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정경湖畔情景 2
1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샜는지. 나는 다소곳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를 되뇌고 되뇌며 그때의 표정이 되어서. 나는 언제고 듣고 또 들었다. 곰을 무서워하면서도 곰인형을 안고 좋아했듯이. 그 얘기가 좋았다. 그 얘기를 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 얘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좋았다. 그날의 이야기에 그날이 감금되는 게 좋았다. 그날을 여기에 데려다 놓느라 오늘이 한없이 보류되고 내일이 한없이 도래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그리하여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처음 만났던 날로부터 그렇게나 멀리 떠나가는 게 좋았다. 귀여운 병아리들이 무서운 닭이 되어 제멋대로 마당을 뛰어다니다 도살되는 것처럼. 그날의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마다 우리가 없어져버리는 게 좋았다. 먹다 남은 케이크처럼 바글대는 불개미처럼. 그날의 이야기가 처음 만났던 날을 깨끗하게 먹어치우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혹한의 공원에 앉아 떨고 있을 것이 좋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손을 꼭 잡은 채로 영원히 삭아갈 것이 좋았다.
_ 김소연, 「다른 이야기」 전문
조용히 부를수록 더 좋은 이름이 있어, 두 작은 목소리는 나란히 앉아 조용히 조용히 점점 더 조용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불렀다. 이름이 작아질수록 세상이 커지고, 세상이 커질수록 들리는 것이 많아져 두 작은 목소리는 조용한 표정으로 열심히 열심히 더 열심히 자신의 이름을 듣고 또 들었다. 부르는 이름이 조용히 조용히 멀어지고 불리는 이름이 조용히 조용히 가까워지더니 가운데에서 딱 만나 이름이 이름으로서 이름을 휘감고 이름이 되어 다시 돌아서는 것이 보였다. 이름은 열심히 작아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모든 것이 들렸고, 두 목소리는, 어느덧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르고 있던 두 목소리는 이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고 알 수 없이 좋았다. 세상이 열심히 작아져 하나의 이름으로 수렴하였다. 목소리는 그 이름이 누구의 이름인지 무엇의 이름인지 이 세상의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목소리는 이제 말할 수가 없었고 말할 수 없이 좋았다.
2
”책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럴 겁니다.“ 입에서 이 말이 새어나왔을 때, 베케트 박사는 좀 더 완곡한 표현으로 돌려서 말해야 했던 것은 아닌지 잠시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바람이 새는 소리는 내도 고래고래 화를 내기에는 공기가 충분치 않은 폐로 마르크스는 으르렁거렸다. ”객관적인 학문적 사실을 제시하는데 셰익스피어나 하인리히 하이네의 언어는 필요 없소.“
_ 일로나 예르거, 『두 사람』, 136쪽
”정말로 제 책을 읽으려고 해 보신 것이오?“ 마르크스의 기분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예, 시도해 보았습니다. 실패했지만요.“
”선생이 말한 것이 정말이라면, 그건 내게 수수께끼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어,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셨다고요?“
”케임브리지입니다.“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한 사람이 내 분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어쩌면 선생에겐 인내심이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영국인 벌레 수집가가 심지어 독일어로 읽고도 이해한 책이란 말입니다!“
_ 같은 책, 137쪽
조금 똑똑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스스로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실은 그저 내 설명이 후진 것은 아닐까? 알고보면 내 말솜씨가 물솜씨는 아닐까? 아, 이 내가 여기다가 설명까지, 말까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하는 생각. 그런 경우, 136쪽의 마르크스처럼 대응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정말 드물게 진짜 천재들을 만나면, 그들이 범재들의 범재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니, 이게 어렵다고? 이 명백한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왜? 도대체 왜? 천재들은 137쪽의 마르크스처럼 대응한다. 어려운 게 아니라 당신이 들을 마음이 없는 거라고. 136쪽의 마르크스는 분노하지만 137쪽의 마르크스는 좌절한다. 범재가 천재를 이해하지 못하듯, 천재도 범재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저 ‘영국인 벌레 수집가’는 찰스 다윈을 말하는 것인데,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 1권을 다윈에게 보냈다. 당시는 새 책의 낱장이 붙어서 출간되는 시절이라, 읽는 이가 도구를 이용해 직접 책장을 갈라야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다윈의 서재에 꽂힌 <자본>은 다윈의 사후까지도 104쪽까지만 책장이 갈라져 있었다고 한다. 다윈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고 syo처럼, <자본>을 읽다가 집어던진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 사실을 끝내 모르고 죽었다.
이 오해는 두 가지 사실을 함축한다. 첫째, 다윈이 마르크스의 혼란과 좌절을 부추겼다. 마르크스는 당신 생각에 조금의 노력만 투자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본>이 읽히지 않는 것을 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력이 아니라 의지력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건 혁명가에겐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어느 한 분야에서 역사의 물길을 뒤바꿀 정도의 천재이더라도, 다른 분야에선 서글픈 범재일 수가 있다. 뒤집어 말하면, 만사에 범재거나 둔재로 보이는 syo조차 어쩌면 어딘가 천재적인 구석을 지니고 있으며, 단지 발견을 못해 비루해 보인다는 것! 와아.....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힘이 나네..... 힘이..... 와아.....
전개된 가치형태에서는 '교환 가능성'이 '등가성'을 나타내지만, 일반적 가치형태에서는 '등가성'이 '교환가능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에서는 한 상품이 다른 상품으로 교환된다는 사실이 두 상품이 등가적임을 말해주지만, 후자에서는 일반적 등가물로 표시될 수 있어야 해당 상품이 다른 상품과도 교환될 수 있는 상품임을 인정받는 것이죠. 도시에서 어울려 살다 보면 시민이 되는 줄 알았는데, 시민권이 있어야 시민으로서 도시에서 어울려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할까요.
이런 게 바로 표상권력, 대표권력입니다. 대표를 통해 내 의사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대표가 표현해주지 않으면, 다시 말해 대표를 통해 표현할 수 없으면, 내게는 의사가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음을 알게 된 거죠. 상품들은 상품어로 말한다고 했는데요. 이를테면 저고리는 아마포로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언어구조가 그 자체로 권력구조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상품은 자기 가치를 말하기 전에 사회적인 것에 순응해야 합니다. 일반적 가치형태는 상품에게 '상품으로 인정받으려면 순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가치형태는 주권형태입니다. 그것은 복종과 순응을 요구하는 명령체계입니다. 나는 앞서 '가치를 가진 사물'을 상품이라고 불렀는데요. 이제는 약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치를 인정받은 사물'이라고요. 가치를 주장하기 이전에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상품이 된다는 것은 순응을 강요받는 것, 복종해야 한다는 것, 즉 폭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_ 고병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121-122쪽
친절함을 모르는 남자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상품들이 가치로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가치대상성)은 순전히 이 물건들의 '사회적 현존'에 의거하기에, ...... 결국 상품들의 가치형태는 사회적으로 타당한 형태여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그걸 고병권 선생님은 저렇게 풀어낸다. 이러니 syo가 입문서 빠돌이를 벗어날 수가 없다.
3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쫓겨날 즈음 백석에게 시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인으로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백석에게는 더 시급했다. 해방 이후 백석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단순히 예술성을 망각하고 시를 정치도구화한 파렴치한 행위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백석이 북한에서 아동문학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한 마지막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의 지도 아래 놓인 북한의 문학을 조금이라도 더 보편적인 미학의 논리도 되돌려놓겠다는 그의 문학주의는 결국 꺾일 수밖에 없었다.
_ 안도현, 『백석 평전』, 413쪽
오늘이라는 것은 언제건 어디서건 육박하는 물건이고, 그 속에서는 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어려운 물건이고, 언제나 내일에게 논박당하는 물건이다.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했던 백석은 어떤 백석일 수 있었으며, 어디까지 백석일 수 있었으며, 또 어디까지 어떤 백석이어야 했을까. 하물며 syo는 어떤 syo일 수 있으며, 어떤 syo여야 할까. 오늘의 syo는 어디까지 syo일까. 세상은 어느 언저리까지 syo를 침투하고, syo는 어디까지 양보하는 척 양도하며 살고 있을까.
흰 바람벽을, 치고 싶다.
-- 읽은 --
고병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안도현, 『백석 평전』
김소연, 『i에게』
일로나 예르거, 『두 사람』
-- 읽는 --
앤디 메리필드, 『아마추어』
앤서니 스토, 『공격성, 인간의 재능』
오은, 『나는 이름이 있었다』
찰리 맥도넬, 『웃기는 과학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