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요코야마 히데오는 소개된 작품이 평균 이상의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지 못한 불운한 작가이다. 한창 분권논란이 벌어졌을 때 보란듯이 얇게 져민 연어회 두께로 출간되어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클라이머스 하이>, 그리고 큰 출판사지만, 미스테리 쪽에는 관심이 적은 들녘에서 조용히 나왔다가 이틀만에 사라진 <사라진 이틀>까지. 더 많은 작품이 소개되면 좋은 상업적 평가를 얻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나도 요코야마 히데오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인데,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흥분하면서 읽다가, 중반부터는 김이 빠지면서 읽는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집단 간의 갈등을 묘사하면서 세상을 다 뒤엎을 분위기로 출발하기 때문에 흥미진진한데, 문제는 감동강박증과 용두사미로 설명할 수 있는 결말부분이 영 아니라는 점이다. 후반에 가면 반드시 감동을 주려고 하는 강박적인 태도와 허술하게 풀리는 결말을 보면서 아쉽다 못해서 혀를 차기 일쑤였다. 내가 감동에 메마른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사라진 이틀>같은 경우에는 초반부는 별 5개, 후반부는 별 1개, 그래서 평균해서 3개를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노림수인지 정말 가슴이 따뜻하신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작품이 나온다고 했을 때 나름 기대를 했다. 다른 분도 지적하셨듯이, 만화로 나온 <제3의 시효>를 보면 요코야마 히데오의 장악력과 필력이라면 단편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하고 읽었다. 

역시 처음에도 홀렸다. <붉은 명함>이 좋은 단편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놀랍게도 최근에 나온 검시관이 주인공인 작품답지 않게 고풍스런 맛이 넘친다. 법의학 하면 떠올릴 CSI 류의 프로파일링이나 검사에 의존한 전개가 아닌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논리적 전개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셜록 홈즈 이후로 수없이 등장한 오만하지만 속은 따뜻한 천재 탐정이라는 캐릭터도 좋았고. 또한 단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멋진 밀실트릭을 보여준 <눈앞의 밀실>이나 <화분의 여자>와 같은 단편들은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늘상 보여주는 조직내부의 모습과 갈등도 장편만큼은 아니지만 만족스럽게 배열되어 있고.   

특히 모든 분들이 최고로 꼽는 <전별>을 읽으면서 역시 요코야마 히데오의 장기는 '조직에서 스러져가는 노장들에 바치는 비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특유의 감동이 절절 우러나온다. <사라진 이틀>의 용의자와 <클라이머스 하이>의 주인공와 마찬가지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섬세한 필치로 형성된 고마쓰자키라는 인물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오히려 구라이시보다 더욱 눈에 띈다. 중년 이후의 삶,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 직장은 자신의 존재가치와 등가되는 곳일텐데, 그곳에서 자신의 가치가 소멸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남자의 미묘한 심리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고 있다. 이 연작 단편에서 미묘하게 쇠퇴해가는 구라이시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어찌보면 이 단편집의 숨겨진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히 동일한 아쉬움이 남는다. 단편들의 편차가 심하다. 위에서 헌급하지 않은 단편들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평균이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추리소설의 본령은 트릭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트릭이 지리멸멸해지는 경향이 있고, 요코야마 히데오답지 않게 트릭이 부족해도 특유의 인간묘사로 단점을 가리지 못한다. 오히려 고질병인 이상한 감동에 대한 집착으로 채우는 편이다. 과연 <실책>을 보면서 구라이시는 따뜻한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구라이시의 행위가 눈물겹게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걸 보면서 눈물겹도록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겠다. 요코야마 히데오 선생에게 눈물겹도록 동정심을 느끼긴 하겠지만...<17년 매미>나 <한밤중의 조서>도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 <목소리>는 문제의식 외에는 건질 것이 없는 최악의 작품이었고...

이렇게 쓰고 보니 전4편에는 칭찬을 후4편에는 불만을 늘어놓은 셈이다. 또 용두사미라고 해야하는 건가 싶었다. 내가 용두사미라는 고정관념이 강한 탓일까? 역시 결론적으로 전반부는 만족, 후반부는 불만, 그래서 중간에 우뚝 멈춰버렸다. 못내 아쉽다.

뒤에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요코야마 센세. 앞만 보면 정말 홀린단 말입니다.

추신1)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역자후기를 보면 구라이시의 삶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나이가 들은 탓인지, 예전 같았으면 열광했을 구라이시의 삶이 그다지 부럽지는 않다. 그처럼 살 수 있다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사회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도 없고, 열렬한 추종자를 거느린 고독한 교주일텐데, 평범한 범인이 되어버린 나로써는 그닥 선호하고 싶은 삶은 아니다. 어찌 보면 더 중요한 것은 사회가 혹은 조직이 구라이시 같은 인간형에 대해서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굳이 떠올리지 안아도 되게끔 말이다.        

추신2) 표지로 무슨 영광을 보시려고 이리 비슷하게 만드셨나...구라이시는 독고다이라 팀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검시관이라서 수술도 안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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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0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편을 잘쓰고 단편에 약한 데프리 디버나 단편에 강하고 장편에 약한 호크 (이름이 기억안남 =..=)도 있는데, 단편 수준이 각양각색이라니 약간 의심됩니다 ㅡ.,ㅡ

jedai2000 2007-07-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초롬너구리님...혹시 제프리 디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단편 잘쓰기로도 소문 났는데..영국추리작가협회 단편상도 받았고, 미국쪽에도 노미네이트가 자주 되는 작가랍니다. 단편집도 2권 냈구요 ^^ 호크는 아마 에드워드 호크 같네요. 단편에 장기가 특출난 작가죠 ^^

비로그인 2007-07-11 13:42   좋아요 0 | URL
후후, 제프리 디버 맞아요 (오타났군요). 전 그분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작가싸이트에서 이메일정보서비스 받아가면서 챙겨 읽지만 장편에 비해 단편은 따라가지 못하는것 같더라구요 (코메디를 모든 나라가람들이 다 보고 웃지 않는 것처럼 문화적인 부분이 녹았있는데 단편의 경우엔 장편보다는 좀 더 모든 등장하는 아이템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도 압축되어있지요. 그런면으로 보면 다소 불공정한 제나름대로의 판정이긴해도) 에드워드 호크 (이름이 생각 안났답니다. 호치라고 발음하기도 하더군요)는 단편을 많이 쓰고 나름 시리즈도 있지만 솔직히 아주 뛰어난 작품은 없다고 생각하구요. 제가 좀 짜요 ^.,~

상복의랑데뷰 2007-07-1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초롬너구리 / 디버의 단편은 많이 읽어보질 못해서 함부로 말씀을 못드리겠습니다만, 황금가지에서 나온 단편을 읽어보면 숙련된 장인이긴 한데 독창성은 부족하다라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종신검시관> 자체가 그렇게 떨어지는 책은 아닙니다. 다만 초반부의 기대치에 비해 후반부의 매조지가 너무도 약한 것이 아쉬운 것이죠. 제가 메말라가는지 감동 자체에 회의적이 되가다보니 좀 악평을 했습니다만, <사라진 이틀>이나 <클라이머스 하이>모두 범인과 트릭의 범위를 좁혀과는 과정 그 자체는 매력적입니다. 풀리고 나서 허무해서 그렇죠 ㅠㅠ

2007-07-11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7-11 21:31   좋아요 0 | URL
전반은 강추, 후반은 비추라는 말씀에 일관된 수준이 아니니 의심된다는 말을 했던 것이니, 다시 두둔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애초에 댓글을 남긴 것부터 후회가 되는 군요.

상복의랑데뷰 2007-07-1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두둔한 것처럼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뭐랄까 비추를 생각하면 욕해야 마땅한데, 강추를 생각하면 미워도 다시한번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다보니 화내고 다시 두둔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감사하구요. 후회가 든다는 말씀은 무섭습니다. ㅠㅠ

비로그인 2007-07-13 16:27   좋아요 0 | URL
음, 님글봤어요. 제글도 보셨죠? 이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된거 같네요, 그쵸? ^^ 글구 복수대상을 정확히 정해주셔야 저도 타켓에 대한 연구를 하지요. ^^ 음, 사례는 물에 씻은 고구마 정도로 청구할께요 ^^

상복의랑데뷰 2007-07-1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옙. ^^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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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스터 체핀치라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그는 냉동고 안에 갇혀서 누군가가 구원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그는 자신을 죽일 동기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냅니다. 과연 누가 네스터를 궁지에 몰아넣었을까요?

그리고 소설은 사건의 처음으로 돌아가 네스터 체핀치와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접근을 시작합니다. 네스터 주위의 인물들은 모두 그를 죽일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전개합니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얽매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의 핵심에는 네스터가 존재합니다. 그 연결고리를 깨달아 나가는 과정에서 주변인물들의 감정은 증폭되고, 살인의 가능성도 점점 커져 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서 결말을 향합니다.

읽으면서 특이했던 부분이, 비슷한 구조의 (추리)소설이라면 주인공인 네스터에게 일정부분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네스터 체핀치가 자기가 왜 죽어야되는지도 모르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법한데, 별로 네스터에게는 좋건 나쁘건 일체감이 적습니다.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고, 문제에 처한 것도 아닌 평범한 자영업자입니다. 연결고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과거를 제외한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따름입니다. 오히려 작가의 무게중심은 주변인물을 향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네스터로 인해 과거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그들은 죄의식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통해서 주변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두려움. 누구나 한번 쯤 느껴보았을법한 감정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작가의 의도는 소설 내의 등장인물의 차원이 아니라, 어두운 과거와 이를 바라보는 동시대 남미인들의 모습으로 확장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작중에 등장하는 용의자들의 기억은 줏어들은 상식으로 비추어볼 때 남미의 어두운 과거와 맞닿아 있습니다. 멀리 이야기할 것 없이 친일이라던가 혹은 군부독재로 인한 수많은 과거를 떠올릴 수 있겠죠. 어두운 과거에 적극적으로 영합하였던, 혹은 어쩔 수 없이-상당히 싫어합니다만-발을 담궈야 했던, 아니면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죄의식이 남을 수 밖에 없고, 집단적으로 그들은 과거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포함한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합니다. 과거가 부끄럽기 때문에 또한, 과거가 알려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말이죠.

스페인식 추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과거의 기억과 죄의식을 개인의 정확하지만 몽환적인 심리묘사를 통해서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스페인식 사회파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다는 점에서요. 다만 일본의 사회파는 르포르타주에 가까운 리얼리티를 중시한다면, 이 작품은 보르헤스 식의 접근을 한다는 것이 다른 것 같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비슷하다고 할까요?    

저는 추리소설 독자이므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처럼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구조를 차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의 클리세를 적절하게 비틀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이 리뷰에서 쓰신 키워드를 떠올린다면,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조심해서 따라가다 보면, 범인을 어느정도 짐작가능하게 해줍니다. 범인이 누구냐, 어떻게 죽였느냐, 왜 죽였느냐라는 부분들만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냥 무난한 수준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나 그 뒤에 이어지는 에필로그는 예상가능한 접근이었지만, 책으로 접하게 되니 상당히 신선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좀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결말부분을 보고 나니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린 것도 있었습니다.

제 취향이 추리소설을 우선시하는데다가 보르헤스 풍이라 여겨지는 남미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서 중간중간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제 취향과는 무관하게 좋은 작품입니다. 특히 작가가 공을 들인 것이 분명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심리묘사는 상당히 흥미진진했구요. 그리고 일본 미스터리가 대세인 시장에 스페인 작가의 수준작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출판사의 노력에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추신)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역도산>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몰입하다면서도 멀찌기 밀어내고, 집단의 의식과 개인의 무의식을 탐구한다는 점, 장르가 분명하면서도 장르의 쾌감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히 결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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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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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작가 중에 <불모지대>, <하얀거탑>의 야마시키 도요쿄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그러나 나쓰오 여사님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이 꺼려지게 된다. 이분의 포스가 워낙 강력해서도 있지만, 이분이 여성성의 어두운 측면을 사정없이 까발리기 때문에 남자인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공감한다거나 이해한다는 데에 한계가 있기에 언급 자체가 주제넘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고, 차라리 마초 VS. 된장녀 운운하는 키보드 워리어라면 욕이나 한바탕 해주고 말겠는데, 여사님은 그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그 어둠의 아우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작품의 마지막 단편이자,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암보스 문도스는 양쪽의 세계-여기서 양쪽은 새롭고 낡은 두 개의 세계라고 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쓰오 여사는 어떤 양쪽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을까.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었다.

한쪽 세계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늘 다루시는 디스토피아. 나쓰오 여사에 대해서 언급할 때 늘쌍 이야기되는 여성성, 절망, 악의로 가득한 '어둠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냉혹한 심리묘사는 단편에서도 알짤없다. 책책 뒷표지에 나온대로 일곱 가지의 주제로 구원이 없는 여성들의 처절한 삶을 묘사한다. 물론 길이의 제약 때문에  <그로테스크>와 같은 집요함은 없지만, 작중 인물들의 어두운 심리를 포착하고 요리하는 모습은 그 짧은 단편에서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쪽의 세계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는 밝은 세계지만 단편집을 아무리 정독해도 밝은 세계는 없다. (그걸 기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 무엇일까? 내 부족한 깜냥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앞으로 풀어야할 궁금증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만 놓고 보자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가를 등장인물로 한 단편이 많다는 점, 결말이나 주제를 다루는 방법에서 다른 모습이 보인다는 느낌 등 무언가 실마리는 있으나 잘 모르겠다. 표제작만 놓고 보자면  새로운 어둠과 낡은 어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으신건가 싶기도 하다.(내 마음에 든 작품일수록 세대 간의 갈등이 부각되어 있다.) 물론 그런건 없다가 답일 수도 있을 것이고...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것이, 여사님은 관심법을 쓰시는건지. 어떻게 이렇게 속맘을 꼭꼭 집어 낼 수 있을까? 남자인 내가 봐도 참 놀랍다. 한치도 주저하지 않고 쓰시는 용기도 부럽기도 하고. 

일반적인 이야기는 이만 하고 각 단편에 대해서 더 언급하자면, <식림>은 여사님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잘 압축시킨 단편이고, 드물게 남자가 주인공인 <루비>는 약간 실망스러웠다.(역시 여사님은 여성전문이신건가.) <괴물들의 야회>도 여사님의 작품 치고는 뻔한 전개로 이루어져서 실망스러웠다. <사랑의 섬>은 특이하게도 주인공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해자/혹은 어둠의 정체가 비유적이나마 묘사되어 있다는 점-내가 파악한 나츠오월드는 가해자는 늘 추상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피해자들끼리만 서로 상해를 입히는 구조다.-에서 신선했다. <부도의 숲>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결말부분의 진술에는 의문이 남았고 <독동>은 여사님 식의 괴담인데 평범했다. 그리고 <암보스 문도스>는 작품의 표제작다운 맛이 있는 작품이다. 소소한 일상에서도 어두운 아우라를 끄집어내는 x레이의 눈을 가진 여사님의 매력이 잘 살아 있다.

여사님이 궁금한데, 정도와 길이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는 분께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기준의 팬들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장편에 더 장기를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클래스는 클래스이다.    

추신) 작가 프로필에서 <얼굴의 내리는 비>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국내출간시의 정확한 제목이고, <부드러운 볼>은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추신2) 내가 본 역자 프로필 중에 가장 재미있는 역자 프로필이었다. ^^

추신3) p47 공그르기->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p83 사나운 기성에 가득차 있었다->역시 이것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도의 숲 : '문학자'보다는 '문학가'가 더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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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5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냐, 공그르기는 혹시 바느질 용어가 아닌지.....요. 83페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글고 문학가...라고 더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은 작가의 발표순대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상복의랑데뷰 2007-06-0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 바느질 용어가 나올 문맥은 아니었는데..

발표순서대로 읽는게 작가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만, 우리나라의 출간행태상 걸작->졸작 순으로 나오기 때문에 쉽지는 않으실텐데요 ^^; 전 시리즈일 경우에만 순서대로 읽고, 초기작이라는 안내가 있을 경우 최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봅니다. ^^

비로그인 2007-06-0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맞는 말씀이십니다 (으윽, 정곡을 찌르셨어요...갈비뼈 사이로...ㅋㅋㅋ).

상복의랑데뷰 2007-06-0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
 
기요사키와 트럼프의 부자 -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말하는 부의 공식
로버트 기요사키 외 지음, 김재영 외 옮김 / 리더스북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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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로버트 기요사키. 아마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나열한다면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시리즈는 꼭 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책, 출판 시장의 지형도를 재테크/자기계발로 변화시킨 책, 황금가지라는 출판사를 한번에 각인시킨 책 등, 이 시리즈가 가지는 가치는 영어표현 그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사'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책 자체만 놓고 보자면, 기요사키의 충고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귤이 강남에 가면 탱자가 되듯이 미국에서의 방식으로 한국에서 성공하라는 무리인데다가, 가난한 직장이었던 시절에도 정말 건방진 생각이지만, 기요사키의 방식은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부자아빠와의 경험담이 아닌 구체적인 조언 부분으로 들어갈수록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많았다. 오히려 이를 비판한 이진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을 읽고 얻은 것이 컸으니까.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기요사키에 대한 난감함은 어떤 재테크 책을 읽어도 느끼는 부분이었다. 물론 실천가로써의 기요사키는 지금도 신뢰하지 않지만, 적어도 사상가로써의 기요사키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절반정도는 믿지는 셈 치고 그의 생각대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지금보더도 더 어리석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떤 가치관이던 그것을 실천하는 개인의 상황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게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요사키의 방식을 따를 게 아니라 기요사키의 통찰력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게 재구성하고 실천했어야 하는데, 천둥벌거숭이처럼 잘난척을 했던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솔직히 가쉽거리 란에만 오르내리던 부동산 투기꾼인 줄 알았다. 게다가 늘 회자되는 파산위기에 대한 기사와 이혼과 재혼에 대한 기사만 읽은 나로써는 그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백수초기에 도서관에서 뒹굴던 그의 책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가장 위대한 자수성가인 중에 한 명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특유의 거만함이나 자아도취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사업가적 기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로써는 이런 자신만만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의 이야기가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업을 할 용기가 생겼거나 노력을 했다는 것은 없지만-이러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최소한 리더쉽이나 통찰력에서 배운 점은 많았다. <어프랜티스>는 보지 못했지만, 의도한 것이던 치밀한 계산의 결과던 간에 자신의 경험을 노련하게 노출하는 모습만으로도 책 속에서 충분히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들이 뭉쳐서 만든 책 역시 이 두 사람의 장단점이 고루 섞였다. 어떤 면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면에서는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뮤추얼 펀드를 회피하고 부동산에 투자해라 등의 구체적인 방안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요사키의 경우, 교육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신에 관여한 상품에 대해서 지나치게 노출하고 있다.(물론 그걸 찾아보는 실천의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배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도 같다. 모든 사람이 기요사키+도널드 방식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체성을 제거하고 나면, 담론차원에서의 원칙과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그리고 자기계발과정만으로도 이 책은 반짝반짝 빛난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쓴 모든 책의 엑기스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은 생략하고,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두 사람의 통찰력은 정말 냉정하다. 국가가 개인을 돌볼 수 없다라는 말. 누구나 알지만, '설마 그렇게 되겠어?'하면서 막연히 회피하는 문제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부자가 되라고 권한다. 이제 '잘난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못난 놈'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내 주위의 직간접적 체험을 통해 심리적으로 쪼그라든 상당히 공감했다.(더 늦기전에 정신 차려야 하는데...) 뒤로 갈수록 몰입의 강도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들도 정글터에 던져진 무언가처럼 부의 축적을 '생존의 논리'로만 접근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전세계의 탐욕과 무능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나? 정글에서 살아남으라고 서바이벌 기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정글을 바꿀 것을 호소할 수는 없는 것인가?(그런 아버지를 둔 기요사키는 특히 냉소적이다.) 하다못해 탐욕의 화신인 '해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도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칼 포퍼의 충실한 제자답게 개인적 기부를 통해 정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데 말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파이가 급속도로 늘어나지 않는한 많은 사람이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막무가내로 부자가 되라고 권유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성공 혹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공이나 부가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자명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과 성향, 가치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추신) 이 책 못지 않게 통찰력이라는 관점에서 권하고 싶은 책은 부자아빠 시리즈를 비판한 이진의 <부자아빠의 진실게임>이다. 기요사키를 비판한 통찰력은 부자아빠에 대한 맹신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한국형 부자'의 시초인 세이노의 통찰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사실 배울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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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6-1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상복의랑데뷰 2007-06-1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매지님 오랫만입니다. 감사합니다. ^^; 부끄럽네요. ㅎㅎ

비로그인 2007-06-1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한국의 부자 시리즈를 봐도 부동산하고 세법의 틈새에서의 성공은 빠질 수가 없지요. 이들이 돈벌고 나서 세법이나 금융정책이 업데이트되어서 이들이 쓴 책을 읽고 따라하려면 이미 늦었잖아요, 된장. 그래서 어쩌다 돈번거 아니냐고 칠려고 해도 위기를 극복, 관리하는 면에선 정말 '난' 인물들이죠.

상복의랑데뷰 2007-06-2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답변이 늦었습니다. 너구리님 말씀에 몇백%동감합니다. 저도 돈 많이 벌고 싶어요 ㅠㅠ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리얼 월드>를 읽고 잡친 기분 때문에 당분간 일본 소설은 안 읽으려 했는데, 우연히 눈에 띄길래 그냥 읽었다. 워낙 경쾌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본은 하겠지 싶어...

기대 이상이었다.

이 책의 단점에 대한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매우 정확하다. 트릭과 범인의 정체 그리고 동기, 그리고 추리소설독자들에게 민감한 공정함 등의 추리소설로써의 평가항목은 낙제점에 가깝다. 엄격하게 추리소설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좋게 봐주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경쾌함 때문에 역설적으로 범인의 동기가 더 엉뚱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 이 작품이 수상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더 대단한 미스테리는 널리고 널렸다.  

다만 공정함에 관해서는 이제 체념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갈수록 고도화된 수법이 등장하는 현대의 미스테리에서, 모든 단서를 공정하게 노출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편이나 고전추리가 아니고서야 fair game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다. 논리적으로야 물 한방울을 봐도 나이아가라 폭포를 상상할 수 있고, 부품 하나만으로도 차를 상상할 수 있지만, 일반(추리)독자에게는 무리다. 특히 이 작품처럼 전문적인 영역을 다룰 경우는 말이다. 물론 쿄코쿠도처럼 초반 장광설로 작품의 세계관부터 모든 단서를 뿌려줄 수도 있겠지만, <광골의 꿈>처럼 아무리 좋아하는 독자라도 충분히 고역일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불공정할지라도 매끄럽게 넘어가는게 나아보이기도 한다.  

조금 더 흠을 잡자면, 데뷔작에게서 보이는 실이 풀리듯 맥없이 풀어져버리는 급격한 결말도 그냥 웃어넘길 수 밖에 없었다. (데뷔작이라고 해서 마음의 각오를 하고 봤지만, 역시나 싶었다.) 아무리 대학병원/의료제도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작가/주인공은 의사고, 의사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그렇다. 의사의 입장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결말부분은 경쾌하게 웃기에는 상당히 찝찝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책에 묘사된 졸업시험에서 병원장 앞에 선 다구치처럼 '그럼 왜 좋다고 하는 겁니까.'라고 의문이 들법도 하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이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 쓴 이야기들은 다시 읽고, 또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나서 읽으면서 찝찝했던 부분들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이고, 처음 읽었을 때는 재미있다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그건 이 작가의 전략이 적중했다는 뜻이다. 이 작가는 단점을 메꾸기 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했다. 이 작품은 스피디한 진행과 캐릭터들의 개성에 모든 것이 종속되어 있다. 캐릭터, 사건의 진행, 모든 것이 그렇다. 하지만 희생한 만큼의 댓가는 충실히 구현되어 있다. 경쾌한 스텝으로 결말까지 달려가 버리는 작가의 재주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읽다보면 의문을 느낄 틈도 없다. 지루할 법하면 엉뚱한 이야기/캐릭터가 등장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의학관련 소설은 용어의 문제로 언젠가는 지루한 순간이 오는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 (일정 부분은 매끄럽게 번역해주신 역자와 편집자의 몫이다.) 다구치의 느릿느릿한 조사가 지겨워질만 하니 로지컬 몬스터인 시라토리가 등장해서 온갖 잘난척을 하는 식의...트릭을 구성하는 재주는 없지만, 소설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재주는 상당한 듯 싶다. 필력도 상당한 듯 싶고. (나같이 글을 무겁게 못 쓰는 사람에는 혹할만한 재능이다. OTL) 

게다가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빛과 어둠의 관계처럼 '2인 3각'의 콤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고전 추리의 핵심 미덕 중에 하나인 와트슨-홈즈 콤비가 때로 등장하는 셈이다. 주인공인 다구치-시라토리를 비롯, 등장인물들이 2인 3각의 콤비네이션을 이룬다. 바티스타 수술 팀도 전체 팀의 느낌이 아니라 파트별 콤비의 개성이 눈에 들어온다. 2인 1조 콤비가 하나의 유닛이 되어 2유닛 1조의 콤비가 되고...또 모여서 콤비가 되고...부분이 전체가 되고 전체가 부분이 되는 기묘한 재미가 이 작품에는 잘 살아 있다. 개성외에는 기능적인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캐릭터지만, 그 개성이 주는 코믹한 불협화음이 큰 매력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무거운 것이 사실이지만,-결말부에 등장하는 범죄를 예방할 것인가? vs.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의 갈등은 추리소설 팬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팔묘촌>에서도 논란이 된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의 긴장감을 좋아한다. 의사의 긴장감도 같이 잘 묘사되어 있고-작가의 경쾌한 태도로 인해서 별 무리없이 주제가 전달된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무게만 잡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일반 독자가 의료계에 대해 문제의식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기란 힘들다. 이 책은 그 경계를 비교적 정확하게 포착하고는 안전하게 멈춰선다. 그 지점을 알고 살짝 멈춘 작가가 얄미우면서도 그 재능이 부럽기도 하다. 

또한 내가 흐뭇했던 건, 책의 만듬새가 정성이 그득그득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표지는 지금도 흰 바탕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어 표지와는 다르면서도 작품의 유머러스한 느낌을 잘 살린 표지와 장마다 삽입된 일러스트, 보기 좋게 편집된 본문, 그리고 의학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쉬이 읽히게 만드는 번역과 해설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직전에 읽었던 <리얼 월드>에 워낙 디어서 그런지 바티스타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에 비하면 운좋게도 (일본) 미스테리에 많은 지식과 통찰력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계시다보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어줍잖게 들을 수 있었고, 읽게 되었는데, 간만에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왜 화제를 몰고 왔는지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다음 작품들도 소개가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장점이라고 여긴 부분들만 계속해서 충실히 보여줘도 흔쾌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콤비와 작가의 계속적인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추신) 바티스타 수술이 <의룡>에 나왔다던데, 그 만화를 보지 않아서 얼마나 대단한 수술인지 모르겠다. 머릿속에는 WWE 바티스타가 떠올라서 좀 힘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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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3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6-0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공개 / 하하 그 전에 말씀드린 책도 보내드려야 할텐데......부럽습니다. ㅠㅠ

비로그인 2007-06-0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

상복의랑데뷰 2007-06-0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셔도 후회는 안하실 듯 합니다.