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라, 녹아라
1
당신의 눈물을 저울에 올려 헤아리기 위해 나는 간신히 눈물을 돌려세우는 중이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각자의 어깨에 내려앉는 것일까요. 무거움을 나눈다는 것은 한낱 속이는 말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수없이 읽은 책 속에 당신의 열린 눈가에 발라줄 말, 당신의 무너지는 마음에 감아줄 말 한 마디가 없었으니, 나는 오늘을 위해 무엇을 읽어온 걸까요. 아무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그 방에서 울음과 울음으로 그득히 만나고, 우리는 서로의 등 뒤에 버티고 선 벽에 끝없이 서로의 눈물을 바르며 그저 안으로만 자꾸 외쳤습니다. 녹아라, 녹아라.
때로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일이 부끄럽습니다.




누군가 내 가슴을 열고 갈비뼈 속에 새를 키우고 있다.
그 새가 허파를 쪼는 바람에 별이 뜨고, 우는 소리 때문에 바람이 분다.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갈빗대를 옮겨 앉는 새를 내 몸이 다 허물어지기 전까지는 놓아줄 도리가 없어서, 날마다 밤이 온다.
새들은 어둠 속에서 날개를 잊는다.
_ 신용목,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불행을 버리고 가면, 불행과 함께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불행을 버리고 사람을 끌어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 사람의 말과 불행의 말을 구분하는 법, 사람의 마음과 불행의 마음을 알아보는 법, 그것을 안다면 예의 없이 손을 내미는 불행에게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행한 사람을 구하러 갔다가 불행에 빠져 죽지 않고 사람만을 건져오는 법,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절실하다.
_ 신유진, 『열 다섯 번의 밤』
고통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 계속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계속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다. 인생에는 상(常)의 상태가 없다는 것, 즉 삶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어찌 붙잡을 수 있겠는가.
_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난처하다고 굴복할 수는 없다. 정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정직한 것이 이기지 못하고 달리 이기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오늘 밤 안에 이기지 못하면 내일 이기면 된다. 내일 이기지 못하면 모레 이기면 된다. 모레도 이기지 못하면 하숙집에서 도시락을 가져오게 해서 이길 때까지 여기서 버틸 것이다.
_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2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김성은의 『인간을 위한 약속 사회 계약론』, 문광훈의 『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이승환 등의 『고전 강연 1』, 데카르트의 『성찰』, 윌리엄 고드윈의 『최초의 아나키스트』,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을 읽었다.
혼자 힘으로 고전을 읽어내는 것은 분명히 기쁘고 권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역량을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잘 읽는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그 좋은 책을 다 읽어도 수없이 많은 것을 놓치고 지나갈 것이다. 믿을 만한 것은 읽는 힘이 아니라 고집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읽고 소화한 생각이 아무런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 생각을 덮어버리는 일은 흔히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약한 인간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입문서와 개론서는, 실제로 그 원전을 읽지 않는 이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여지도 있으나, 언젠가 원전을 읽기만 한다면 결코 원전 자체만 읽는 것보다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다.









다음 책, 그리고 또 다음 책.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까고 지나가야 할 남자, 데카르트를 깔 준비를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