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레카님의 글에 장난처럼 댓글을 달고 나니 진짜 궁금해졌다. 정말 알라디너들의 매체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이곳 알라딘 서재 공간은 가입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온라인 커뮤니티 중에서 회원들의 지적/지각적 역량이 가장 훌륭한 곳임에 틀림이 없는데? 책은 결국 모든 것이니 이곳에는 어떤 분야라도 논프로패셔널 전문가가 최소 한 명 씩은 있을 것인데? 이웃분들의 무릎을 탁 칠만한 글들을 하도 읽다보니 나는 무릎이 나갈 지경인데? 심지어 저 바깥 세상에는 주옷같은 것들의 주옷같은 글들이 난무하는 마당인데도?? 4대강 소식 듣고 낙동강 미꾸라지 걱정하는 1급수 버들치같은 기분이다. 최소한 좋은 글들을 이슈별로 묶어서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라도 만들어 주면 안 되냐는 말입니다.
2.
딱 오늘까지만, 미친 놈처럼 읽는 것은 딱 오늘까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
3.
오늘 어떤 의미있는 대화 끝에 우연찮게 근 10년 전에 읽었던 책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만나지 못했던, 오늘에서야 처음 열린 작지만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시선은 아마도 다양한 것을 보고 읽는 데는 그리 유용하게 쓰이지는 못할 것이다. 고작 과거에 있었던 작은(그때는 거대하다고 믿었던) 몇몇 사건들을 다르게 읽는 데만 쓰이고는 말 것이다. 오늘까지 맞다고 믿어 왔던 과거의 어떤 일이 틀렸거나 혹은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아닐 수 있었다는, 그저그런 깨달음. 살면서 한 번 겪었던 상황과 다시 한 번 맞닥뜨리고,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는 선택을 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으니, 결국 이 책은 내 추억의 한 귀퉁이를 채색하는 데 그치고 만다. 그렇지만 이렇게 덧칠된, 그래서 오히려 한꺼풀 벗겨진 추억을 때로 다시 곱씹고, 그날 그 사람의 마음을 윤곽이나마 다시 한 번 어림해보는 과정에서, 익숙한 나에서 낯선 나로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읽은 글들
문학은 삶의 순간을 포착하고 미미한 것들을 소환해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관념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비슷비슷한 하루의 반복은 그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표상된 외면을 찢고 들여다 볼 때 거대한 새로움이 있다. 문학은 우리의 머릿속에 짧게 스쳐가는 단상이나 눈앞에 빠르게 지나가는 파편적인 모습들을 정밀하고 미묘하게 묘사해 내서 결코 인식할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현상에 대한, 기억에 대한 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_최은주,『책들의 그림자』23쪽
익숙한 표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은 우리에게 낯설다. 하지만 표상과 재현에 익숙한 시선으로는 늘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_권용선,『세계의 역사와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78쪽
그가 말하는 일관성이란 단일한 서사적 구성이나 완결된 전체를 염두에 둔 통일체적 구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각각의 부분들이 자율적으로 자기 가치를 가지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방식, 각각의 부분들이 각자 자기 안에 다른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른 것의 일부로 기능하는 그런 관계들의 일관성이다.
_같은 책, 81쪽
-무슨 말인지 참 알듯 말듯하지만, 이건 알겠다. 벤야민의 이 방식 내적으로 잘 체현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방식을 외적으로 잘 체현하면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
"지어낸 이야기 안에만 담을 수 있는 마음도 있는 거예요. 만일 세상 모든 게 현실이라면,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너무나 쓸쓸할 거예요......"
_미카미 옌, 『비블리오 고서당 사건수첩 5』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