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될 놈 블루스
1
그저께 밤에는 누웠는데 갑자기 못해도 나방 급은 되는 커다란 벌레가 오른쪽 귓바퀴를 스치는 기분이 들었다! 개섬찟. 급하게 오른손을 들어 셀프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그걸 또 맞았는지 이번에는 뭔가 뒷목을 스윽- 긁고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 뭐지 이 끔찍한 밤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면은 이렇게 외치고 외면은 으우와와아우와아오아오오오우! 이렇게 외치면서 재빨리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서 집어던졌다. 그리고 온몸을 탈탈 털었다. 달도 없는 밤의 침대 위 춤추는 오랑우탄 한 마리.
그런데 아무리 침대며 벗어놓은 옷가지며 샅샅이 뒤져봐도, 벌레가 발견되지 않았다. 투명 나방? 공포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나방의 야르르한 날개가 귓볼을 스르르 간지르는 느낌이 났고, syo는 재빨리 화장대 거울 쪽을 바라봤는데…. 아, syo의 귀를 간질인 것은 다름 아닌 syo의 옆머리였다…. 목덜미는 뒷머리가 그랬다…. 내가 날린 귀싸대기에 오른쪽 귀는 이미 벌겋게 변해 있었다. 아, 내가 날 패다니. 이렇게는 안 돼. 맞고는 못 살아.
이런 이유로 머리를 훅 잘랐다.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머리카락보다 많은 듯. 파마syo는 바가지syo가 되었고, 붉은악마 머리띠는 반으로 똑 부러뜨려 쓰레기봉지에 집어넣었다. 물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오랑우탄은 난폭하지.
2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고 믿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 믿음은 내가 이 세상을 위해서 뭔가 해내는 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의 자의식과잉 버전인 동시에, 나 없으면 이노무 세상 굴러가기나 할까 하는 생각보다는 미세하나마 더 제정신이다. 그리고 이따위 망상은 살면서 몇 대 얻어터지다 보면 금방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세상이 내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단계가 찾아온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일은 서글프긴 하지만 일견 자유로운 맛도 있다.
저 두 단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인간은 세상의 본심에 대해 점점 더 모르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냥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고 자신을 채근하며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내가 원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를 자꾸만 의심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 인생이 불안하고 한치 앞도 모를 때, 하루하루의 행복에 집중하고 살자며 위로한다. 오늘 하고 싶은 것, 오늘 읽고 싶은 책들을 치워 두고 하기 싫은 일들을 잔뜩 하면서는, 장기적으로 더 행복하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잠시 미루는 거라 또 위로한다. 답을 못 낼 거면 생각이나 하지 말지 괜히 생각만 많아서 될 일도 안 된다고 탓하고, 그러다 망하면 내 생각이 짧았다고 탓한다.
그러는 와중에 눈치는 늘어, 사랑 받겠다 싶으면 좁은 틈도 얼른 치고 들어가고, 미움 받겠다 싶으면 재빨리 발을 뺀다. 심한 말을 하지 않으려다보니 심한 생각만 쌓인다. 모두에게 미움 받지 않으려고 용쓰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인간이 된다. 그런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 기회를 본다. 그러는 와중에 눈치는 늘어, 사랑 받겠다 싶으면 얼른 치고 들어가고…….
자존감 낮은 인간을 사랑하면 삶이 피곤하다고 한다. 그래서 syo는 늘 만성피로. 이런 모자란 자신을 쓸데없이 너무 사랑해가지고…….


똥을 닦고 확인해보면 간혹 휴지의 엉뚱한 곳에 똥이 묻어 있을 때가 있다. 신경 써서 닦은 곳은 깨끗하고, 터무니없는 부분에 똥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똥구멍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고 잘도 삼십 년을 살았구나'하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놈일 땐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나쁜 놈일 때도 그걸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제일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나쁘다. 이미 지은 죄가 많아 훌륭한 사람이 되기란 글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 몸에 난 뿔도 모르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알고는 싶다.
_ 유병재, 『블랙코미디』
욕망은 언제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실현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어떤 것을 더 많이 욕망한다. 그때 우리는 그 흐름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균열 때문에 그에 대해 우리가 갖는 정서는 사랑과 미움을 오고 간다. 어느 날 갑자기 정서는 그 반대로 변화할 수 있다. 갑자기 사랑이 미움으로 변화될 수 있다(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 감정은 그 시작부터 애매모호하다.
_ 발타자르 토마스,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서울역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고 또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키 작은 사람을 기다리면 키 작은 사람들이 많고, 모자 쓴 사람을 기다리면 모자 쓴 사람들이 많다. 병원에 가면 세상은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고,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잃고 차를 모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세상엔 사람과 사람의 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은 어김없이 쓸쓸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_ 신용목, 안희연, 『당신은 우는 것 같다』
--- 읽은 ---



+ 대항해시대의 탄생 / 송동훈 : 122 ~ 363
+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 오규원 : 57 ~ 127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지그문트 바우만 : 54 ~ 144
--- 읽는 ---


= 사진을 읽어드립니다 / 김경훈 : ~ 177
=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