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사거리 4
딱 한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달렸어. 밤의 거리에는 혼자인 사람은 없더라. 다들 둘이서, 넷이서,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모여서 떠들며 웃었어. 웃으려면 다른 하나가, 셋이,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서 모여든 사람들처럼. 혼자서도 웃는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아카시아 향은 환하고 음악은 달고 네 생각은 푹신해서 달리기에 좋았어. 같은 노래가 열여덟 번 흐르는 동안 뛰고 걷고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다가 가볍다가 했더니 딱 집에 도착하더라. 가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달리는 동안 신기하게도 조금씩 조금씩 들리더니, 열여덟 번 들으니까 대충 다 들리더라. 대충 알아듣기까지도 열여덟 번을 들어야 하는 거더라. 그렇게 오래 듣고 오래 생각해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면서, 우리가 여기에 왔더라.
네가 한 말들을 열여덟 번 생각해봤거든.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도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내가 왜 네 옆에 있어야 하는지를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Stick by my side even when the world is caving in 내가 네게, 그리고 네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답은 늘 뻔하고 정확해서 딱 한 번만 생각해도 됐거든.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랬더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더라.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그러니까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해. 낮에도 밤에도 따뜻한 봄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 보자. 우리에게 모자란 건 서로의 손, 잡을 수 있는 손이야. 입술도 좋고 낱말도 좋고 10cm 간격으로 마주 보는 두 눈도 너무 좋지만,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손을 잡자. 손을 잡고 걷자. 세상 길이 다 무너져 사방이 사막처럼 늪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모든 건 마주 잡은 두 손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시작하는 마음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처럼, 손을 꽉 잡고, 걸으러 가자. 같이 가자.
* syo는 새벽에 써서 올린 글을 아침에 읽을 것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근자에 아주 보기 드문 두꺼운 얼굴과 염치없는 심장의 소유자입니다. 으하하하하하😆😆😆😆😆
Pink Sweat$ - At My Worst
아래 가사는 언제나 그렇듯 syo식 의(발번)역
Can I call you baby? 부르는 말로 널 간지럽히고 싶은데,
Can you be my friend? 친구라는 말도 좋겠고
Can you be my lover up until the very end? 끝까지 끝나지 않는 사랑이라 하면 어떨까?
Let me show you love, oh, no pretend 그런 걸 보여줄 거거든, 진짜로
Stick by my side even when the world is caving in, yeah 세상이 무너져내려도 꼭 붙어만 있자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걱정할 틈이 있다면,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그냥 날 원하기만 해, 언제라도 옆에 있을 거니까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가 가장 엉망일 때도 나를 사랑해 주고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얼룩 묻은 나를 닦아 네게만 보이는 빛을 찾아내 줄래?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왜냐면 너뿐이니까,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더 너니까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게 만드는 너니까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면, 영원히 손을 잡아줄게
I can fill those places in your heart no one else can 들여다 봐, 네 맘에 내가 들어가면 꼭 맞을 그 빈자리
Let me show you love, oh, no pretend, yeah 봐봐, 이게 그 자릴 채워줄 내 사랑이거든
I’ll be right here, baby, you know it’s sink or swim 여기 내가 있을 거고, 좋을 때도 망할 때도 세상엔 우리 둘뿐일 거고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외롭고 무서울 때 있겠지만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그때도 우리는 함께일 거야, 우리가 우리를 원하니까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 밑바닥을 보고서도 끝내 사랑을 놓치지 않을 사람,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yeah 멍청한 나를 일으켜 세워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게 너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그게 너라니까, 내가 못할 게 대체 뭐가 있겠어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가 이런 꼴이어도 나를 사랑해 줄 거지?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yeah 네가 날 봐주면, 완벽하진 못해도 더 좋은 사람이 될게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나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그런 널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 읽은 ---
156. 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
이 책에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별 다섯 개를 매길 수 있는 건, 이은혜 선생님이 읽는 사람이면서 쓰는 사람이어서겠다. 선생님은 편집자라는 직업의 본령을 ‘읽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는바, 쓰는 당신을 조금쯤 겸연쩍게 여기시는 모양이지만, syo는 이 책을 읽으며 읽는 syo와 쓰는 syo 두 놈 모두가 겸연쩍어졌다(심지어 읽기에 있어서는 겸연쩍음을 넘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읽고 쓰는 두 놈 모두가 시원하게 격추당하면서도 양손으로 최후의 엄지척을 남겼으니 엄지손가락 네 개 확보. 그 꼴을 본 제3의 syo가 또 양손으로 엄지척을 날렸으니 엄지손가락은 총 여섯 개. 그렇게 별 여섯 개를 매겼지만 알라딘이 그런 짓은 안 된다고 그래서 별 한 개는 마음 속에 보관하는 걸로. 결론 별 다섯 개.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음울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_ 이은혜, 『읽는 직업』
음, 이런 멋진 문장을 마주하면 나란 놈이 한없이 하찮아지면서, 울음과 비탄이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까닭에 절망을 향해 달리게 된다.
157.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
- 일독(1811xx)
- 재독(210504)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재독하는 책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아, 이걸 왜 다시 읽었을까, 처음 읽을 때의 나는 이 책을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책들도 있다. 그런 경우 과거에 쓴 평을 다시 보면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나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실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실패의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짚어내지는 못했고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어, 왜 별로지? 고미숙 선생님 좋은데 왜? 이랬던 듯. 그런데 지금은 알겠다. 이 책은 백수가 아닌 사람에게 백수의 매력을 설득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와, 백수가 이런 것이었다니, 당장 내일 사장님 면전에 사표를 집어던져야겠는걸?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있어도 이 책의 힘은 그저 가득 차 있던 항아리에 우연히 던져진 돌멩이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렇다면 백수 독자들에게 그들이 모르고 있던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책인가? 글쎄, 그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백수 경력 장장 10년의 syo는 그렇게 본다. 그러니까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한 줄로 말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모든 백수가 연암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연암이 연암이다.
그러니 부탁한다. 제발 꿈꾸지 마라! 꿈은 망상이다. 망상은 부서져야 한다. 망상 타파! 청춘은 청춘 그 자체로 충분하다. 아니, 삶이 통째로 그러하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도 삶보다 더 고귀할 수 없다. 살다 보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애국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노동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산다는 건 모두 망상이다. 하물며 화폐를 위해서랴? 성공한 다음엔 공황장애,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 이 얼빠진 궤도 자체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러니 제발, 망상을 타파하자.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청춘의 생동하는 얼굴과 마주하게 될 터이니.
_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읽는 ---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코끼리를 쏘다 / 조지 오웰
가벼운 영어 / 가벼운학습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 피에르 아도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여성작가 편 / 이현우
빈 옷장 / 아니 에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