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계급sex 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성의 변증법을 펼쳐 저런 첫 문장을 만났고, 파이어스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일지를 꽤 오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투명괴물은, 성적 계급일까 아니면 그 뿌리깊음일까?

 

첫 문장은 뒤따르는 모든 문장이 걸어갈 방향을 지시하는 손가락이다. 만약 보이지 않는 것이 뿌리깊음이라면, 우리는 그 뿌리의 미세한 한 끝을 부여잡은 자리에서 여정을 시작해, 역사를 종으로 문화를 횡으로 엮어가며 성적 계급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규명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만약 보이지 않는 것이 성적 계급 자체라면 우리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일, 보지 못하는 사람과 보이지 않게 하는 사람 사이에 놓인 힘의 역학관계를 드러내는 일이 될 테고, 보이지 않음과 보지 못함 사이의 얇은 경계선을 인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먼저일 것이다.

 

두 개의 길은 물론 끝에서는 만나겠으나 처음 뻗어나가는 방향이 너무도 다르다. 한 권의 책이 곧 한 번의 여행이라면, 첫 문장과 맞닥뜨린 독자는 출발지에 선 여행자처럼 자신이 갈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있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보폭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저 문장이 원래 어떻게 생겼을지 살펴보기로 하였다.

 

성적 계급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Sex class is so deep as to be invisible. 


보이지 않는 것은 성적 계급의 뿌리가 아니라 성적 계급 그 자체인 듯하다. 그렇다면 대답되어야 할 질문은 이렇다. 보이지 않는데 있긴 한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것을 파이어스톤은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왜일까? 그리고 감은 눈을 뜰 수 있다면, 혹은 뜬 눈을 감길 수 있다면,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일까?

 

첫 문장을 읽었다. 두 번째 문장으로 나아가기 전에 배낭을 한 번 풀어, syo가 지니고 있는 여행도구들을 점검해보자. 허접해도, 어쨌든 이미 가진 대로 읽어질 것이다. 여행의 모양새는 여행자의 자질과 상관관계가 크다. 조건이 형식을 바꾸고, 책은 읽는 이의 생김대로 읽힌다.

 

 

 

0.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는 손쉽지만 멍청한 방법이다.

 

인정할 수 있는 명제는 이렇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고등학교가 syo에게 가르친 논리에 따르면 명제는 자신이 참이더라도 그 역명제의 진실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면 -> 보이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보이지 않으면 ->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려주는데 논리적으로 눈곱만큼의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면서 본 가장 한심한 짓 가운데 하나가 ,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하나도 없어.” 라는 말을 가지고서 사실에다가 뭐라도 발라 보려는 시도였다. 네 주변에 그런 사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네 주변에 그런 사람 하나도 없다는 사실 외에는 그 어떤 사실도 증명하지 않는다.


 

 

1. 투명 이데올로기

 

무언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연신 들리는데 그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면, 제일 먼저 붙잡아 심문해 봐야할 용의자는 바로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지난하겠지만 그 심문과 고문의 과정을 착실히 거치고 나면 대체로 그놈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고, 누구나 몇 개씩 지니고 있으나 남이 지닌 것만 보인다는 그것. 이데올로기. 제 지붕 아래 사는 이들에게는 결코 관측되지 않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타고난 속성이다.

 

투명함이 이데올로기의 속성이라면, 이데올로기의 욕망은 끝없는 견고함이다. 세상에 출현한 수없이 많은 이데올로기들은 연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오래 쓰였고 지금도 쓰이고 있으며, 늘 효과적이었고 지금도 효과적인 방법이 분할-정복이다. 쪼갠다. 한쪽에는 사탕을 먹이고 다른 쪽에는 매를 때린다. 알게 한다. 누군가의 매가 곧 누군가의 사탕이란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사탕 먹은 쪽이 알아서 매를 친다. 이데올로기의 주인이 할일은 사실상 끝났다. 이제 그는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하면 된다. 세상은 알아서 굴러간다.

 

 

 

2. 보이는 사람 / 보이지 않는 사람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은 늘 있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저마다 인간을 위한 것이었고, 그런 것이어야만 했는데, 실제로 모든 인간을 위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위할 수 있는 것들만 인간으로 취급하기로 한다. 어떤 인간은 인간으로, 어떤 인간은 인간 아닌 인간으로. 인간은 인간 아닌 것들의 아픔을 잘 보지 못한다. 아픔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내 그 자체 희미해지고 보이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자꾸 태어났다. 전쟁 노예, 천민, 마녀, 흑인, 집시, 유대인, 동성애자, 아동, 여성, 난민과 가난한 나라의 시민들.....

 

초기 국면에서는 그런 투명인간화 전략이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효과적인 것처럼 보였다. 인간인 인간들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사정은 달랐다. 이데올로기로부터 배제되는 순간, 그들에게는 이데올로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무너진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손에 망했다. 또한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망하는 순간까지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세상 말세를 외치며 사악하거나 극히 멍청한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에서는 누구보다 인간으로 보이는 인간들이었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3.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기 / 말하지 않기

 

말의 깊고 넓은 웅덩이가 있다. 말해진 모든 말들이 그곳으로 흘러든다. 입은 작고 손가락은 약해서, 내가 만든 한 마디의 말은 그 웅덩이의 색이나 농도를 바꾸기에 미미해 보인다. 참을 수 없는 내 언어의 미미함이 말을 쉽게 만든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말이라 도리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미미한 말들도 쉽게 말해진 말들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다 웅덩이로 간다. 미미하나마 자신의 색을 웅덩이에 더한다. 말의 웅덩이는 모두의 것이다. 말 사용자는 살기 위해 그 물을 마시지만, 그 물을 마시고 나면 결코 그 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이 신체를 구성한다. 언어는 세상이다.

 

왜놈은 없다. 일본인은 있다. 물론 왜놈보다 더한 일본인도 있을 수 있고, 왜놈만큼은 아닌 일본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왜놈은 말의 웅덩이 속에만 있고, 말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이미지인 동시에 아무도 공유하지 않는 이미지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을 만나 함께 도모하던 일이 만족스럽게 흘러가던 중에도, 어떤 계기로 그가 말 웅덩이 속 왜놈 이미지의 극히 일부분을 체현하는 순간 우리는 즉각적으로 왜놈 이미지의 전체를 환기한다. 물론 그저 그 이미지를 떠올렸을 뿐, 눈앞의 일본인을 왜놈으로 등치시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겠으나, 어떤 이미지의 습격을 받고 나면 모든 것이 이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울타리에 칼자국을 남기지 않고 선선히 돌아가는 이미지는 없다. 다음에 오는 이미지는 앞 이미지가 남겨놓고 간 그 칼자국에 집요하게 자신의 날을 덧댄다. 인간은 말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말들의 공격에는 버티지 못할 운명이다.

 

그래서 미세한 말들은 세상의 각도를 미세하게나마 돌려놓는다. 내가 씨발이라고 쓰면, 말의 웅덩이가 한줌 씨발에 가까워진다. 웅덩이에 들른 누군가는 살려고 마신 말 때문에 죄도 없이 몸에 씨발을 품고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몸으로 말할 것이다. 그 말들 또한 웅덩이로 모일 것이다. 내가 더러운 게이새끼라고 말하면, 더러운 게이새끼들이 태어난다. 하지만 더러운 게이새끼는 없다. 내가 난민들은 죄다 우리나라를 더럽힐 더러운 범죄자 새끼들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범죄자가 된다. 하지만 내국인에 비해 특별히 더 범죄를 사랑하는 난민들은 없다. 내가 인종 차별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지껄이면 말의 웅덩이 속에서 차별의 존재성이 희미해진다.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저 밖에는 여전히 그것들이 그대로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내 탓은 아니지만, 한 번 만들어진 혐오의 말은 그 혐오를 완성시키는 데 결코 양도될 수 없는 지분을 지닌다. 그 혐오가 마침내 죽든 끝내 살아남든, 그 혐오 지분의 배당금은 내가 사는 내내 집요하게 배달될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는 만큼, 이미 말해진 것들에 대해 세심해야 한다. 그 어떤 말도 중립적이지 않고, 그저 보이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다고 한 말이, 보일 수 있고 보여야 할 무엇인가를 더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도 있다.

 

 

 

4. 족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문장을 읽으러 가야겠다.

 

 

--- 읽은 ---

한국요괴도감 고성배 : 200 ~ 399

정신의 고귀함 롭 리멘 : 137 ~ 247

한나 아렌트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 : 4 ~ 242

+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 악셀 린덴 : 113 ~ 220


 

--- 읽는 ---

반성 김영승 : 11 ~ 76

- 어제는 봄 / 최은미 : 9 ~ 81

-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씨에지에양 : 4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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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1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제가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고 합니다. 와우-
제가 어렵다고 징징대던 페이퍼랑은 차원이 다른 페이퍼를 써내셨네요. 와.. 대박..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퍼의 모든 부분이 좋지만, 특히나 마지막에 ‘그 어떤 말도 중립적이지 않고‘에 두 줄 밑줄 긋습니다. 저는 사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쇼님,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읽어주시면 안돼요? (간절한 마음으로 눈물 그렁그렁 담아 쳐다본다)

syo 2019-06-18 10:45   좋아요 0 | URL
맨날 하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사실 이제 새로 할 말이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첫 문장 읽었는데 너무 먼 미래의 일을 벌써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ㅋㅋㅋㅋ

2019-06-18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8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8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6-1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 님 얼마 전 시험이라 하셨는데 잘 마무리 하셨는지요? 푹 쉬면서 좋은 독서 시간 가지세요!^^:)

syo 2019-06-18 14:11   좋아요 1 | URL
덕분에 쾌조입니다 ㅎㅎㅎㅎ 호랑이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