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전라도 장성에 갔다 오늘 돌아왔다. 장성에서는 고깃집에서 고기 먹고, 치킨 집에서 치킨 먹고, 집에서 밥 먹고, 까페에서 커피 먹었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이 서울에서 다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대구에서 온 나도 대구에서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별 것 없었다. 정말 별 것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움이 된다. 인간은 가끔 이래저래 큰 일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별 것 아닌 일로도 충분히 충만해지는 별 것 아닌 존재일 뿐이다. 장성에서 나는 내가 이토록 별 것 아닌 존재라는 사실이 고마웠다. 숙소를 둘러싼 밤이 고즈넉해 고마웠다. 서로 울음이 다른 풀벌레들이 각기 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았는데, 고마웠다. 열심히 살았거나 조금 꾀를 부렸거나, 어쨌든 우리는 하나같이 세상에 치이다 지쳐 퀭한 얼굴로 모여 앉았는데, 그저 고마웠다. 서울에서 오거나 대구에서 오거나, 각자가 끌고 온 그림자들의 색이 같았다. 고마웠다. 별 것 아닌 존재로 사는 일이, 별 것 아닌 눈으로 본 것들과 별 것 아닌 귀로 들은 것들을 가지고 모여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별 것 아닌 시간들이. 

 

억지로 별 것처럼 보이려 하지 말자. 별 것을 만들려 하지 말자. 이 밤을 특별한 밤이라 이름 붙이지 말자. 우리는 밤새 이야기했다.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 새벽 빗줄기 사이로 번져 조용히 사라지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의 뒷꽁무니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장성이었다.

 

 

 

170811-170820  26권

         

 

읽기 / 쓰기  6권

 

 

 

 

1. 고양이의 서재

: 애서로 이름 날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성장과정을 거쳐 여기에 왔노라. 전반적으로 잘난 척 하느 느낌이지만 실제 이 정도면 잘난 것도 맞다. 그나저나 표지는 무진장 귀엽다. 편집자도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2.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는 김대식을 참 좋아하지만 그의 책을 접하면 항상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성기게 편집을 하나. 이 엄청난 빈 공간은 무엇인가. 이 그림들이 반드시 필요한가. 과연 양장까지 해야 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이 읽은 건 알겠지만 쓸 때는 어쩐지 쉽게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함량. 함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대식이 "전문성을 갖춘 이지성"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3.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 더 좋은 글쓰기 책이 많다. 체호프의 글 또한 더 좋은 글이 많다.

 

4. 단단한 공부

: 좀 옛스럽긴 해도 변하지 않는 고갱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5.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제목은 '사람'을 읽다 인데 자꾸 '사랑'을 읽다라고 쓰게 된다. 고쳐 쓰다가도 아무렴 어때 싶다. 별로 틀린 말도 아닌데. 퍽 사랑스러운 사람이 쓴 사랑스러운 책이다.

 

6. 쓰기의 말들

: 지금은 어떤 말이 쓰기의 말이 될 수 있다. 많이 쓸 것이다. 그러고나면 어떤 말도 쓰기의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10권

 

 

 

 

7. 아름다운 그런데

: 언어의 마술사라는 말이 칭찬 같은지? 마술사의 마술은 관객에게 신비롭고 그 비밀을 알 수 없는 소통 불가능의 순간에만 마술일 뿐, 우리가 알아채는 순간 그 빛을 잃는다. 시인은 친숙한 언어를 뒤틀어 일종의 증강현실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마술 자체를 통과해 그 뒤에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의미"를 기어이 겨냥하여 다시금 소통의 문법에 맞추고 번형을 시도하는 순간, 이 아름다운 언어의 마술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저 말장난이 남는다.

 

8. 넛셸

: 웃으며 보자고 들면 웃긴다. 솔직히 웃길려고 쓴 거 아닌거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남자 캐릭터들 병맛 코드 작렬이고, 그것은 이언 매큐언의 고상하고 지적인 문체와 만나 '쓸데없이 고퀄'의 미학을 선보인다. 이 책은 햄릿을 들고 와 시대와 화자의 나이만 조정한 것이 아니라 장르도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꾼 것 같다.

 

9. 채링크로스 84번지

: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이 역시 책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10. 시의 문장들

: 슬프면 슬픈대로, 아프면 아픈대로 그대로 다 어여쁜 이 문장들을 지으며 시인들 얼마나 기쁘고 또 슬프고 했을까. 이제 더는 시인을 외롭게 하지 말자.

 

11. 베누스 푸디카

: 아픈 몸을 통과하면 무엇이 태어난다. 통과한 아픈 몸을 되짚다 보면 무엇의 입이 열린다. 통과한 아픈 몸이 다시 아프면 무엇의 열린 입에서 시가 나온다. 무엇은 시인이 된다.

 

12. 바깥은 여름

: 김애란은 단편의 문법을 지킨다. 벽지를 새로 바르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는 일이고, 성과 '이응'까지밖에 쓰지 못한 이름은 그 이름의 주인이 생을 채워 살다가지 못했음을 바로 상기시킨다. 벽지를 내려놓을 수도, 혼자서는 붙일 수도 없는 자세는 잊고 나아갈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를 그대로 비춘다. 그러나 전통적인 문법을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면서도 김애란은 독자를 흔든다. 그게 김애란이다. 그게 김애란이 하는 일이고, 김애란이라서 하는 일이다.

 

13. 그때 그곳에서

: 뜨거움을 말해도 서늘한 문장. 그러나 누가 뭐래도 소설에서 더 빛을 발하는 설터.

 

14. 기사단장 죽이기 2

: 하루키는 죽지 않았다. 다만 조금 늙었을 뿐이다.

 

15. 온

: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토로하지 않는다. 아무리 차게 식었더라도 희망을 아직 채 다 버리지 못했을 때, 시인은 부러 시 쓰는 손을 냉정하게 해 본다.

 

16.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 장석주보다 한참 늦게 태어나 세월에 따라 그의 글이 변해가는 과정을 수월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알 수 없는 시간을 노래하던 그는 '봄가을을 예순 번이나 겪어보니' 이제는 아예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곳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나도 도착해야만 하는 곳이다.

 

 

철학 / 인문 일반 6권

 

 

17.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 중언부언은 있지만, 그래도 읽힌다(그나마).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중언부언도 약간의 변용을 가미한 반복학습(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하이데거 이 양반......)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도 나쁠 게 없다. 뭐지 이 짠내나는 평은......

 

18. 역경에 맞서는 법

: 제목 번역부터가 틀렸다. 책은 역경에 맞서려기보다는 역경을 슬기롭게 다루라고 가르친다. 결국 정신승리로 귀착되는 부분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책이 전하는 지혜는 자체 유용해보인다. 누구라도 한 두 군데씩은 맞아, 겪어보니 이렇더라니까, 하며 끄덕이게 되는 구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9. 열린 인문학 강의

: "랠프 바튼 패리"라는 자는 누구인가. 이 책은 꼭지마다 다른 교수의 강의를 담고 있는데, 언어가 유창하고 비유가 생기있고 전개가 부드럽다 싶어 강의자를 확인하면 십중팔구 저 사람이다. 나온지 100년도 더 된 책인데도 어제 쓴 글처럼 읽히는 강의는 오직 저 사람에게만 나오고 있다.

 

20.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몇 번째 읽는 책이지만 참 좋다. 우치다 타츠루처럼 다정하고 믿음직하게 개념을 풀어헤쳐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21. 안녕 돈키호테

: 이런 책 좋다. 더 크게, 더 폭넓게, 한 1000페이지짜리가 나왔으면 좋겠다. 열라 비싸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책은 좋지만, 제발 박웅현만 끼면 반드시 집어넣는 그 "창의력"이라는 말은 좀 참아줬으면 좋겠다. 이 책의 주제는 창의력이 아니라 "도전과 끈기"에 가깝다.

 

22. 하이데거의《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읽기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내말이. 이 책은 그러니까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란 또 무엇인가》인 셈인데, 내 역량이 어찌나 형편 없는지, 내겐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란 또 무엇인가》란 당최 무엇인가》가 필요할 지경이다.

 

 

정치 / 사회 3권

 

 

23.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짧고 빠르게 달려가지만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 복잡한 정치 이론이 들어있지는 않아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가 어떤 모양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해준다.

 

24. 단단한 사회 공부

: 사회공부라고 해서 사회학 같은 걸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많이 아는 영감님의 팟캐스트를 듣는 느낌이다. 나쁘지 않았다.

 

25. 청년에게 고함

: 인터넷에 무수히 돌아다니는 성격 테스트(혹은 심리 테스트)문항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연단에 올라있는 당신의 눈에는 무수히 많은 대중들이 당신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당신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 침을 꿀꺽 삼키고 준비해 온 선동문서를 꺼냅니다. 그 문서는 다음 중 어느 것일까요?

1.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2. 독일 국민에게 고함 - 피히테

3. 항소이유서 - 유시민

4. 청년에게 고함 - 크로포트킨

엄청난 고민 끝에 나는 4번을 고르겠지.....

 

 

미분류 1권

 

 

26. 시사in 517

 

 

 

2

 

어쩐지 문학에만 자꾸 손이 가는 요즘이다. 한동안 이런 방향성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

 

읽기 / 쓰기 분야는 꾸준히 읽으려 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분야다.

 

조금씩 읽는 페이스가 늦춰지고 있다. 2017년 8월에는 100권을 읽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8월 중순에는 뭐가 터진건지 과분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솔직히 좋다. 누군들 안 그럴까. 더 쓰고 덜 읽자. 균형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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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8-2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많이 읽었네요. 저는 지금 [넛셀] 읽는 중인데, 남자들 진짜 병맛이다.. 생각하면서 읽고 있어요. 그런데 쇼님의 이 페이퍼에도 그렇게 등장하네요. 주말에 넛셀 다 읽을라고 했는데 놀다가 자느라고 못읽었어요. (시무룩)

일단 올려진 책들을 보고 [바깥은 여름]에 대해 쇼님의 평가가 어떨지 궁금했어요. 저는 김애란을, 그 뭐지, [두근두근 내인생] 읽고 ‘그만읽자!‘ 생각한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궁금했거든요. 쇼님은 전체적으로 좋게(?)평가한 게 맞지요? 저는 뭐랄까, ‘울려야지‘ 작정하고 쓴 글의 느낌을 김애란으로부터 받아서, 제가 안좋아하는 류라서 그만뒀거든요.

아 시사인... 제가 구몬도 밀리고 시사인도 밀렸습니다...하아- Orz

syo 2017-08-21 08:35   좋아요 0 | URL
김애란은 아무래도 단편인 것 같아요. 저는 책 읽으면서는 안 울었는데, 그게 김애란이 울릴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울릴 역량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어요. 좋게 생각한 건 맞아요. 읽기에 좋았던 것 같아요.

요즘 시사인은 장충기 문자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내가 개새끼들과 한 하늘을 이고 잘도 살고 있었구나 느낄 수 있지요. 사실 그 느낌 자체는 뭐 그리 경험하기 힘든 일은 아니군요.

쇼코 2017-08-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도 전라도에 계셨군요. 저도 그날 전주 한옥마을서 하룻밤 신세지고 왔거든요. 아침에 비가 와서 처마 밑에 앉아 빗소리 들으며 책 좀 읽어 볼라다가 모기한테 4방 뜯겼지 뭡니까. ㅎㅎㅎ 암튼 뜬금없이 반갑네요^^

쇼님 다독하시는 거 보면서 자극 받곤 하는데 산만한 제 속도로는 역시 무리 더라고요. 그냥 개미처럼 천천히 읽기로 했어요. 그래도 다독하시는 쇼님 덕분에 읽고 싶은 다음책이 많아져서 지금책 읽는 속도가 쪼끔씩 빨라지고 있어요. ㅎㅎㅎ

syo 2017-08-22 11:44   좋아요 0 | URL
하하, 둘 다 전라도에서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먹고 있었겠네요!! 저는 맛있는 전라도 치킨을..... 전라도 BHC.....

저같은 다독은 권하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백수라서 가능한 일이거든요. 저도 뭔가 일을 하게 되면 삼일에 한 권도 벅차겠지만, 지금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알라딘 서재질밖에 없으니 것참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ㅎㅎㅎㅎㅎ

쇼코 2017-08-22 11:58   좋아요 1 | URL
전주 가시면 ‘소문난집‘ 콩나물국밥 꼭 드세요. 택시기사분이 추천해서 갔는데 인터넷맛집 소개난 곳보다 훨씬 맛나요. 국물김치도 정말 맛났고요. 새벽 4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영업해서 전날 술한잔하고 해장하기 딱 좋더라고요^^ 저는 다음엔 전라도 치킨을... BHC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