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는 진짜 개절기

 

 

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방식들. 뜨거운 물을 계속 마시기, 어지럼증, 사용하지 않을 외국어 공부, 런지, 방문은 평면이 아니고 육면체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위쪽 면에 쌓인 먼지를 검지로 훑은 다음 슬쩍 맛보기, 오한, 대한민국 환절기 다 ㅈ까라 그래- 하는 마음과 그래도 환절기 없으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하는 마음을 마주 앉혀 놓고 100분 토론 진행하기, 자기 비하와 자기 비판과 자기 비난의 피 튀는 삼국지, 아아아 천하는 언제나 통일이 될까, 일단 지금부터 가을 겨울 봄은 맨투맨으로 버티자 다음 여름이 오면 다시 태어난 몸뚱이를 뿜뿜대며 다닐 거니까- 하는 자기 기망은 역시 자기 폭망으로 끝나겠지, 사람은 그냥 한 번 태어나는 거지, 그래도 꼭 한번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다음번에는 누구로 태어나면 좋을까 생각해보는 장소로 이불 속이 적합하지, , 그저께 옥상에 널어놓은 걸레 걷으러 가야 되는데, 벌써 바람에 날아갔으면 어떡하지, 벌써 다 날아갔으면 어떡하지, 다시 태어날 기회를 안 주면 어떡하지, 안 되는데, 아아 안 되는데,

 

이런 고등유희(?) 속에서 주말을 탕진했습니다. 으하하하…….

 

 

 

 

--- 읽은 ---

 


173. 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

 

어디서였더라. 어느 소설에, 비평가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의 껍질에 붙어 과육을 뜯어먹고 예술가의 마음에 흉터를 남겨 예술 시장을 조종하려는 일종의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식의 말을 하는 등장인물이 있었다. 악의가 가득 들어찬 그 저주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창작물이 태어났다 죽어가는 과정에서 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고, syo 역시 일견 그렇게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시집 뒤에 붙여놓은 해제가 호들갑스럽고 현란할수록 그런 마음은 더해갔다. 시를 다 읽으면 거기서 그대로 시집을 덮어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처음에 비평은 레시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에는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가 세상에 퍼지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나에게는 시를 조리하는 나만의 조리법이 있을 텐데(확신하긴 어렵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 먹은 시의 맛이 어쩐지 밍숭맹숭할 때,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못 살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런데 다른 조리사들은 이 시를 통해 새로운 맛의 세계를 열었다는 식의 증언이 자꾸만 눈에 밟힐 때, 그럴 때 가끔 집어드는 책이 비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재현을 잘 해낸들 백종원 선생님의 레시피가 내 레시피가 되지는 못하듯, 내놓은 음식을 먹어 본 친구들이 야, 이거 진짜 맛있다, 너 요리 잘한다, 칭찬할 때, , 이거 백종원 레시피야- 라는 자백을 반드시 덧붙이라는 양심의 공격을 받아 불편하듯, 비평은 그렇게 필요와 불편 사이에서 가끔 소모되는 장르였다.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이후로, syo에게 비평은 하나의 태도가 되었다. 해석은 늘 태도에 기반한다. 그래서 자기 외부에 대한 모든 해석은 곧 자기 내부에 대한 해석이다. 그래서 비평은 자기를 감추는 것을 획책하는 이들의 문학이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시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태도 없는 읽기는 시 읽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걸어온 길과 그 위에 아로새겨진 모든 활자들은 낱낱이 선생님이 보여주고 가신 용기와 같다. 해석한다는 것은 그 말이 그르다고 여길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도피시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길에 찬연하고 선연한 언어는 가장 듬직한 동료였을 것이다.

 

우리가 몸담은 우물은 거대한 우물 안의 우물이다. 우물 안의 우물 안의 우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우물을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고, 단지 좀 더 큰 우물, 좀 다른 우물로 옮겨 다닐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이행은 일단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가야지, 하는 마음과 태도에서 열린다.

 

 

 

 

174.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조르주 페렉 지음 / 김호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

 

기망하는 법에 대한 교본과도 같은 책이다. 그 방법을 설명하는 일은 스포일러라서 어렵지만, 소설 속 세상이 기망 당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독자들도 기망 당하는데, 그 방법은 서사 외적인 부분이니까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비평의 문법을 익히는 것이 비평가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증거가 이 책이다.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을 다루는 소설과 시를 떠올리듯 그렇게, 세상에 없는 것을 비평하는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비평이란 다른 존재를 가정함으로써 존재하는 장르기 때문에, 작가가 세상에 있지도 않은 것을 그럴듯하게 비평하면 우리는 결코 그 대상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비평 아닌 다른 문학이 취할 수 있는 유익한 전술이다. 보르헤스는 그 방법을 통해 문학사에 지워지지 않는 별이 되었다.

 

처음 조르주 페렉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땐 아직 20대였는데, 이렇게 생각한 바가 있었다. 만약 언젠가 프랑스어를 배우게 된다면, 그건 내가 조르주 페렉을 그의 언어로 읽지 못하는 입장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 싶을 때가 아닐까. , 20대의 열정이란. 저러고는 전혀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았지. 견딜 만했나 봄.

 

 

 

 

--- 읽는 ---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길 잃기 안내서 / 리베카 솔닛

시절과 기분 / 김봉곤

천년의 바람 / 박재삼



--- 갖춘 ---

미셸 푸코, 철학의 자유 / 존 라이크먼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 토마스 렘케

프로이트, 페렌치, 그로데크, 클라인, 위니코트, 돌토, 라깡 전싱분석 작품과 사상 / -다비드 나지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10-11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루 봉곤아 오랜만...그나저나 아프지 마syo ㅠㅠ 쾌차하소서.

syo 2020-10-13 22:48   좋아요 1 | URL
쾌차 과정에 있습니다. 약이 잘 듣더라구요.
혹시 다음에 몸살 나면 말씀하세요, 약 추천해드리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0-13 22:53   좋아요 0 | URL
미리 알려주세요 상비약

syo 2020-10-13 23:05   좋아요 1 | URL
네. 대웅제약에서 나온 씨콜드 플러스라구요-

2020-10-14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4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20-10-1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현산 님의 책에 대한 얘기에 완전 공감되네요. 빨리 나으시길.

syo 2020-10-13 22:49   좋아요 0 | URL
빨리 나았습니다! 북극곰님의 공감 덕분일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