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조미료

 

 

1

 

내가 아는 이 가운데 지나간 사랑을 가장 이기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이가 바로 syo. 비가 오면 그는 우산을 켜듯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켜서 들고 쏟아져 내리는 묵은 감정 아래 선다. 그는 장화를 신듯 지나간 사랑의 장면들을 신고 평탄한 마음에 첨벙첨벙 괜히 분탕이나 친다. 인간의 기억이란 끈질긴 동시에 또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되짚고 헤집는 동안 그 풍경이 자꾸만 변한다. 이제 syo는 반지하 하숙방에서, 이촌역 버스 정류장에서, 회기동인지 제기동인지의 작은 고시원에서, 굵은 빗방울에 두드려 맞으면 드럼 소리를 내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정확한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 잊지 않았다. 그저 변했을 뿐. 후회나 아쉬움, 손닿지 않아서 더 빛나 보이는 광채 같은 것들에 버무려지면 추억의 디테일이 조금씩 변한다. 그것을 변형이라고 불러도 좋겠고 변질이라고 불러도 나쁘지는 않겠으나, 진정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시간에 맡겨두어도 괜찮겠다. 어쨌거나 지나간 사랑은 헤집고 궁굴리고 우려먹는 동안 사실은 세상에 있지 않았던 창조적인 사랑이 되고, 놓치거나 지나친 수많은 가능성들이 미궁처럼 가지를 뻗어나가는 동안, 사랑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쌓아놓은 사랑들이 사랑에 대해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다면, 지나간 사랑의 실체가 어리바리 떨다 사랑을 망친 패배자에게 실오라기 하나 쥐어주지 않고 사람을 미궁으로 밀어 넣는 무자비한 아리아드네라면,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안다고 착각하며 살다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삶을 마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사랑이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걘 대체 뒀다가 어따 쓰지? 리뷰 쓸 때 꺼내서 우리면 끝인가? 꾸덕꾸덕 잘 말린 다시마, 똥 다 뗀 멸치마냥?

 


하지만 어떤 사람을 향해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건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봤다는 뜻이다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아무도 없는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춤을 추는 일과 흡사하다이때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한눈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애정이 없다면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사랑해", 그 대담한 말을 통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하지만 내가 먼저 누구인지 보여주겠다이번에는 네가 너를 보여줄 차례다그래서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기꺼이 자신을 드러내거나 못 들은 걸로 치거나못 들은 걸로 치겠다그건 '나한테 네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마라우리 사이는 사회적인 관계다'라는 뜻이다.

김연수사랑이라니선영아, 63-64 


 


2 



원칙적으로 말해서여러 종교가 각각의 신자들에게 부과하는 의무를 놓고 왈가왈부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이슬람교에서 알코올 음료의 소비를 금하고 있다고 해서제가 그것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그것에 찬성하지 않으면 이슬람교 신자가 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가톨릭 교회가 이혼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비신앙인들이 있을지 모르지만저는 화를 낼 까닭이 없다고 봅니다가톨릭 신자이기를 원하면 이혼하지 말고이혼하고 싶으면 개신교 신자가 되는 겁니다만일 자기가 가톨릭 신자가 아닌데도 교회가 이혼을 못 하게 한다면그때는 뭔가 대응을 해야겠지요솔직히 말씀드려서저는 가톨릭 교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동성애자들이나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제들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저는 이슬람교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예루살렘에서는 안식일을 맞아 몇몇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자동적으로 층층이 멈추면서 오르내린다 해도 항의를 하지 않습니다신발을 벗기 싫거나 엘리베이터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을 때는이슬람교 사원이나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면 됩니다또 이따금 턱시도를 반드시 입어야 하는 리셉션에 초대받을 때가 있습니다그럴 때 거기에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제 자신입니다그 행사에 꼭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내키지 않아도 그 성가신 복장을 받아들이는 것이고그런 허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싶으면 집에 있는 거지요.

움베르토 에코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63-64

 

 

비유가 양날의 검처럼 느껴질 때가 잦다. 잘 들어맞으면 반박 불가의 치명타를 입히지만, 실패하면 사용자의 편협함만 드러낼 뿐이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교육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세상이 들썩거릴 때, 한나 아렌트는 흑인과 백인의 분리 교육을 찬성하는 의견을 내며 이런 식의 비유를 사용했다. “유대인인 내가 유대인 친구들과만 내 휴가를 즐기겠다고 한다면 이런 내 계획을 어떻게 누가 합리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비유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형식적으로 “A : B = a : b”의 꼴이라고 해서 윤리적 고민 없이 A의 자리에 a를 함부로 들이대는 것은 가끔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 다른 형태의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자신들의 사랑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신발처럼 신었다 벗었다 할 수도 없고, 층층이 서지만 결국 기다리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엘리베이터도 아니다.

 

생전에 세상에서 가장 저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저 죽은 기호학자는 과연 쿨하다. 너무 쿨해서 세상과 맞서는 데 두려움이 없다. 멋있다. 부럽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내가 놓치지 않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두려울 일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쿨한 것은 그저 쿨할 수 있기 때문, 쿨해도 되기 때문일 수 있다. 쿨해도 되는 입장이란 누군가에겐 그저 주어지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적확하다고 생각하고 쓴 어떤 비유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킴으로써 절망에 절망을 얹는 고문이 될 수 있다.

 

 


--- 읽은 ---

+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 69 ~ 154

+ 아무튼, / 김혼비 : 90 ~ 171

+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 움베르토 에코,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 57 ~ 137

 

 

 

--- 읽는 ---

=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 김진영 : 99 ~ 184

= 한 장의 지식 경제학 / 니얼 키슈타이니 : ~ 265

= 드로잉 피직스 / 돈 레몬스 : ~ 201

=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하 / 오노 후유미 : ~ 218

= 미치게 친절한 철학 / 안상헌 : ~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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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9-29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리거나 빻지 않은 비유. 그걸 잘하는 사람의 글이 오래 남겠지요? 쿨병을 넘어 혐오 안 하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들의 댓글을 봅니다. 붕어빵 파는 가난이나 잃게 된 자식을 남에게 나눠주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잖아? 하는 꼴을 보며 저를 돌아봅니다. 금세 잊히고 다시 읽히지 않을 하찮은 말들이 그런데 어딘가에는 모질게 패인 상처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무플방지위원 활동하니 저 혼자 흐뭇합니다.

syo 2019-09-29 21:18   좋아요 1 | URL
언제나 든든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렬한 활동을 부탁드립니다.
저 외롭지 않게 ㅎㅎㅎㅎ

나비종 2019-09-2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대한 기억은 컴퓨터 파일 같습니다. 처음에는 원본과 복사본이 두 개 다 존재하고 작성한 이도 이 둘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있지요. ‘세상에 있지 않았던 창조적인 사랑‘이란 말에 공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파일이 합쳐지면 어떤 기억이 실제로 경험한 것인지 혹은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각색한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기도 하거든요. 더군다나 인간의 이기심이란 매번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진실로 믿어버리게 되는 것 같거든요.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게 되더군요.
사랑..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런 게 세상에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 때도 많거든요. 너무 광대하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이라 하나의 단어로 묶기에 무리인가 싶기도 하구요.

˝사랑해˝라는 말을 언제 해보았나 기억이 흐릿하네요. 추임새나 습관적인 의성어처럼 가벼운 의미 말고 진심으로 우러나서 내뱉을 수 밖에 없는 간절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랑해‘요. 미적지근한 사회적인 관계들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 살짝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움베르트 에코가 저런 속후련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였군요. 평소의 제 생각과 너무도 흡사해 소름이 돋았습니다.

syo님의 고민, 저도 근래 하게 되는 생각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두려울 일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쿨한 것은 그저 쿨할 수 있기 때문, 쿨해도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중략) 내가 적확하다고 생각하고 쓴 어떤 비유가 누군가에게는...‘ 이 부분이요. 공부를 잘하거나 부유한 어떤 아이들이 무척 예의바르고 겸손한 경우도 타고난 본성일 수도 있겠지만 환경의 영향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그래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행동을 할 때 점점 조심스러워집니다.^^

syo 2019-09-29 21:23   좋아요 0 | URL
뭣도 아닌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생각까지 덧붙여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알라딘은 책 이야기 하는 공간이라 사적인 이야기가 적은 편인데, 그 중에서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더 드문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사랑 때문에 크게 울고 크게 웃고,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사랑을 생각하는 일이 정말 많은데,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만나는 일은 뜻밖에도 드문 것 같습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에코의 경우 시원시원하긴 한데, 저 정도면 오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니 제가 터치할 부분은 없지만요^-^
그냥 에코가 저런 사람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듯이, 저도 에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게 되었달까요.

나비종 2019-09-29 22:43   좋아요 1 | URL
그만큼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말이나 글로 잡아두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않을까요.

에코의 생각 중 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전체적인 생각의 패턴입니다. ‘왈가왈부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부분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여하지 않으면 된다는... 그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인간들이나 종교적인 절차 등 대상에 대한 영역은 아웃 오브 안중이구요.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보니 syo님의 말씀대로 오만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syo 2019-09-30 08:22   좋아요 1 | URL
나비종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신 대목은 저도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말 자체 정론이고, 좋은 말입니다.
나비종님께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인 것을 이해했어요^-^

전 그냥 에코가 맘에 안 드는 것 같습니다. 그의 앞 말이 그의 뒷 말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랄까요.

개인적 견해를 표명한 것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움베르토 에코라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개인‘이 과연 온전한 개인이라고 볼 수 있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엄연히 다수 대중에게 공개되는 출판물에 표명한 견해를 온전히 개인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에코에게 ˝공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적 견해도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파장을 고려하여 발언해야 한다. 그들의 발언은 일반 대중 개개인의 한마디보다 무겁고, 그래서 그들은 말을 좀 더 윤리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그게 불편하다면, ‘그런 허례를 피하려면 그저 집에 있으면 되‘듯이 개인의 견해는 그저 일기장에 쓰고 혼자 읽든지, 아니면 ‘이슬람교 신자가 되지 않으면 그만‘이듯이 윤리적 고려 없이 발언해도 파장이 적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게 좋겠다.˝ 라고 말하면 에코는 어떻게 대답할까 하는 문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