판하기 위하여 중국 연구에 뜻을 품었고 이내 중국어를 정복했다. 루쉰은 일본어를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건너갔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에는 쥘 베른,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비롯해 각종 서구의 문학작품과 과학서 등을 직접 번역했다고 한다.
전기문학은 이런 점이 사람을 빡치게 만든다. 위대한 사람에 대한 찬탄은 혼자서 오는 법이 없고, 항상 나 자신에 대한 초라함과 손잡고 온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책을 좋아한다, 읽는 일이 인생의 큰 축이다, 독서만세만만세를 떠들고 다니지만, 만약 syo가 정말 읽는 일을 사랑한다면 저만한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읽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쯤 어깨를 펴고, 내가 독서가요 하고 나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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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이 감당이 안 되고 그 갈래갈래가 너무 벅차서 누구라도 나타나 방향을 좀 짚어주었으면 할 때가 많다. 그 책을 읽었다면 다음에는 이 책이 좋겠네. 이 책은 이렇게 말하지만 저 책은 저렇게 말하지. 아니, 자넨 아직도 그 책을 읽지 못했단 말인가. 이런 말들이 소중하다. 이런 말들을 해 줄 사람이 귀하다. 코를 쳐박고 마구잡이로 읽고 잊기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들어 무한히 많은 책들과 마주칠 때의 그 막막함. 나는 너무나 작구나. 읽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구나. 한 치도 모르겠구나. 이런 무의미를 반복해야 할 의미를 도저히 모르겠구나. 피에르 바야르의 말은 가깝고 고미숙 선생님의 말은 멀다. 카프카의 말로 또 하루 더 읽어야겠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 앞에서? 아무리 일생을 바쳐 거듭 시도해보아야 영원히 모르는 책으로 남게 될 그 책들을 생각한다면 모든 독서가 그저 헛되기만 하다는 생각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_ 피에르 바야르,『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보르헤스는 말한다. 세상은 책이고, 우주는 도서관리라고. 이반 일리치는 말한다. 모든 자연은 의미을 잉태하고 있으며, 고로 자연 자체가 책이라고. 그렇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읽기요 쓰기다!(정화스님) 생명은 쉼 없이 읽는다. 우주와 자연,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었으면 써야 한다. 사유와 행동과 언어 등등, 삶의 모든 과정이 글쓰기에 해당한다. 읽고 쓰고, 또 쓰고 읽고.... 이것이 바로 생명활동의 기본이다.
_ 고미숙,『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네가 평지를 간다고 치고, 그렇게 가려는 소망을 가졌는데도 뒷걸음을 친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일일 터다. 그러나 너는 가파른, 너 자신이 발밑부터 보일 만큼 가파른 비탈을 기어오르므로, 뒷걸음질은 오로지 지형 때문에 야기되었을 수도 있느니만큼, 너는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_ 프란츠 카프카,「죄와 고통, 희망 그리고 진정한 길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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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조울 하는구만. 한번 더 힘 냅시다. 힘들다고 죽을 것도 아니고, 헤맨다고 안 읽을 것도 아니잖아요. 천천히 한 발씩. 뚝심 있게.
나보다 모든 면에서 갖추어지고 우월한 입장에 서 있는 동료와 선후배들 속에서 직업적으로 대성하려면, 자신의 부족을 겸허하게 시인하고 실직(實直)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선천적으로 두뇌가 떨어지고 학교에서 배운 것이 이질적이고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직업생활에서 성급히 굴지 말고 오로지 진지한 노력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빠르기로 말하면, 아첨하고 술수를 부리고 가식을 꾸며서 임기응변으로 세상사를 매끈하게 헤쳐나가는 재주 이상 없겠지. 그러나 모든 사람이 우둔하지 않은 한, 그 '재주'는 조만간 드러나게 마련이다. 또 모든사람이 그런 술수에 능한 이 사회에서 교지(巧智)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참된 인간적 삶도 아니다. 차라리 부족한 대로, 둔한 대로, 성실껏 노력하고 곧게 삶만 못하다.
_ 리영희,『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