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눈
1
밤이 검은 게 아니라 검정이 밤을 닮은 것이다. 검어서 밤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 어둠이 검정을 낳은 것이다. 그 고장에서만큼은 그랬다. 겨울이 깊어지면 밤의 명암도 깊어지는 고장의 겨울밤은 묻어날 듯 진한 어둠으로 사방을 둘러쳐 오직 이 겨울 속에 밤만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눈 내리지 않는 밤이면 세상은 검정 속에 깊이 돌아앉고 고요하게 나는 외로웠다. 눈 내리지 않는 밤이면.
눈에 눈 덮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본 사람은 안다. 알고 보면 눈이 얼마나 떠들썩한 녀석인지. 허공은 눈송이의 놀이터, 눈은 야행성 동물이다.
밤 닮은 색을 검다고 부르는 고장의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다시 온 세상이 내 쪽으로 돌아앉아 내리는 눈을 나와 함께 본다. 눈 내리는 모양을 말할 때, 왜 펑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나 펄펄 무언가 끓어오르는 소리를 쉽게 빌려다 쓰게 되는지 배우는 밤, 눈은 소리로 내린다. 밝은 소리로 내린다. 구름 반대편에 우주는 펼쳐져 있다. 눈송이보다 많은 별들이 우주에 매달려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흔들리다가 지금, 하나쯤, 두어 개쯤, 백만 천만 개쯤 되는 별들이 열매처럼 구름 위로 퐁당 뛰어들었을 것이다. 깊은 머그컵에 가라앉아가는 각설탕처럼, 별들은 녹고 번지고 흩어져 희고 가벼운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눈은 이렇게 밝고 눈 내리는 밤은 또 이렇게 밝고 왁자지껄하여 옅은 잠을 두드려 쫓아내는 것이다. 나는 잠도 잊고 밤도 잊고 어둠도 잊고 어두움도 잊고 외로움마저 잊은 채 깨어나 앉아 하얗게 창문을 두드리는 별의 치어稚魚들을 보았다. 하릴없이, 속절없이, 열없이, 덧없이 보았다. 스노우볼 속에 포획된 눈사람처럼 밤에 포획되어 흔들림 없이 나는 보았고 흔들리는 것은 밤과 시간뿐이었다. 페르세우스 이전에 메두사와 맞서야 했던 모든 전사들이 그랬듯, 나는 눈 내리는 밤과 함께 이대로 굳어버리기를 겁내는 한편 이대로 굳어버리기를 욕망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은 하염없이 밤을 흔들고 밤은 한없이 시간을 흔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커다란 짐승의 입 속으로 조금씩 잠겨들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의 머리칼은 수백 마리 뱀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평생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밤이 수억 송이의 밝은 이빨로 내 목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찰나, 갑자기 내 손을 잡아채는 너의 손이 있었다. 그 손은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웠고 나는 네 손에 크게 데었다. 아, 눈 열라 오네. 나는 놀라 너를 바라보았지만 너는 눈 내리는 밤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 이거 다 치워야 되겠네. 시발, 잘하면 새벽에 깨울 수도 있겠다. 형, 조금이라도 더 자. 내 눈은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을 보기를 그치고 네 눈을 보았다. 네 눈은 밤도 별도 어둠도 외로움도 없는 그런 눈이었다. 아름다울 것도 보잘 것도 없는 그런 눈이었다. 그럼에도 새벽이건 아침이건, 내일이건 모레건 치워지지 않을 눈이기도 했다. 그런 눈을 다시 감고 너는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별의 치아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침이면 너는 다시 눈을 뜨고 나와 함께 저 별의 이빨들을 쓸어내 길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둘러보니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감긴 눈이 들숨과 날숨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모아 고작 백 개쯤 되는 눈을 뜨고 수천억 개의 눈을 물리치러 나갈 것이다. 중과부적이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잠깐 잡힌 손의 뜨거움에 기대어 또 하루를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해가 지면 밤은 여전히 밤이고 나는 여전히 외로울 것이었다. 끝나지 않을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한번 더, 내가 아는 수만 개의 눈들을 한번만 더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눈들을, 저 눈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래, 길게, 꼼짝 않고 들여다 본 적은 있었는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네 개의 눈으로 나란히 앉아 137억년 동안 내린 무한한 눈들을 함께 마주보고 싶은 사람이 저 밖 어딘가에서 지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게 그 밤, 나는 눈과 눈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버리고 대신 눈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모포를 끌어올리고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감으니 눈도 눈을 감았다. 눈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저 눈들이 코를 고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꿈처럼 아침은 왔다.



늙은 거미집처럼이라고 적는다.
버려진 집에 뒹구는 이 빠진 종지처럼이라고
서리 덮인 새벽 둑방 길처럼
섣달 저녁의 까마귀처럼이라고 적는다.
폐분교의 엉터리 충무공 동상처럼
변두리 차부의 헌 재떨이처럼이라고
찾는 이 없는 옛 우물과
오래전 버려진 그 곁의 수세미처럼
문을 닫고 힘없이 돌아서는 처용이처럼이라고 적는다.
선득 종아리에 감기다 가는 개 울음소리처럼
혼자 깨어 누는 한밤중의 오줌처럼이라고 적는다.
외롭다고 쓰지 않는다 한사코.
_ 김사인, 「옛 우물」, 전문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_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형을 만나기 전 내게 미지는 언제나 기쁨이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움 없이 한 껏 빨아들이기란 불가능하리란 걸 느낀다. 아직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너무나 많지만, 원한다고 꿀 수 없는 꿈처럼, 형도 그러니까 이제 그런 사람이 된 것이지요? 그럼에도 당신 생각으로만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형이랑 만나는 꿈을 꿨어요. 당신의 없음이 아니라 있음으로 가득찬 이 공간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돌이켜보고 겹쳐보고, 후회해보고, 떠올려보고, 상상해보고, 기억해보는 그 모든 것 중에 내가 단 하나만 할 수있다면, 그 무엇보다 형을 그저, 보는, 꿈을 꾼다고.
딱 한 번만 더 형이 보고 싶었다.
더는 순환하거나 반복되지 않는, 자기 지시적이지도 않을 순정한 다음의 풍경이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이든, 어떻게든, 나는 그것이 보고 싶었다.
_ 김봉곤, 「라스트 러브 송」
2
- 다윈 : 에이블링 씨, 저는 마차 선두에 서서 그 움직임을 팽팽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자유로운 사고를 철저하게 옹호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소. 사고의 자유를 성취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인류의 머릿속에 하나둘씩 차근차근 불을 켜 가는 방식인 것 같소. 학문의 진보를 통해서 말이지요. 무신론을 위한 프로파간다에 내가 이용되는 것엔 동의할 수 없고, 바로 이것이 선생의 부탁을 거절하는 이윱니다.
- 엠마(다윈의 부인) : (끄덕끄덕. 암만, 그래야 내 남편이지.)
- 에이블링 :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나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이제 잃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유명한 분이고, 세계는 선생님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 다윈 : 왜 그렇게 공격적입니까? 그리고 내가 무신론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선생의 착각이에요.
- 에이블링 : 선생님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 다윈 : 나는 불가지론자요.
- 에이블링 : 그건 그냥 무신론자임을 좀 더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잖습니까!
- 다윈 : 용감하시군, 젊은이. 선생의 생각을 한번 끝까지 밀어붙여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세계의 시작에 대해 어떤 특정한 것을 기대하도록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태초에 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기 때문에 나는 나를 오히려 유신론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요.
- 굿윌(교구의 사제) : (진짜? 헐. 당신이 유신론자라니, 나도 몰랐는데......)
- 마르크스 : (이 개새끼, 아내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자기가 해 온 모든 업적을 부정하고 앉았군)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오!
- 뷔히너 : (무기력하게) 포이어바흐군요......
- 다윈 : 신사 여러분, 나는 소위 원숭이에 관한 질문을 던져 그 질문에 인류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답한 사람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되는 일을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서 신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교회의 가치를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반역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또 바로 그 때문에 좌파들에게는 온갖 찬사를 받는 것도 이제는 고통스러워요.
- 에이블링 : 하지만 바로 그 반역이 선생님이 하신 일 아닙니까! 그저 그 일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으신 것 아닙니까? 어쨌거나 여기서 빼앗았다는 말은, 제게 물으신다면, 적합한 단어가 아니긴 하지만요. 인류에게서 뭔가를 빼앗아 가신 것이 아니라 인류를 해방시키신 것이잖습니까! 저한테 물으신다면요.
- 다윈 : 하지만 난 선생에게 묻지 않았소! 그리고 그 외에도 선생은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서 인정하기까지 했어요. 내가 보기에 무신론자들의 논리는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과 똑같습니다. 충분한 토론 과정을 생략해 버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배제하고,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을 주장하고, 생각을 전파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굴지요. 이 과정에는 도대체 조금의 겸허함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오?
- 마르크스 : (하아아아품)
- 에이블링 : (부들부들)
- 엠마 : (이 양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쌈닭이 되었지.....)
- 굿윌 : 어, 왜 점점 어두워지지? (갑자기 쓰러지며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다.)
_ 일로나 예르거, 『두 사람』 244-247쪽을 가지고 syo가 극형식으로 재구성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음이 확실한 어느 저녁 식사를 가정하여 창조해 낸 정밀한 시궁창이다(책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퀀스의 갈등 국면이요). 다윈의 거친 생각과, 엠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마르크스.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그 와중에 기절하는 사제 하며. 기절하는 사제의 저 대사는 아무리 봐도 절창이다. 어, 왜 점점 어두워지지? 라니.....
3
까르띠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죽은 선원을 해부하라고 지시했지만 끔찍하게 변한 내부 장기에서 알아낼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까르띠에 자신은 건강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숲 속을 산책하다가 한 인디언을 만났는데, 몇 주 전만 해도 아팠던 인디언이 지금은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까르띠에가 어떻게 회복했느냐고 묻자 인디언은 모든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사철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디언은 이로쿼이어로 '아네다'라는 나무의 가지를 까르띠에에게 가져다주었다. 까르띠에는 인디언이 알려준 대로 나뭇가지를 차로 끓여 배의 병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음에는 선원들 대부분이 인디언의 차를 마시지 않으려 했다. 결국 2명의 자원자가 나서서 차를 마셨는데 몸이 금세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두세 번 더 차를 마시고는 병이 완전히 나았다. 까르띠에는 프랑스 의학부의 가장 유명한 박사들이 1년 동안 처방한 온갖 약제보다 일주일 동안 마신 나무 차가 훨씬 더 효과가 컸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거의 모든 선원을 구할 수 있었다. 선원들은 혹독한 캐나다의 겨울도 이겨냈다. 까르띠에는 효과 높은 약재 덕택에 5월에 닻을 올렸고, 추장 돈나코나를 포함해 이로쿼이족 무리를 납치해 프랑스로 데려갔다. 프랑스에서 이로쿼이족은 곧 병을 앓다가 다시는 고향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_ 옌스 죈트겐, 비탈리 콘스탄티노프, 『교양인을 위한 화학사 강의』
제목이 저래서 독자들의 부당한 외면을 받을까봐 걱정이다. 아무래도 과학책은 그야말로 많이 보는 사람들은 많이 보고, 조금 보는 사람들은 셀럽급 과학자들의 책 위주로 보고, 안 보는 사람들은 아예 안 보기 때문에. 아직 읽는 중이라,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달아놓은 타이틀만큼이나 책 자체가 무미건조하지는 않다.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운운하는 시리즈에 비해서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다. 아닌 듯 은근 시니컬한 저런 서술을 보면 알 수 있으시겠지만, 독후 1시간 안에 팔 할이 소실되고 마는 그런 기계적인 지식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과학책은 아닙니다.
-- 읽은 --




채호석, 안주영,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김사인, 『어린 당나귀 곁에서』
장윤석, 『전공이 보이는 미분적분학』
이다혜,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읽는 --








일로나 예르거, 『두 사람』
이기원, 『운동 미니멀리즘』
옌스 죈트겐, 비탈리 콘스탄티노프, 『교양인을 위한 화학사 강의』
박이문, 『나의 문학, 나의 철학』
김소연, 『i에게』
이진오, 『밥벌이의 미래』
찰리 맥도널, 『웃기는 과학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