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몰고 오는 문장이 밤을 식힙니다
1
촤르릉 촤르릉 얼음 조각이 머그컵 안쪽 면을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나 한번 흔들어 보는 밤. 생각나는 책, 생각나는 사람의 이름들을 꼼꼼히 옮겨 적어도 땀 흐르지 않는 선선한 밤. 풀벌레 울었다가 앗, 아직 이른가, 하며 금세 정적 속으로 어둑어둑 숨어드는 은은한 밤입니다.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저는 커피를 마시고, 몇 개의 이름을 쓰고,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었으니 이제 복숭아를 베어 먹을 거예요. 아삭아삭 늘쩡늘쩡 오늘밤을 노 저어 가려 해요. 누구와 두런두런 하루의 끝을 나눠먹고 계신가요. 혹시 겨울이 긴 이국의 어느 소설가가 빚은 아름다운 문장을 버무려 이 밤의 맛을 내고 있나요. 그렇다면 그 문장을 조금 나눠주세요. 당신의 밤이 어떤 맛인지, 제게 잠깐 알려 주세요. 그렇다면 저는 제가 훔친 문장을 보여드리죠. 우리가 가진 문장들이 섞여들어 우리의 밤이 서로 닮아갈 수 있도록, 오늘밤의 문장을 교환합시다. 그러기에 충분히 선선하고 은은한 밤이니까요.
2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자 하숙집 주인이 "차 한 잔 하실까요" 하며 내 방으로 들어온다. 차 한 잔 하자고 해서 나한테 대접하나 싶었는데 거리낌 없이 내 차를 끓여 자신이 마신다. 이걸 보면 내가 없을 때도 멋대로 자기 혼자 '차 한 잔 합시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_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웃겼는데, 웃고 나니까 웃은 건 나뿐이고 막상 도련님은 정색하고 저 말을 했겠구나 싶었다. 물론 소세키는 나 웃으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나 도련님한테는 다른 문제다. 소설을 읽을 때, 여전히 주인공과 거리를 두고 있구나. 우리 안의 코끼리를 보듯 멀찍이 뒷짐을 지고, 코끼리가 울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웃음을 터뜨리며, 내가 소설을 읽고 있구나.
3
슬픔을 나누는 것과 불행을 나누는 것은 다르다. 슬픔은 위로를 원하지만, 불행은 불행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행한 상태, 그 자체를 가장 좋아하며 변화를 싫어하고 매우 친화적이어서 어떻게든 자신이 있는 쪽으로 모두를 끌어당기려 한다.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행이란 놈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귀를 막고 달아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듯이 귀를 막고 돌아보지 말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을까. 불행을 버리고 가면, 불행과 함께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불행을 버리고 사람을 끌어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 사람의 말과 불행의 말을 구분하는 법, 사람의 마음과 불행의 마음을 알아보는 법, 그것을 안다면 예의 없이 손을 내미는 불행에게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행한 사람을 구하러 갔다가 불행에 빠져 죽지 않고 사람만을 건져오는 법,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절실하다.
_ 신유진, 『열다섯 번의 밤』
누구의 길에서나 슬픔은 기다려 우릴 흔들고 불행은 손톱을 세워 할퀸다. 그 아픈 흔적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관하였는가에 따라 길 끝자락에 선 이가 삶을 마주하는 모양새는 달라진다. 누구나 슬프고 아프다. 누구나 불운하고 불행할 것이다. 그 사실이 누구나 저런 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진 않는다.
4
이재영이 죽었다. 나는 공산당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나는 아무에게도 지켜야 할 약속이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MB시대'를 버텨내지 못했다. 50이라는 나이는 그런 나이다. 친구나 지인 한두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그게 20대와 다른 점 아닐까? 내 친구들은 참 많이도 죽었다. 민주노동당에 재영이가 두 명 있었다. 정책을 맡았던 이재영, 조직을 맡았던 오재영. 나는 두 명의 재영이와 모두 친했다. 오재영은 나와 한 잔 하기로 약속을 잡은 주에 죽었다. 과로사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노회찬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노회찬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오재영과 그 선거를 치르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의사 박상표는 광우병 싸움으로 유명한 인사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서 나는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친구들이 50이라는 나이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우리끼리 모였을 때, 너무나 친했던 친구나 지인이 한두 명 죽는 건 술자리 화제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게 20대나 30대 시절의 우리와 50대가 되어버린 우리가 다른 점이다. 이제는 죽음에 조금 더 익숙하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도 준비해나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_ 우석훈,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이 두 개의 문단들 속에 언급된 인물들 중, 이제 살아 있는 사람은 없다. 우석훈 선생님이 이 글을 썼던 시점에는 한 명이 살아있었다. 이 책이 나오고 한 달, 선생님도 이 두 문단이 죽은 이들의 이름만 지닌 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은 자꾸 죽는다.
이 글 속에 살아 있는 사람이 이제 없는 줄 알았는데, 영어로 써 있어서 놓쳤다. 다시 읽어 보니 아직 한 명이 살아남아 있다. 그 사실이 왜 위안이 되지 않는지, 사실 나는 안다.
5
자, 그럼 다시 읽습니다.




모든 책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제시한다. 책을 읽기 시작한 모든 독자에게 낯선 정도와 의문의 정도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 의문은 독서 전에 생긴 것이든 독서 과정에서 생긴 것이든 모두 독서를 이끌어주는 동시에 종종 독서의 여정에서 유일한 지도 역할을 한다. 책의 세계에는 이로 인해 독특한 경로가 생겨나고 책 읽는 사람은 그 경로의 부분적인 모습만 펼치게 된다.
_ 탕누어,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이 책을 프랑스에서 읽었을 때는 비-선동적으로 느껴졌는데, 여기서 읽을 때는 선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책읽기가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그 책이 던져져 있는 상황 읽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책읽기 역시 전술적이다.
_ 김현, 『행복한 책읽기』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_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인생의 어떤 시기를 기억할 때 나는 책을 떠올린다. 힘들어질 줄도 모르고 즐거이 읽은 책. 힘들었던 나를 붙잡았던 책. 힘듦을 잊게 했던 책. 힘듦을 극복하게 해준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허무로 다시 힘들어지는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보여준 책. 책을 읽을 때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십대의 나는 책을 읽고 현실을 잊어버렸다.
_ 김겨울, 『독서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