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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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욕심이라곤 개불 새끼발가락만큼도 없지만 제임스 설터처럼 쓸 수 있게만 해준다면야 소설 그거 몇 만 번이고 시도해 볼 수 있다- 뭐 이런 주의다. 설터를 향한 나의 사랑이 이렇게 맹목적이다.

  

-1.1  나도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 라는 욕심에 부질없이 몸부림치게 만드는 작가가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있는 줄만 알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확고하지만 딱히 워너비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른 쪽으로 씁쓸하게 한 발짝 더 밀려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르구나. 너는 내가 이상하겠지. 내게 네가 이상하듯이.

 

 

2  나는 언제나 나의 글이 싫었다. 대체로 하찮고, 그래서 늘 보잘것없어 보였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찮고 보잘것없을 예정이다. 예정이란 말은 살짝 비겁한 것 같고, 그러면 운명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걸 다 알면서도 쓸 일만 생기면 썼고, 쓸 일이 생기지 않으면 쓸 일을 만들어서 썼고, 쓸 일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냥 썼다.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는 늘 양심의 가책이 뒤따르지만 한 가지 강령만 준수하면 그런대로 견뎌낼 만하다.

 

-2.1  지금 쓰는 문장이 지금까지의 내가 고민 없이 써낼 법한 그저 그런 문장이라면, 미련 없이 내다버릴 것.

 

-2.2  하지만 재능 없는 사람에게 그건 결국 아무것도 쓰지 말자는 다짐이나 같다. 보채듯 깜빡거리는 커서를 마주하고 앉아서 자신 있게 누를 수 있는 키라고는 스페이스와 백스페이스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시간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타협의 때가 왔다. 살아야 했으니까.

 

-2.3  딱 한 문장, 한편의 글 속에 어제까지는 결코 이 세상에 없었을 문장을 더도 말고 딱 하나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기꺼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2.4  세상은 넓고, 냉혹하리만치 좋은 문장들이 많고, 그 결과 스스로를 용서해줄 설득력 있는 변명거리가 될 딱 한 문장을 찾는 것조차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2.5  결국 나는 철저하고 처절하게 물러선다. 내가 뭐라고. 내 깜냥에 뭐 안나 카레니나를 만들 거야, 토지를 만들 거야. 유별나게 굴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3  한 인간의 삶과 또 그가 스스로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글 솜씨를 놓고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삶에 비해 글이 부족한 사람, 글에 비해 삶이 부족한 사람, 그리고 삶과 글이 서로에게 충분하고 충만한 사람.

 

-3.1  어느 시점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넘치는 삶과 그 삶을 다 표현하기에 너무도 미흡한 글을 지니고 산다. 그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정한 경계선을 넘어서는 때가 찾아오고, 인간은 세 갈래 길 가운데 한 쪽으로 떠밀려 나아간다. 삶이란 지칠 줄 모르고 덤벼드는 짐승 같아서, 대부분의 경우 삶이 축적되는 속도는 몸 가누기 어려울 만큼 빠른데 비해 글이 단련되는 속도는 느리다


-3.2  또 어떤 이들은 삶에 실컷 물리고 두들겨 맞은 상처를 품에 안고 골방으로 숨어들어 죽은 체하거나 와신상담한다. 숨어버린 그들을 찾는 삶의 이빨이 닿지 않는 동안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의 글을 단련하는데, 그런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간혹 글이 삶을 넘치는 인간이 탄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 같은.

 

-3.3  돌을 맞은 호수의 파문이 수면보다 높이 섰다 낮게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잠잠해지듯, 삶과 글이 서로에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인간이 되는 일은, 둘 중 어느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초과하는 국면이 교대로 일어나는 파도 위에서 실컷 자빠져가며 긴 서핑을 끝내고 난 뒤에야 겨우 이를 수 있는 드높은 경지다. 빼어난 글을 욕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하며, 훌륭한 삶을 갈구하는 데 지치지 않아야 한다. 훌륭한 삶을 빼어난 글로 드러내는 것. 훌륭한 내용과 빼어난 스타일,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소설을 사랑할 때 놓치지 않고 손에 꼽는 조건들이다. 그리하여 한 인간이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한 권의 소설책처럼 여겨진다면,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은 좋은 인간이 되는 방법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삶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3.4   삶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3.5   

사심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건 기교의 문제가 아니에요나는 솔기가 터져서 나 자신이 적절히 드러나게 하려면 어느 정도까지 고백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어요동시에 소설처럼 읽히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내 삶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 77

 

4  어디서든 흔히 들을 수 있을 것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듣기란 의외로 쉽지 않은 말 가운데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 인생 역정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 한 편은 거뜬하다고같은 대사가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주로 인간사보다는 인간됨을 드러내는 용도로, 그가 없는 자리에서 타인의 입으로부터 또 다른 타인의 귀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조롱으로 쓰고 버리기에 아까운 어떤 진실의 작은 파편 같은 것들을 저 말이 지니고 있어서 한 번 쪼개 본다.

 

-4.1  잘 된 소설들을 뒤져보면 의외로 역정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의 연속이 없이도 단단한 서사와 설득력 있는 서술로 책 한 권을 꽉 채운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는 이제 초현실적/비현실적 사건들을 만나면 소설 같다라기 보다는 영화 같다고 표현하는 쪽을 즐긴다. 소설 같은 이야기의 문턱은 예상보다 낮다. 소설 속 사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겪음직하고, 실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어 넘기는 사건들은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소설적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에 이야기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야기에 우리의 삶은 충분하다(물론 아닌 인간도 있다. 예를 들면 나 같은.)

 

-4.2  그러니까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루의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혹은 더 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세심하게, 혹은 더 아름답게 묘파할 수 있는 글 솜씨일 수 있다. 가만 두면 허공에 흩어져버릴 뿐인 삶을 잡아채 고정시키면 우리는 그것으로 서랍을 만들어 과거를 보관하고, 거울을 만들어 현재를 살피고, 비료를 만들어 미래를 가꿀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을 쓰지 않는 이에게 역시 소설을 쓰는 법은 불필요하지 않다.

 

 

5 

  물론 하나하나의 단어가 모두 다 완벽한 단어일 수는 없습니다모든 방이 다 강이 바라보이는 방일 수는 없잖아요수많은 평범한 단어들이 한 권의 책을 만듭니다수많은 평범한 군인들 사이에 가끔씩 영웅들이 있는 군대처럼 말입니다하지만 잘못된 단어들또는 문장이나 해당 페이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단어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한 감식력이 있어야 합니다글이 나빠졌을 때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요.

실은 올바른 단어는 없을 겁니다완벽한 단어는 더더욱 없을 테고요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바꾸어서 두 단어를 바꾸거나 혹은 그 문장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모든 책이 모든 문장모든 단락에 대해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모든 작가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좋은 정도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문체style는 그와는 다른 것입니다문체는 철저히 작가인 것이지요독자가 몇 줄 또는 한 페이지의 일부만 읽고 나서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그때 그 작가는 문체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플로베르는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없애려 노력했지요마치 자신의 태도자신의 아이러니 감각자신의 취향 등이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는 듯 자기 자신 없이 작품이 존재하게 하려고 노력한 겁니다하지만 그는 작품에서 자신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작품에는 다른 어떤 것이 있으니까요나는 '문체'라는 말에 저항감을 느낍니다왜냐하면 그 말은 '장식'이나 '양식같은뭔가 긴요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그래서 나는 종종 문체 대신 '목소리'라는 말을 선호하곤 합니다문체와 목소리는 정확히 똑같은 것은 아니에요문체는 선택적인 것이고 목소리는 거의 유전적인 것전적으로 독특한 것이지요다른 어떤 작가의 글도 이사크 디네센처럼 들리지 않습니다그 누구의 글도 레이먼드 카버나 포크너처럼 들리지 않습니다그들은 끊임없이 고쳐 씁니다바벨플로베르톨스토이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 말입니다그들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고쳐 써야 하는 형벌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그들이 쓰려고 했던 것은 그게 아니니까 말이에요혹은 쓰려고 했던 게 잘못 생각한 것이었으니까요또는 고치면 더 좋아질 수 있을 테니까요너무 길거나 단조롭거나 요점을 벗어났거나 좀 엉성한 것 같아 보이니까 말이에요그렇지만 그 작품은 언제나 그들이 한 말처럼 들립니다그것이 그들의 문체입니다그들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_ 30-31

 

-5.1  세상엔 목소리가 너무나 많고, 그 가운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거나 부러울 정도로 힘 있는 목소리들도 있어서, 초라하고 약한 내 목소리 하나를 세상에 풀어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오히려 뭔가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한다. 그럼에도 뭔가를 계속 쓰는 이유는, 아무리 아름답고 힘 있는 목소리라도 세상 모든 곳에 닿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아예 소리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삶이라면 내 목소리가 미치는 좁은 영역을 들어 줄만한 소리로 채워나가는 것은 내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목소리를 가장 크게 듣는 귀는 바로 내 귀라는 것 때문이겠다.

   

-5.2  목소리는 힘이 세다. 잘 들리기만 한다면. 목소리를 잘 들리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귀의 책임만은 아니다. 목청을 가다듬고, 혀를 부드럽게 하자. 웅얼거리지 말고, 진실한 눈빛과 따뜻한 표정으로, 목소리 뒤에 숨지 말고 목소리 앞을 가리지도 말고, 그저 목소리 위에 올라타서.

 

 

6  , 그리고 부록도 있다. 잘 들리게 말하는 사람은 잘 듣는다. 잘 듣지 않고 잘 들리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6.1  써놓고 생각해 보니 부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큼직한 선물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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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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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5-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읽고도 이렇게 멋있게 쓰시면...아니 게다가 설터보다 더 “-쓰고 싶다면”에 적합한 글을 이리 쓰시면...읽는 저는 감사합니다. 오늘은 (비루하게) 쓰는 저도 함께 감사드립니다.

syo 2019-05-13 13:11   좋아요 1 | URL
왜 또 이러세요ㅋㅋㅋㅋㅋㅋ 또 저하고 민망배틀 한 판 뜨실 거예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5-13 15:28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 정도 잘 쓰신 글은 서재 올리면서 흠 나 좀 잘 쓰는 듯-하고 으쓱 하시지 않나요? ㅋㅋㅋ 계속 으쓱 하는 글 올려주세요. 저는 계속 으둠의 영역을 맡을게요. (넌 못 쓰고 너도 못 쓰고 난 더 못 써! syo는 잘 써!하는ㅋㅋ)

syo 2019-05-14 07: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으쓱으쓱 아니랍니다.
올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늘 삐꾸같은 데가 많아서 글 하나 올리면 ‘수정‘ 버튼을 평균적으로 5~6번은 누른다구요.
으둠의 영역도 좋지만, 밝은 세상 함께 만들어요.....?

반유행열반인 2019-05-14 10:06   좋아요 0 | URL
고치고 고치라는 설터 할배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르고 계시군요. 짝짝짝. (으둠이 있어야 밝음이 더 짙어지지요ㅎㅎ)

2019-05-14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3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식쟁이 2019-05-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적고뇌 중이신 쇼님. 👍👍

syo 2019-05-14 07:57   좋아요 0 | URL
작가적 고뇌 같은 무시무시한 고뇌 아니에요 ㅎㅎㅎㅎㅎ
우우

칼르페디엠 2019-05-13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무원 시험 준비중이셨군요. 제가 보기엔 쇼님은 작가를 하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재능이 아까워요.
공무원이라니요..T..T
제가 잘 아는데 공무원의 삶은 정말 쇼님하고 잘 안맞을 듯요.
재고하시고 쇼님의 재능을 살려보세요~!

syo 2019-05-14 08:04   좋아요 0 | URL
칼르페디엠님은 저를 항상 좋게 봐 주시지요. 늘 작가를 권하시구요 ㅎㅎㅎ
이것 참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항상요 ㅎㅎ

저는 공무원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제 재능에 대해서는 좀 알 것 같거든요. 전 그냥 알라딘 서재에 이런 저런 잡글이나 쓰면서 즐거워하면 될 딱 그 정도 깜냥이에요^-^

아직 공무원이 되지도 못했고, 운 좋게 공무원이 되어도 공무원으로 제 인생이 끝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작가의 길을 걷기에는 제 재능이 비루하다는 거? ㅎㅎㅎㅎ 칼르페디엠님의 말씀은 정말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듣고 만족하겠습니다.

2019-05-14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5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길담 2019-05-15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자주 쓰게 되는 대학원생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한 편의 글 속에 결코 이 세상에 없었을 문장을 딱 하나만 만들어내기. 이것만 할 수 있어도 참 감사할 것 같아요.

syo 2019-05-15 09:53   좋아요 1 | URL
길담님 반답습니다.
꿈의 한 문장, 재능 없는 사람에겐 정말 꿈 같은 이야기인데요. 요즘은 이번 생을 통틀어 딱 한 문장 건지는 걸 희망하며 살아야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