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ing Slowly

 

 

1

 



데리다 관련해서 요런 4권의 책을 동시에 돌리고 있지만, 1을 모르겠다. 23도 아니고 1. 다시 생각해보니 1은 알겠다. 1. 아무래도 데리다의 해체라는 것은, 독자가 품고 있는,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헤헤- 하는 멍청한 믿음과 자신감을 싸그리/와장창/갈가리 해체시켜버리겠는 뜻인 듯하다. 발음할 수 있다고 다 읽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인간극장이 들어 있어서 그나마 읽을 수 있는, 평전 속의 데리다는 아직도 후설에 푹 빠져 있다. 후설. 현상학의 창시자, 후후후후후후설 쌤. syo는 후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1. 후설 하면 의식의 지향성이다.

2. 의식의 지향성이란, 의식은 늘 뭔가를 지향한다는 뜻으로서…….

3. 뜻으로서…….

3. 그러니까, 에, 그런 뜻으로서…….

3. ……(울먹울먹).

 

실은 저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을 읽을 단계 정도는 된다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지음 / 박지영 옮김 / 한길사 / 2017


50페이지 가량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여기서 결정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지속하는 하나의 자기 동일적 대상에 대한 지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그것은 그저 감각 다양의 존재일리는 없다실제로 후설은감각들은 특정한 의미를 통해 해석되고 파악되며나에게 대상에 대한 의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객관화하는 파악 작용임을 암시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의미는 작용-질료이고지각적 대상은 바로 감각들을 포착하여 해석함에 의해 현출되게 된다그리고 우리가 체험한 감각들(지각의 경우)을 초월하여 대상에 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객관화하는 해석 작용 때문에 가능하다다른 말로 하면대상의 현출이 구성되는 것은 감각들과 해석양자 간의 상호작용에 놓여있다하나의 펜을 본다는 것은 객관화하고 종합하는 해석 작용을 가지고서 감각 다양을 붙잡아 파악하는 것이다. (51-52)

 

이쯤 되면 책 산 사람에게 찐하고 감미로운 빅엿의 맛을 꼭 선사하고 말리라는 옹골찬 의지가 느껴진다 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와중에 또 뭔가 알듯 말듯 하다! 정말 한 페이지에 5분을 쏟아 붓고서라도 알아먹고 지나간다는 느낌으로 읽으니, 소득이 조금 있다. 한 달 전쯤 같은 50페이지를 읽었을 때, 정말 이게 무슨 DogJobSound인가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조금은 눈이 트이는가?

 

그러나 그게 정말 안 것일까? 그리고 여기다가 내가 알게 된 것을 쓰는 게 옳은 일일까?

 

그러니까 만일 syo가 이것에 대해 쓴다면, 결론적으로 후설이 쓴(1) 것을 읽은(1) 단 자하비가 쓴(2) 것을 읽은(2) 번역자 박지영 선생님이 쓴(3) 것을 읽은(3) syo가 쓴(4) 것을 서재친구님들이 읽게(4) 되는 것인데, 이 길고 긴 씀-읽음의 진주목걸이 속 어느 한 구슬만 금이 가도, 이제 완전 가족 오락관 되는 것이다. (똑똑) ~~~! ? 지향성! (끄덕끄덕) (똑똑) ~~~! ? 쥐났어! (끄덕끄덕오케이) 정답! 쟤 머리에 쥐났대요!(불운하게도 이건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저 연쇄 가운데 읽은쓰리와 쓴포가 가장 불안하다…….

 

결국 철학책을 읽고 알아낸 것에 대해 쓰는 것은 알라딘에서 syo가 맡은 작업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서재에서 그런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건 뭐 로쟈님이나 겨울호랑이님이 하시겠지. 여기 들르는 분들은 아마도 딱 syo가 낑낑대는 것까지만 보는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니까 동물원 우리에 갇힌 원숭이가 유리병 속에 든 바나나를 먹고는 싶은데 병뚜껑 여는 법을 몰라 애꿎은 유리만 끊임없이 핥아먹는 장면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처럼. 그러나 인간 동지들, 당신들도 대체로 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한 우리 속에 갇혀서 통장에 스쳐지나가는 월급을 꺼내지 못해 울고 싶은 또 하나의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다오. 그러니 이리 들어와서, 이 유리병 좀 열어주시오……. 으헤헤, 바나나 맛있겠다. 우끼끼…….

 

 

 

2


누구든 책에 밑줄을 긋는 자는 하나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왜 하필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가?" 참으로 심플하고도 당연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그것은 '왜 살아가느냐/사랑하느냐'에 맞먹을 정도로 한없이 존재론적인 질문이니까마음에 들어서멋진 문장이라서그건 마치 밥을 먹으니까 살고예쁘니까 사랑한다는 대답과 비슷하다물론 딱 떨어지는 대답이 있을 리 없다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밑줄을 긋는다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읽어 넘기면 그만인 문장들에 줄을 그어 되새기고언젠가 다시 펼쳐 읽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낯모르는 이의 밑줄을 만났을 때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그건 차라리 사랑이 아닐까?

금정연서서비행

 

다른 자리에서 밝힌 바 있지만(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대단한 사람 된 것 같아서 신난다), syo의 초심은 금정연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서평가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역이 되는 것이 바로 syo의 꿈이었다. 그야말로 청운의 꿈이다.

 

그런 선언을 한 뒤로 요런저런 글을 쓰며 알라딘에 찰싹 붙어 지낸 것이 벌써 2년도 더 지났다. 그 동안 1,000권에 달하는 책을 더 읽었다. 그런데 어쩐지, 예전에 쓴 글이 더 재밌다. 더 유익하다. 망했어요.

 

이렇게 되면 책의 효용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 책은 읽을수록 멍청해진다. 둘째, 그나마 저 1,000권이라도 안 읽었으면 지금쯤 버버대며 코나 훌쩍거리고 있었을 것을 책이 살렸다. 어느 가설을 채택하건,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책을 안 읽고 2년을 보내보는 것. 그래서 앞으로 2년 동안 책을 전혀 읽지 않기로 굳세게 결심했다.

 

그 결심이 얼마나 굳세었는지 번복하기까지 무려 15초가 걸렸다. 15초 동안 심사숙고해보았는데, 2년 동안 할 게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금처럼 천천히 멍청해지기로 했다. 우리글 필력이 퇴보하여 개불 수준이 되기 전에, 영어나 일본어 같은 것을 조금씩 공부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이가 없으면 잇몸이고, 꿩 대신 닭이고, 한국어가 나가리나면 영어로 하면 되지. 근데 한국어랑 영어랑 뭐가 잇몸이고 뭐가 꿩이지?

 

뭐 이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걸 보니, 멍청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빼박 사실인가 보다. 우끼끼, 이 뚜껑 어떻게 열지?

 

멍청이시여 천천히, 제발 천천히…….

 

 

 

3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 2

 

에서 서쪽으로 사천팔백 리를 가면 숲으로 둘러친 마을에 닿는다. 이름을 수수垂睡라 한다. 그 고장 사람들은 스스로 잠숲골이라 부른다. 씨와 백씨가 서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노래를 잘한다. 삼백 여 호가 개울을 따라 집을 짓고 사는데, 민물고기는 먹으나 새는 노래한다 하여 잡지도 먹지도 않는다. 낚싯대를 쓰고 그물은 치지 않는다. 낚시 바늘은 길하지 않다 여겨 택하지 않지만 물것들이 어리석어 바늘 없는 줄을 문다. 하여 굶는 사람이 없고 음식을 남기는 사람도 없다.

 

숲에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나무가 자란다. 이 고장 밖에서는 찾을 수 없으므로 이름을 수수목이라 한다. 바람이 줄기를 감아 돌면 큰북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가지를 흩으면 거문고 현을 뜯는 소리가 난다. 잎사귀의 몸을 훔치면 잎과 잎 사이에서 류씨와 백씨 옛 명창들의 소리가 난다. 소리는 화창하면 높이 울고 궂은 날엔 낮게 떤다. 나무를 베어 침대로 쓰면 불면이 낫는다. 침목으로 쓰면 악몽을 꾸지 않는다.

 

마을에 거하는 사람들은 밤마다 생을 마칠 날이 언제인지 하늘에 묻는 점을 치고, 때가 되면 스스로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숲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걸어 나오지 않는다. 가족 중 하나가 숲으로 들어가면 남은 이들은 곡기를 끊어 사흘을 쉬지 않고 노래한다. 노래가 끝나면 민물고기를 고아 먹고 뼈를 개울에 버린다. 개울이 숲에 닿으면 뼈에서 싹이 튼다. 싹이 자라 나무가 되면 바람이 불 때마다 떠난 이의 소리를 낸다. 그런 이유로 나무를 골죽骨竹 혹은 골현骨絃이라고도 부른다.

 

산 사이 골짜기로 쉬지 않고 떨어지는 바람이 있어 노래가 멎는 일이 없다. 숲이 앞서 부르면 류씨와 백씨가 따라 부른다. 하여 잠숲골에는 먼저 간 이가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없다.


 

 

--- 읽은 ---

+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 오노 후유미 : 243 ~ 485

+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 크리스 하먼 : 89 ~ 167

+ 20세기 중국사 / 알랭 루 : 275 ~ 431

 

 

--- 읽는 ---

= 서서비행 / 금정연 : ~ 61

= 한 권으로 끝내는 파이썬 / 김명호 : ~ 201

= 호랑이 발자국 / 손택수 : ~ 49

=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 ~ 51

=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 김호 : ~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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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19-10-18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
아름답네요^^

로쟈님
겨울 호랑이님!!
정말 무섭죠?

저는 syo님도 무서워요**

syo 2019-10-18 09:49   좋아요 1 | URL
로쟈님과 호랑이님은 정말 무서운 분들이구요.
저는 무서운 척하는 원숭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페넬로페님, 물지 않아요. 물 줄 몰라요.....

2019-10-18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10-1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 글 읽었는데도 1도 이해 안돼요. 데리다 후설 덜덜덜

syo 2019-10-18 23:3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데리달달달 후덜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